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환은 로봇을 통해 세상에 들려주고 싶은 자신의 이야기가 있다. 그는 1인 게임 개발자다.
1년 전, 온라인 게임 유통 플랫폼 ‘스팀’에 <PRE:ONE>이라는 FPS 어드벤처 게임이 하나 올라온다. 기계 문명 사회에서 폐허가 된 바깥세상을 살펴보기 위해 탐사 대원을 보내는데, 하나둘 연락이 두절된다. 유저는 원인을 찾아 나서는 로봇 ‘프레이’의 시점에서 게임을 시작한다. 배경은 디스토피아지만, 화려한 색채로 그려진 세상에서 탐험을 계속하며 적을 해치워야 한다.
<PRE:ONE>은 게임 회사가 아닌 한 사람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청주에 사는 스물다섯 살의 게임 개발자 정세환이 기획하고 개발한 작품이다. “원래부터 게임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니에요. 고등학교 땐 만화가가 되고 싶었어요. 이후 일러스트, 3D 디자인에 관심이 생기더니 게임 제작이 매력적으로 보이더라고요. 제가 디자인한 것들로 꽉 찬 작은 세상을 만들 수 있잖아요.” 2년제 전문 학교의 게임그래픽학과에 진학하지만 1년만에 자퇴한다. 군 입대 후 복학하고, 졸업을 준비하는 등 20대 초반에 밟는 수순을 핑계 삼아 게임 개발을 미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군 복무 중 1만 장이 넘는 ‘콘셉트 아트’를 그려가며 스토리와 이미지를 구상했고, 제대하자마자 게임으로 구현하기 시작한다.
굳이 서울로 향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시각장애인 부모님 곁을 떠나기 싫었고, 컴퓨터와 드로잉 태블릿만 있으면 어디에서나 가능할 것 같았다. 문제는 게임 개발에 필요한 프로그램이었다. “청주엔 게임 제작에 필요한 프로그램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없어요. ‘유니티 3D’와 ‘오토데스크 스케치북’을 다뤄야 하는데…. 무작정 이것저것 눌러보며 기능을 알아가기 시작했어요. 오래 걸리긴 했지만요.”
미래를 배경으로 한 게임을 특별히 좋아해서 로봇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건 아니다. “아무리 연습해도 사람은 못 그리겠더라고요. 인체의 해부학적 기능을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대신 감정을 가진 로봇이라고 설정했죠. 스토리상 꼭 필요한 장치이기도 했지만, 성격과 행동을 통해 저를 보여주고 싶었으니까요.” 프레이의 대척점에 있는 로봇은 레보라는 악당 로봇이다. 원래 선한 로봇이었지만 다른 로봇들에게 무시당하며 점점 어두운 성격으로 변한다. 결국 세상을 파괴하려는 바이러스에 포섭되어 폭력성이 폭발한다. 오는 5월에 출시할 <PRE:ONE>의 확장 팩 <REVO>는 변질된 로봇 레보의 시점에서 복수를 하는 게임이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만화만 그리던 학생이었어요. 공부도 참 못했어요. 그런데 다른 학생들이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비웃더라고요. 프레이에 호기심 많고 밝은 저의 모습을 반영했다면, 성장 과정에서 겪은 분노와 복수심을 레보를 통해 이야기하는 거죠. 가상의 세계에서라도 그려보고 싶었던 이야기라고 할까요.”
정세환이 <PRE:ONE>을 제작하며 들인 금액은 1백50만원 정도다. 게임에 삽입한 특수 음향, 음악 등 라이선스에 들인 돈이 대부분이다. 지금까지 스팀에서 판매된 <PRE:ONE>은 약 5백 건. 게임 개발에 쓰인 비용을 고려하면 이윤은 거의 나지 않은 셈이다. “스팀엔 하루에 약 20개의 새로운 게임이 올라와요. 등장과 동시에 묻히죠. 마케팅 활동을 하기 어려운 1인 게임 개발의 한계이기도 해요.” 하지만 정세환은 앞으로도 혼자 게임을 만들 생각이다. ‘나만의 세상’을 구축하는 건 1인 개발자만 누릴 수 있는 ‘창조의 기쁨’이다. “판매량이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애초에 돈을 벌려고 만든 게임은 아니어서 아쉽지는 않아요. 제가 만든 세상이 얼마나 매력적으로 보일지, 프레이라는 로봇의 이야기가 얼마나 흥미로워 보일지 궁금했어요. 직접 게임을 해본 사람들의 반응은 좋은 편이었고요. 확장 팩부터는 국내 게임 유통 플랫폼에서도 판매되니까 기대하고 있어요. 게임 개발이 직업이 된 만큼 <REVO> 이후의 과정을 준비하려면 점차 수익을 내야 할 테니까요.”
첫 작품인 <PRE:ONE>에 몇 점을 주고 싶은지 묻자 정세환은 70점이라고 답했다. “패치를 몇 번을 했는지 몰라요. 혼자 만들면 남의 간섭을 받지 않아 좋지만, 놓치는 게 많더라고요.” 예를 들어 패치를 깔기 전엔 적이 총에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 알기 어렵다는 의견이 나왔다. 유저들의 조언을 수렴해 총에 맞으면 뒤로 밀려나는 패치로 해결했다. “혼자 일하다 보니까 약점을 보완하기도 어려워요. 총알이 다 떨어지면 재장전하는 모습이 나와야 완성도가 올라가는데, 제 게임에선 총이 시야에서 사라졌어요. 이제는 해결했지만, 장전하는 모습을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하기 어려워서 총을 아예 숨겼던 거거든요.” 배경 음악도 아쉬웠다. 좋은 평가가 많았지만 남의 음악을 구입해 사용한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특수 효과음은 어려워도 배경음악만큼은 직접 만들 거예요. 작곡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미래 사회에 어울릴 만한 전자 음악을 충분히 만들 수 있겠더라고요.”
정세환은 혼자 게임을 만들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어려운 상황을 극복했다거나 드디어 재능을 발견했다는 등 거창한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 “방법을 터득하고, 게임으로 구현하는 과정이 좋을 뿐이에요. 말이 아닌 ‘게임의 언어’로 저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단 걸 알았고. 게임을 만들면서 더 밝아졌어요. 누군가가 정해준 일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일만 하고 싶었거든요. 20대 들어 당장 내일에 대한 걱정에 휩싸여 있었는데, 요즘은 안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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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이재현
- 사진
- 정세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