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등장하는 정도가 아닌, 영화 속에서 씬 스틸러 역할을 하는 전설적인 스니커 10켤레.
<포레스트 검프> 속 나이키 ‘코르테즈’ 코르테즈는 달리기밖에 모르는 포레스트 검프(톰 행크스)에게 여자 친구이자 아내인 제니가 건넨 선물이다. 선물을 마지막으로 제니는 집을 떠났고, 포레스트 검프는 이 코르테즈가 새까매질 때까지 미국 전역을 달린다. 영화에 등장한 건 나이키 코르테즈의 오리지널 모델 중 하나인 빨강, 파랑의 배색이다. 나이키 코르테즈는 <포레스트 검프>의 개봉 이후 세계 전역에서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그리고 그 인기는 2017년인 지금까지 이어진다. 나이키는 영화에 등장한 배색의 모델에 아예 ‘포레스트 검프’라는 이름을 붙여버렸다. 나이키 코르테즈는 이후에도 꽤 많은 영화에 등장했지만, <포레스트 검프>의 모델만큼 인기가 많았던 건 없었다.
<킬 빌> 속 오니츠카 타이거 ‘타이치’ 흔히 멕시코 66으로 잘못 알려져 있지만 <킬 빌> 속 더 브라이드(우마 서먼)가 신은 모델은 오니츠카 타이거 타이치다. 앞 코 부분의 봉제선 유무가 타이치와 기타 유사 모델을 구분하는 가장 명확한 방법이다. 검정색과 노란색의 배색 모델은 평소 타란티노 감독이 좋아하던 이소룡의 트레이닝복에서 착안했으며, 영화를 위해 특별 제작했다고 한다. 물론, 이후 오니츠카 타이거는 ‘킬 빌 타이치’라는 이름의 한정판 스니커를 출시하기도 했다. 선혈이 낭자하는 일본 객잔 속 샛노란 스니커. 단연 지금까지 존재한 적 없는 강렬한 인상의 스니커다.
<빽 투 더 퓨처 2> 속 나이키 ‘맥’ 타임머신을 타고 1985년에서 2015년으로 시간이동을 하게 된 고등학생 마티 맥플라이(마이클 J. 폭스)는 브라운 박사로부터 미래의 신발과 재킷을 건네받는다. 그건 바로, 착용하는 사람의 몸에 맞게 변하는 나이키의 재킷과 하이 톱 스니커. 에어 맥스 시리즈를 디자인한 팅커 햇필드가 <빽 투 더 퓨처2> 속 2015년을 예견하면서 이같은 스니커를 만들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나이키 맥의 디자인이 2015년의 유행과 거의 들어맞는다는 점. 한편, 2005년부터 나이키 맥의 상용화를 연구한 나이키는 영화 속 배경의 날짜인 2015년 10월에 맞춰 시제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결국 나이키가 영화에 맞춰 현실을 바꿨다고 말해도 좋을까? 끈이 자동으로 조여진다는 <빽 투 더 퓨처 2> 속 나이키 맥의 아이디어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구하기 힘들다는 스니커, 나이키 하이퍼 어댑트 시리즈로 이어지고 있다.
<스티브 잡스> 속 뉴발란스 ‘992’ 뉴발란스 992는 실제로 생전의 스티브 잡스가 즐겨 신던 신발이다. 애플 키노트와 같은 공식 석상의 그는 늘 까만 터틀넥, 르노 안경, 리바이스 501과 함께 뉴발란스 992 차림으로 등장했다. 실제 스티브 잡스와 가장 유사하다고 평가받는 대니 보일의 영화 <스티브 잡스> 속 마이클 패스벤더는 그의 옷차림까지 완벽하게 재현했다. 뉴발란스의 닮은꼴 세 모델 993, 992, 990 중 실제로 스티브 잡스가 신었던 게 무엇인지, 한때 의견이 분분했다. 뉴발란스의 공식적인 입장은 992 모델이다. 안타깝게도 992 모델은 생산을 중단했고, 스티브 잡스도 세상을 떠났다.
<리치몬드 연애 소동> 속 반스 ‘슬립온 체커보드’ 이 영화가 없었다면, 지금의 반스도 없었다. 미국 서부의 서퍼들과 스케이트 보더들이나 겨우 신던 무명 브랜드 반스는 <리치몬드 연애 소동>의 개봉 이후 엄청난 인기를 누리게 된다. 영화 속에서 반스 체커보드 슬립온을 신은 건 방탕한 십대 서퍼, 제프 스피콜리를 연기한 숀 펜이다. 하지만 정작 이 영화가 인기를 누리게 된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그 유명한 피비 케이츠의 수영장 누드 신. 반스는 숀 펜에게 감사해야 하는 걸까? 피비 케이츠에게 감사해야 하는 걸까?
<스튜어트 리틀> 속 컨버스 ‘올스타 척 테일러’ <스튜어트 리틀>은 어느 부부에게 입양된 생쥐가 가족 구성원으로 인정받기까지의 모험을 그린 영화다. 주인공 스튜어트는 빨간색 컨버스 올스타 척 테일러를 신고 스케이트 보드와 자동차를 타고 요트를 탄다. 물론 실제 쥐가 아닌, 3D 그래픽. 하지만 이 작은 그래픽 쥐가 신은 신발이 얼마나 인상적이었는지, 한 때 사람들은 빨간색 컨버스 척 테일러를 ‘스튜어트 리틀 컨버스’라고 부르기도 했다. 사람보다 더 실제 같은 컨버스 모델. 무엇보다 스튜어트 리틀은 어떤 옷에 컨버스 척 테일러가 어울리는지 정확하게 아는 듯 했다.
<터미네이터>와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속 나이키 ‘반달 하이’ 다른 로봇이 그렇듯, 미래에서 온 카일 리스(제이 코트니) 역시 알몸으로 과거에 불시착한다. 그가 곧바로 찾은 곳은 백화점의 의류 코너. 그는 몇 가지 옷과 신발을 챙겨 입고 사라진다. 이때 그가 집은 스니커가 바로 나이키 반달 하이다. 스니커 마니아라면 카일 리스의 알몸이나 행동보다 카트에 수북이 쌓인 수십 켤레의 반달 하이가 더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까. 지금은 추첨을 통해 당첨이 돼야 겨우 구할 수 있는 나이키 반달 하이니까. 하지만 영화의 배경은 1980년대. 수북이 쌓인 반달 하이의 모습은 과장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실제로 1984년작 <터미네이터>의 카일 리스(마이클 빈) 역시 나이키 반달 하이를 신고 등장한다. 과거 <터미네이터>에서 생략됐던 카일 리스 출현의 배경과, 그가 어떻게 반달 하이를 신고 다니게 됐는지의 수수께끼가 2015년작 <터미네이터 제니시스>를 통해 비로소 풀린 셈이다. 이처럼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하는 수많은 영화들이 1980년대를 드러내는 장치로 나이키의 스니커를 차용하고 있다. 당시 나이키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스페이스 잼> 속 에어 조던 11 ‘스페이스 잼’ 마이클 조던이 영화 <스페이스 잼>에서 신고 나온 에어 조던 11 ‘스페이스 잼’은 조던 시리즈의 마니아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모델 중 하나다. 일반적인 에어 조던 시리즈에 써 있는 숫자 ‘23’ 대신, 그 당시 마이클 조던의 백넘버 ‘45’가 새겨져 있는 모델이기 때문이다. 그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2016년 조던 브랜드는 에어 조던 11 ‘스페이스 잼’ 레트로 모델의 재발매를 위해 <스페이스 잼>의 20주년을 기념하기도 했다. 재발매와 조던 시리즈 전반의 인기 하락으로 예전만한 위용은 없어졌지만, 에어 조던 11 스페이스 잼은 그래도 ‘조던’ 하면 손에 꼽는 전설적인 모델이다.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 생활> 속 아디다스 ‘지소‘ 아디다스 지소는 영화 속 스티브 지소(빌 머레이)의 해저 탐험 대원에게만 보급되는 진짜 ‘한정판’ 스니커로서, 오직 영화 속 소품으로만 제작했다. 스니커 지소의 모티브가 된 모델은 아디다스 빈티지 ‘롬(ROM)’. 앞 코의 덧댄 부분과 중창의 돌기 등이 그 어떤 모델보다 지소와 유사하다. 이 구할 수 없는 스니커에 열광하던 몇몇 아디다스 그리고 웨스 앤더슨의 팬들은 직접 아디다스 빈티지 모델을 지소처럼 개조해 신었다. 그 염원이 전해졌는지, 올여름 아디다스는 영화에 출연한 뮤지션, 세우 조르지의 페스티벌 공연 이벤트로 지소를 딱 1백 켤레 한정 발매했다. 아디다스 롬의 형태는 그대로, 삼선 로고의 배색을 영화 속 스니커와 똑같이 바꾸고 그 옆에 금박으로 이름 ‘ZISSOU’를 적었다. 물론 끈도 노란색으로 바꿨다. 한편, 웨스 앤더슨 감독의 꾸준한 아디다스 사랑은 전작 <로얄 테넌바움>에서 시종일관 아디다스 트레이닝 복을 입고 등장하는 채스 태넌바움(벤 스틸러) 삼부자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속 나이키 ‘에어 우븐’ 믿기 어렵겠지만,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병원 신 속 밥 해리스(빌 머레이)가 신은 신발은 털 실내화가 아닌 나이키 에어 우븐이다. 더 믿기 어려운 사실은 이 영화에 스트리스 신의 대부, 프라그먼트의 후지와라 히로시가 카메오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두 가지 사실로부터 유추하건대, 영화 속 에어 우븐은 후지와라 히로시가 영화에 바친 선물은 아니었을까. 사실 여부와 상관 없이 모호한 장면에 적절하게 쓰인, 모호한 디자인의 스니커였다.
- 에디터
- 장승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