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지금 주목해야 할 신인 남자 배우는?

2018.05.31GQ

정해인, 양세종, 우도환, 장기용, 김희섭, 김정현. 제2의 누구도 아닌 새로운 남자들.

한국의 젊은 남자 배우는 하나의 기준 아래 세 부류로 분리할 수 있다. 군대를 다녀왔거나, 다녀오지 않았거나, 군대에 있는 남자 배우. 이민호, 김수현, 주원, 지창욱, 임시완, 강하늘, 이준 등이 바로 현재 군대에 있는 배우들이며 이종석, 고경표, 장근석 등이 군 입대를 앞두고 있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군대 말고도 아주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바로 최근 몇 년간 한국 영화와 드라마계에서 역병처럼 퍼져 나간 20대 남자 배우 기근설을 딛고 주연급으로 활약한 배우였다는 사실이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나이인 이들이 병역의 의무를 다하는 동안, 이들의 눈에 띄는 ‘난 자리’에 들어올 인물이 필요해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특히 촬영에서 개봉까지 비교적 긴 시간이 소요되는 영화보다는 즉각적으로 주연급 남자 배우 수요가 필요한 드라마에서 남자 신인 배우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하면서, 이 기회를 잡은 준비된 몇몇 배우는 화려한 도약의 시간을 맞이했다. 그렇게 대중들은 최근 1~2년 사이에 상당히 많은 수의 남자 신인 배우들과 화면을 통해 안면을 트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이 기회를 잡은 배우들의 이름을 말할 때, 정해인을 결코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를 통해 소위 ‘국민 연하남’으로 호명된 정해인의 매력은 뻔한 연하남의 그것 같으면서도 분명 독특한 지점이 있다. 극중 나이와 같은 서른한 살의 정해인의 주무기는 20대 초중반의 젊은 나이에서 오는 파릇한 청춘의 기세가 아니다. 큰 키를 비롯한 외모는 매력요소가 분명하지만 정해인만 가진 매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정해인을 보면서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의 맨 앞에는 반듯함이나 깨끗함, 무해함이 있다. 이전의 많은 연하남 캐릭터가 무기로 내세운 소년성과 결합하지 않고 성인 남성 그대로의 매력과 공존한다. 그에게서 소년의 말간 얼굴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성인 남성으로서, 일반 로맨스의 공식대로 여성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든든하게 곁에 머물러주는 인물로 존재하기 때문에 여성들은 매력을 느낀다. 무해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위안이 되어주다가 가끔씩 남자로서나 성인으로서의 매력을 보여주던 과거의 연하남에서 한발 나아간 모습이다. 그러니까 동생보다는 남자. 언뜻 연결고리가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서준희는 <태양의 후예>의 유시진의 또 다른 버전이며 정해인은 송중기라는 배우가 가진 매력과 조응하는 배우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라는 제목이 송중기가 상대 배우인 송혜교를 지칭하는 표현에서 출발한 것은 우연만은 아닌 것이다. 접근하기도 어려울 만큼 조각 같은 미남도 아니고, 강렬한 남성성을 과시하지도 않으며, 거친 세상에서 상처받은 슬픈 영혼도 악동도 아닌, 성인 여성에게 어필하는 단정한 매력을 가진 성인 남성. 하루가 멀다 하고 데이트 폭력과 몰래 카메라 기사가 쏟아지는 시대에 이런 캐릭터가 보여주는 무해함은 지극히 현실적인 판타지다. 나를 해치지도 괴롭게 하지도 않고, 나를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는, 있는 그대로 ‘좋은’ 남자친구의 모델이 되는 것만으로 정해인은 2018년 상반기 가장 뜨거운 이름으로 떠올랐다.

올해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남자 신인상을 가져간 배우는 양세종이다. 사실 새로운 연하남의 캐릭터는 정해인의 서준희보다 <사랑의 온도>에서 양세종이 연기한 온정선 셰프가 먼저다. 연인을 언제나 존칭으로 부르는 부드럽고 오래 참을 줄 아는 남자 온정선은 양세종을 통해 자신의 일에 자부심이 강하고 심지 굳은 남자의 얼굴까지 갖게 됐다. 무표정할 때와 웃을 때의 온도차가 상당한 얼굴과,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연기력까지 갖춘 배우로 양세종은 빠르게 존재감을 가진 배우가 될 수 있었다. 양세종이 <사임당 빛의 일기>에서 송승헌의 아역을 연기한 뒤, <듀얼>에서 1인 2역이라는 원초적인 방식으로 연기 스펙트럼을 증명하고, <사랑의 온도>를 통해 대중의 주목을 받는 과정은 신인 남자 배우가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가는 경로를 압축해놓은 듯이 보인다. 보통 캐릭터로 먼저 인기를 얻는 신인들이 필연적으로 지나는 스펙트럼 넓히기의 과정을 뛰어넘고, 단박에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의 주연급 배우로 도약한 것이다.

우도환은 2016년에 데뷔한 뒤 단 1년 만에 케이블과 지상파 드라마의 주연급으로 도약한 배우다. 거의 대사가 없는 역할이었음에도 영화 <마스터>를 본 사람이라면 잊지 못할 정도의 존재감을 보여준 우도환의 장점은 단연 강렬한 인상이다. 순함, 무해함, 부드러움 등의 이미지가 선호되는 시대에 정반대 지점에 위치한 그의 외양과 이미지는, 과거에는 레드오션이었으나 이제는 블루오션이 된 나쁜 남자 분야의 대표주자가 되기에 충분하다. “눈빛만으로 여자의 마음을 훔치고 마는 치명적 탕아. 끊임없이 사건 사고를 벌이는 스캔들 메이커”라는 <위대한 유혹자>에서의 캐릭터 설명은, 우도환이 가진 매력의 많은 부분을 설명한다. 물론 시대가 원하는 드라마에서 역행하던 <위대한 유혹자>는 낮은 시청률로 종영했지만, 우도환은 자신의 스타성을 증명할 수 있었다.

언뜻 김우빈의 신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장기용 역시 악역으로 먼저 자신의 존재감을 알린 배우다. 공교롭게도 올해 상반기 드라마에서 가장 문제적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 <나의 아저씨>의 폭력 장면으로 이름을 정확히 각인시켰지만, 곧 <이리와 안아줘>에서 로맨스 연기로 다른 스펙트럼의 연기를 보여줄 수 있게 됐다. 독립영화의 주연, 상업 영화에서 인상적인 순간을 남긴 조연 배우로 성실한 필모그래피를 쌓아오다 <작은 신의 아이들>에서 강지환, 김옥빈과 함께 호흡을 맞춘 심희섭이나, 영화 <초인>으로 2015년 독립영화의 얼굴이 된 뒤 이후 2년간 크고 작은 작품들에서 주조연을 맡으며 흔한 이름을 자신만의 이름으로 가져가고 있는 김정현도 기회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 배우들이다.

세대 교체처럼 자연스러운 주연급 남자 배우의 등장 과정에서 흥미로운 것은 비슷한 캐릭터를 반복해서 만들어내는 식으로 진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들은 제2의 누구로 호명되지 않고 처음부터 자기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이전 세대보다 더 많은 미디어가 앞다투어 주목해주었으며 다양한 채널의 더 많은 작품에서 기회를 연이어 얻을 수 있었다. 단역이든 조연이든 주연이든, 대부분의 작품에서 절대적으로 남자 캐릭터가 많이 등장하는 상황에서 가능성을 가진 남자 배우들이 기회를 얻고 두각을 보이는 것은 사실 특별한 일이 아니다. 군 입대를 택한 주연급 배우가 많아지면서 그 존재감을 대체하는 과정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기에 지금의 남성 신인 배우 춘추전국시대가 특별해 보일 뿐, 반드시 이 흐름이 아니더라도 이들이 언젠가 기회를 얻었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 모든 과정에서 열외로 존재하는 것은 바로 여자 배우들이다. 오히려 앞서 언급한 남자 배우들보다는 <아가씨>의 김태리와 <박열>의 최희서가 전통적인 의미에서 처음부터 스타로 단박에 혜성처럼 떠오른 경우에 가깝다. 이는 역으로 겨우 찾아온 기회에서 놀라운 수준의 연기를 보여주어 강렬하게 등장하는 방식이 아니고서는 여성 신인 배우가 두각을 드러내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여성 배우가 단역에서 조역, 주연까지 가는 과정을 속성 코스로 완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근본적으로 그만큼의 캐릭터, 자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정해인의 상대역이 연기 경력만 20년이 되어가는 손예진이고, <위대한 유혹자>에서 우도환의 상대역이 연기 경력이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은 레드벨벳의 조이인 것은 상징적으로 여성 배우가 기회를 얻는 방식이 얼마나 단조로운지를 보여준다. 군대로 인해 반복되는 20대 남자 배우 기근이라는 돌림노래는, 여성 배우 전반에게는 팔자 좋은 풍년가로 들릴 수밖에 없다. 지금이 남자 신인 배우의 춘추전국시대라면, 여성 배우에게는 어떤 시대인가? 여성 배우들이 중심이 되는 시대를 가진 적이 있는가? 갑작스레 마주한 새로운 젊은 남자들의 해사한 매력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동시에 이런 질문까지 던질 수 있어야만,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한” 시대정신에 발맞추는 일이 되지 않을까. 글 / 윤이나(대중문화평론가)

    에디터
    손기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