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보다 중요한 건 마음이다. 안다. 하지만 남자들이여, 다른 건 몰라도 아래의 선물만큼은 피하자. 애매한 미소를 돌려받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대용량 외장 하드
20대 초반에 사귄 남자친구는 내 생일을 축하해주겠다고 학교 앞으로 찾아왔다. 그가 쭈뼛거리며 건넨 건 다름 아닌 대용량 외장 하드. 나는 그날 공대생의 참모습을 보았다. “외장 하드가 꼭 필요하긴 했는데 남자친구한테 생일 선물로 받고 싶진 않았어….”란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이다혜(바리스타)
커플 아이템
전 남자친구는 커플 아이템 애호가였다. 생일은 물론, 기념일에도, 기념일이 아닐 때도 항상 커플 아이템만 선물했다. 자신의 것과 똑같은 색과 똑같은 디자인의 티셔츠, 운동화, 가방만 내게 선물했다. 반면 쌍둥이처럼 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 게 창피했던 나는 남자친구를 만나지 않는 날에만 남자친구가 사준 옷을 입을 수 있었다. 안서윤(대학생)
작은 사이즈의 옷
한창 미니멀리즘에 빠져있는 나에게 남자친구는 러플과 레이스, 꽃무늬가 기묘하게 섞여 있는 원피스를 선물했다. 그건 뭐 취향이라고 넘길 수 있었다. 문제는 치수가 작았다는 거다. 누가 봐도 나한테 작은 옷을 선물한 남자친구는 당장 입고 나와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내 몸무게가 40kg쯤 나간다고 생각하는 남자친구에게 차마 작다는 말은 못 하고, 상표도 떼지 않은 채 그대로 옷장에 넣어뒀다. 김지은(보틀숍 운영)
핸드크림과 핫 팩
여덟 살 많은 남자친구를 사귀었을 때다. 처음 맞는 기념일에 그는 로드샵에서 핸드크림과 핫 팩 두 장을 사왔다. 그 순간, “아껴야 잘살지”란 말을 입에 달고 다니면서 막상 롤렉스 시계를 차고 나와 자랑하던 모습이 기억났다. 주변에 쓰는 돈은 아깝고 자기한테만 후한 남자에게 곧 이별을 선물해줬다. 이윤진(공무원)
캐리커처 피규어
살면서 받은 선물 중 가장 황당했던 건 내 얼굴을 본떠 만든 ‘캐리커처 피규어’였다. 내 얼굴도 별로 닮지 않은 피규어를 10만 원이나 주고 주문 제작했단 소리를 듣고 표정 관리하느라 힘들었다. ‘그 돈으로 소고기나 사주지’ 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혜리(취업 준비생)
제모기
생일을 앞두고 남자친구는 선물에 대한 기대를 잔뜩 심어줬다. 기대에 부풀어 선물을 뜯어 보니 제모기가 나오는 게 아닌가. 대낮에 사람이 바글바글한 스타벅스에서 제모기를 들고 있던 심정을 짐작할 수 있나? 털 관리 좀 하란 얘긴가 싶어 내심 자존심도 상했다. 고혜원(직장인)
옥 팔찌
외국인이었던 전 남자 친구는 중국으로 출장을 다녀오던 날, 나에게 우리 할머니도 안 낄 것 같은 옥 팔찌를 선물했다. 생전 처음 만져본 옥 팔찌는 아주 두껍고 무겁고 눈에 띄었다. 그 후로 만날 때마다 “왜 내가 사준 팔찌 안 끼는 거야? 맘에 안 들어?” 하고 묻는 통에 매번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박선영(영상 디자이너)
가장 아끼는 사진
처음 사귄 남자친구와 100일이 되었다. 나는 첫 기념일을 기대하며 부푼 마음으로 남자친구를 위한 향수를 준비했는데 남자친구는 빈손이었다. 며칠 후 늦어서 미안하다며 그가 준 선물은 편지와 자신의 어렸을 적 사진이었다. 성의가 없는 것은 둘째 치고 엄청난 악필이었다. “나의 가장 아끼는 사진을 너에게 선물한다”라는 말에 오만 정이 다 떨어졌고, 얼마 후 나의 첫 연애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이도윤(발레강사)
- 에디터
- 글 / 김윤정(프리랜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