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드 피트는 반려견 자크와 단둘이 할리우드 집에서 지낸다. 술 대신 크랜베리 주스와 탄산수를 마시는데, 요즘은 말차 만드는 의식에 빠져 있다. 한편, 조각을 하며 손끝의 감각을 즐긴다. 아이들을 다시 보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중이기도 하고, 곧 그렇게 될 거라고 믿는다. 라이언 맥긴리는 무려 8일 동안 그의 사진을 찍었다. 그 막간마다 나누었던 이야기는 차마 말로 다 할 수 없다.
선선한 아침, 할리우드 힐스에 위치한 크래프트맨 양식의 오래된 주택에서 브래드 피트가 말차를 만들고 있다. 1994년부터 살았던 집이다. 프랑스, 뉴올리언스, 뉴욕에도 집은 있었지만, 그의 아이들이 ‘어릴 때 살던 집’은 늘 이곳이었다. 이제 아이들은 없어도 여기 있는 게 중요하다고, 그는 생각한다. 오늘 이 집은 적막하고 고요하다. 반려견 자크의 코 고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피트는 플란넬 셔츠에 헐렁한 청바지를 입고 있다. 25년 넘게 영화에서 봐 온 조각한 것 같은 그 몸은 찾아볼 수 없다. 집안일에 열심인 여느 로스앤젤레스의 아빠처럼 보일 뿐이다. 주방에서는 손길이 닿지 않은 스타벅스 커피와 마신 흔적이 있는 음료들도 보인다. 호감이 가고 사람 좋아 보이는 데다 위트(어둡고 약간은 삐딱한)까지 넘치는 피트는 최근 말차 만들기에 빠져 있다. 거름망을 올린 잔에 녹차 가루를 신중하게 뿌린 다음, 끓는 물을 붓고 뽀글뽀글 거품이 일도록 대나무 차선으로 휘젓는다. “반하실걸요.” 찻잔을 내게 건네며 그가 말한다. 평온, 균형, 질서. 대략 그런 분위기다. 완벽하게 짓고 멋들어지게 장식한 브래드 피트의 거처, 그 안의 주방 느낌은 이런 단어들로 요약된다.
밖에는 어린이용 자전거들이 세워져 있다. 바람을 넣은 용 튜브가 수영장에서 까딱까딱 움직이는 모습이 창을 통해 보인다. 정교한 상감 장식이 있는 테이블부터 벽난로 선반의 화병까지, 어느 것 하나 세심하지 않은 부분이 없다. 이 집도 나름의 이야기를 갖고 있다. 안젤리나 졸리와 브래드 피트가 행복했을 때뿐만 아니라, 지미 헨드릭스가 살았던 시절의 이야기까지. 지미 헨드릭스는 집 폭포 옆 작은 동굴에서 “폭포여, 아무것도 나를 해칠 수 없네”로 시작하는 노래 ‘May This Be Love’를 썼다는 얘기가 있다. “사실인진 모르겠어요.” 피트가 말한다. “한 히피가 짐과 같이 그 동굴에서 약을 하곤 했대요.”
어쨌거나 피트는 지난 6개월이 혼란스러웠다고 먼저 털어놓으며, ‘기이한’ 시간이었다고 회상한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는 완전히 몰입하는 것 같다가도 초조하고 쓸쓸해 보였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결국은 자초한 것임을 그는 인정한다. 그중 최악의 사건이 지난 9월 발생했다. 로스앤젤레스로 가는 전용기 안에서 피트와 열다섯 살 아들 매덕스 사이에 언쟁이 있다는 신고가 접수된 것이다. 당국에 걸려온 익명의 신고 전화를 받은 FBI가 수사에 착수했고(무혐의로 결론이 나면서 수사는 종결됐다), 닷새 후 안젤리나 졸리가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그때까지 피트의 세계는 자유 낙하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대중적 평판은 위기에 처했고, 하루아침에 아이들을 빼앗긴 아비, 아내 없는 홀아비 신세가 됐다. 그리고 지금 그가 여기 있다. 파탄을 향해 가던 인생의 한가운데에서 어떻게 다시 봉합할지를 홀로 더듬어
찾고 있는 쉰세 살의 남자이자 아버지, 그리고 과거의 남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은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11월엔 피트와 마리옹 코티야르의 영화 <얼라이드>가 개봉했다. 시사회에 참석한 그에게 ‘수척하다’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피트의 제작사 플랜 B 엔터테인먼트는 <문라이트>로 오스카 작품상을 거머쥐었다. 이달에는 넷플릭스에서 피트 주연의 <워 머신>을 공개한다. 스탠리 매크리스털 장군의 해임을 둘러싼 사건들을 다룬 이 풍자 영화에서, 그는 글렌 맥마흔 장군 역할을 맡았다. 거칠고 엄격한 성품의 소유자. 과장된 제스처로 연기하는 코믹한 당당함과 뻔뻔한 무지함은 전쟁을 위한 미국의 노력을 은유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구름 덮인 봄날에 만난 인생의 굴곡점에 놓인 피트는, 오히려 사뮈엘 베케트의 작품 속 등장인물을 연상시킨다. 텅 빈 풍경 속에서 헛된 세상에 대한 거대한 질문들을 던지고 있는. 이제는 남이 된 아내의 이름을 단 한 번 입 밖에 냈는데, 그녀가 출연하는 캄보디아 배경의 영화 <퍼스트 데이 킬드 마이 파더>를 언급하며 “그녀의 영화를 보셔야 해요”라고 내게 말했다.
새로운 삶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건 반려견 자크다. 인터뷰 내내 자크는 내 발치에서 몽상에 빠져 있다가 어느새 잠이 들어 코를 골고 방귀를 뀌기도 한다. “폐기종이 있는 삼촌이 집에 온 적이 있어요? 그래서 여섯 살 때, 당신 방에서 같이 자야 했던 적은요? 자크가 바로 그런 삼촌이에요.”
요즘 가장 위안이 되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피트는 이렇게 답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불을 피워요. 자러 갈 때도요. 그냥 그러면 삶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이 집에서 삶이란 걸 느낄 수 있어요.”
처음부터 얘기해봅시다. 어린 시절은 어땠나요? 미주리 주 스프링필드에서 자랐어요. 지금은 큰 도시가 됐지만 그때는 사방이 옥수수 밭이었죠. 그런데도 우리가 먹는 채소는 늘 통조림이었어요. 도무지 이해가 안 돼요. 아무튼, 시내에서 벗어나 10분만 가면 숲과 강과 오자크 산지가 나왔어요. 굉장히 아름다운 시골이었죠.
허클베리 핀 같은 소년 시절을 보낸 건가요? 거의 그랬죠. 동굴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동굴이 많았거든요. 제일 침례교 신자로 자랐는데, 기독교 중에서도 정결하고 엄격하고 성서를 그대로 따르는 교파죠. 교회 사람들이 갑자기 방언을 하고 손을 들어 올리고 막 얼빠진 괴상한 짓을 하곤 했어요.
그럼 방언할 때 같이 있었어요? 네. 아직 연기를 하기 전이었지만, 알 것 같았어요. 사람들이 그걸 진짜 믿는다는 걸요. 그런 행위를 통해 뭔가를 방출한다는 걸 알았죠. 정말이지, 인간은 난해합니다. 참으로 난해한 존재예요.
연기를 시작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인가요? 글쎄요. 사람은 원래 연기를 하잖아요. 그런데 어릴 땐 무엇보다 이야기에 끌렸어요. 우리가 사는 세상이나 아는 세상 너머의 이야기들, 색다른 관점의 이야기들. 특히 영화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었어요. 내겐 너무 생소한 다른 문화, 다른 삶이 영화 속에 있었죠. 그게 제가 영화에 끌린 이유 중 하나였던 것 같네요. 저는 달변가는 못 됩니다. 이야기를 해주는 데는 소질이 없지만, 영화 속에서 이야기를 발전시키는 건 잘할 수 있어요. 콘서트에 몇 번 갔어요. 록은 악마의 소리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지만 부모님께서 허락해 주셨어요. 그것까지 금하진 않으셨거든요. 그런데 공연장에서 부흥회 때와 같은 체험을 했어요. 환상, 환희와 충만, 심지어는 공격성까지. 지미 스왜거트의 설교와 제리 리 루이스의 공연이 똑 닮아 있었어요. 한 명은 신의 편이고 한 명은 악마의 편인데 말이죠.
<워 머신>에서 당신이 개발한 특유의 제스처 덕에 글렌 맥마흔이란 인물이 딱 당신인 것처럼 느껴져요. 예를 들어 달리는 폼은 정말 웃겨요. 달리기는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인데, 자기 자신에 대한 과대망상을 함축하기 때문이에요. 그는 자기가 실제로 어떻게 보이는지 몰라요. 다리는 연필처럼 가는데, 위엄 있는 위치에 있다는 그 허울과 실제 자신의 모습을 연결시킬 줄 모르는 사람이거든요.
“제가 곤경에 처하는 건 저의 오만 때문이고, 미국이 곤경에 처하는 건 우리의 오만 때문이죠.”
글렌의 목소리도 독특한데, 그건 어디서 나왔어요? 사실 좀 진부한 발성이지만 어쨌든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그 목소리에는 물론 패튼 장군도 들어 있어요. 그렇지만 염두에 둔 건 스털링 헤이든이었어요. 그에게 흠뻑 빠져서 평상시 촬영이 없을 때 찾아본 것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죠. 매너리즘의 측면에선 크리스 팔리도 들어 있고요. <몬스터 vs. 에일리언>에서 키퍼 서덜랜드가 연기한 만화 캐릭터 목소리도 참고가 됐습니다.
정치적 발언을 더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나요? 다른 방법으로요. 특정 메시지를 담은 영화를 만드는 것도 방법이겠죠. 저는 마음이 움직여야 해요. 꾸밀 순 없어요. 그래서 전 그냥 뉴올리언스의 누군가에게 집을 지어준다거나, 극장에 걸리기 힘든 영화를 걸리게 한다거나 하는 게 더 잘 맞아요.
이번 영화도 그런, 미국의 오만을 찌르는 영화 아닌가요? 제가 곤경에 처하는 건 저의 오만 때문이고, 미국이 곤경에 처하는 건 우리의 오만 때문이죠. 우리는 우리가 더 잘 안다고 생각해요. 미국 예외주의란 것도 그래요. 저도 미국이 여러 가지로 특별한 면이 있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그걸 다른 이들에게까지 강요할 순 없어요. 그렇다면 미국이 특별하다는 걸 어떻게 보여주나. 실례를 통해서죠. 좋은 아빠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우리의 신조와 신념, 자유와 선택이 어떤 것인지 좋은 예를 통해 보여주면 되는 겁니다. 국경을 폐쇄하고 보호주의 정책을 쓸 일이 아니라요. 예전에 어떤 전쟁 영화 홍보를 앞두고 있을 때였어요. 유럽에서 쓸 포스터에 성조기가 있었는데, 유럽 마케팅 팀에서 “미국 국기는 빼주세요. 여기선 홍보에 도움이 안됩니다”라는 메일을 보냈어요. ‘와, 미국이란 그런 거구나’ 싶었죠. 우리의 국가 브랜드에 우리가 초래한 결과인 거죠.
요즘은 누구의 음악을 듣나요? 프랭크 오션이요. 날것 그대로의 진실에 대해 이야기하죠. 고통스럽도록 솔직합니다. 이 청년은 정말 특별해요. 그리고 지금 제 상황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마빈 게이의 ‘Here, My Dear’도 즐겨 듣습니다.
강렬하죠. 하지만 아름다워요. 꽤 솔직하기도 하고요. 참, 치료를 막 시작했어요. 정말 좋아요. 잘 맞는 분을 찾으려고 두 명의 치료사한테 치료를 받는 중이에요.
지난 6개월간의 일이 일어나지 않았어도 결국엔 지금 이 상황에 처하게 됐을 거라 생각합니까? 마침내는 위기가 닥쳐 당신의 발목을 잡고 말았을까요? 어떻게 됐든 저에게 다가와 문을 두드렸을 거라 생각해요.
중년의 위기라고도 하지만 당신의 경우는 좀 다릅니다. 그거랑은 다르죠. 제가 이해하는 중년의 위기는 늙는 것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공포 같은 거예요. 그래서 밖으로 나돌고 람보르기니를 사고. 실은 요즘 람보르기니가 꽤 멋져 보이더라고요. 저는 포드 GT가 있습니다만….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서 제 자신이 아주 지긋지긋해졌던 몇몇 지점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번 건 특히 컸죠. 그 시기들은 언제나 변화하는 중대한 계기가 되었어요. 그런 점에서 상당히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 대학 졸업 이후 술을 진탕 마시거나 대마초를 피우거나, 뭐 그런 걸 안 한 날이 하루도 없었던 것 같아요. 담배도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입이 심심하니까 물고 살았죠. 이젠 감정도 무뎌지고 있어요. 그 모든 걸 끝내게 돼서 정말 다행이에요. 사실 가정이 생기면서 다 끊었어요. 하지만 작년까지도 끊지 못한 게 있었죠. 술이요. 그게 문제가 됐어요. 달콤쌉쌀했던 반년이 지나고 지금은 정말 행복합니다. 손끝의 감각이 되살아나고 있어요.
대마초 끊는 게 힘들었나요? 아뇨. 많이 피울 땐 잭과 스눕 독, 아니면 윌리 넬슨이랑 함께 한 대 피우고 싶다고 생각했죠. 마리화나를 피우다 보면 그런 진짜 바보 같은 생각들이 들거든요. 다른 사람에 대해 뭐라고 하고 싶진 않지만 저는 윌리 넬슨의 경지에까진 이르지 않았어요.
알코올은 어떤가요? 생각 안 나요? 와이너리를 갖고 있어요. 와인을 엄청 좋아하거든요. 하지만 다 땅에 부어버렸어요. 잠시 멀어져야 했으니까요. 전 러시아인과 함께 그가 직접 담근 보드카를 코가 비뚤어지도록 마실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프로 술꾼이었죠. 재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끊었어요? 더 이상 그런 식으로 살고 싶지 않으니까요.
술 대신 뭘 마시나요? 크랜베리 주스와 탄산수요. 제가 로스앤젤레스에서 요로가 가장 깨끗한 사람일 거라 장담합니다. 그런데 안 좋은 건 뭐든 지나치다는 거예요. 끝장을 봐야 해요.
그게 결정적이었다고 생각하나요? 모든 게 다 그렇거든요. 다 쏟아붓고는 자리를 뜨죠. 매사를 계절별로 나눠서 생각했던 것 같아요. 구분을 짓는 거죠. 계절이든 학기든 아니면 어떤 임기든.
당신은 당신과 관련이 있는 모든 것을 뚫어지게 응시해야 하는군요. 바로 그겁니다! 끔찍한 기분을 안고 앉아서 세상을 이해하려고 하고 자리를 맞춰 나가는 거죠. 그러다 보면 결국에는 내 자신이 내가 싫어하는 것 투성이란 걸 알게 돼요. 하지만 그것도 저의 일부이고, 부인할 수 없어요.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아니, 껴안아야 하죠. 똑바로 직면하고 돌보아야 합니다. 부인하는 건 저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 되니까요. 나는 곧 내가 저지른 실수들입니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상실 없는 사랑은 없어요. 반드시 같이 가죠.
그동안 어디서 살았나요? 9월부터 여기 있었어요? 처음엔 여기 있으면 너무 우울해서 친구네 집 바닥에서 지냈어요. 산타모니카에 있는 조그만 방갈로예요. 이 동네에도 신세를 좀 졌는데, 데이비드 핀처가 가까이에 살고 있어요. 저에게 언제나 문을 활짝 열어줬어요. 웨스트사이드의 친구 집에서도 한 달 반을 머물렀어요. 그런데 어느 날 새벽에 밴 한 대가 그 집 앞에 차를 세웠어요. 이자들은 TMZ보다 더해요. 제 친구 컴퓨터에 들어갔으니까요. 그 날 이후로 온갖 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그래서 짐을 챙겨 이 집으로 왔습니다.
일상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이 집은 늘 정신없고 난장판이었어요. 여기저기서 사람 소리와 쿵쾅거리는 소리가 울려댔죠. 그러다 이런 날이 오게 됐어요. 보시다시피 아주 정숙한 집이 됐습니다. 저는 모든 사람이 어떤 창작 욕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경우는 뭔가를 만들거나 세상에 내놓거나, 그렇지 않을 땐 머릿속에서 불타는 종말에 관한 시나리오라도 만들어요. 결말은 물론 끔찍하죠. 그래서 요즘은 친구의 조각 스튜디오에 다니고 있어요. 거기서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친구 토머스 하우지고는 진지한 조각가예요. 사람들도 친절해요. 제가 한 달 가까이 그곳을 무단 점유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신성한 장소에 제가 똥을 싸고 있죠.
뭔가를 만들고 있는 겁니까? 네. 10년 전부터 해 보고 싶었던 일이에요. 온갖 걸 만들어요. 점토, 석고, 철근, 나무 등을 사용하고요. 스스로에게 놀라고 있어요. 그런데 조각이 굉장히 외로운 작업이더라고요. 육체 노동도 많은데, 저한텐 참 좋아요. 점토를 여기저기 끌고 다니고, 자르고, 옮기고, 뒷정리까지 혼자 다 해야 합니다. 과거엔 마음이 안정이 안 됐어요. 뒤죽박죽이었어요. 하지만 작업을 하면서 말하는 게 아닌 만드는 데서 특유의 언어를 발견하고 있어요. 저에게 필요한 목소리를 그곳에서 찾아가고 있어요.
온갖 나쁜 일이 있었잖아요. 그 목소리를 당신의 이야기를 하는 데 사용하나요? 나쁜 일이 계속 문을 두드렸죠. 이제야 제대로 걸려든 겁니다. 저는 그런 것쯤은 능히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누군가의 스캔들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했어요. ‘난 이제 저런 일은 없을 테니 천만다행이야.’ 나의 삶과 가족과 일이 있고, 불법을 저지르지도 않고, 누군가의 걸림돌이 되지도 않았으니까요.
“나는 곧 내가 저지른 실수들입니다. 덧붙이자면, 상실 없는 사랑은 없어요. 반드시 같이 가죠.”
바위를 산 위로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 같은 작품을 조각하고 있으면 잡념이 사라지나요? 아무래도 작업에 집중해야 하니까 그렇죠. 밤이 되면 하던 작업을 마무리하고 정돈해야 합니다. 자기 성찰을 하기에 좋은 기회죠. 세심히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데, 그쪽으로 너무 파면 안 되고 균형에 신경을 써야 하거든요. 저는 인간관계를 끊는 데 선수고, 그건 큰 단점이었어요. 좀 더 연락이 잘되고 만나기 쉬운 사람이 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요.
방해받고 싶지 않을 땐 은둔하고 연락을 끊는 편인가요? 확실한 건 숨는다는 거예요. 사방에 방어막을 치고 가면을 쓰고 도망쳐버리죠.
인간으로서 당신의 최악의 순간들을 담은 슬라이드 쇼가 있다면, 그걸 누가 보는 건 원하지 않을 겁니다. 수년간 당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 슬라이드 쇼가 공개됐어요. 정확한 건 아주 적어요. 전 피하거나 그냥 내버려둡니다. 제 본심과 작품이 스스로 말하길 기다립니다. 하지만 어떤 것들은 끌려 나와 대중에 공개되고 곡해되는데, 그 자체가 지긋지긋한 건 사실입니다. 아이들 때문에 더 걱정이죠. 상처를 입진 않을까, 친구들이 어떻게 볼까를 생각하게 돼요. 공개 과정에서 어떤 세심함이나 통찰은 당연히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팔기 위해 공개한거니까요. 자극적인 내용일수록 잘 팔리는데, 아이들이 분명 영향을 받을 거란 사실이 무척 가슴 아픕니다. 더 걱정되는 건 아이들 마음속에 있는 슬라이드 쇼예요. 균형이 잘 잡혀 있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지난 6개월을 어떻게 이해하며 견디고 있나요?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은 자신이 얻고 성취한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사랑하는 사람과 후회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죠. 아이들은 굉장히 예민합니다. 모든 걸 흡수하죠. 손을 잡아줘야 하고 설명을 해줘야 해요. 이야기를 들어줘야 하고요. 바쁠 땐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못했어요. 이제는 좀 더 잘 듣고 싶어요.
가족을 꾸리기 시작했을 때, 당신이 가졌던 것과 가지지 못했던 것 중 가장 좋은 것들만 잘 골라 섞은 어떤 이상적인 형태의 새로운 가족을 꿈꿨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그런 것들을 아이들 앞에 가져다 주려고 했죠. 아이들이 그걸 흡수하고 그것이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게 되길 바라면서요. 저기 있는 작은 흉상이나 조명 따위에 애들은 아무런 관심도 없었어요. 있거나 말거나 했겠죠. 하지만 언젠가 아이들이 자랐을 때, 그런 것들이 뭔가를 의미하게 될지 몰라요. 요즘은 옛날과는 달라요. 이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알고, 더 관심을 기울여요. 제가 자란 곳에선 멍이 들거나 상처를 입거나 좀 아픈 것쯤은 알아서 해결했고, 그걸 강한 것으로 여겼어요. 문제는 감정도 그랬다는 거예요. 저는 제 감정을 살펴보고 파악하는 걸 아주 못해요. 덮어 버리는 데 훨씬 능하죠. 이혼을 겪으면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죠. 저는 더 노력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줘야 하고, 행동으로 보여 줘야 해요. 그런 것을 잘 못했어요.
아이들을 언제 볼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정해졌나요? 지금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게 불확실하면 더 힘들 텐데요. 한동안은 많이 힘들었어요. 아동보호국에 신고 전화가 갔을 때 저는 속수무책이었고 그들의 시스템 앞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었어요. 둘 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법정에서 승자는 없습니다. 누가 더 심한 상처를 입느냐의 문제일 뿐이죠.” 정말 맞는 말 같아요. 소송을 하고 내 주장을 증명하고 내 말이 옳고 너의 말이 틀린지를 보여주는 데 온통 집중하면서 1년을 소비하니까요. 맹렬한 증오에 시간과 노력을 쏟는 셈이죠. 저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다행히 이 점은 그 사람도 동의해요. 가족이 갑자기 찢어진다는 건 아이들에게 정말이지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얘기하나요? 해야 할 말은 너무 많습니다. 앞으로의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당면한 현재에 대한 설득도 필요하며, 왜 우리가 이렇게 되었는지를 설명해야 하니까요. 그러자면 과거의 얘기를 꺼내야 해요. 그래서 우리 모두가 더 강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될 거란 점을, 지금 이 상황이 가져올 결과는 오직 그것밖에 없다는 점을 둘 다 강조하고 있어요.
지난주에 가장 기뻤던 일은 뭔가요? 그 감정이 지금도 남아 있나요? 창밖을 보면 기쁨이 보여요. 종려나무의 실루엣이 보이고 아이들의 표정이, 헤어질 때 한 아이가 짓던 미소가, 혹은 점토 조각을 하면서 행복을 느꼈던 순간 같은 것이 떠오르거든요. 기쁨은 어디에나 있어요. 발견해야 하는 거죠.
분명 믿기 힘든 슬픔도 있을 듯합니다. 죽음에 견줄 만한…. 그래요.
그런 감정도 변화를 겪을 것 같아요. 물론이죠. 모두가 그럴 거예요. 아이들도, 저도.
뭔가를 해보려는 충동이 들었나요? 처음에는 붙잡고 싶은 충동을 느꼈죠. 하지만 그다음엔 ‘정말로 사랑한다면 놓아줘야 한다’는 공식을 따랐죠. 이제 그게 어떤 뜻인지 몸으로 느껴서 알아요. 소유하려 하지 말고 사랑하라는 의미죠. 대가를 기대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해요.
화보 촬영을 위해 일주일 동안 세 곳의 국립공원에 갔습니다. 허무맹랑한 짓처럼 들리는데요. 굉장했습니다. 에버글레이즈에서 라이언 맥긴리가 점프를 시켰어요. 악어가 점프하듯이요. 나이가 지긋한 카우보이를 불렀는데, 뱀 막대기와 집게를 가지고 왔더라고요. 할머니가 높은 선반에 있는 물건을 집을 때 쓰는 것처럼 생긴 이만한 집게였죠. 그는 간단한 시범을 보여주더니 자기가 안 잡아 먹히면 저도 안 잡아 먹힐 거라고 하더라고요.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그렇대요.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내 나이가 되면 절대로 화장실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방귀를 믿지 말고, 발기한 걸 낭비하지 말게.”
화이트샌즈는 어땠나요? 여태 그런 건 본 적이 없어요. 모래언덕이 조각 같고 현대적이고 간결하고 광활하고, 믿을 수가 없어요. 하얀 모래언덕이 하얗게 빛나는 그 광경이란. 하늘이 땅보다 오히려 더 어두울 정도죠. 기묘하고도 아름다운 곳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요? 칼즈배드 동굴에 갔습니다. 유명인의 화보 촬영을 할 거라면 예술가와 함께 작품을 만드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뭐가 나오는지 한번 보는 거죠. 그 편이 언제나 더 흥미로워요.
이번 촬영을 하면서 배우로서 어떤 거북함을 느끼진 않았나요? 전혀요. 사실 전 이제 제가 배우라는 생각을 많이 안해요. 그냥 쉰세 살 남자죠. 제 인생에서 연기는 이제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하니까요. 영화는 제게 온갖 나쁜 감정들을 이해하는 수단이 돼줬고, 그런 점에서 마치 저렴한 통행권을 샀다는 뿌듯함이 있었죠. 그런데 특히 아빠가 된 지금은 그 효력이 다한 것 같습니다.
파이 차트를 그린다면 연기는 얼마나 차지할까요? 매우 작은 조각일 겁니다.
성공했다고 생각하나요? 이름만 좀 바꿀 수 있으면 좋겠어요.
새로 데뷔하는 겁니까? 피 디디처럼 말이죠. 퍼피도 되었다가 하는 거죠. 아니면 스눕처럼. 새 이름이 뭐였죠? 스눕 라이언인가? 아무튼 예전에는 브래드란 이름을 잘못 지은 것 같다고 느꼈는데, 지금은 빼도 박도 못하게 브래드가 된 기분이에요.
어떤 이름을 쓰고 싶은데요? 딱히 정해놓은 건 없어요. 밖에서 성공하면서부터 제가 가장 즐긴 것은 그 안에서 개인적인 발견을 할 때예요. 하지만 또 그게 반복되거나 참을 수 없이 지루해지면 바로 끝입니다. 손을 놔 버리죠.
말을 하면서 엄지손가락으로 다른 손가락들을 계속 문지르네요. 저도 모르겠어요. 촉각이 예민해요. 촉각적 인간이랄까. 느끼는 걸 좋아하거든요. (사실 그는 고등학교 때 가장 ‘잘할’ 것 같은 사람으로 뽑혔다.)
연기가 여전히 재미있을 때는 언제인가요? 코믹물을 할 때요. 코믹 연기는 도박과 마찬가지거든요.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흥행이 가장 부진했던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입니다.
그래서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스튜디오에 다니는 게 너무 즐거워요. 아마 피카소였던 것 같은데, 대상을 바라보고 물감이 캔버스에 닿는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예술은 바로 거기서 탄생한다고 했지요. 저는 손끝에 어떤 감정이 전해지는 순간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감정을 점토로 전해야겠죠. 아직은 표면이 갈라지지 않았을 뿐이에요. 앞으로 무엇이 다가올지는 모릅니다. 다만 지금은 손으로 하는 작업이 좋고, 재료의 확장성과 한계를 알아가는 중이에요.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바닥을 쓸어야 하고, 밤이면 제가 싼 똥을 치우고 정리해야 해요. 지금은 저라는 못을 망치로 박아야 해요.
- 에디터
- 글 / 마이클 패터니티(Michael Paterniti)
- 포토그래퍼
- RYAN McGINLEY
- STYLIST
- MOBOLAJI DAWODU
- CHOREOGRAPHY
- LUISA OPALESKY
- HAIR & MAKEUP
- JEAN BLACK
- PRODUCTION
- MARY-CLANCEY PACE FOR HEN'S TOOTH PRODUC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