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패션의 상징인 랄프 로렌이 50주년을 맞아 성대한 파티를 열었다. 아름다운 승자의 눈물이 빛났다.
남자가 평생 한 브랜드의 옷만 입어야 한다면, 주저하지 않고 랄프 로렌을 권하겠다. 클래식과 트렌드, 젠더와 젠더리스, 유스와 럭스, 모던과 빈티지, 커플과 패밀리, 패션과 라이프스타일. 랄프 로렌은 견고하게 균형 잡힌 남자의 옷장을 만들기에 어떤 부족함도 없다. 청초한 화이트 탱크톱부터 과감한 악어가죽 벨트까지, 랄프 로렌의 매장에선 없는 걸 찾기가 더 힘들다. 미국의 국민 디자이너이자 거대한 아메리칸 패션 제국을 만든 랄프 로렌이 50년 동안 이뤄낸 것은 크고 넓고 단단하다.
이런 랄프 로렌의 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뉴욕 맨해튼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마침 뉴욕의 가을이 시작되는 날이었고, 랄프 로렌은 그날 운 좋게 센트럴 파크를 찾은 관광객에게 뜻밖의 볼거리를 제공했다. 턱시도와 드레스로 한껏 치장한 사람들이 줄지어 호박 마차 같은 작은 트롤리에 올라타는 모습. 사람들을 태운 트롤리는 곧 센트럴 파크로 행진해 베데스다 테라스에서 멈췄다. 그곳은 이미 랄프 로렌의 5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사람으로 꽉 차 있었다. 거대한 LED 조형물 곳곳에선 브랜드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영상이 상영됐다. 50년 동안 랄프 로렌의 대표적인 런웨이 쇼 비디오, 4백여 장의 아카이브 이미지는 현대적인 방식의 디지털 조형물로 표현되었는데, 이름 그대로 World of Ralph Lauren이었다. 빛나는 조형물만큼 화려한 유명인도 가득했다. 애나 윈터와 나란히 앉은 힐러리 클린턴, 모델로 서는 아들과 함께 온 피어스 브로스넌, 평소보다 점잖은 차림의 카니예 웨스트와 앤설 엘고트, 스티븐 스필버그와 얘기 중인 오프라 윈프리, 네이비 턱시도가 기막히게 잘 어울리는 톰 히들스턴, 행사 참석을 위해 서울에서 온 김혜수. 모르는 얼굴보다 아는 얼굴이 더 많은 행사장은 레드 카펫 대신 페르시안 카펫을 깔았다는 것만 빼면 웬만한 시상식보다 찬연했다. 샴페인과 칵테일로 한껏 상기된 사람들이 벨벳 의자에 앉자 쇼가 시작됐다. 최신 여성 컬렉션, 폴로 랄프 로렌, RRL이 한 무대에서 처음 선보였다. 아이비리그 카디건, 빈티지 가죽 재킷, 헤링본 수트, 폴로 베어 니트, 블랙 턱시도, 레이싱 패딩 점퍼 등 랄프 로렌의 아이콘 아이템이 쏟아졌다. 이를 위해 초창기 모델부터 현재 활동 중인 슈퍼모델, 그리고 아이들까지 총 1백50여 명의 모델이 캣워크를 걸어 나왔다. 물론 랄프 로렌의 50년을 한 번에 보여주기엔 이마저도 부족했다. 하지만 랄프 로렌이 가진 미국적인 디자인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한 쇼였다. 피날레 모델이 지나가고 사람들은 누구보다 랄프 로렌을 기다렸다. 시그니처 룩인 턱시도 재킷과 청바지를 입은 랄프 로렌이 등장했고, 평소보다 긴 런웨이를 아주 천천히 걸어 나왔다. 여기저기서 진심 가득한 박수 소리가 들렸다. 지인들과 하나하나 눈을 맞추며 가끔은 따뜻한 포옹과 악수도 했다. 뜨거운 조명 사이로 랄프 로렌의 눈물이 보였고, 덩달아 지인들의 눈가도 촉촉해졌다. 모든 걸 다 이룬 전설적인 디자이너, 남자, 아이콘의 눈물은 수많은 의미로 반짝였다.
- 에디터
- 박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