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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복각한 미국 브랜드

2017.12.21GQ

일본은 왜 사라진 미국 브랜드들을 복각했을까? 일본이 복각한 미국 브랜드들의 종류와 그 이유에 대해 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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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말, 일본의 청바지 마니아들은 오랫동안 입어왔던 리바이스의 501의 데님 원단 질감과 페이딩, 버튼과 리벳과 같은 부자재 등 많은 요소가 변했다는 걸 깨닫는다. 그들은 그 이유가 곧, 청바지 제작 방식의 현대화와 비용 절감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걸 알아차린다. 즉, 비용 절감 때문에 방직기 자체가 바뀐 것. 데님의 디테일까지 신경 쓰던 그들은 결국 예전에 쓰던 셔틀 방직기를 가져다 데님을 생산하고 유니언 스페셜 등 구형 재봉틀로 박음질해 원래의 청바지를 복각하는 일명 ‘레플리카 청바지’를 만들기 시작한다.

20세기 초반 미국의 의류 제작 방식을 구현하다 보니 자연스레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공장에서 만들어졌던 다른 옷까지 관심이 옮겨간 건 당연한 결과. 첨단 소재가 없던 시절 면이나 가죽, 모 소재를 통해 원시적인 형태로 만들어낸 방풍 및 방한 기능성 옷이 가진 단순한 매력도 한몫 했다. 그렇게 일본이 복각하는 옷의 범위는 점차 넓어지게 된다.

빈티지 풍의 아메리칸 캐주얼, 즉 아메카지(아메리칸+캐주얼)가 인기를 끌면서 복각의 원본이 되는 브랜드들도 재조명을 받게 됐다. 리뉴얼을 하며 인기를 끌기 시작한 필슨이나 에디 바우어, 울리히 같은 브랜드 말고도 예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다가 사라진 브랜드들도 있었다. 일본은 그런 브랜드의 상표 사용권을 사들여 원래 브랜드 이름으로 복각하기 시작한다. 즉, 원본을 다시 만들어낸 것이다. 그 중 대표적인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부코(Buco)는 조셉 부에겔라이젠이 1933년 디트로이트에서 시작한 회사다. 처음에는 비행사가 사용하는 세이프티 고글을 만들던 그는 오토바이와 자동차 스피드광에게도 수요가 있다는 걸 깨닫고 상품 구성을 넓혀 갔다. 부코라는 이름은 1940년경부터 쓰기 시작했다.

이후 부코는 주로 오토바이 용품을 만들어 할리 데이비슨이나 인디언 모터사이클을 판매하는 가게에 납품한다. 특히 인기가 많았던 건 헬멧과 가죽 재킷. 특히 가죽 재킷 수요가 폭증하면서 매출이 몇 배씩 뛰었고 부코는 1960년대 들어 미국에서 가장 큰 오토바이용 액세서리 회사가 된다. 하지만 전성기를 맞이한 1966년, 회사를 돌연 ASEC라는 곳에 팔아버렸다. 1966년 이전에 생산된 빈티지 부코 헬멧과 라이더 재킷이 인기가 좋은 건 그래서다.

ASEC는 상표 사용권을 영국, 일본, 스페인 등 여러 나라의 회사에 넘겼다. 일본의 경우 가죽 재킷과 엔지니어 부츠 쪽은 리얼 맥코이(Real McCoy’s)에, 헬멧은 같은 회사 계열인 토이즈 맥코이(Toys McCoy)에 사용권이 있다. 리얼 맥코이는 1947년에 나왔던 JH-1이나 1949년에 톱플라이트(Topflite)라는 이름으로 처음 나왔던 J-31, 부코 재킷의 완성형이라고 하는 J-24 등 다양한 모델의 가죽 재킷을 내놓고 있다. 그들은 말가죽과 탈론 지퍼를 사용하는 등 부자재까지 예전 모습으로 완벽하게 복각하고 있다.

 

헤드라이트(Headlight)는 1897년에 설립된 란드 카터 앤 코라는 회사에서 전개하던 워크웨어 브랜드다. 1920년대에 방직 공장까지 인수해 직물에서 봉제까지 직접 만드는 생산 체제를 완성하기도 했다. 기차 전조등을 상징하는 삼각형이 로고다. 데님 오버올스를 비롯해 특히 철도 관련 노동자들이 입는 작업복을 많이 선보였다. 오버올스 앞에 지퍼가 달려 있는 주머니가 특징으로, 관련 특허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1960년대 들어 칼하트가 헤드라이트를 인수한다. 인수된 후 초창기에는 칼하트-헤드라이트 식으로 로고를 병기하기도 했는데 후에 헤드라이트 이름이 빠지면서 완전히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이후 미국의 초창기 워크웨어에 대한 수요로 인해 헤드라이트 빈티지 제품들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지금은 일본의 슈가 케인(Sugar Cane)에서 헤드라이트의 복각 오버올스나 초어 재킷(Chore Jacket, 데님이나 튼튼한 천으로 만든, 주머니 달린 허리 길이의 작업복) 등을 내놓고 있다.

브라운스 비치(Brown’s Beach)는 1901년 매사추세츠 주에서 윌리엄 브라운이 만든 회사다. 겉면은 뜨개질한 면, 안쪽은 울 모직의 이중 구조로 보통 면 27%, 울 73% 정도로 구성돼 있다. 특히 재킷의 겉은 2가지 색의 실을 꿰어 특유의 요철감을 만들고 안쪽 울은 기모를 거칠게 내, 내구성이 좋은 제품으로 유명했다.

그렇게 만든 브라운스 비치의 방한복은 어부나 사냥꾼, 나무꾼 등 추운 매사추세츠 주의 자연 속에서 거친 일을 하는 작업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1920년대에는 명성이 전국으로 확산된다. 하지만 1960년대에 들어 파타고니아의 신칠라나 폴라텍 플리스 등이 등장하면서 브랜드 자체가 사라졌다.

현재 브라운스 비치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해 복각하는 건 일본 브랜드 풀카운트(Fullcount)다. 그들은 2007년부터 브라운스 비치의 소재 제작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2010년에 라이센스를 사들였다. 그들은 재킷과 피코트 등 고전적인 분위기의 다양한 제품을 통해 마니아들을 확보하고 있다. 리얼 맥코이, 아이언 하트(Iron Heart) 같은 다른 일본 브랜드에서도 협업 방식으로 브라운 비치 재킷을 내놓기도 한다.

일본이 복각한 미국 브랜드 리스트

코(Buco) – 1930년대에 등장한 미국 브랜드로, 오토바이 헬멧, 라이더 재킷을 주로 만든다. 일본 브랜드 리얼 맥코이에서 복각하고 있다.

헤드라이트(Headlight) – 1900년대 초반 미국의 워크웨어 브랜드. 오버올스와 초어 재킷이 대표적인 제품으로 일본 브랜드 슈가 케인에서 복각하고 있다.

브라운스 비치(Brown’s Beach) – 1900년대 초반 미국의 아웃도어용 방한 재킷을 만들었다. 일본 브랜드 풀카운트 등에서 복각하고 있다.

킹 루이(King Louie) – 1950년대 캔자스 주에서 시작한 브랜드로, 볼링할 때 입는 셔츠를 만들었다. 일본 브랜드 토요 엔터프라이즈(Toyo Enterprise)에서 복각하고 있다. 토요 엔터프라이즈(Toyo Enterprise)는 슈가 케인, 버즈 릭슨(Buzz Rickson’s), 선 서프(Sun Surf) 등의 모회사다.

로열 하와이안(Royal Hawaiian) – 1930년대 호놀룰루의 하와이안 셔츠 브랜드다. 일본 브랜드 선 서프에서 실명 복각하고 있다.

토그스(Togs) – 1930년대에 가죽 라이더 재킷을 만들던 회사다. 일본 브랜드 프리휠러스(Freewheelers)에서 몇 제품을 복각한다.

러프 웨어(Rough Wear) – 세계 대전 당시 군용 가죽 재킷을 납품하던 회사 중 하나다. 일본 브랜드 리얼 맥코이에서 1920년대 말에 나온 러프 웨어의 A-2 재킷을 복각하고 있다. 말가죽 소재고, 안감은 면이다. 1940년대 나왔던 탈론의 니켈 도금 벨 모양 지퍼가 특징이다.

    에디터
    글 / 박세진(<패션 vs. 패션> 저자)
    사진
    Buco, Headlight, Brown's Bea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