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해보이면서도 존재감 넘치는 시계. 높은 희소성까지 갖춘 H. 모저 앤 씨.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워치 메이커들 중 창립이래 명맥이 끊기지 않았던 것은 극소수다. 그마저도 소유권까지 창립자의 후손이 이어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H. 모저 앤 씨(H. Moser & Cie.) 또한 1828년 스위스 샤프하우젠 출신의 하인리히 모저라는 인물이 1828년 러시아 상트 페테부르크에 처음 문을 열고, 1829년부터 스위스 르 로클에서 사업을 이어갔지만, 1970년대에 인수합병과 ‘쿼츠 쇼크’를 겪으면서 생명력이 스러져갔던 브랜드다. 하지만 2002년 유르겐 랑에 박사와 창립자의 증손자인 로저 니콜라스 발시거가 의기투합해 스위스 샤프하우젠에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했다. 샤프하우젠은 하인리히 모저의 출생지인 동시에 1848년부터 H. 모저 앤 씨의 공방이 자리 잡았던 곳이다. 현재 샤프하우젠은 거대 브랜드인 IWC의 매뉴팩처가 위치한 덕택에 시계 애호가들에게 익숙한 지명일테지만, 그 IWC가 샤프하우젠에 둥지를 틀 수 있게끔 창립 당시 도움을 줬던 인물이 하인리히 모저이기도 하다.
H. 모저 앤 씨는 창립자의 출생 200주년을 맞이한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계를 만들면서 현재에 이르렀다. 2006년 바젤월드에서 선보였던 시계들은 브랜드의 새로운 뿌리가 되었고, 같은 해 제네바 그랑프리에서 컴플리케이션 워치 부문 그랑프리를 받을 정도로 성공적인 재도약을 마쳤다. 이듬해에는 스트라우만 헤어스프링이라는 독자적인 부품을 발표할 만큼 가파른 성장세를 지속했다.
새롭게 태어난 현대의 H. 모저 앤 씨 시계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존재감 넘치는 심플 워치’이다. 왜냐하면 브랜드의 흥행을 이끈 퍼페추얼 캘린더 모델이 다이얼 중심부에 3mm 남짓한 길이의 짧은 월 표시 핸드와 3시 방향에 날짜창, 9시 방향에 파워 리저브 인디케이터, 6시 방향에 스몰 세컨드, 케이스백에 윤년 인디케이터만으로 완성했기 때문이다. 퍼페추얼 캘린더는 매우 복잡한 시계로 분류되는 만큼 기술력을 자랑하고자 다이얼을 매우 복잡하게 디자인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H. 모저 앤 씨는 정반대로 표현했다.
가장 복잡해 보이는 투르비용 모델 또한 오픈 워크와 유려한 가공을 통해 보여주는 다이얼 6시 방향을 제외하면, 나뭇잎 모양의 단순한 핸즈와 바 인덱스, 폴리싱 베젤 등으로 최대한 절제했다. 대신 H. 모저 앤 씨의 시계들은 다이얼에 선레이 가공을 하거나 퓌메(퓌메(FUMÉ: 선레이 다이얼 위에 그러데이션 채색을 한 H. 모저 앤 씨의 시그니처 다이얼) 다이얼을 적용하는 등 독자적인 장식을 더한다.
최근 H. 모저 앤 씨는 매우 독특한 시계 두 점으로 이슈의 중심에 섰다. 바로 애플 워치를 연상시키는 스위스 알프 워치와 스위스산 치즈에서 추출한 유기화합물을 케이스 소재로 사용한 스위스 매드 워치가 주인공이다. 스위스 알프 워치는 정통 기계식 시계의 대척점에 선 스마트 워치의 대표주자인 애플 워치를 비꼬는 듯한 뉘앙스를 풍겨 ‘애플 워치의 성공에 대한 스위스 기계식 시계 업계의 답변’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스위스 매드 워치는 다른 나라에서 생산한 부품을 함께 조립해도 스위스산 부품과 자본이 60% 이상이면 ‘SWISS MADE’ 표기가 가능하게끔 결정을 내린 스위스 정부에 대한 항변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H. 모저 앤 씨는 브랜드 로고에 ‘Very Rare’라는 문구를 병기할 만큼 생산량이 떨어지더라도 전 부품의 스위스 메이드를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간 생산량은 1200개 정도이지만, 뛰어난 품질과 독자적인 디자인 철학, 타협하지 않는 기계식 시계에 대한 열정이 이 브랜드의 매력이다. 사실 H. 모저 앤 씨는 우리나라에서도 면세점에 소개가 되긴 했었지만, 이러한 고가의 시계를 내국인이 구입하는 것은 현실과 매우 동떨어져 있으므로,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소개되기를 바란다.
- 에디터
- 김창규
- 출처
- H. 모저 앤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