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디렉션을 벗어난 제인 말리크는 매일 더 ‘쿨’해지고 싶다.
뉴욕의 금요일 밤. 제인 말리크가 담배를 편하게 피울 수 있는 장소는 딱 두 군데다. 그를 쳐다보는 사람이 없고, 갈수록 가혹해지는 시의 금연법에 걸리는 않는 곳이어야 하니까. 첫 번째 장소는 소호에 있는 제인 말리크의 아파트다. 멍하니 있거나,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혹은 ‘약초와 함께’ 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두 번째는 ‘메리 A. 웨일런’이라는 장소다. 브루클린의 레드훅 해안에 정박한 52미터 길이의 옛 유조선을 복원해 비영리 아지트로 개조한 공간이다. 원래 저녁 6시 이후에는 영업을 하지 않지만, 이곳 대표이자 다부진 금발의 선박 보존 운동가인 캐롤라이나가 늦게까지 문을 열어두기로 했다. 사람은 별로 없고 플라스틱 의자 몇 개가 놓여 있었다. 그 곁에는 사실상 거대한 재떨이 구실을 하고 있는 물이 부드럽게 찰랑거렸다.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해가 지면서 갑판 위 기온이 뚝뚝 떨어지는데 제인 말리크는 달랑 라이터와 백팩, 그리고 아이폰만 가지고 나왔다. 재킷도 걸치지 않았다. 차콜색 스키니 진에 구제 느낌의 핑크 플로이드 티셔츠를 걸치고, 머리에 새로 한 꽃 모양 타투 위로 핑크색 비니만 덮은 단출한 차림이었다. 꿈을 꾸고 있는 듯한 이 남자에게 집을 나서기 전 날씨를 확인해보라고 잔소리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몇 번이나 담요를 건네려 했지만 이를 달달 떨면서도 끝내 거절했다. 그러고는 맥주를 꿀꺽꿀꺽 마시더니 가볍게 트림을 하면서 고집을 피웠다. “전 아무렇지도 않아요.”
보다 못한 캐롤라이나가 좀 더 따뜻한 주방으로 안내했다. “담배 한 대 피우고 시작해도 될까요?” 제인이 배의 저쪽을 가리키며 허락이 필요하다는 듯 물었다. 프렌치 브레이드로 머리를 땋은 어시스턴트 타린이 있는 쪽이다. 이 젊은 여성은 종잡을 수 없기로 유명한 제인 말리크의 스케줄을 하루하루 계획하고 관리하는 사람이라기보다 고등학교 축구 선수 같아 보인다. 제인의 짐을 보관하고 있는 그녀는 20분마다 한 개비씩 담배를 꺼내주고 있었다. 그런데 캐롤라이나가 제인에게 밖에 나가서 피우지 않아도 된다고 흔쾌히 말했다. 자기한테 말보로 한 개비만 주고 사진 한 장 찍게 해주면 다들 갑판에서 흡연해도 좋다는 것이다. 기사가 나오기 전까지는 아무 데도 올리지 않겠다고 약속하면서. “어… 그래요?” 캐롤라이나가 자기를 향해 묻는 건지, 응답을 해야 하는 상황인지도 정말로 몰랐다는 듯한 말투로 제인이 대꾸했다. 제인 말리크가 존재하는 이유는 그런 초연함 때문인 것 같다. 파괴적인 잠재력을 가지는 동시에 자기가 내키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 또한 주변 환경을 그가 좋아하고 편한 상태로 맞추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제인 말리크의 피터팬 같은 성격을 미워할 사람은 아마 드물 것이다.
제인은 1970년대풍의 선상 주방에 놓인 테이블에 앉았다. 이곳은 갑판 위보다 온도가 10도쯤 높고 분위기도 아늑하다. 제인은 마음이 편안해진 듯 어깨를 펴고 찡그렸던 눈썹도 폈다. 맥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그는 순식간에 눈에 띄게 행복해진 것 같았다. “고마워요.” 뒤에서 문을 걸어 잠그는 캐롤라이나 쪽을 향해 진심을 담아 조용히 인사를 건넸다. “두어 번 끊으려고는 해봤죠. 그런데 그냥 담배가 좋은 걸 뭐, 어떡하겠어요. 제인의 삶에는 중대한 난제가 하나 있다. 그는 체질적으로 스타가 될 수 없는 사람일 수도 있다.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그가 터놓았다. “수많은 사람이 저를 지켜보는 상황에서 일을 잘 못 해요. 그리고 ‘스타’라고 하면…. 모두가 기대하는 어떤 캐릭터가 있잖아요. 휘어잡는 힘이 있다거나, 굉장히 오만하거나 자신감이 넘친다거나 하는. 저는 그런 사람이 못 돼요. 그러니까 스타가 되고 싶지 않은 거죠.” 제인은 가수 프린스나 1990년대 스케이트 펑크 신의 어떤 컬트적 인물을 선망하는 듯했는데, 그만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그린 궤적에 갇혀버렸다.
10년 전이라면 제인은 원 디렉션 같은 밴드의 ‘선택받은 멤버’가 될 수 없었을 테다. 선택받은 멤버는 보이 밴드를 졸업하고 솔로로 활동하면서 성인들에게 어필한다. 밴드의 멤버를 넘는 과정을 밟는 것이다. 최근까지도 선택받은 멤버가 누구인지는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춤을 제일 잘 추는 데다가 대부분의 소녀들이 집으로 데려가 부모님께 소개하고 싶어 할 것이 분명한 멤버. 제인은 기존 틀에 맞는 인물이 결코 못 된다. 2010년 영국의 오디션 프로그램 <더 엑스 팩터>에서 원 디렉션이 결성된 그날부터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열심인 해리 스타일스와 리엄 페인의 뒤에서 들러리 역을 맡았다. 그의 에너지와 춤 동작은 그때부터 줄어들었다. 조용한 멤버, 환상을 버린 멤버처럼 비쳤다.
하지만 5년 전쯤부터 젊은 팝 스타가 다소 날을 세우는 것이 용납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대중화된 소셜 미디어 덕분일까? 진짜든 꾸며낸 것이든 뮤지션들에게 진정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나날이 강해지고 있다. 더 이상 그들이 유순하고 무결한 로봇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혈기 왕성하면서 불안정하고, 반영웅적인 면모를 보여줄 것을 요구한다. 위켄드는 코카인에 빠진 상태를 정교하게 암호화한 노래로 1위를 차지했고, 뒤이어 코카인을 하는 장면을 노골적으로 묘사한 노래로 또 한 번 정상에 올랐다. 라나 델 레이 노래는 마약으로 인한 죽음을 동경하는 것이 중심축을 이룬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최근 앨범은 자신이 ‘정말로’ 악랄하다는 것을 보이려 갖은 애를 쓴다. 셀레나 고메즈는 한 뮤직비디오에서 <처음 만나는 자유>의 여주인공 같은 연기를 하면서 병원 팔찌를 차고 흔드는 등 마음속 악령을 표현한다. 얼굴에 새긴 타투가 ‘빌보드 차트 핫 100’에 들기 위한 기본 조건이기도 하다. 티 없이 깨끗한 이미지의 시대는 끝났다.
아티스트들은 게임에 빠진 듯하다. 그리고 게임을 하는 아티스트에 대한 대중의 기대는 분명하다. 가벼운 마약 복용이나 정신 질환은 얼마든지 용인하지만, 그걸 소재로 귀에 착착 감기는 노래를 만들고, 토크쇼 진행자의 농담을 거리낌 없이 받아치길 바란다. 대표적인 ‘문제아’ 저스틴 비버조차도 담당 목사의 전화 한 통이면 얌전해지고, 힙합 댄스를 춰 달라면 춰야 하는 노릇이다.
반면 제인은 팝 아이돌의 아이콘이면서 그 이면에 지친 마음과 예측할 수 없는 자아가 버티고 있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게임의 규칙에 따르기를 거부하는 아이돌이다. 코첼라에 간 누군가의 인스타그램에서 제인이 유명인들과 함께 ‘치즈’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일은 없을 것이다. 2년 전 솔로 데뷔 앨범
새 싱글 발매에 맞춰 공개된 ‘비하인드’ 영상도 진짜 촬영장의 뒷이야기를 보여준다고 할 수는 없다. 그저 사용하지 않은 장면들에 신곡을 입힌 영상에 불과하다. “카메라맨이 그리 많은 장면을 건지지는 못했나 봐요. 제가 좀 피해 다녔던 것 같기도 하고요.” 선상 주방에서 그가 말했다. 며칠 전 멧 갈라 Met Gala에는 왜 나타나지 않았냐고 묻자 그는 담배 연기를 내뿜다가 캑캑거릴 뻔한다. 제인은 2016년에 딱 한 번 멧 갈라 에 갔는데, 유명인이 되는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것들을 눈앞에서 경험했다. 물론 그가 혐오하는 것들이다. “네, 갔었죠. 근데 ‘어이, 날 좀 잘 봐’ 하는 마음으로 간 건 아니에요. 장난으로 간 거예요. <모탈 컴뱃>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인 잭스처럼 하고서요.” 이어서 말했다. “멧 갈라는 딱히 제가 잘 알지도, 저와 관련 있지도 않아요. 다만 예전 스타일리스트가 ‘참석해보면 정말 좋을 거예요’라고 말하곤 했어요. 아무리 굳건한 사람이라도 떠밀려서 하게 되는 경우는 있기 마련이잖아요. 지금이라면 당연히 안 가겠죠. 엄청나게 비싼 옷을 차려입고, 레드 카펫 위에서 사진을 찍히느니 차라리 집에 앉아서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게 낫죠. 자아도취에 빠져 ‘나를 봐. 정말 멋지지 않아?’ 하는 기분으로 레드 카펫 위를 걷는 일은 저와 맞지 않아요.”
이때 제인 말리크는 갑자기 말을 멈췄다. 그가 2년 동안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한 슈퍼모델 지지 하디드에 대한 디스로 들릴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였을까? 며칠 전 그녀는 엄청나게 비싼 옷을 입고 레드 카펫 위에서 즐거운 모습으로 사진을 찍었다. 제인 말리크가 말했다. “이해는 해요. 사람들이 그런 데서 즐거움을 얻는다는 걸 이해하죠.” 현장을 취재한 방송을 봤느냐고 묻자 “아니요, 안 봤어요”라고 답하고는 말을 끊었다. “어쨌든 지지 하디드는 그날 밤의 주인공이었더라고요.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같은 드레스를 입었고. 다른 사람들은 그저 십자가만 걸친 정도였다면요.” 연예계에 절친한 친구가 있느냐고 묻자 제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없어요”라고 잘라 말했다. “다른 사람들과 너무 엮여 지내는 걸 원래 좋아하지 않아요. 그냥 저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어요.”
제인은 세 명의 누나와 함께 자랐고(“수적으로 밀렸죠”라고 덧붙였다), 지금도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그래서 화를 잘 내면서도 다정한 엄마 같은 에너지가 늘 주변에 넘친다. 요즘 친밀하게 교류하는 사람들은 그의 친척과 하디드의 가족들이다. 특히 지지의 어머니 욜란다 하디드에 대해서는 “잘 통해요. 정말 엄청 쿨한 분이에요. 염소자리죠. 저랑 별자리도 같아요”라고 말했다. 명성 높은 그 매니저와는 최근 결별했다. 베스트 프렌드는 사촌 동생이란다. “저는 인사이더가 못 돼요. 아웃사이더죠.” 그가 인사이더가 되길 완고히 거부하는 것은 몇 년간 해본 단체 생활에서 얻은 경험 때문이다. 잘 맞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반작용이다. 북쪽의 노동자 도시 브래드퍼드에서 자란 어린 시절, 그에게 노래는 아무런 목표 없이 온 마음을 다해 열정을 쏟은 창의적 활동이었다. 가수가 될 정도로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그가 다닌 공연예술 학교의 합창단 단장이 어느 날 목소리가 좋다며 영국 최고의 보컬 경연 쇼에 나가 보라고 권했다. 오디션 참가를 위해 제인의 엄마는 새벽 4시에 그를 침대에서 끌어냈다. 그리고 다른 참가자처럼 흔한 팝송을 부르는 대신 마리오의 ‘Let Me Love You’를 불렀다.
방송에는 나가지 않았지만, <더 엑스 팩터> 오디션이 끝난 후 심사위원장 사이먼 코웰은 어린 제인을 떠보려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알다시피 요즘은 온갖 온라인 플랫폼이 있잖아요. 그런데 이제까지 왜 아무것도 올리지 않았어요?” 제인이 기억하기로 코웰은 이렇게 물었다. 제인도 어쨌든 그런 유형의 참가자로 보였던 것이다. 자기 방에서 혼자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고, 조용조용하지만 예술적 재능이 있는 10대로. “온라인에 자기 영상을 올리는 사람이 수백만인데 제가 뭘 올린다고 해서 누가 봐줄 거라는 생각을 안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나이에 <더 엑스 팩터>에 나갔죠.” 지금의 그가 말했다. 하지만 변덕이 심한 여느 10대와 다르지 않았던 당시의 제인은 이렇게 답했다. “재미로 해본 거예요. 어떻게 될지 한번 보려고요.”
오디션을 본 날 제인은 솔로 아티스트 부문에 지원했지만 결국 탈락했다. 하지만 이후 탈락자 중 다섯을 모아 보이 밴드가 결성된다. 원 디렉션이다. 영국인들이 ‘비틀 마니아’와 곧잘 비교할 정도로 광적인 팬덤이 형성됐다. 열풍이 얼마나 세차고 거대했던지 전 세계 동시 플래시몹 이벤트가 열리는가 하면, 여섯 자리 액수에 거래되는 책을 쓰는 팬 픽션 작가들이 생겨나기에 이르렀다. 곧이어 제인은 스타 만들기 훈련에 떠밀리듯 들어갔고, 다른 대안을 고려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그는 감당할 수 없는 유명세를 치르게 되었다. 제인이 원 디렉션의 음악이나 다른 멤버들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밴드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제가 원하는 방향과 잘 맞지는 않았어요.” 전반적으로 불필요하게 성실하고, 지나치게 샌님 같은 면이 있었다. 제인은 한창 젊은 나이에 촌스러운 영웅의 모습으로 여기저기 끌려다니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2015년에 원 디렉션에서 탈퇴하자 그는 비로소 전에 할 수 없었던 온갖 것을 하기 시작했다. 머리를 염색하고, 수염을 기르고, 섹스에 대한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새로 만난 집단은 또다시 그를 인형처럼 조종하려 들었다. 방향을 잃은 채 표류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끌려가지 않으려 버티면서 오직 자신의 부름에만 응답하는 것이었다. 5년에 걸쳐 방향을 찾은 그는 이제 다른 사람의 기대에 알레르기를 일으키게 되었다.
솔로로 나선 이후 제인은 자유가 가끔은 독이 된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밴드에 있을 때는 친한 사람이 없었어요. 그냥 아무하고도 안 친했어요. 말하기 껄끄러울 건 없어요. 문제는 확실히 저한테 있으니까요. 제가 사람을 잘 못 믿어요.” 그가 터놓았다. 탈퇴 후 별다른 목적 없이 로스앤젤레스에 가서 사는 동안 업계 사람들과 많이 어울렸다. “프로듀서, 뮤지션, 의상 제작자, 스타일리스트, 매니저…. 그런 사람들요. 정말 미쳤었죠. 파티에 빠져서 맨날 놀러만 다녔어요. 너무 정신없이 살았어요.” 정신을 차리고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 초 그는 로스앤젤레스를 떠나 뉴욕으로 이사했다.
제인은 혼자 열을 내며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는 것을 경계한다. 하지만 ‘파파라치의 값어치’라는 주제에 대해서만큼은 열변을 토했다. 몇 년째 그의 뒤를 밟는 파파라치들은 그가 지지의 아파트에 발을 들일 때마다 타블로이드 언론에 무수히 많은 자료를 제공한다. 덕분에 둘의 관계가 어떤 상태인지 추측성 기사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전에는 파파라치라면 진저리를 치곤 했지만 어느 순간 그들도 쓸모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저를 홍보해주잖아요. 제가 밖으로 나가면 그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요.” 제인은 파파라치를 통해 아무것도 안 하면서 그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조용히 상기시킨다. “열받을 수도 있고, 사생활 침해라고 민감하게 반응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자기한테 득이 되게 이용할 수도 있죠. ‘사진을 찍겠다면 찍으라지, 뭐’라고 생각하는 거죠. 돈 때문에 하는 일이겠지만, 저도 돈 좀 벌어야죠.”
이 말은 제인이 감상적이고 진부한 콘텐츠를 찍어내는 업계를 역겨워한다고 해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고 싶은 욕구까지 포기하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제인 말리크는 ‘쿨’한 언더그라운드와 대중 시장에 어울리는 칼라바시언 Calabasian(최근 젊은 셀러브리티들이 많이 옮겨 가 사는 캘리포니아주의 도시 칼라바사스에서 나온 말) 스타일이 섞인 시대를 표상하는 인물이다. 현재 셀러브리티가 되느냐는 얼마나 존재감이 뛰어난지, 얼마나 대중의 흥미를 끌 수 있느냐에 달렸다. 본인 못지않게 유명한 여자친구와 음울한 눈빛, 그리고 수백만의 팬을 가진 그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제인은 이처럼 셀러브리티가 되는 새로운 방식의 피해자이자 수혜자다. 스타덤에서 도망쳐 나오려다 오히려 더 높은 스타덤에 오르고 있는 셈이다.
얼마 전에는 조금 더 멀리 달아났다. 펜실베이니아주 시골에 있는 농장을 샀다. 근처에 농장을 가지고 있는 욜란다 하디드의 권유에 따른 결정이었다. 농장은 어떠냐고 물었다. “쿨해요.” 펜실베이니아주에 대해 묻자 역시 “쿨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제인은 ‘쿨’이라는 단어를 무척 좋아한다. 어느 정도냐면, 대화를 나누는 동안 43회가 넘게 썼다. 요즘 하디드네 농장에도 들르는 횟수가 잦아지다 보니 제인은 지지 하디드와 공동으로 말도 한 마리 소유하게 됐는데, 이름이 ‘쿨’이다. 이제 막 농장을 꾸리기 시작한 상태지만 체리와 토마토, 오이가 벌써 자라고 있다. 가끔 지지와 가는 날이 겹치면 지지 하디드가 말을, 그러니까 ‘쿨’을 타면 가만히 지켜보곤 한다.
지지와의 관계는 예상했던 만큼 민감한 주제는 아니었다. 둘은 2015년 말에 한 파티에서 처음 만났는데, 바로 며칠 뒤에 제인은 지지가 조 조너스와 헤어졌다는 걸 알았다고 한다. 그는 지지에게 연락해 함께 저녁을 먹자고 했고, 커플이 되었다. 제인의 주장에 따르면 둘의 관계를 둘러싼 가십은 기회주의적으로 구성한 것으로 모두 엉터리라고 한다. 몇 달 전 두 사람의 극적인 결별 발표가 있었지만, 제인이 지지의 아파트를 나서는 장면이나 길에서 지지에게 키스를 하는 사진이 말하듯, 둘은 여전히 가깝게 지내고 있다. 제인은 지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눈빛이 촉촉해지고, 목소리는 경건해진다. 무언가 속죄하는 듯한 마음이 그 말투에서 묻어난다. “지지를 만난 걸 정말로 감사하게 생각해요.” 그리고 “우리는 농장에 가요”, “우리는 말이 있어요”와 같이 ‘우리’가 들어가는 문장을 많이 쓴다. 그는 실제로 지지와 함께 말을 탔을 때를 떠올리며 말했다. “저는 완전히 얼간이 같았고, 지지는 완벽한 프로 같았어요. 여전히 좋은 친구로 지내요. 계속 연락도 하고요. 서로 악감정은 없어요. 우리는 성인이잖아요. 관계에 어떤 딱지를 붙여서 사람들의 기대를 맞춰줄 필요가 없죠.”
제인의 말을 들어보면 지지는 냉철하고, 자칫 공허하거나 부정적인 상태에 빠질 수 있는 그의 성향과는 반대인 사람이다. 지지는 제인이 파티에 열심히 다니던 시기에 마음가짐을 바꾸도록 도와줬다. “그땐 모든 걸 매우 부정적으로 봤어요. 사춘기였던 건지, 호르몬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당시엔 그랬어요. 긍정적인 시각을 갖도록 많이 도와준 게 지지였죠.”
제인 말리크는 솔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성을 빼기로 했다. 이름 하나만 쓴 활동명 ‘제인’은 보이 밴드 시절에 쓴 본명 ‘제인 말리크’보다 명쾌하게 들린다. 성을 뗀 이후 ‘제인’이라는 단어는 업계에서 동사로도 쓰이기 시작했다. ‘제인하다’는 한동안 누군가의 반경 안에 있다가 어느 순간 아무런 설명 없이 ‘휙!’ 사라져버리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제인당하다’는 같이 있던 사람이 인사도 없이 훌쩍 떠나는 모습을 목격한다는 뜻이다. 인터뷰를 하던 선박 주방에서 나와 좀 더 대화를 나눌 셈이었는데, 그는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 묻더니 바로 사라졌다. 고독과 담배 연기가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빨리 가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제인당했다’.
다음 주에 그와 다시 한번 보기로 해서 연락을 끈기 있게 기다렸다. 절대 전화가 오지 않으리란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귀찮은 약속을 과감하게 무시하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자기 파괴와 자기 보호 본능이 동시에 존재하고, 반항심이 뒤섞인 영혼의 제인은 그런 생각을 실천할 배짱이 있는 아티스트다. 자신에게만 몰두하고, 미성숙하다. 프로답지 못한 태도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쿨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약속을 바람 맞았지만 마음이 크게 상하지는 않았다.
- 에디터
- Carrie Battan
- 포토그래퍼
- Sebastian Mader
- 스타일리스트
- Simon Rasmussen
- 그루밍
- Shannon Pezzetta using Tom Ford
- 세트 디자인
- Lauren Nikrooz for The Magnet Agency
- 프로듀스
- Donna Belej at Allswell Produc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