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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음식과 잘 어울리는 일본 술 추천 10

2018.11.12GQ

한동안 다른 술과 즐거웠다. 어느새 또 일본 술이 떠오른 건 계절 때문만은 아니다.

사케와 진
일본은 주류 소비량이나 수입량 등 거의 모든 통계 수치가 아시아에서 가장 앞선다. 일본인들이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시나, 생각이 들다가도 식당에 앉은 손님들이 하나같이 술잔을 잡고 있는 모습을 보면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양으로나 질로나, 일본에 가면 술꾼들에겐 더 즐거운 세상이 펼쳐지는 건 분명하다. 그런데 한동안 떠들썩한 버번 위스키나 내추럴 와인에 밀려 사케와 같은 일본 술은 선택지 아래로 슬쩍 밀렸다. 그러나 그 사이에도 일본 술은 더 단단하게 자리를 다져왔다. 사케는 요즘 한층 더 젊어지고 한뼘 더 고급스러워지고 있다. 고행에 가까운 전통 방식 제조를 유지하는 양조장은 여전히 많지만, 라벨 디자인을 가볍게 바꾼다거나, 파인 다이닝과 양식에 어울리는 맛으로 주파수를 맞추거나, 와인과 같은 음용법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작은 양조장에서 더 비싼 사케를 만드는 프리미엄 사케 시장도 커지는 추세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사케 브랜드 쿠보타도 풍성한 아로마와 균형 있는 맛을 선호하는 요즘 트렌드에 맞춰 ‘Fragrant Kubota’를 테마로 내세우기도 했다. 양조장에 와이너리와 같은 ‘도멘’과 빈티지 개념을 도입해 쌀을 직접 재배하고 수확연도를 레이블에 표기하기도 한다. 일본에서 만든 진도 놓칠 수 없는 유행 중 하나다. 산토리에서 로쿠 진을, 니카에선 코페이 진을 출시했고 크래프트 진도 슬슬 등장하고 있다.

(왼쪽 부터)

히노키시 준마이다이긴죠 프랑스의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와인 리스트에 사케로서는 최초로 올라 화제가 된 술이 카모시비토 쿠헤이지 시리즈다. 소량생산이 기조이며, 풍미를 살리기 위해 여과를 하지 않는다. 히노키시는 쿠헤이지 시리즈에 새롭게 추가된 준마이다이긴죠다. 숙성하면서 맛과 향이 변하는 터라 올해보단 내년, 내년보다 내후년에 열면 더 맛있다.

쿠보타 준마이다이긴죠 쿠보타를 말해주는 특징적인 맛인 탄레이가라구치(담백하고 드라이한)에서 우마구치(지나치게 달거나 드라이하지 않고 적당한 무게감을 가지는 타입) 스타일로 전환해 새로 출시한 사케다. 아로마와 맛을 중시하는 요즘의 사케 트렌드를 쿠보타의 기준으로 재해석한 셈이다. 배, 사과, 멜론이 떠오르는 화려한 향이 퍼진다.

카노치 준마이다이긴죠 쿠헤이지 시리즈를 만드는 반조 주조의 사케. 병에 아예 레이블 정보를 새겼고, 원료로 쓴 쌀의 수확 연도를 기재했다.

와비 진 나가노에 있는 마르스 증류소에서 만드는 진이다. 진이지만 쌀로 만든 증류 원액을 정제해서 만든 일본스러운 진이다. 주니퍼베리는 물론이고, 그 지역에서 수확한 금귤과 케센(일본 계피) 잎도 첨가한다.

키노비 진 위스키의 성공으로 진 증류소들도 자신감이 붙은 게 분명하다. 키노비 진을 만드는 교토 디스틸러리는 라벨에 런던 드라이 진이 아닌, 교토 드라이 진이라고 써 넣었다. 쌀로 만들었고 교토의 바에서 칵테일 베이스로 쓰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위스키와 와인
일본 위스키의 몸값은 완전히 뛰었다. 몇몇 애호가들은 일본으로 미국으로 ‘구매’ 원정을 떠나기도 한다. 주류기업 빔산토리에서는 직원들에게 자사 위스키 음용 금지령을 내렸다. 얼마 없는 물량을 조금이라도 고객에게 양보하라는 뜻이다. 기본급 일본 위스키인 ‘가쿠빈’도 아껴 마셔야 할 판이다. 이런 일본 위스키의 국제적인 인기는 지난 2003년부터 시작된 해외 수상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터진 것이다. 지난 2015년 ‘야마자키 셰리캐스크 2013’이 위스키 바이블에서 1위를 기록한 것이 확실한 한 방이 됐다. 위스키는 수요가 늘어나도 물량을 늘릴 수 없는 품목이다. 시간은 누구도 돈으로 살 수 없으니까. 결국 지난 5월, 빔산토리는 히비키 17년, 하쿠슈 12년을 단종시켰다. 숙성에 필요한 10 여 년의 시간이 지나야 다시 생산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일본 위스키 주세법상 ‘일본 위스키’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증류주의 기준이 의외로 까다롭지 않다는 점,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있다는 점이 영향을 주어 현재 새 증류소가 불쑥불쑥 생겨나는 중이다. 쌀을 증류해 오크통에 숙성시킨 키코리 증류소나 후카노, 오오이시, 노부요시, 카이요 등이 무연산 위스키를 만들어 해외로 수출하고 있다. 위스키만큼은 아니지만 일본산 와인도 최근 명성을 쌓는 중이다. 화이트 와인 품종인 ‘코슈’가 세계양조가협회에 정식 등록 양조용 품종으로 인정받으면서 닦인 길 위를 힘차게 달리고 있다.

(왼쪽 부터)

돗토리 블렌디드 위스키 마쓰이 주조에서 만드는 위스키. 돗토리라고 이름 붙은 블렌디드 위스키 라인과 쿠라요시라고 이름 붙은 블렌디드 몰트위스키를 만든다. 화이트 오크통에 숙성시켜 부드러운 바닐라 향이 올라온다.

고마카타케 네이처 오브 신슈 ‘시나노탄포포’ 1872년부터 본격소주를 만들어온 홈보주조는 1950년대부터 위스키를 생산했지만, 1992년 증류를 중단했다가 2011년, 일본 위스키 수요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고 원주 증류를 다시 시작했다. 홈보주조의 마르스 증류소에서는 블렌디드 위스키인 이와이와 몰트위스키 고마카타케를 만든다. 원액을 해외에서 사오는 일본 증류소들도 있지만 마르스 증류소는 확실한 ‘일본 위스키’다.

쿠라요시 18년 마쓰이 주조를 대표하는 블렌디드 몰트위스키. 꿀 같은 단맛과 산뜻한 민트 향이 풍성하게 올라온다.

쉬라네 코슈 쉬르리 홈보주조의 마르스 야마나시 와이너리는 일본 고유 품종 코슈로 만든 화이트 와인을 비롯해 레드, 스파클링 와인 등을 만든다. ‘동양의 부르고뉴’라고 불리는 후지산 아래 야마나시현 코후분지에 포도밭이 있다.

히비키 재패니즈 하모니 히비키는 산토리 90주년을 맞아 1989년에 출시한 블렌디드 위스키다. 숙성 연산이 없는 엔트리급인 이 위스키도 점점 몸값이 높아지는 중이다. 한동안 일본 위스키에서 고연산은 물론이고, 연산 표기 제품을 찾기 힘들 것 같다.

    에디터
    손기은
    포토그래퍼
    이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