CULTURE

서울의 새로운 가능성 ‘클럽’

2017.02.09GQ

지금 서울의 번화가 곳곳은 클럽으로 넘친다. 그런데 클럽이 아닌 곳에서도 파티가 열린다. 댄스 뮤직 신의 폭발과 함께, 그런 의외의 공간과 파티는 ‛다시 만난 세계’이자 서울의 새로운 가능성이다.

2016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늦은 밤, 을지로입구역 근처, 어둡고 인적 드문 골목. 근처의 사무용 빌딩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허름한 건물 5층에 사람이 모인다.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간다. 그 안에는 대략 100명이 넘어 보이는 사람이 춤을 추며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떼창’하고 있다. 봄비노 레코드에서 주최하는 ‘Bekind Re-Spin’이라는 파티가 열리는 날이었다.

‘Bekind Re-Spin’은 매년 말 봄비노 레코드에서 관심을 두고 지지하는 국내외 DJ/음악가가 한 해 동안 즐겨 들었거나 현장에서 플레이한 음악의 리스트를 소개하는 프로젝트다. 사이트에 리스트를 아카이브하는 형태로 진행하다 처음으로 파티를 열었다. 소울스케이프처럼 이름이 두루 알려진 디제이부터, 잡지 에디터, 디자이너, 음악 레이블 대표 등이 모여 레게, 테크노, 시티팝, 힙합, SM에서 발매한 케이팝 등 구분을 지어 설명하기가 무색할 만큼 다양한 음악을 틀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순간은 ‘국힙’을 거울로 레프트 필드 음악을 들려주는 음악가 풀의 순서였다. 풀은 트위터를 중심으로 컬트 팬이 형성된 영화 <아수라>를 틀어 놓고 대사에 맞춰 한 해동안 수집한 음악을 틀었다. 사람들은 스피커에서 나오는 <아수라>의 대사를 따라하고 풀이 튼 음악에 맞춰 정신없이 춤을 췄다.

파티가 열린 신도시는 5층의 펍이다. 카페를 겸하기에 낮에는 작가들이 작업하고 밤에는 술과 안주를 판다. 클럽으로서의 가능성이 언제부터 고려되었는지 모르지만, 어느 순간부터 신도시는 한 달에 2, 3회 다양한 파티가 열리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디제잉 장비는 고장이 잦고 사운드도 클럽에 비해 아쉽지만 ‘Bekind Re-Spin’ 파티에는 약 2백여 명이 입장료를 내고 들어왔다. 을지로3가 주변에는 다른 놀 곳도 없고 차가 끊기면 택시를 잡기도 힘들다. 이런 곳에서 번화가에 있는 소규모 클럽 규모의 방문객을 모았다.

2016년 12월 23일로 거슬러 올라가본다. 이태원 번화가에 위치한 건물 3층에서 공연과 파티가 열렸다. 디스토피아의 파티를 재현하듯 사람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파티가 열린 곳은 이름조차 없었다. 임대가 되지 않아 비어 있었다. MHV, K.U.W., 다다이즘클럽 등 영상 작업을 하는 아티스트 크루가 모여 12월 한 달간 공간을 빌렸다. 이후 ‘30Days’라는 프로젝트로 공간을 채웠다. 기본은 자신들의 작품을 설치한 전시장이었다. 스케이터보더가 모여 이곳에서 보드를 탔다.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상영회, 공연, 파티 등의 이벤트가 열렸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었다. 모든 인프라가 갖춰진 서울시내의 번듯한 클럽보다 쾌적할 리 없었다. 서울에서 가장 쾌적하지 않은 파티로 꼽을 만했다. 바닥 공사를 하지 않아 파티 내내 분진이 날렸다. 그런데도 파티에 온 사람들은 마스크를 쓴 채로 져지 클럽 비트에 맞춰 춤을 추며 음악을 즐겼다.

같은 날 망원의 바 섭스탠스와 문래의 복합 공간 프로젝트A에서도 프로듀서와 신생 파티 크루를 중심으로 한 파티가 열렸다. 모두 번화가와 동떨어진 곳이었다. 주말이면 스마트폰으로 지도 앱을 켜고 새로운 파티가 열리는 장소를 찾는 건 이제 익숙한 일이 됐다. 지금 서울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파티가 꼭 클럽에서 열려야 할 필요는 없다. 힙합이 탄생한 전설적인 쿨 허크의 파티가 열린 곳도 할렘의 오락실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할렘에는 클럽도 파티 문화도 없었기 때문이다. 서울은 1992년 최초의 클럽 ‘발전소’가 생긴 후 가장 많은 클럽이 존재하는 시기를 맞이 하고 있다. 지금도 어디선가 새 클럽이 생긴다는 소식이 들린다.

현재 상황은 1980년대 말 영국, 여기저기 교외의 창고에서 열렸던 레이브 파티 유행과도 비슷해 보인다. 문화연구자 사라 손튼의 저서 < Club Culture : Music, Media and Subcultural Capital >에 따르면 레이브 파티는 “클럽이라는 전통적인 댄스 장소에서 벗어나 버려진 창고, 비행기 격납고, 농장의 저수지나 텐트 속 등으로 이동하여 예측 불가능성의 감성”을 도모한다. 지금 클럽 밖에서 파티가 열리는 건 이와 같은 ‘감성’의 이유도 있을 것이다. 특히 재작년부터 유행한 루프탑 파티는 클럽 밖 공간의 가능성을 새삼 일깨워줬다. 이를 제외하고는 상황이 좀 다르다. 당시 교외의 창고에서 레이브 파티가 열린 가장 큰 이유는 레이브 파티를 불법으로 규정한 경찰의 단속을 피해 마약을 함께 즐기기 위해서였다. 한국에서 클럽은 2000년대 초에 합법화됐고 적어도 나는 서울의 파티에서 마약을 즐기는 걸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나 가장 성공한 파티는 모두 클럽이 아닌 곳에서 탄생했다. 아프로킹 파티와 도스 에이 도스 파티가 그렇다. 2000년 압구정동의 2층짜리 카페를 빌려 진행된 아프로킹 파티는 매번 압구정 동의 다른 공간을 빌려 파티를 진행했다. 이는 정글 브라더스가 내한했을 때, 선상까지 확장 됐다. 2005년을 기점으로 개최 횟수가 준 아프로킹 파티는 2010년 10주년을 기해 부활하는 듯하더니 가끔 소규모 파티만 이어가고 있다. 2006년 시작한 도스 에이 도스 파티는 신촌의 작은 바 공중캠프에서 출발했다. 이후 규모가 커진 도스 에이 도스는 종로의 한일캬바레를 빌려 2008년까지 파티를 이어갔다.

이 두 파티는 왜 사라졌을까? 도스 에이 도스의 창립자 오석근은 다음과 같은 글로 도스 에이 도스가 죽었음을 알린 바 있다. “시대는 변화했고 정신과 애티튜드는 사라져버렸습니다. 현재 많은 이들이 자신의 욕망과 환상, 과거 그리고 사고의 틀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이 보입니다. (…) 우리가 만들어놓은 신은 정체되어 있고 뒤틀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엔 수 많은 카멜레온의 탈을 쓴 자본의 뱀파이어들이 달라붙어 서로에 대한 우리의 큰 믿음과 사랑을 빨아먹으며 자신의 배를 채우기 급급한 것이 목격됩니다.”

이 글이 올라온 2009년은 한국 최초의 대형 EDM 페스티벌 ‘글로벌 개더링’이 열린 해다. 2008년은 디제이 쿠가 데뷔했다. 온라인에서는 ‘필수 합성 요소’로 쓰였지만 이때를 기점으로 디제이를 겸업하는 연예인과 모델의 수가 늘어났다. 강남에 사무실을 둔 디제이 에이전시가 생기고 대형 클럽이 하나둘 오픈했다. 이제는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프로에 고정 출연하는 개그맨도 디제이를 겸한다. 이윽고 2016년, 서울은 1년에 한 손으로 꼽기 어려울 만큼 많은 EDM 페스티벌이 열리는 도시가 됐다. 그와 함께 처음 클럽 문화를 열었던 홍대의 언더 그라운드 클럽은 임대료 상승을 견디지 못하고 사라졌다. 클럽, 파티, 페스티벌을 즐기는 대중은 늘었지만 언더그라운드의 흥미로운 움직임은 줄고 한동안 이때만큼의 인상적인 순간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다행인 건 문화의 흐름에 늘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 적용된다는 점이다. 댄스 뮤직의 역사에서 현재 서울의 상황과 가장 비슷해 보이는 건 1970년대 중반 시카고 웨어하우스의 탄생이다. 웨어하우스의 원형 US 스튜디오는 시카고에 상업적인 클럽이 난무할 때, 허름한 창고에서 탄생했다. 시카고에서는 들을 수 없던 뉴욕의 디제이들에게서 공수한 음악을 틀어 사람을 모았다. 이는 웨어하우스와 지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댄스 음악 장르인 하우스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2012년 이태원 녹사평역 부근에 생긴 케이크샵은 여전히 클럽이 유효함을 보여줬다. 케이크샵의 운영 방침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해외 언더그라운드 댄스 신과 네트워크를 만들고 파티와 디제이 큐레이션에 신경 쓴다. 언더그라운드 클럽의 기본에 충실한 운영이다. 음악 마니아를 중심으로 성장한 케이크 샵은 이제 이태원의 클럽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됐다. 이때를 기점으로 임대료 비싼 홍대 앞을 벗어나 새로운 세대의 언더 그라운드 클럽이 생겨났다. 케이크샵 멤버들이 케이크샵에서 틀 수 없는 음악을 선보이기 위해 만든 라운지 클럽 피스틸, 테크노를 좋아하는 디제이와 브이제이가 모여 만든 합정의 벌트, 우사단로 언덕을 한참 올라 3층까지 올라가야 하는 파우스트 등. 작지만 공간에 맞춰 세밀하게 설계된 사운드와 큐레이션을 바탕으로 이들 클럽은 마니아를 끌어모았다.

클럽 밖의 파티는 클럽과 반목한다기보다 이러한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보일러 룸과 같은 미디어와 사운드클라우드 같은 플랫폼 덕분에 어느 때보다 언더그라운드 댄스 뮤직을 접하기 쉬워졌다. 여기에 케이크샵의 활약으로 직접 전 세계 언더그라운드 댄스 뮤직의 현재 타임라인을 확인하고 네트워크를 쌓을 수 있게 됐다. 디지털 디제잉 장비의 발달과 경량화로 누구나 쉽게 디제잉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 스마트폰과 SNS는 취향이 비슷한 이들이 실시간으로 대화하고 모이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전 세계적으로 언더그라운드 댄스 뮤직은 어느 때보다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2016년 개국한 ‘서울 커뮤니티 라디오’는 영국의 린스 FM을 모델로 매일 오후 6시부터 12시까지 실시간으로 방송하는 해적 방송국이다. 이 방송국이 탄생할 수 있었던 건 매일매일의 프로그램 콘텐츠를 채울 수 있을 만큼 서울의 언더그라운드 댄스 뮤직 신에 공급이 늘었다는 증거일 거다. 다양한 디제이와 기획자가 음악을 중심으로 스마트폰을 이용해 커뮤니티를 만들고 자신에게 익숙한 또는 새로운 공간을 찾아 자신이 틀고 싶은 음악을 트는 시대가 도래했다. ‘Bekind Re-Spin’이 열린 신도시에서 매달 정기적으로 이어가고 있는 파티의 이름은 ‘No Club’이다. 클럽이 없다는 이 의미심장한 이름은 바꿔 말해 어디에나 클럽이 있다는 표현의 다른 말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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