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시얼샤는 시얼샤다

2018.03.30이예지

시얼샤 로넌과 ‘레이디 버드’는 닮았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부른다.

“시알샤가 아니라 시얼샤고, 씨얼샤가 아니라 시얼샤고, 시엘샤가 아니라 시얼샤예요. 참 쉽죠?” 미국 SNL에 출연한 시얼샤 로넌의 모놀로그다. 시얼샤 로넌은 아역 시절부터 지금까지 15년간 자신의 이름을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 설명해왔다. Saoirse, 아일랜드어로 ‘자유’를 뜻하는 이름을 가진 그는 설시, 세올스, 셸리, 온갖 발음으로 불리지만 예명을 사용하는 대신 매번 틀린 발음을 고쳐주는 걸 택했다. 이름이 어떤 직업보다 중요한 배우로서 용기 있는 일이다. 아일랜드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더블린 출신 시얼샤는 아역 시절부터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면서 아이리시인 자신의 정체성을 잊지 않았고, <브루클린>에서는 아일랜드 이민자를 연기하며(아마도 그 자신도 역시 거쳤을) 고향의 의미를 탐색했다. 하지만 그가 아이리시라는 사실보다 중요한 건 그가 어떻게 불리길 원하느냐다. 그가 스펠 발음기호와는 무관하게 ‘시얼샤’라고 불리길 원했기에, 그는 시얼샤다.

스스로에게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을 붙인 <레이디 버드>에 시얼샤 아닌 다른 배우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는 까닭은 한 줄로 정리된다. 시얼샤와 레이디 버드 모두 ‘나는 나’라는 자족적인 명제를 믿는 인물이다. 크리스틴이라는 이름, 미국 서부 지방, 낙태 교육을 시키는 가톨릭 학교, 가난, 모든 것이 지긋지긋한 레이디 버드는 자신의 얼굴에 새의 몸을 합성하며 뉴욕으로 훌쩍 떠나길 꿈꾼다. 붉게 물들인 부스스한 단발에 여드름이 솟은 얼굴, 펑퍼짐한 교복을 입은 그는 자신의 삶이 특별해지길 바라면서도 동시에 그게 얼마나 괴짜 같든 혹은 부족해 보이든 자신의 모습으로 존중받길 바란다. “난 단지 네가 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모습이었으면 하는 것뿐이란다”는 엄마의 충고에 “지금이 가장 최선의 모습이라면요?”라고 되묻는 그는 남들의 기대와 시선에 자신을 구겨 넣을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전 데이트 안 해요. 관심 없어요”라고 딱 잘라 말한 <엘런 디제너러스쇼>의 모습은 시얼샤의 인상적인 두 번째 장면이다. 단 한 번의 열애설도 난 적 없는 그가 이 쇼에서 한 ‘이상형 월드컵’ 영상 클립은 거의 전설적인 코미디로 남았다. “해리 스타일스는 <덩케르크>에서 잘했지만 어떤 사람인지 몰라요” 내지는 “티모시와는 플라토닉한 동료로 지낼 수 있을 것 같네요”라며 번번이 동문서답을 하다 “대니엘 래드클리프 말고 해리 포터로 할게요”라고 단호히 말해 모두를 웃기고 만다. 시얼샤는 남들이 원하는 반응을 해주지 않는다. 그런데, 이게 웃긴가? 남들이 다 하는 연애, 이성에게 호감 보이기, 넘겨짚기, 그런 종류의 관습에 동참하지 않는 것이?

어쨌든 그런 건 시얼샤 로넌의 인생에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시얼샤는 쉬지 않고 다작 하며, 메리 스튜어트 여왕으로 분한 차기작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으로 내년까지 3년 연속 오스카 후보를 노리는 배우다. 주류 영화에서 여성의 시선은 빈번히 배제되기 마련이고 창백한 금발과 옅은 푸른색 눈을 가진 외모라면 더더욱 대상화되기 쉽지만, 시얼샤는 <어톤먼트>의 ‘브라이오니’ 시절부터 지금까지 자신만의 시각과 관점으로 세계를 직조해내는 역할을 맡았다. <러블리 본즈>에선 강간 살인 피해자를 연기하면서도 가련히 침묵을 지키는 망자로 소거되지 않고 자신과 남은 이들의 고통을 생생한 시각으로 체험하게 했고, <한나>의 ‘소녀 살인병기’ 같은 역할에도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캐릭터로 타자화되지 않고 세상을 처음 만난 사람의 인지와 지각을 표현하는 데 집중한다. 소녀는 스스로 이름을 붙이지만, 고독한 세계에 머물지 않는다. 아일랜드에서 <브루클린>으로 떠나며, <레이디 버드>에서 자신이 원하는 이름에 크리스틴이란 이름을 포개며 성장한다. 시얼샤는 이름처럼 자유롭다.

 

3번의 오스카 노미네이트

1st
“네, 봤어요. 내 두 눈으로 똑똑히요.”
<어톤먼트>의 브라이오니

시얼샤의 첫인상으로 각인된 <어톤먼트>는 어린 브라이오니의 두 눈을 통해 본 세상에 대한 이야기다. 희곡과 공상을 좋아하는 소녀는 언니와 연인인 남자의 사이를 오해해 그들의 삶을 파국으로 몰고 간다. 이 강렬한 역할은 ‘그때 그 얄미운 브라이오니’로 불리며 지금까지도 시얼샤를 따라다니지만, 단순한 악역으로만 보긴 아깝다. 소녀의 상상은 세계를 빚어냈고, 잘못된 세계를 속죄하기 위해 소설이라는 평행 우주를 만든다. <어톤먼트>는 통째로 열세 살 브라이오니의 세계인 것이다.

 

2nd
“잊고 있었네요, 이곳이 어떤 곳인지.”
<브루클린>의 에일리스

아역 출신인 시얼샤가 본격적인 성인 연기를 시작한 <브루클린>은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가’를 탐구하는 과도기의 영화다. 아일랜드를 떠나와 미국 브루클린에 막 정착한 이민자 에일리스는 이방인으로서 세계를 본다. 고향과 새로운 곳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만 하는 순간을 맞았을 때,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물리적으로 속한 곳이 아닌 자신의 마음이 가리킨 곳이다. 에일리스가 스스로 있을 곳을 택하며 정체성을 찾았듯, 시얼샤는 <브루클린>으로 유년기와 작별하고 성인 연기자로 발돋움했다.

 

3rd
“레이디 버드예요. 내가 나에게 준 이름이죠.”
<레이디 버드>의 레이디 버드

레이디 버드는 에일리스보다 더 첨예하게 자신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게 응답한다. 어려운 가정형편보다 뉴욕으로 가고 싶은 욕망이 우선이고, 자신의 첫경험에 남자친구도 처음이길 원하고, 좀 이상한 애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남이 날 어떻게 보는지보다 내가 날 어떻게 보는지가 중요하다. 그레타 거윅 감독은 자전적인 영화이자 보편적인 여성 성장 영화에 시얼샤가 적임자란 걸 알았고, 시얼샤는 영화 전체에 생기를 불어넣으며 소품으로 취급되기 쉬운 여성 청소년의 성장 영화로 당당히 오스카 후보에 올랐다.

    에디터
    이예지
    일러스트레이터
    고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