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사대문 안의 제대로 하는 노포 5

2017.03.29GQ

오래된 정취 때문에 노포를 찾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제대로라서다. 그런데 그런 집은 대개 사대문 안에 몰려 있다.

서울특별시 중구 초동

3대가 사직동에서 살았다. 태생부터 종로 토박이인 가족 덕에 어렸을 때부터 종로와 을지로 곳곳에 숨어 있는 식당을 줄곧 다녔고, 여전히 사랑한다. 이젠 미식가라 자칭하는 친구 몇몇과 함께 노포를 다닌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맛있기 때문에 노포를 찾는다. 맛이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 동네 노포의 대부분은 대를 잇거나 오랜 시간 영업을 하고 있으며 차림이 단출하다. 단출한 차림을 오랜 시간 끊임없이 만들었으니 숙련도가 높다. 언제 가도 맛있고 일정한 수준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까닭이다. 그들은 이 단출하고 맛있는 음식을 팔아 생계를 책임졌고 가정을 일으켰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만든 음식에 대한 보상을 아는 주인들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토요일. 조용히 집에 앉아 다음 주 일정을 확인하니 몇 건의 약속이 종로와 을지로 근처에서 잡혀 있다. 사무실이 이쪽 근처이기도 하지만, 시시콜콜한 잡담을 늘어놓으며 음식다운 음식을 먹으려면 이 동네야말로 정답이다. 매번 가는 식당에 또 가지만, 음식 생각을 하니 기분 좋은 허기가 올라온다.

일요일. 갑자기 찝찌름한 평양냉면이 당겼다. 너무 추워 나가기가 망설여졌지만 괜찮은 냉면집이 집에서 그다지 멀지 않아 대충 채비를 하고 밖을 나섰다. 콧구멍으로 한기가 들이친다. 뇌까지 얼얼한 느낌이 들기 시작할 때 버스가 도착했다. 냉큼 버스에 올라탔다. 웬걸, 정거장에서 언뜻 보이는 가게 앞모습이 심상찮다. 재료 소진을 알리는 푯말이 골목 입구에 걸려 있다. 대기하는 사람들은 가게 밖까지 늘어서 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주차 관리하시는 분에게 물었더니 최근에 텔레비전에 나왔단다. 극한 허기와 영하 13도를 버텨낼 열정과 인내심이 내겐 없었다. 이런 날은 기다려봐야 엉망이다. 집으로 돌아와 라면을 끓였다. 국물이 따뜻했다.

월요일. 아침부터 어제 먹지 못한 냉면이 머리를 가득 채운다. 어제의 일도 있고 을지면옥의 질깃한 면발이 떠올라 추위를 뚫고 청계천을 내달렸다. 받아 든 냉면 국물 간이 적당하다. 어느 날은 소금탕, 어느 날은 맹탕인데 오늘은 딱 그 중간이라 반갑다. 나는 이 찬 국수를 맛만으로 먹는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메밀향을 미덕으로 칠 것이면 메밀국수나 메밀차를 마시는 게 효율적이다. 육향 그윽한 고깃 국물을 원한다면 곰탕이나 함흥냉면의 진한 장조림 국물만 인기가 있어야 이치에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멀건 국물을 다시 마주한다. 강요하지 않는 태도와 당당함이 주는 매력이 우리가 평양냉면집을 다시 찾게 만든다는 것이 요즘 나의 생각이다.

화요일. “꼬막이 올라왔는데 언제쯤 들를거예요?” 아침부터 낙원동 호반에서 전화가 왔다. 때를 기다렸다 하루에 두 번도 찾아가 강굴을 먹었는데, 이젠 원 없이 먹어 질린 상태가 되었다. 그러니 이쯤 들리는 꼬막과 주꾸미 소식이 얼씨구나 반가울 수밖에 없다. 전화를 끊자마자 사무실 직원들에게 점심은 호반에서 먹자고 하니 모두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매장 반경 30미터 벗어나는 걸 귀찮아하던 20대 친구들이다. 맛있는 걸 먹으러 갈 땐 힘이 넘친다.

수요일. 종로와 을지로에서의 선약은 날짜만 정해두는 편이다. 이곳 노포 식당들은 예약도 안 될뿐더러 걸어서 갈 만한 반경 안에 좋은 집이 워낙 많아 그날의 기분이나 날씨 따위에 따라 즉흥적으로 결정해도 무리가 없다. 오늘 만나기로 한 미식가 친구들은 근 2년간을 거의 매주 만나고 있다. 오로지 먹기 위해서 만나는데도 그동안 별 문제가 없는 걸 보면, 노포의 매력에 모두 빠져버린 게 분명하다. 뿌연 하늘을 보니 문득 경상도집이 떠올랐다. 비가 오거나 우중충한 날씨엔 이상하게 이 집의 돼지갈비가 생각난다.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는지 모두의 발길이 저절로 경상도집으로 향했다. 우린 어둑한 골목 어귀 녹색 타포린 천막 아래 모여 참새처럼 앉았다. 불내가 폴폴 풍기는 돼지갈비를 질겅거리며 차가운 소주를 함께 삼킨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취기가 오르자 회사, 가정 등 일주일을 버텨온 이야기들을 무용담처럼 쏟아냈다. 한참을 떠들다 식은 고기를 씹을 수가 없을 때쯤 누군가 이차를 제안했고 남산터널 너머의 어느 바 bar로 자리를 옮겼다. 노포가 허름해서 좋은 것이 아니듯, 바가 화려해서 싫은 것도 아니다. 노포와 바를 오가는 밤이 요즘은 꽤 많다. 그리고 언젠가 비가 오면 우리는 또 경상도집에 모일 것이다. 낭만과 고독을 아는 어른이고 싶을 때, 이만한 분위기의 집이 없는 까닭이다.

목요일. 과음으로 지끈거리는 머리가 거추장스러울 지경이다. 사무실에 도착해 물을 연거푸 마셔보지만 숙취는 쉬이 가라앉지 않는다. 차가운 공기라도 쐬면 괜찮아질까 싶어 새로 생긴 카페를 둘러볼 겸 광화문 쪽으로 나섰다. 이곳을 향할 때마다 기분이 찝찝해지는 것을 막기 힘들다. 70, 80년대에 지은 박스 형태의 고층 빌딩은 뭐랄까, 미적이지 않다. 계획 없이 디자인되고 두서없이 배치된 건물들은 최근에 지은 신식 건물과 어울리지 못한다. 카페가 들어선 신식 건물을 걷다 보니 서울 도시 계획의 저열함에 그만 익숙한 짜증과 숙취가 오른다. 별관을 개업했다는 노포 청진옥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앉자마자 내포 가득한 특해장국을 시켰다. 차지고 고소한 선지와 내포 넉넉히 담긴 깊고 은근한 맛의 국물을 들이키고 나니 쓸데없는 분노와 숙취가 어느새 가라앉았다.

금요일. 친구들을 만나면 으레 식당을 잡는 일이 내 몫이 된다. 오늘은 친구 녀석을 만나 그동안 궁금했다는 충무로의 사랑방칼국수로 향했다. 사대문 안 식당을 소개할 때 일행을 만족시키는 방법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주인장이 항상 자리를 지키는 가게에 가는 것이다. 사랑방칼국수도 당연히 그런 식당 중 하나다. 이곳에 와선 백숙을 꼭 먹어봐야한다. 부드럽고 간이 잘 베이게 삶아낸 닭도 닭이지만 곁들이 양념 초장 때문에 이 집의 백숙은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무엇이 된다. 이곳 사장님은 양념장에 파를 넣고 잘 뒤섞어 쭉쭉 찢은 닭살을 찍어 먹게 만들었다. 매콤하고 새콤한 양념장 덕분에 희멀겋게 삶아진 닭을 더 맛있게, 더 많이 먹을 수 있다. 나는 새로 데려온 친구에게 이 작은 의식을 설명하며 으쓱한 기분을 숨길 수 없었다.

선거철마다 등장하는 공허한 메아리가 아니다. 고향과 여행지, 이제 막 다다른 곳과 언젠가 떠나온 곳, 잘 아는 동네와 두 번 다시 찾지 않은 고장. 우리는 거기서 겪은 시간으로부터 생각과 감정과 말들을 부려놓는다. 제주를, 송파를, 안동을, 충남을, 남원과 철원과 분당을… 여행자이자 관찰자이자 고향사람이자 외지인으로서 각각 들여다본다.

    에디터
    글 / 박장열(그래픽 디자이너)
    포토그래퍼
    이강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