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세윤은 퍽 무르다. 사람 너무 좋다. 독한 것은 못한다. 그래서 요즘 더 눈에 띈다.
두 명의 매니저가 인터뷰에 동석하는 건 아이돌 인터뷰 이후 처음입니다. 그런가요? 큰 회사에 들어와서 영광스럽고 좋네요. 작은 회사에 있다가 일이 다 안 돼서 마지막으로 옮겨본 건데….
소속사 덕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좀 달라 보여요. TV에서도 많이 보이고요. 솔직히 제가 예능을 안좋아해요. 그런데 FNC 들어오고 난 뒤부터, 예능이 재밌어지는 거예요. 이전엔 예능을 정말 하기 싫었어요. 욕심 부리고, 누굴 끌어내리고, 남의 얘길 끊어서 들어가고, 갑자기 치고 나가고…. 그런 걸 잘 못해요. 게스트가 MC랑 친하거나 인지도가 높으면 당연히 말을 많이 걸어주는데, 나는 아직까지 인지도가 높지도 않고, 피디 분이나 작가 분들이 개그맨 출신이라 불렀는데 제가 말도 못하고 앉아 있는 그림이 너무 고통스러운 거예요. 그 시기에 운좋게 <천하장사 마돈나>라는 영화가 들어왔어요.
거기선 코미디언 문세윤이 생각나지 않았죠. 제가 <천하장사 마돈나>에 나왔다고 하면 사람들이 “나왔었어?”라고 물어볼 정도였어요. 첨엔 그게 기분 나빴어요. 근데 이해영 감독님이 “너는 진짜 최고의 칭찬을 받은 거야. 널 선입견 없이 자연스럽게 빠져들어서 봤다는 얘기잖아. 굉장한 거지”라고 해주셔서 “어, 그런가?” 했죠.
비결이? 음, 목소리 덕도 있는 것 같아요. 중저음이고 좀 차분해 보이는 목소리라서…. 내가 코미디계의 이병헌 목소리라는 생각으로….(웃음) 암튼 <천하장사 마돈나> 후에 시트콤, 드라마를 좀 하게 됐고요. 그때부터 드라마, 영화가 너무 편한 거예요. 주어진 역할만 하면 되고, 이 사람 저 사람 피해줄 일이 없잖아요. 애드리브 치면 받아주면 되고요. 내 거만 준비하면 되고 전체 뼈대를 내가 짤 필요도 없고요. 물론 캐릭터 연구는 해야 하지만, 회의에 들어가는 건 아니니까요. 사실 예능을 하기 싫어서 연기 쪽으로 도망간 건데, 도망간 일이 너무 마음에 들었던 거죠. 제가 성격이 약간 그런가 봐요.
신기하게도 요즘 예능에선 그 성격이 다 보여요. 그래서 더 호감일 때도 있고요. 지금이야 예능에 나가면 친한 분도 많고, 나이가 들다 보니 막말로 내가 애가 둘인데 못할 게 뭐냐, 이런 마인드로 하는 거예요. 지금도 사실 혼자 훈련하는 중이에요.
그 두려운 예능에 요즘 재미까지 느끼다니요? 예전엔 예능 나가는 날 아침엔 부담감을 갖고 뻐근하게 일어났다면 지금은 되게 하루하루 즐겁게 일어나요. 진짜 내가 즐기고 내가 좋아하니까 그게 화면에도 좀 보이는 거 같아요. 일단 사람들이 좋아서 그런 것 같아요. 예전엔 <강심장>처럼 20명쯤 게스트가 등장하는 예능이 많았는데, 요즘은 5~6명이 소소한 이야기 나누는 게 많잖아요. <F학점 공대형> 할 때도 쉬는 시간에 차에 들어가는 사람이 없었어요. 서로가 서로를 기다리는 게 느껴질 때 있잖아요. “세윤이, 언제 와?”, “음식 시킬 건데 너 올 거지? 기다릴게~!” 이런 거요. <맛있는 녀석들> 식구들도 서로 바쁜 사람들이지만 촬영 덕에 일주일에 한 번씩 보니 좋고요. 장난을 치더라도 다 사랑이 밑에 깔려 있는 게 보이니까.
예능에서 윽박지르는 캐릭터는 아니지만, 큰 소리 낼 때도 왠지 귀엽달까요. 코미디언은 얼굴도 실력이라고 하잖아요. 다 자기 얼굴에 맞는 스타일이 있어요. 제가 누굴 비난하거나 관객석을 향해 소리치면 사람들이 싫어해요. 제가 바보 분장을 한 거라면 모를까, 멀쩡하게 나와서 누군가를 막 깐다고 생각해보세요. 어울리지도 않고, 사람들이 무서워해요. 웃는 게 아니라.
실제 성격도 그렇게 못하죠? 저 약간 끌려가는 것도 좋아해요. 저보다 의지가 세 보이면 그 사람 말 잘 들어요.(웃음) 제가 후배들한테 하는 이야기인데, 이제는 착한 사람이 국민 MC가 되고 더 뜨는 시대가 분명히 오고 있어요. 남한테 상처 안 주고 착하게 살면 좋은 날이 온다고. 예전엔 받쳐주는 역할의 코미디언은 주목받지 못한 시대였잖아요. 심형래 선배님은 알아도 그 밑에는 아무도 안 보이고요. 근데 이젠 사람들이 착한 거, 잘하는 거 다 알아요. SNS도 있고, 댓글도 있고.
김치도 종류별로 잘 담가서 SNS상에서 화제도 된 것도 있고요. 아, <살림하는 남자>에서 김치 담근 게 트위터에서 많이 도는 건 봤어요. 아기 엄마들이 많이 좋아해줬다는 이야기도 스태프들한테 들었고요. 근데 남자들한테는 욕 엄청 많이 먹었다고….(웃음) “저 돼지, 자기가 먹으려고 담근 거지” 이러면서요. 제가 김치를 진짜 좋아하긴 해요.
자기가 먹는 것도 스스로 안 하는 남자들이 태반인데요, 뭘. 가족 앞에선 어떤 사람인가요? 다정하려고 하죠. 스물여덟 살에 결혼했어요. 돈도 없었는데 아내가 같이 고생하면서 벌자고 했어요. 그때가 길거리에서 10명 중 한두 명 정도만 저를 알아보던 시절이에요. 지금은 한 세 명 정도? 결혼한지 2년 만에 공익 근무 가버리고…. 그 당시엔 혼자 울고 그랬어요. 미안해서요. 아기는 있는데 엘리베이터 없는 빌라 4층을 아내 혼자서 유모차를 들고 다녀야 했으니까요. 아내가 치어리더 출신인데, 야구장의 연예인이었는데, 미안했죠.
이제 16년 차인데 큰 굴곡 없이 활동했어요. 가파른 최고점도 없었지만요. 제일 처음 개그맨들이 모여 있는 기획사 들어갔을 때는 내가 스타가 됐구나! 했어요. 스무 살 때니까. 그러다가 잘 안 풀려서 보험 파는 애들도 있고, 그냥 다른 일 구하는 애들도 있고…. 그런 거 보면서 나는 복이 많은 친구구나 하면서 하루하루 쭉쭉 살고 있는 거죠.
시절을 풍미하는 인기를 누렸으면 어땠을까요? 그러지 않아서 오히려 다행인 것 같아요. 확 바람이 불어서 떴다가 잘못된 사람 많아요. 내가 했던 말이 막 다음 날 유행어가 되어 있는데, 막 시청률이 나 때문에 치솟는데, 왜 거만해지지 않겠어요. 근데 전 그런 경험이 없어서 오히려 다행인 것 같아요. 전 아주 유명해져서 유재석, 김용만 선배처럼 국민 MC가 되고 싶다기보다는, 코미디 액터가 되고 싶어요. 짐 캐리같이, 살인마 역할도 하고요. 나중에 한 50~60대 되면 저 그냥 아침 드라마 아버지 역할했으면 좋겠어요. 임하룡, 백일섭 선생님처럼요.
좀 더 야심을 가지고 살아도 좋지 않나요? 글쎄요. 그러면 돈은 좀 더 벌긴 하겠죠? 근데 사업을 벌이고 배팅을 크게 했다가 10억씩 묶어서 무너진 사람도 많이 봤고, 그 피해를 가족이 고스란히 받고 있는 걸 본 적도 있어서, 저는 그런 돈 욕심은 많이 없어요. 내가 잘하는 일을 하면서 내가 살 수 있는 정도만 받으면 돼요. 내가 갑자기 일을 좀 쉬게 되더라도 갑자기 어려워지지 않을 그 정도만 있으면 되지, 뭐 건물이고 땅이고 집이고 여러 개 사서 거기서 월세 받고 몇백 억대의 자산가가 되어가지고 평생 ‘띵가띵가’ 놀면서 살고 싶진 않아요.
요즘 하루 중 언제가 가장 행복해요? 음…. 집에 들어가서 샤워하고 자기 전에 아내랑 맥주 먹을 때? 아침엔 너무 정신없이 나올 때가 많고, 요즘은 회사원처럼 고정 스케줄로 일을 하다 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 아, <코미디 빅리그> 끝나고 긴장이 쫙 풀렸을 때, 목 마를 때까지 꾹꾹 참았다가 동료들이랑 나가서 맥주 한잔 먹을 때도 행복해요.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훨씬 더 행복한 기분?
오늘 이른 아침부터 촬영이라 이것저것 먹을 것을 준비했는데 하나도 안 드시네요? 어제 <맛있는 녀석들> 촬영하고 왔어요. 다음 날은 오후부터 먹어요. 저는 많이 먹는 걸 좀 부담스러워하거든요. (웃음) 그런데 어디 가면 “이거 다 먹을 수 있죠? 한 입에 좀 크게 넣어주세요” 그러시는데, 사실 저희 네 명 ‘푸드 파이터’ 아니고 ‘푸드 러버’예요.
주변에선 누가 제일 미식가예요? 맛집 돌아다니는 건 양세형, 양세찬 형제가 잘해요. 많이 먹진 않는데, 자주 먹어요. 소문난 집 가서 줄 서서라도 먹고요. 저는 오히려 거꾸로거든요. 제 시간에 먹어야 해요. 완전 미식가는 아니죠. 음식을 정성껏 맛있게 먹으려는 사람은 김준현 씨인 거 같아요. 한번은 소주에 오징어 회를 먹는데 매번 깻잎쌈에 초고추장, 간장 찍어서 회를 올리고…. 소주 다 먹을 때까지 한 번도 안 빼놓고 ‘올쌈’을 먹었어요. 자기 것만.
<맛있는 녀석들>이 2년을 넘겨 벌써 120회예요. 언제까지 갈까요? 더 장수할 것 같아요. 근데 먹방 이미지가 너무 박힐까 봐, 좀 다른 걸 보여드려야 하는데, 생각할 때도 있어요. 먹방 쪽에서는 먹방을 잘하고, 다른 데 가서는 먹는 것 말고 좀 다른 걸 보여드리고 싶은 게 욕심이에요. 그래서 화보 촬영 이야기를 듣고 행복했어요. 매니저한테 이야기 듣고 이랬어요 “나보고 화보를 찍자고? 외국 사람들도 나오고 멋진 배우들 나오는 데서 왜 나를? 왜? 왜? 담당 기자가 날 좋아하나?”
좋아합니다. 이제 인터뷰할 코미디언 다 한 번씩 돌아서 그런 거 아니죠? 진짜 그런 거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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