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수경은 없던 욕심이 생겼다고 말한다. 첫 용돈을 받은 아이처럼 순진한 얼굴을 한 채로. <침묵>과 <용순>에서도 본 듯한 그 얼굴로.
데뷔 이후 첫 화보라는 말을 듣고 기뻤어요. 뭘 해도 새로울 테니까요. 제가 사진 찍는 걸 무서워해요. 재미없으실 텐데….
이제 막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으니 이수경에게도 처음이라 신기한 것이 많을 테죠. <용순> 하면서 GV라고 관객들이랑 대화하는 시간이 되게 많았는데, 그때 자주 오시던 분들이 있어요. 팬들이라고 해야 하나…. 팬들이 생기는 게 신기해요. 근데 사실 그분들이 나를 나보다 더 과대평가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제가 뭐 대단한 것도 없고 그런데, 흐흐.
어떤 면을 특히 과대평가하는 것 같아요? 어느 날 편지를 한 통 받았는데, 제가 한 말을 듣고 감동을 받았다고 쓰여 있었어요. 그냥 제가 배우 옥타비아 스펜서를 좋아한다고 말한 건데, 여성인 데다 흑인 여성으로서 영화를 작업한다는 게 사실 보이지 않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는데 굴복하지 않고 계속 여성이나 흑인 인권에 관한 영화에 출연하면서 자신의 힘을 좋은 곳에 쓰는 게 되게 좋아 보였다, 그래서 나도 언젠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게 노력하고 싶다는 내용이었어요.
의미 있는 말이었네요. GV에선 배우도 미처 생각지 못했던 영화의 세부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하잖아요. 답하기 어려운 질문도 있나요? 그런 질문들이 더 재미있어요. 그래서 전 영화 찍기 전에 이런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용순>을 찍을 때 저는 그냥 영화 속 하나의 캐릭터로 ‘용순’을 생각했는데, 관객들은 되게 상징적인 인물로 봤다고 해요. 그런 부분에서 놀랐던 것 같아요.
처음으로 주인공 역을 맡은 <용순>을 찍고 난 뒤 영화평을 다 찾아봤나요? 네. 진짜 엄청 찾아봤어요. <용순>은 상영관도 적은데, 그 상영관에서도 한두 명 앉아서 보는 경우도 많았던 정말 작은 영화예요. 보신 분들이 또 다 후기를 남기는 것도 아니니까 <용순>에 대한 관객들의 후기가 그렇게 많진 않아요. 그래서 더 집착하면서 봤어요. 저뿐만 아니라 감독님도 그렇고 같이 출연했던 언니도요.
감정이 요동치는 후기도 있었나요? 관객 중 누가 어떤 부분이 마음에 안 들었다고 쓴 것이 있으면 우리가 생각 못 했던 부분일까, 놓친 부분일까, 고민하고 그랬어요. 이거 하나만 더 잡고 갈걸, 이런 아쉬움도 생겼고요. 사실 영화에 되게 자신 있었어요. 감독님과 사전에 정말 많은 이야기도 했고요.
촬영장에 가는 일은 이수경에게 늘 재미있는 일인가요? 작품에 따라 조금씩 다른 것 같아요. <침묵> 같은 경우는 쉬운 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항상 감정 신이 있었고 그래서 좀 자신이 없었어요. 현장 가는 게 너무 무서운 거예요, 오늘은 못 할 것 같은 거죠. 막상 현장에 가면 그 무서움을 잊는데, 현장 가는 그 차 안까지 너무 힘들었어요. 운동 가기 싫은데 가면 또 막상 열심히 하는 것처럼요.
오디션을 보는 일은 어떤 기분인가요? 오디션은 내가 잘하냐 못 하냐에 따라서 완전히 판가름 날것이다, 그래서 내가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어떤 부담감이 있었는데 오디션을 꽤, 좀 많이 보다 보니 사실 운인 것 같아요. 전 사실 똑같은 태도로 오디션을 보는데, 그게 맞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고요. 열심히 해도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으니까….
연기가 아닌 태도를요? 제가 좀 다른가 봐요. 다른 배우들 보면 자기 어필도 하고 말도 재미있게, 유머도 섞어가면서 하는데, 전 그냥 물어보시는 것에 대해서만 딱딱 답을 하니까 그런 것 같아요.
한 인터뷰에서 “현장에서 막내 역할을 잘 못해서 미안하다”라고 말한 걸 봤는데, 그 뜻인가요? 어떤 분이 진짜 예쁜 옷을 입고 왔는데, “옷 너무 예뻐요”라는 말을 못 해요. 제가 그런 성격이에요. 그 성격 때문에 많이 얘기 들었죠. 그걸 고치려다가 말실수도 하고 그런 적이 꽤 있어서. 사실 이젠 억지로 바꾸려고 하지는 않아요.
사실 막내는 어때야 한다고 규정하는 것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병폐이자 폭력이죠.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항상 듣던 말이 그거잖아요. 여자는 나긋나긋해야 되고, 애교도 많아야 되고. 그런데 저는 그런 성격이 아니라서 어렸을 때부터 그런 말을 많이 들어 지겨웠던 것 같아요. 예전부터 제가 바라는 ‘어른 상’이 있어요. 늘 ‘올블랙’ 정장을 입고, 잘 웃지 않고, 애교가 없고, 시크하고, 할 일을 되게 잘해서 아무도 나한테 뭐라고 못 하는 그런 어른이요. 내가 할 일을 똑바로 하고 너무 잘해서 아무도 나한테 나긋나긋하라는 말을 못 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게 맞아요. 네. 저도 그런 것 같아요. 요즘은 특히 더 그런 생각을 하고요.
앞으로 어떤 역할이든 다 할 수 있다는 말 말고요, 이수경이 배우로서 정말 할 수 없을 것 같은 역할은 무엇인가요? 청순가련형 캔디. 요즘 같은 정서에는 조금…. 사실 뭐랄까, 납득이 안 된다고 해야 하나요. 제 이미지에 잘 어울리는 옷도 아닌 것 같고요. 나에게 없는 부분을 끄집어내야 하는 거라 자신이 없어요. 만약 오디션 기회가 있어도 뭔가 가로막히는 그런 벽이 있달까.
이수경은 몇 살에 제일 멋있을 것 같아요? 서른? 그때부터 되게 멋있을 것 같아요. 지금은 좀 다급하고 조급한 마음이 있는데 그때는 좀 여유로웠으면 좋겠어요.
욕심 때문에 다급한가요? 사실 이전엔 저를 좀 속였던 것 같아요. “나는 지금이 좋아요” 이런 말을 하면서요. 근데 얼마 전 지인을 만났는데 제 가면을 좀 깨줬어요. “나는 그런 그릇이 아닌 것 같아”라는 생각을 했는데, 갑자기 내가 데뷔할 줄 누가 알았나 싶고, 내가 어떻게 될 줄 누가 알아, 싶고…. 그래서 저를 인정했어요. “사실 저는 욕심이 너무 많고, 아직 이게 성에 차지도 않고, 하고 싶은 게 너무 많고, 나는 더 큰 꿈이 있어요”라고요. 그래서 그걸 인정하는 동시에 다급함과 조급함이 생겼어요.
그래서, 이제 뭘 어떻게 해볼 작정인가요? 더 좋은 작품에서 더 좋은 역할을 하고 싶어요. 외국에서 하는 게 꿈이에요. 할리우드나 일본에서요. 최근에 누가 액션스쿨 다니다가 일본 영화에 캐스팅됐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런 것도 해보고 싶고요. 그래서 어학 연수도 가고 싶고, 액션도 배우고 싶고, 중국어도 하고 싶어요. 저 사실, 이런 이야기 지금 처음 해요. 누구한테 입 밖으로 꺼내본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밤에 혼자 누워서 생각하다가도 부끄러워 그 생각을 없애버리고 그랬는데….
“요즘은 그냥 액션스쿨 찾아가서 액션 연기 배우고 싶어요. 갑자기 일본 액션 영화에 캐스팅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응원하고 싶어요. 사실 <호구의 사랑>에서부터 이수경을 봐왔는데, 전형적인 부분이 없어서 늘 더 눈길이 갔어요. 본능적으로 보였고요. 사실 저는 좀 논리적이고 싶어요. 이 상황에 이렇게 말을 할 수가 있나? 하는 것에 대해서 납득이 안 되면 연기를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감독님들한테 그런 부분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하는 편이고요. 말을 잘 돌려가면서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보니까, 그냥 감독님한테 직접적으로 말해요. “이해가 안돼요.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어요”라고요. 예전에 연기를 배울 땐, 감정이 계단 식으로 간다고 했어요. 근데 아닌 것 같은 거죠. 폭발하다가 수그러들 때도 있고, 또 폭발하고…. 실제라면 어떨까, 이걸 가장 처음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수경이 감독한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뭐예요? “조금 더, 조금만 더”요. 조금만 더, 네가 오버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조금만 더 해달라는 뜻이에요. 제가 연기할 때 “오버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에 가로막힐 때가 많나 봐요.
이수경의 연기가 다른 배우들보다 좀 특별한 점이 있다면, 스스로 무엇이라고 평가하고 싶어요? 음…. 아…. 뭐가 있을까요…. 아무래도 연기를 할 때 좋게 좋게 넘어가려고 하지 않는 것? 스태프들한테 실례가 될 것 같아서 이야기하지 못했던 것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 것이요. 좋게 좋게 하다 보면 저에게 독이 될 것 같단 생각을 했어요. 연기로 욕먹는 것도 나고, 연기를 하는 것도 나니까.
지금 막 느낀 건데, 일상적인 이야기를 할 때도 눈썹이며 손이며 풍부하게 움직이네요. 아, 흐흐. 이거 때문에 혼날 때도 있어요. 눈썹을 하도 찡그려서 미간에 주름이 생기려고 그래요. 큰일이에요.
요즘 놀 땐 어느 동네로 가요? 평일 낮, 사람 없는 연남동을 좋아해요.
연남동에서 뭘 해요? 사진 찍는 건 별로 안 좋아하고, 먹는 걸 좋아하긴 하는데…. 요즘은 돈 쓰는 게 좋은 것 같아요. 하하. 우울하다가도 뭘 사면 금방 잊어요. 돈 쓰는 게 행복해요.
최근에 행복하게 돈 쓴 건 뭐예요? 아는 언니들이랑, 이런저런 걱정 없이 그냥 1인당 5만~6만원어치 먹는 거에 돈 썼어요. 하루 종일 먹을 거 생각해요. 너무 좋아해요.
지금 뭐 먹고 싶어요? 이 순간 생각나는 건 뭐예요? 음… 산낙지요. 삶은 것도 좋고, 호롱이도 좋고. 지금 찍고 있는 <기묘한 가족>이 2주 뒤에 크랭크업 하는데 그때 먹으러 가도 좋을 것 같아요.
- 에디터
- 손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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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정동 ‘취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