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발의 힙스터부터 우주의 악당, 거리의 시인까지. 아담은 언제나 아담이다.
아담 드라이버는 한 곳에 속할 것 같지 않다. 여기와 저기, 선과 악, 정해진 범주와 규범들에 얽매이지 않고 반쯤 부유하는 듯한 남자는 타협하지 않는 아웃사이더 같은 인상을 남겼다. 그를 대중에 알린 <걸스>의 엉뚱한 배우 아담, <인사이드 르윈>에서의 좀 덜떨어진 인디 가수, 노아 바움백 감독의 작품들에서 페도라를 쓴 힙스터, 매일 같은 도시와 같은 일상을 뱅글뱅글 돌면서도 유유히 자신만의 몽상에 빠지는 <패터슨>의 시인 패터슨, <스타워즈> 시퀄 시리즈 세계관에서 가장 강력한 악당임에도 선과 악 사이에서 갈등하는 카일로 렌 모두 경계에 서 있는 남자다. 신비로우면서도 자유로운 방랑자의 기질은 그를 범주로 포획하는 대신, 그가 맡는 모든 캐릭터를 자신의 영역 안으로 끌어들인다. 배역에 자신을 맞추는 배우가 있고 배역을 자신에게 끌어오는 배우가 있다고 하면 아담 드라이버는 단연 후자다. “이 배우가 그 배우였어? 못 알아봤네.” 이런 말이 그에겐 통하지 않는다. 쉽사리 잊히지 않는 얼굴과 분위기를 지닌 그는 어떤 영화에서 봐도 아담 드라이버 그 자체니까. 우주의 악당부터 거리의 시인까지 어떤 배역이든 자신의 것으로 체화해내는 힘으로서 말이다.
우주에 군림하는 새로운 악당으로 <스타워즈> 시리즈의 팬들을 매혹한 ‘카일로 렌’은 아담 드라이버의 확실한 전환점이다. 주로 예술 영화에 출연해온 그는 <스타워즈>라는 SF 블록버스터로 연기 인생의 새로운 막을 열었다. 시퀄 3부작의 첫 작품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부터 등장한 카일로 렌은 퍼스트 오더의 재킷이 근사하게 어울리지만, 실은 고뇌에 찬 미성숙한 인물이다. 부모와 스승에 대한 애증에 사로잡혀 있으며, 어둠과 빛 사이에서 번뇌하고, 자신과 연결된 레이에게 인정을 갈구하는 사춘기 소년 같은 악당. 지난 시리즈에서 아버지 한솔로를 죽이는 패륜을 저지르기까지 한 비정한 카일로 렌에게 온기를 부여한 건 온전히 아담 드라이버의 힘이다. 바닥을 헤아릴 수 없이 풍성한 저음의 목소리, 푹 젖어 있는 눈동자는 악당임에도 어서 내미는 저 손을 잡으라고 외치고 싶어지는 뜨거운 호소력을 뿜어낸다.
동시에, 아담 드라이버는 작가주의적 영화에서도 유의미한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무지막지한 카일로 렌의 반대편에 서 있는 건, 짐 자무시 감독이 연출한 <패터슨>의 패터슨이다. 작은 마을의 버스기사인 그는 매일 버스 운행을 하고, 폭포수를 보며 시를 쓰고, 아내와 저녁을 먹고,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간다.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 패터슨은 운율을 찾는다. 그리고 그걸 시로, 삶으로, 육체로 끌어당긴다. 이때 아담 드라이버의 얼굴은 빈 페이지 같다. 아무런 감정이 없는 표정처럼 보일 때도 자꾸만 의미를 읽어내고 싶어지는 얼굴이다. “피자 어때?”, “…난 좋아” 같은 일상적인 대사에서도, 말을 하는 그 순간보다 다음 말을 하려고 잠깐 멈춘 정적을 더 살피게 된다. 대사를 할 때보다 상대의 대사를 받을 때 기울어지는 눈짓, 살짝 벌어지는 입술에 더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시를 읊조릴 때 팽팽하게 펴지는 그 풍부한 표정이란. 그의 얼굴이 지닌 기묘한 생경함에 속절없이 이끌리는 순간이다.
진공청소기 세일즈맨이었던 아담 드라이버는 9·11 테러를 겪고 미군 해병대에 자원했다. 제대한 그는 정말 하고 싶었던 꿈을 찾아 줄리어드에서 연기를 전공한 후, 2010년 브로드웨이에 데뷔했다. 그리고 2012년 HBO 드라마 <걸스>로 주목 받은 이후, 단기간에 양질의 필모그라피를 쌓으며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유서 깊은 SF시리즈의 주인공을 꿰차고 짐 자무시, 코엔 형제, 노아 바움백, 제프 니콜스, 스파이크 리와 같은 작가주의적 감독들에게도 연이어 호출 받는 중이다. 차기작으로는 테리 길리엄 감독의 SF 영화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가 개봉을 앞두고 있고, 스파이크 리 감독이 연출했으며 KKK단에 잠입한 경찰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스릴러 <블랙 클랜스맨>은 현재 촬영 중이다. 아담 드라이버는 말한다. “물론, 이전의 삶과는 완전히 달라졌죠. 완전히 다른 세계가 됐어요. 하지만 저는 여전히 변함없는 저예요. 그러길 바라고요.” 그러니까, 그는 단단하고 깊은 우물 같다. <패터슨>식으로 말하자면 찢긴 노트의 시처럼, 물 위에 쓴 글씨처럼, 낯선 여행자에게 받은 한 권의 빈 노트처럼 그 얼굴은 늘 거기에 있다.
- 에디터
- 이예지
- 포토그래퍼
- MATTHEW BROOKES
- Creative Direction
- Paul Solomons
- Stylist
- Michael Fisher
- Photography Assistant
- Patrick Lyn; Eduaro Silva
- Style Assistant
- Amanda Day
- Groomer
- Amy Komorowski
- Tailor
- Lucy Fl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