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연 루이 비통을 떠난 킴 존스, 그렇다면 그의 후임은? 에디 슬리먼이 만드는 셀린의 남성복은 팔릴까? 누가 발렌시아가의 독주를 막을까? 요즘 패션계의 비밀과 공방, 예측과 비전에 대한 17가지 답변.
01 킴 존스가 루이 비통을 떠났다. 그 자리를 채울 적임자는 누구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루이 비통을 소유한 LVMH 그룹의 최근 ‘인사 방침’을 눈 여겨볼 필요가 있다. 라이벌 ‘케어링 그룹’이 바잘리아라는 풋내기와 미켈레라는 와일드 카드 등으로 과감한 도전을 펼치고 있건만, LVMH는 최근 상업성과 스타성이 모두 보장된 디자이너에게만 손을 내민다. 지방시의 클레어 웨이트 켈러, 벨루티의 하이더 아커만, 셀린의 에디 슬리먼 등이 그 예. 런던의 크레이그 그린이나 웨일스 보너를 비롯한 자극적인 이름에 대한 기대는 잠시 내려놓는 게 좋다. 루이 비통은 LVMH의 맏형과 같은 존재다. 배꼽도 안 마른 하룻강아지에게 이 거대한 아카이브를 맡기진 않을 것. 대신 상업성이 보장된 아미의 알렉산드르 마티우시 혹은 ‘버즈’의 대가인 오프 화이트의 버질 아블로에 대한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다. 손기호(<보그> 패션 에디터)
02 뎀나 바잘리아의 인기는 언제까지 갈까?
뎀나 바잘리아의 인기는 언제까지 갈까? 포스트 소비에트 문화를 바탕으로 마르지엘라식 방법론을 선보이며 순식간에 자리를 잡은 뎀나 바잘리아. 그는 스트리트 신과 환경 문제, 유머와 냉소 사이를 능수능란하게 오간다. 게다가 자신이 향유하는 문화를 대중에 맞게 재구성해 하이 패션으로 만들어내는 장기가 있다. 병뚜껑을 단 벨트, 마트 비닐봉지를 어엿한 가죽 가방으로 소개한 것이 그 예. 별것 아닌 물건을 별것으로 창조하는 천재성 덕에 그는 지금의 패션 신을 주도한다. 요란한 프린트 티셔츠를 내놓으며 스트리트풍을 좇는 여타 브랜드와는 게임을 하는 지점이 다르다. 2018 S/S 베트멍의 룩북은 또 어떤가. 취리히 도심의 행인을 모델로 세우고, 심지어 ‘하이 패션 포즈’를 시켰다. 전형적인 패션을 조롱하고, 쉼 없이 흐르는 하위 문화의 움직임을 상업적으로 해석할 줄 알며, 자신의 뚜렷한 색까지 가진 뎀나 바잘리아. 아직 그의 몰락을 논하긴 이르다. 박세진(<패션 v.s. 패션> 저자)
03 에디 슬리먼이 셀린의 디렉터가 된다. 그가 만들 셀린의 남성복은 어떨까?
나만큼 셀린 남성복이 나오기를 간절히 기다린 사람도 없을 거다. 드디어 바람이 이루어졌다! 단, 디자이너가 에디 슬리먼이라는 것만 빼고. 에디가 지금까지 보여준 남성복은 한결같았다. 유약하고 불안한 청춘, 그들의 마른 몸을 겨우 감싼 스키니 진과 화려한 테디 재킷. 빈티지와 웨스턴이란 키워드. 이미 디올 옴므와 생 로랑을 통해 그의 세계를 충분히 감상했다. 현재의 셀린을 애정하는 입장에선 그 비전이 그리 달갑진 않다. 매장 비품 하나까지도 확인하는 완벽주의자인 에디가 셀린을 지금처럼 놔둘 리 없으니까. 그가 디올 옴므를 통해 보여준 남성복, 당시의 파급력에 대해선 이견의 여지가 없다. 존경스러운 부분이다. 하지만 그 정체성이 셀린과 어울릴 것 같진 않다. 결국 그는 고집을 꺾지 않을 테고, 셀린은 완전히 변하겠지. 남호성(10 꼬르소 꼬모 바이어)
04 클래식 수트의 시대는 정녕 끝난 걸까?
약 10년 전, 서울에 온 어느 록 밴드의 스타일리스트가 이렇게 말했다. “뉴욕은 지금 다들 ‘전통적인 옷’을 입기 시작했어.” 당시를 돌아보면 밴드 오브 아웃사이더스와 톰 브라운 같은 ‘아메리칸 클래식’ 브랜드가 상당히 인기였다. 미국의 남성복 디자이너들은 그 시절 젊은이들을 위한 수트와 옥스퍼드 셔츠를 만들었다. 이때 한국의 편집 매장들은 피렌체와 런던의 유서 깊은 수트 메이커를 소개하고, 구두를 고르고, 수선하고 관리하는 문화를 전파하기 바빴다. “클래식은 유행이 아니라 문화”라고 주장했다. 안타깝게도 그 주장은 곧 설득력을 잃었다. 북적이던 클래식 편집 매장도 반 이상 사라졌다. 하지만 맞춤 수트 문화에 편승한 이들이 줄었다고, 수많은 패션 브랜드의 소셜 미디어가 더 편한 옷들을 소개한다고 과연 그 문화가 소멸한 걸까? 수트를 매일 입는 사람들은 여전히 셔츠와 테일러드 재킷을 맞추고 꿋꿋이 클래식을 즐기는 골수 분자로 남았다. ‘수트 코스프레’ 군단이 떨어져 나간 것뿐,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홍석우(패션 저널리스트)
05 도대체 버질 아블로의 매력은 무엇일까?
버질 아블로는 비범한 디자이너가 아니다. 그가 선보인 패션 디자인에는 감탄할 구석이 없다. 라프 시몬스가 한 인터뷰에서 비록 아블로를 매우 좋아하지만 “언오리지널”하다고 단언한 것도 같은 이유일 것. 만약 아블로가 디자인한 나이키 스니커즈나 내년 선보이게 될 이케아의 러그를 손에 넣고 싶어 안달이 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해보길 바란다. 그가 디자인한 것이 아름답기 때문인지, 그 제품에 붙은 오프-화이트라는 태그 때문인지. 하지만 지금은 2018년. 인스타그램 팔로워와 ‘좋아요’ 숫자가 디자이너의 능력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는 세상이다. 그리고 아블로는 그 방법을 깨달은 몇 안 되는 영리한 디자이너 중 하나다. 손기호(<보그> 패션 에디터)
06 ‘인스타 슈퍼스타’ 레오 만델라는 왜 인기가 많을까?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이 그야말로 굉장하다. 이를 배경으로 탄생한 개념 중 하나가 ‘헤비 쇼퍼’다. 53만 3천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팔로워를 거느린 16세 소년 레오 만델라는 구하기 힘든 아이템을 누구보다 빠르게 손에 넣는다. 슈프림, 디올 옴므, 구찌, 팔라스, 루이 비통의 신상품은 물론 리세일로 겨우 구할까 말까 한 온갖 리미티드 에디션을 입고 신고 쓴다. 취향이 없는 대부분의 헤비 쇼퍼들과 달리 그는 ‘패션 센스’란 걸 갖췄다. 가장 뜨거운 아이템으로 자신에게 어울리는 신선한 스타일링을 선보이는 것. 이런 게 바로 지금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패셔니스타’의 모습이다. 박세진(<패션 vs. 패션> 저자)
07 남성 패션 위크가 존폐 위기에 처했다고?
위기는 굵직한 브랜드들이 남성 패션 위크 스케줄에서 빠지면서 시작됐다. 구찌와 보테가 베네타가 밀란 남성 위크에서 사라졌고, 파리 남성 위크의 하이라이트였던 라프 시몬스는 뉴욕으로 터를 옮겼으며, 발렌시아가도 2018 F/W 시즌부터 통합 쇼로 전환해 여성 패션 위크에 합류한다. 심지어 뉴욕 맨즈 위크는 분리된 지 두 시즌 만에 원래 날짜로 돌아갔다. 뭔가 김이 새는 모양새는 확실하다. 하지만 남성 패션 위크가 없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2018 F/W 시즌 파리 남성 패션 위크는 밀려드는 신규 브랜드 때문에 하루를 연장했다. Gmbh, 나마체코 같은 떠오르는 브랜드가 제 몫 이상을 했고, 발렌시아가는 첫 남성 프리폴 컬렉션을 소개했다. 당분간 도시 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야 벌어질 테지만 존폐의 위기는 아니다. 남호성(10 꼬르소 꼬모 바이어)
08 왜 한국 사람들은 유독 르메르에 열광할까?
2018 F/W 르메르 컬렉션이 파리에서 열린 날, 르메르의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에선 실시간으로 쇼를 중계했다. 접속자가 많아 연결이 끊겼다 다시 이어지기를 여러 번, 라이브 창에는 “끊겼어요”, “저도요” 같은 한국어가 지속적으로 등장했다. 서버가 안정을 찾자 “역시 이번에도” 같은 한국어 찬사가 이어졌다. 발렌시아가를 비롯한 여러 브랜드의 라이브 쇼에 접속했지만 이렇게 한국인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적은 없다. 이 화젯거리를 친구들 사이에 던졌다. 곧 흥미로운 의견이 돌아왔다. 요즘 한국 사람들이 열광하는 무드에는 한국의 전통 문화가 녹아 있다는 것, 그래서 필연적으로 끌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호가 확실한 사람들은 각각 이런 쪽에 끌린다. 요란하고 빈티지한 뎀나 바잘리아 파와 고상하고 차분한 피비 필로 파. 르메르는 당연히 후자다. 튀지 않는 색깔과 간결하면서도 우아한 분위기 때문에. 공교롭게도 한국의 전통 문화와 어딘지 닿아 있다. 특히 르메르의 핏이 한복의 실루엣과 비슷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몸매를 드러내지 않는 실루엣, 저고리를 닮은 소매의 곡선, 인위적이지 않은 색깔. 게다가 신발의 생김새는 검정 고무신과 무척이나 비슷하다. 한국의 정서를 르메르에서 포착할 수 있다는 것. 그러고 보니 그럴듯하다. 안주현(<지큐> 패션 에디터)
09 발렌시아가의 트리플-S는 편할까?
좀 무겁긴 한데, 닥터 마틴 신발을 무리 없이 신을 수 있다면 큰 문제는 아니다. 운동화 안에 발을 넣으면 전체적으로 폭 감싸는 느낌이 들어 좋다. 심지어 신는 순간 키가 5센티미터 정도 커진다! 다만 걸음걸이가 약간 달라진다. 밑창이 워낙 넓어서 걸을 때 왼발과 오른발이 자꾸 부딪친다. 보폭을 옆으로 넓혀 걸어야 한다. 가격 대비 성능을 따진다면 굳이 살 이유가 없지만 이건 발렌시아가다. 그게 이 신발을 가진 모든 이의 항변이겠지. 이태균(모델)
10 버버리에 피비 필로가 합류할까? 그렇다면 그려볼 수 있는 버버리의 미래는?
셀린이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공표했다. 이에 못지않은 파급력을 지닌 소문이 들린다. 바로 피비 필로의 버버리행. 이 계약이 성사되면 분명 패션계의 판도가 뒤집힐 것이다. 가설을 조금 더 펼쳐볼까? 피비 필로의 버버리는 조금 더 현실적이고 정직한 방식의 옷 입기를 제안할 것이다. 버버리의 단단한 전통성에 건축적인 깨끗함과 우아함을 불어넣을 것이다. 그녀가 셀린을 통해 보여준 것처럼. <뉴욕 타임즈>의 기사에 따르면 셀린의 평균 연매출은 7억 유로를 웃돈다. 피비 필로의 섬세하고 간결한 가공을 거친 버버리의 트렌치코트를 상상해보자. 어쩌면 그녀는 트렌치코트 하나로 그 숫자를 달성할 수 있을지 모른다. 연시우(콘텐츠 기획자)
11 지난 1월, <032c>가 피렌체에서 레디-투-웨어 컬렉션을 선보였다. 본격적으로 옷을 만들어보겠단 뜻이다. <032c> 크루의 전방위적인 활동, 그들의 행보가 잡지의 미래일까?
<032c>는 지난해 머치(merch: 머천다이즈의 준말로, 어떤 브랜드가 특정한 시간과 공간을 정해 한정적으로 제작한 물건을 파는 것) 열풍의 선두에 있기도 했고, 최근엔 본격적인 레디-투-웨어 컬렉션을 론칭했다. 그들은 영역을 지우고, 유연성 있는 태도를 취한다. 성미 급한 밀레니얼 세대들의 취향에 맞게 즉각적으로 행동하기도 한다. 15년이나 된 이 잡지를 단 한 권도 산 적 없어도, 심지어 <032c>가 잡지인 줄 모르는 사람도 그들이 만든 물건을 산다. <032c>는 프린트 매거진이라기보다는 어떤 플랫폼에 가깝다. 프린트 매거진은 이제 그들이 확장한 플랫폼 중 일부가 됐다. 하지만 <032c>의 패션 비즈니스가 정당성을 갖는 이유는 프린트 매거진의 퀄리티가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브루탈리즘 건축물과 프랭크 오션을 동시에 다루는 잡지의 내공 같은 것. 전통적 잡지가 정신 승리를 하고 앉아 있을 시간은 없다. 영역을 확장하고 플랫폼을 통해 프랜차이즈화해야 한다. <032c>가 정답이 될 수는 없으며, 성향과 정체성에 맞는 활로를 각자 찾아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역시 프린트 매거진의 퀄리티다. 고동휘(<에스콰이어> 패션 디렉터)
12 슈프림은 정말 끝났나? 슈프림을 사는 사람들 중 브랜드의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는 이가 몇이나 될까?
스케이트보드 문화를 흥미롭게 재생산하고, 기존 패션을 통쾌하게 비틀던 매력은 퇴색한 지 오래. 남은 건 배타적인 태도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비싼 리세일 가격이다. 고객의 성격 또한 달라졌다. 대부분이 빨간 슈프림 박스 로고가 박힌 물건을 소유하고 싶어 할 뿐이다. 루이 비통과의 협업 이후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슈프림X아무개’는 더 이상 마니아적 물건이 아닌, 명품의 이미지를 입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슈프림을 알고, 무조건 좋은 줄 안다. 그야말로 맹목적인 기세다. ‘나만 알고 싶은 브랜드’로 슈프림을 지지하던 많은 사람이 그 난리가 보기 싫어 돌아섰다. 그들은 대안을 찾았을까? 신인 디자이너 키코 코스타디노브가 이끄는 아픽스 웍스나 ‘영국의 슈프림’으로 떠오른 팔라스 등이 물망에 오를 만하지만 그 자리를 채우기엔 한 끗이 모자란다. 안주현(<지큐> 패션 에디터)
13 1990년대 감성의 대세는 언제까지 지속될까?
1990년대에 나는 10대였다. 뜨겁고 여렸던 시절. 그리고 지금, 한창 나의 세대가 문화를 이끄는 중심에 있다. 아미의 알록달록한 옷과 앳되고 해맑은 광고 캠페인, ‘버버리 체크’를 한껏 살린 고샤 루브친스키와 버버리 협업 컬렉션, 텔파 같은 브랜드의 스포티한 옷을 보면서 향수에 젖는다. 그냥 반갑다. 한동안 이러한 흐름은 계속될 거라고 본다. 똘똘한 다음 세대가 “이제 그런 건 잊어버려요”라며 충격적인 걸 내놓기 전까지는. 김형식(사진가)
14 BTS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들의 패션도 인기에 한몫하는 걸까?
예상하건대, 방탄소년단은 훗날 ‘SNS 세대의 속성에 관한 연구’ 같은 논문의 사례로 사용될 거다. 그들은 지난해 빌보드 ‘톱 소셜 아티스트’상을 받으며 저스틴 비버를 누른 아티스트로 (저스틴 비버를 아는) 전 세계 곳곳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까지 접수하며 인기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BTS는 트위터 팔로워만 1천만 명이 넘는다. 그야말로 군대와 같은 ‘팬 아미’다. 자, 이제 ‘BTS의 인기와 패션의 상관관계’를 ‘SNS에서의 인기와 패션의 관계’로 치환해보자. 답은 나왔다. BTS의 인터뷰에서 패션에 관한 질문은 빠지지 않는다. 그들은 늘 “패션은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이라는 따분한 대답을 내놓는다. 실제로 그들의 패션은 다른 아이돌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들에겐 ‘아미’가 있다. 그것도 전 세계에 걸쳐. 최근 라프 시몬스의 캘빈클라인 컬렉션을 입고 미국 <보그>와 패션 화보를 찍은 BTS. 그들이 패션에 관심이 없더라도, 이젠 패션계가 그들을 가만두지 않을 거다. 김민정(프리랜스 에디터)
15 존 갈리아노가 본격적으로 디렉팅한 메종 마르지엘라의 남성 컬렉션, 한국 남자에게도 통할까?
존 갈리아노가 지난 1월 공개한 맨즈 컬렉션은 메종 마르지엘라 남성복의 방향을 밝히는 일종의 선언문이었다. 투명한 비닐을 덧씌운 트렌치코트와 솔기를 거칠게 마감한 재킷, 니트를 오려 붙인 듯한 더플 코트, PVC 모자를 쓰고 런웨이로 걸어 나오는 모델들…. 갈리아노는 마르지엘라의 상징적인 스타일에 드라마틱한 장치를 결합해 브랜드의 경계와 가능성을 확장시켰고, 프레스와 바이어 역시 상당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렇다면 이 새로운 남성복이 한국에서도 인기를 얻을 수 있을까? 그건 좀 더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지금, 특히 한국의 유행은 즉각적인 확산과 소비에 편중해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팬덤을 거느린 소수 디자이너와 브랜드, 스트리트 감성을 입힌 티셔츠와 스니커즈, 이런 경향을 더욱 강화하는 연예인과 아이돌. 어떻게 보면 요즘 인기 있는 스타일이란 ‘좋아요’를 많이 받을 수 있는 패션에 더 가깝다. 메종 마르지엘라는 이런 흐름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고. 그럼에도 눈여겨볼 만한 부분은 분명히 있다. 갈리아노는 쿠튀르적인 컬렉션 가운데 잘 팔릴 만한 아이템을 교묘하게 배치했다. 셔츠처럼 스타일링할 수 있는 나일론 스포츠 재킷, 오버사이즈 재킷과 패딩 점퍼는 컬렉션에 동시대적인 생동감을 더한다. 게다가 새로 선보인 SMS 스니커즈는 브랜드의 ‘캐시카우’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을 만큼 요즘식이다. 유행에 민감한 소비자를 끌어들일 만한 신선함은 충분히 갖추고 있는 셈이다. 존 갈리아노는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디자이너다. 메종 마르지엘라의 오랜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면서 브랜드를 좀 더 참신하게 만드는 방법을, 그는 확실히 알고 있다. 윤웅희(<지큐> 패션 에디터)
16 셰인 올리버가 선보인 첫 번째 헬무트 랭, 과격하고 다소 난해한 이 감성이 한국 시장에 통할까?
셰인 올리버는 후드 바이 에어 컬렉션을 잠정 중단할 정도로 헬무트 랭 컬렉션에 집중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의 헬무트 랭은 제법 훌륭하다. 셰인 올리버는 본인의 급진적인 색을 고집하기보단 거장이 이룩한 디자인을 재해석하는 길을 택했다. 거기에 ‘리에디션’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컬렉션에선 펑크한 본디지, 헬무트 랭이 편애한 군복의 요소를 과격하게 섞었지만 실제 매장에 진열된 옷을 보면 그보다 차분하다. 특히 손목을 접어 올린 데님 트러커 재킷이나 ‘COWBOY’ 프린트를 넣은 반소매 티셔츠, 카니예 웨스트가 입어 화제가 된 후드 파카는 한국에서도 승산이 있다. 홍석우(패션 칼럼니스트)
27 구찌만의 발랄한 오리엔탈리즘, 여전히 유효한가?
모든 규칙을 깨부수는 ‘르네상스 맨’의 등장은 독실한 기독교인에게도 뱀 무늬 티셔츠를 입힐 만큼 파격적이었다. 벌써 네 번째 해를 맞는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구찌, 그는 여전히 혼란 속에서 체계적인 장식성과 화려함으로 우리를 압도한다. ‘시즌과 시즌을 구별하기 어려운’, ‘시즌을 뛰어넘는 정체성을 지닌’으로 양분된 평가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그동안 아이템의 카테고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모든 면에서 ‘미켈레의 구찌’라는 정체성을 뿜어낸다. 그런 관점에서 구찌는 오랫동안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구찌의 잭팟이자 히피의 아들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컬렉션은 새롭지 않더라도 즐겁고 유쾌하다. 안나 윈투어의 말대로 잠시 잊고 있었던 옷 입기의 즐거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지 않았던가? 게다가 톰 포드의 구찌를 떠올리지 않게 할 사람이 미켈레 말고 또 있겠어? 연시우(콘텐츠 기획자)
- 에디터
- 안주현
- 포토그래퍼
- 이현석, Gettyimages / Imazi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