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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주연 ‘아미 해머’의 모든 것

2019.04.02GQ

평소 인터뷰와는 달랐다. 보통은 인터뷰를 마치고 집에 어떻게 왔는지 기억이 나기 마련이다. 이번엔 왜 달랐냐고? 보드카 칵테일을 계속 권하는 아미 해머와 함께였기 때문이다.

재킷과 팬츠, 모두 구찌. 티셔츠, 선스펠. 운동화, 아디다스.

파자마 셔츠와 바지, 모두 베르사체.

셔츠와 쇼츠, 모두 M&S 컬렉션. 슬라이더, 베르사체.

완벽한 나체 상태로 깨어났다. 캘리포니아의 스모그 낀 살구 빛 여명이 눈에 익어감에 따라, 내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트루비안 맨’처럼 팔다리를 활짝 벌린 채 엎드려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물론, 덜 남성적이고 비율도 좀 떨어지지만 말이다. 사실 지금의 내 모습은 거죽 같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잡아 늘려서 고정시킨 후 불을 지핀 아르헨티나식 화덕에 올릴 준비를 마친 그런 상태. 고개를 들며 눈을 가늘게 뜨고, 아르헨티나 셰프 프랜시스 멀먼이 내 앞에 부지깽이를 들고 서 있지는 않을까 반쯤 예상했다. 활짝 웃으며 내 몸에 문지를 케이준 스파이스 럽을 한 손 가득 쥔 채 말이다.

그래도 최소한 내 몸을 누인 퀸 사이즈 침대는 편안하다. 침대에 깔린 카키색 리넨 침대 시트는 칼리코산맥 서쪽인 이 동네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부드러운 시트일 것이다. 나는 로스앤젤레스 플랭클린 빌리지에 새롭게 복원된 레지던스 빌라 카를로타의 층고가 높은 방에 누워 있다. 빌라 카를로타는 황금기 시절 할리우드의 유명인사들 절반이 거쳐 간 곳이기도 하다. 그나저나, 내가 왜 방에 들어와 있지? 간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지?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내가 어제 누구랑 있었던 것일까?

여기저기 내가 흘리고 벗어 던진 옷가지들이 육중한 흰색 현관문에서 침대 가장자리까지 궤적을 그리며 흩어져 있다. 불운한 운명을 맞이한 우주선이 대기권으로 재진입하는 과정에서 해체되는 것처럼 주머니, 그리고 몸에서 하나씩 닥치는 대로 떨어져 나온 모양이다. 지난밤에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휴대 전화를 확인해본다. 어젯밤 9시에 만나기로 한 사람이 나한테 무슨 일 있냐고 보낸 문자가 두 개나 와 있다. 저녁 9시쯤 내가 별안간 미팅을 취소했던 것이다. 대체 무슨 중요한 다른 일이 있다고 약속을 취소했을까? 그리고 나는 왜 간밤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 단서를 찾기 위해 휴대 전화를 뒤진다. 이용해줘서 감사하다는 우버의 메일이 보이지 않는다. 호텔에 돌아오기 위해선 우버 택시를 탔어야 했을 텐데? 내가 어제 인터뷰를 하고 있었나? 내가 어제 인터뷰를 하고 있었지. 나는 어제…, 아미 해머를 인터뷰하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아미! 아미를 모르진 않겠지. 키가 크고 멋있는, 얼굴을 한 대 치고 싶을 정도로 멋있고 잘생긴 아미 말이다. 그가 어찌나 잘생겼는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티모시 샬라메가 아미를 떠올리며 <아메리칸 파이>에서처럼 복숭아로 자위하는 장면마저 설득력을 지닐 정도였다. 그렇지 않나? 아미 해머를 정말로 모르는 건 아니겠지? <아스테릭스> 만화에 등장하는 로마의 대장 같은 몸에 <슈렉 2>의 고양이처럼 촉촉한 눈을 가진 아미 해머. 촉촉하다. 그러니까 그의 눈 말이다. 아미 해머의 눈은 촉촉하다. 어쩐지 연약하지만 강해 보이는 그런 눈을 가졌다. 이 남자에게서는 어떤 품위와 품격을 감지할 수 있다. 경찰관과는 다른, 감당이 어려울 정도로 비싼 결혼식장의 안내원 같은 품위가 느껴진다. <프린세스 브라이드>에서 웨슬리를 맡았던 캐리 엘위스를 조금 닮은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는 아디다스 트랙 슈트가 근사하게 잘 어울린다. 그러니까, 올림픽에 나오는 스키 선수나 프로 농구 선수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아미 해머가 아직도 누군지 모르겠다면, 생각해보라. <가십걸>에서 재수 없는 남자친구의 정수를 보여준 게 기억날지도 모른다. 그는 술에 취하지 않은 버전의 브래들리 쿠퍼처럼 생긴 것 같기도 한데, 이게 웃긴 게 브래들리 쿠퍼는 술을 마시지 않지만 아미 해머는 마시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소셜 네트워크>에도 출연했는데 아미는 조정 선수 출신의 쌍둥이 역을 맡았다. 맞다. 쌍둥이 둘 모두 아미였다. 하버드 형제이자 조정선수 형제인 윙클보스 쌍둥이 형제 말이다. “내 키가 195인데 내가 두 명이나 있거든”이라는 극중 대사가 있는데, 그 쌍둥이 두 명, 그리고 그 대사를 한 쌍둥이 중 한 명이 바로 아미 해머였던 것이다.

어쨌든 나는 어제 아미와 함께였다. 우린 종일 같이 시간을 보냈다. 할리우드 힐스 높은 곳에 있는 그의 집에 있다가 택시를 불러 호텔로 이동했다. 어쩌면 그의 홍보 담당자가 택시를 불러줬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향한 곳은 선셋 타워였고, 그곳에는 웨스 앤더슨이나 제프 골드블룸이 들르는 고급스러운 타워 바가 있다. 금요일 오후 5시경, 우리는 구석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나와 아미 둘뿐이었고, 바에는 손님이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얘기하기 시작했다. 사실 꽤 긴 시간 동안 차기작에 대한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 펄리시티 존스가 미국 연방 대법원 판사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역을 맡은 훌륭하고도 중요한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이나, 스티브 리프트 역을 맡은 아미가 완벽한 연기 변신을 선보이는 부츠 라일리의 와 같은 차기작에 대한 얘기 말이다.

우리는 일 전반에 대한 것, 남성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스탠 리 사망 후 스탠 리와 찍은 셀피를 올리는 이들을 향해 아미가 한 말과 같은 것들을 화제로 삼았다. 돈에 대한 얘기도 있었고, 티모시 샬라메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우리가 버거를 먹었나? 아마도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술은 확실히 마셨다. 그것도 엄청나게 많이. “마티니! 좋죠. 저는 티토스 깁슨으로 할게요.” 이게 증거다. 여기서 잠깐 알려두자면, 마티니를 마시자고 한 건 아미 해머였다. 여기 녹음된 내용까지 있다. 그리고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는 티토스 깁슨이 뭔지도 몰랐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엔 “마티니”라고만 말한 게 녹음된 것이다. 알고 보니 티토스는 텍사스의 소규모 양조장에서 만들어내는 보드카 브랜드였다.

보드카가 어디에서 만들어졌는지는 중요할 수도, 어쩌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해머의 출생지는 텍사스가 아니다. 그는 32년 전 산타 모니카에서 태어났다. 모친인 드루 앤이 텍사스 출신이었으며, 해머의 가족은 아미가 여섯 살 혹은 일곱 살이 될 때까지 달라스에 살았다. 그러고 나서 부친 마이클 해머(재미로 암앤해머를 인수했던 억만장자의 손자)는 가족을 데리고 케이맨 제도로 건너가 수년간 그곳에 머물렀고, 911 사태 직후 미국으로 돌아왔다. 아미와 함께 아이 둘을 둔 부인 엘리자베스 챔버스는 실제로 텍사스의 산 안토니오 출신이다. 챔버스와 해머는 산 안토니오에 버드 베이커리라는 그럴듯한 제과점을 갖고 있다.

여담이지만, 혹시 몰랐다면 해머가 주문한 마티니의 ‘깁슨’은 보통 마티니에 곁들이는 올리브 대신 조그마한 칵테일용 양파를 의미한다. 티토스 깁슨이 뭔지 모르면서도 해머를 따라 주문한 이유가 뭐냐고? 글쎄, 그런 이름을 가진 칵테일을 누가 마다하겠는가? 심지어 아미 해머의 아름다운 얼굴에서 나온 주문인데 말이다. 궁금한 건 이거다. 해머가 텍사스산 티토스 보드카를 시킨 게 단지 티토스 특유의 부드러운 맛 때문일까. 아니면 그가 자기 주변 사람들도 성공할 수 있도록 신경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일까? 해머가 티토스의 사람들을 아는 건 아니라도 최소한 부인의 고향 사람들인 건 맞으니 말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아미는 그저 “티토스 깁슨”을 소리 내어 말하는 것을 즐기는 것일까? 왜냐하면 실제로도 꽤 멋있게 들리는 말이긴 하기 때문이다. “전 티토스 깁슨으로 주세요”라고 한번 말해보자. 꽤 그럴싸하지 않나? (어디까지나 로스앤젤레스의 타워 바에서 아미 해머가 주문을 할 때의 얘기다.)

해머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가장 먼저 꺼낸 질문은 그의 가족에 관한 것이다. 그게 가장 흥미롭기 때문이다. 사실 아미의 이름은 증조부의 이름을 가져온 것이다. 아미의 출생증명서에 적힌 이름은 ‘아만드 더글라스 해머’이다. 고등학교 시절 아미라는 좀 더 멋있고 날렵한 별명으로 불리기 시작했고, 그게 그대로 굳어 지금의 아미가 된 것이다. 1898년 뉴욕에서 태어난 아만드 해머의 부모는 러시아에서 건너온 유태계 이민자들이었다. 언젠가 아만드는 부친 줄리우스 해머가 귀족 청년과 창부의 사랑을 그린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춘희>의 캐릭터 아르망 뒤발을 따라 이름을 지었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에 대한 책까지 있는 걸 보면 증조부 아만드는 꽤나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브롱스의 자택 한쪽에서 환자를 받았고 한때는 낙태 수술 실패로 형까지 산 부친 줄리우스를 따라 의사가 되려 했던 아만드는 결국 러시아와 미국 사이를 수시로 왕래하게 되었다. 그는 주로 상품과 의료 용품 수출입을 했고 때때로, 특히 냉전하에서 미국 정부의 의심을 사기도 했다.

그 후 아미의 증조부는 막대한 양의 부를 축적했다. 수출입 사업을 관둔 후 로스앤젤레스로 건너간 그는 미국의 여러 석유사업에 투자해 1957년에는 옥시덴탈 페트롤륨이라는 회사의 경영권을 차지했고, 그 회사는 미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석유회사 중 하나로 성장했다. 카리브해의 섬을 하나 살까 싶은데 어떤 섬을 고를까 고민해도 좋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배당금을 가진 회사로 말이다. 2017년 옥시덴탈 페트롤륨의 매출은 1백20억 달러에 달했다. 그런데 이게 아미 해머와 무슨 상관이 있냐고 물을 수 있고, 그렇게 묻는 게 당연하기도 하다. 글쎄, 랜치 드레싱에 프렌치 머스터드가 흐르듯이 집안에 오일 머니가 흐른다면, 과연 그런 배경이 개인의 삶과 커리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물어볼 책임이 있는 것이다. 게다가 한 개인의 배경이나 집안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중요한데, 특히 최근 할리우드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다. 2018년 오스카상 시상식 때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외친 “포용 특약”은 배경의 중요성을 묻는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이 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가령, 올해 서른 두살이 된 아미 해머는 그의 배경, 즉 재산과 피부색 덕에 가지지 못한 사람이나 흑인 또는 여성, 혹은 가난한 흑인 여성이었다면 누리기 어려웠을 특혜나 재도전의 기회 등이 주어진 게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그리고 일부는 이미 그러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예를 들어 앤 헬렌 피터슨의 버즈피드 기사 ‘아미 해머를 만들기 위해 들인 10년’ 같은 글들을 참고하자).

해머는 자라나며 그의 가족이 보유한 엄청난 재산을 어느 정도로 의식하고 있었을까? “딱히 비교 대상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그랬어요. 외조부모님은 대공황 시기 오클라호마에서 자라나셨고, 그렇기 때문에 외가의 분위기는 친가와 많이 달랐어요. 어머니는 우리가 돈 많은 집 애들처럼 자라나게 두지 않으셨죠. ‘여기 돈 줄 테니 가서 즐거운 시간 보내라!’라는 말 같은 건 한 번도 듣지 못했어요. 친구들이 용돈으로 10달러를 받았다면 어머니는 어떻게든 이유를 만들어 우리에게 7달러만 주셨죠. 저는 매번 항의를 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어머니는 제게 ‘네가 용돈을 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어째서?’라고 물었고, 당연하게도 저는 그럴싸한 이유를 내놓을 수가 없었어요. 어머니의 그런 경제관념과 관심 덕에 우리가 나쁜 버릇을 들이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티토스를 홀짝이며 아미는 설명한다.

나는 해머가 백인으로서 특권을 누린다는 혐의 또는 비난에 대해 질문을 던져야 할 것 같았다. 그런 비난들 중 일부는 해머 자신과 그의 커리어를 직접적으로 겨냥해 제기되었으며, 해머가 어느 정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소셜 미디어에서 그 강도가 특히 높았다. 업계의 흐름과 분위기가 옳은 방향으로 변함에 따라 어느 날 갑자기 전과 다른 세상을 맞이하게 된 건 다름 아닌 큰 키에 잘생긴 데다 좋은 배경을 가진 백인 남성들이었다.

“백인이 누리는 특권에 대해 잘 알고 있어요. 그리고 그게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도 알아요. 알면서 혹은 모르면서 그런 특권을 행사하는 백인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저는 여기 앉아 ‘뭐 그게 내 커리어랑은 아무 상관없지’라고 얘기할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아요. 제가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되죠. 하지만 동시에, 사람들이 성공에 필요한 노력과 직업 정신에 대해서도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인정해요. 저 같은 남성은 바로 저 같은 남성이기 때문에 얻는 게 많다는 것을. 제가 백인이기에 누린 특권이 분명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제가 정말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 역시 사실이기도 해요.” 해머의 답변은 확고하다.

좋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집이 없어 자동차에서 자야 하는 배우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웨이터로 일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동차에서 자는 배우의 가족이 석유사업으로 수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이쪽의 고생과 저쪽의 고생이 다른 것이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아미 해머는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지 않나? “어휴,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항상 돈 걱정이에요.” 정말? 어떤 돈 걱정? 출연료가 폴 러드에 비해 얼마나 적을지와 같은 걱정? 물론 자존심이 걸린 돈 문제는 있을 수 있겠지만 당장 이번 주에 베이비시터 비용을 댈 걱정은 할 필요 없지 않나. “제가 지금껏 제대로 된 출연료를 받은 건 딱 두 번이에요. <론 레인저>와 <맨 프롬 엉클> 말이에요. 제가 받아본 고액의 출연료는 그 두 번이 전부라고요. 자, 보세요. 제 인생에 큰 분기점이 있었어요. <슬라이딩 도어즈>에 나오는 그런 분기점이었는데, 만약 제가 어떤 특정한 선택을 했더라면 아무런 걱정 없이 살 수 있었을 거예요. 돈 걱정은 말할 것도 없고요. 하지만 저는 그 선택을 하지 않았죠.”

직설적으로 묻기로 한다. 집안의 재산에 등을 돌렸단 말인가? “이 얘기를 하는 게 웃기기도 하지만, 현재,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 저는 제 이름으로 된 집 한 채 갖고 있지 않아요. 누군가 저에게 ‘그런 경우에는 재저당을 잡히면 돼’라고 알려줘도 저는 애초에 저당 잡힐 게 없는 거죠. 이를테면 저는 여기에 모든 것을 건 거예요.” 여기라는 건 연기를 말하는 것인가? “맞아요. 제가 평생 원했던 유일한 것이 연기예요. 그리고 말씀하신 것도 맞아요. 베이비시터를 부르는 비용은 적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제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수표를 건네거나 하는 것도 불가능해요. ‘얼마 드리면 되죠? 몇 시간 동안 계셨어요?’라고 한 후에 돈을 내곤 하죠. 제 인생이 여러 멋진 기회들로 가득한 건 맞지만, 그럼에도 저는 너무도 당연하게 돈 걱정을 해요.”

셔츠와 팬츠, 모두 돌체&가바나. 이너 셔츠, 선스펠. 서스펜더, 버드.

재킷, 셔츠, 팬츠, 모두 돌체&가바나. 보우타이, 톰 포드. 구두, 크리스찬 루부탱.

셔츠와 쇼츠, 모두 베르사체. 운동화, 아디다스. 선글라스, 살바토레 페라가모.

그럼 가족으로부터의 경제적 지원이 전혀 없다고? “가족으로부터 받는 돈은 한 푼도 없어요.” 그런데 그 결정은 아미 해머가 직접 내린 것일까? 아니면 아미가 가업을 잇는 대신 연기에 뛰어들면서 가족들에게 버림받은 것일까?

“결정은 제가 내렸어요. 저 스스로요. 그리고 오늘은 솔직하게 말하는 자리니까, 저도 한 가지 확실히 밝혀둘 게 있어요. 지금은 이혼하셨지만, 제가 집세를 못 낼 정도로 힘들 때면 부모님을 찾아가 도움을 받는 게 가능하냐고요? 그러니까, 부모님께 ‘도와주세요’라고 부탁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제 대답은 ‘맞다’예요. 하지만 제가 그렇게 할 거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에요.” 아미 해머는 언제 그런 결심을 하게 되었을까? “어렸을 때부터요. 그러니까, 제가 살아가는 데 부모님으로부터 아무것도, 한 푼도 받지 않고 지낸 게 벌써 10년이 넘었네요.” 부모님과의 상의 후에 내린 결정일까? “아뇨”라고 말하는 해머의 목소리는 약간 커져 있었다. 바텐더가 잠깐 고개를 들었다.

해머는 다시 차분하게 말을 이어간다. “아니에요. 부모님이 아니라 저 스스로와의 대화 끝에 내린 결정이에요. 부모님의 도움을 받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될 수도 있는데, 저는 도움을 받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더라고요. 부모님과의 관계나 인연을 끊겠다거나 하는 건 전혀 아니었어요. 다만 제 자신을 강하게 하려는 것이었죠. 제가 어떤 부류의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고민했던 거예요. 제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은 ‘매일 아침 거울에서 어떤 사람과 마주하고 싶을까?’였어요”

인터뷰를 시작하고 한 시간쯤 지났는데 우리는 벌써 각자 티토스 깁슨을 세 잔이나 마셔버렸다. 어쩌면 네 잔이었을 수도 있다. 마티니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게 꽤 많은 양이라는 것을 알 테다. 안주로는 각자 사이드로 나오는 작은 민스미트 한 접시씩 먹었을 뿐이다. 그때까지 들이킨 보드카 1/4병을 흡수하기에는 딱히 효과적이지 못했다. 당시 상황을 분명히 하기 위해 첨언하자면, 나는 빵과 함께 나오는 미니 버거를 주문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첫째, 선셋 타워 호텔에 미니 버거용 빵이 다 떨어진 상태였고(내가 얼마나 운이 없었는지 알겠는가?) 둘째, 해머가 절친들과 탄수화물을 먹지 않기로 내기를 한 상태였던 것이다.

“얼마 전 뉴욕에 갔는데 말이죠, 친구 몇 명과 모이기로 한 거예요. 그리고 왜 그럴 때가 있잖아요. 그냥 질러야 할 때. 친구들과 딱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 상황이었고, 그래서 우리는 아주 호화로운 밤을 보내기로 했죠. 식사를 두 번이나 하고 술도 왕창 마시고 그랬는데, 결국 모두 늘어져 ‘속이 안 좋아. 너무 과했던 것 같아. 한 달 정도는 쉬어야겠어’라는 식이었어요. 그때 누군가 ‘넌 한 달 못 참을걸’이라고 했고, 서로 설전이 오간 끝에 결국 그 자리의 전원이 키토 다이어트 내기에 참여하게 된 거예요. 근데 이게 승패가 분명히 갈리는 내기인 게, 실제로 검사가 가능하거든요.” 어떻게 검사한다는 말인가? “소변에서 케톤을 검출하는 거예요. 우리 내기는 탄수화물을 일절 끊는 것이었는데, 시험지에 소변을 보면 혈액에 탄수화물이 얼마나 있는지 나타나는 식이죠.” 탄수화물을 섭취하고도 내기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 같은 건 없을까?

“반칙요? 아뇨. 재미없잖아요.” 내기 참여자 중 탄수화물을 섭취한 첫 사람은 어떻게 될까? “내기에서 지면 머리를 밀어야 해요.” 해머의 머리를 쳐다본다. 옆 가르마에 살짝 바운스를 줬고, 옆머리와 뒷머리는 페이드 커트를 했다. 멋있다. 약간 보수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멋있다. 머리를 밀면 정말 아깝겠다고 말했다. “뭐, 머리는 다시 자라니까요. 보통 저는 경쟁심이 강한 편인데 이번엔 어쩌면 지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크리스마스를 2주 정도 앞두고 해머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동영상에는 <더 투나잇 쇼> 출연 바로 직전에 전자 이발기로 머리를 미는 그의 모습이 담겼다. 생방송 녹화 도중 그는 지미 팰런에게 “아침에 일어났는데 갑자기 제 머리가 너무 싫더라고요”라고 설명했다. 해머의 절친한 친구 6명과 나는 다른 관객들보다 조금 더 크게 웃었다.

해머의 친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갖기 쉽다. 게다가 그는 훌륭한 대화 상대이기도 하다. 그는 허심탄회하며 유쾌하다. 그리고 그는 어떤 배우들과는 다르게 뭔가 신경 쓰이는 게 있을 때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입 밖으로 내는 데 거리낌이 없다. 반면, 이런 면 때문에 곤경에 처하게 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우리가 만나 보드카와 베르무트를 들이붓기 불과 며칠 전, 해머는 마블 코믹스 세계의 창조자라 할 수 있는 스탠 리 작고 후 그와 찍은 셀피를 올림으로써 그를 기렸던 셀레브리티들을 비판하는 글을 트위터에 게재했다. “스탠 리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는 셀레브리티들 덕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전설을 기리는 데는 자기 사진을 올리는 것 만한 게 없죠.” 2018년 11월 12일에 해머가 작성한 트윗이다. 이런. 그러니까, 해머는 셀피가 싫다는 건가? “스탠 리 사건은 이렇게 된 거에요. 제가 말실수를 했어요. 공격할 생각이 없었던 이들을 공격한 셈이 되었고, 제가 일반화시켜 한 얘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유감스럽게도 부당하게 제 비판의 대상이 되어버렸죠.” 그러니까,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나 톰 하디, 에반젤린 릴리 같은 사람들을 말하는 건가? “스탠과 친분이 있었고 오랫동안 같이 작업하며 정말 가까운 사이를 유지했던 사람들이 있는데, 제가 비판하려던 건 그들이 아니었어요. 분명히 말할게요. 스탠 리를 단지 한 번 만난 게 전부이면서 추도하는 척 그를 이용하거나 홍보 수단으로 삼은 사람들을 공격한 것에 대해서는 미안한 마음이 없어요.”

과거에 해머는 ‘셀레브리티 문화’에 꽤나 비판적이었다. 해머 자신이 겪은 특정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었을까?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그런 문화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 아닌가? “요즘은 이런 식이에요. 저에게도 일어나는 일이고, 또 제가 목격한 장면이기도 하죠. 그러니까, 제가 어딘가 공공장소에 있으면 누군가 다가오죠. 그런데 그 사람은 제게 ‘만나서 반갑습니다’ 또는 ‘우와! 당신 연기 정말 좋아해요’ 같은 말은 하지 않아요. 누군가 저에게 다가와 듣기 좋은 말을 해주고 같이 셀피를 찍자고 하면 당연히 그 사람과 얘기도 조금 나누고 사진도 찍겠죠. 하지만 이제는 그런 사람들이 없어요. 그저 저한테 와서 ‘셀피 찍어도 돼요?’라고 한마디 던진 후 셀피를 찍고는 그대로 가버리죠. 고맙다는 말조차 없어요. 오히려 ‘세상에! 나 방금 아미 해머 만났어!’라고 사람들한테 자랑하죠. 하지만 그 사람은 저를 만난 게 아니에요. 저랑 한두 마디 이상 나눠보지도 않았잖아요. 그건 만남이 아니에요.”

약간 당황한 나는 물었다. 아미 해머는 밀레니얼이 아닌가? 셀피나 뭐 그런 것들은 아미가 속한 세대의 것이 아니었나? “맞아요. 저는 밀레니얼 세대예요. 제가 밀레니얼이 아니라고 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저는 밀레니얼이 아니에요. 이해가 안 되고 공감도 못 하겠어요. 왜 남의 결혼식에 갔으면서 연회장에 선 자기 자신의 사진을 찍은 후 소셜 미디어에 올리며 ‘사라와 제프의 결혼을 축하합니다! 둘이 너무 잘됐다!’라고 쓰는 거죠? 그게 도대체 뭐에요? 저는 도저히 이해를 못 하겠어요.” 그러나 해머는 몇 번이나 소셜 미디어를 끊으려고 시도했지만 계속 돌아온다고 한다. 왜일까? “좋은 질문이에요. 아무래도 스스로 통제하려는 걸 포기해야 할까 봐요.”

소셜 미디어에서 아미 해머를 비난하거나 곤란하게 만드는 사람들도 있지 않냐고 말을 건넨다. (티토스를 들이마신 효과가 슬슬 나타나는 것 같다.) <맨 프롬 엉클>에서 해머의 연기를 두고 하는 비판이 어찌나 혹독한지 매번 놀란다고 말했다. “음, 그렇죠. 저도 잘 모르겠어요.” 어깨를 으쓱하며 아미는 대답한다. “어쩌면 그저 제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죠. 제 연기가 나무토막처럼 밋밋하고 단조롭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아요. 뭐, 그건 그들의 생각이겠지만 말이에요. 제가 절대로 성공하지 못할 거라고 말한 에이전트들도 있었어요. ‘이봐, 자네는 그냥 재능이 없어. 포기해. 지금이라도 당장 말이야’ 같은 말도 들어봤죠. 제가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 꽤 자주 겪은 일이에요.”

그런 공격에 상처를 받기도 할까? “그럼요. 기분이 좋지는 않죠. 제가 소셜 미디어를 끊었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저는 그런 비난을 즐길 정도의 매저키스트는 아니에요. 저에 대한 비난을 보는 게 싫었기 때문에 한동안 떠나 있었어요.” 본인에 대한 코멘트를 읽나? 트윗들도?

“물론이죠. 하지만 계속해서 읽고 또 읽고 하지는 않아요. 이따금 잠이 오지 않을 때 살짝 들여다보는데, 그러다 보면 한 시간 반이 훌쩍 지나 있죠. 온라인에서 분노와 노여움을 산다는 건 굉장히 흥미로워요. 온라인의 주의 지속 시간은 아주 짧거든요. 저와 트위터의 관계는 개구리와 전갈의 우화랑 비슷해요. 개구리가 전갈을 태우고 강을 건너 주죠. 그런데 강을 건너자마자 전갈이 개구리를 독침으로 찔러요. 왜 그랬냐고 묻는 개구리에게 전갈은 이렇게 대답하죠. ‘난 빌어먹을 전갈이니까!’”

이미 충분히 눈치챘겠지만 그는 마티니를 좋아하는데, 저녁 7시부터 우리는 이미 꽤 많이 마신 상태였다. 네 잔, 다섯 잔, 또는 여섯 잔? 내 주량은 분명히 넘어섰다. 다음 날 해머와 주고받은 이메일, 그리고 그날 인터뷰가 끝난 후 술자리에 합석한 친구와의 대화 내용을 종합해본 바에 따르면, 마지막에 해머는 친절하게도 만취해서 머리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내가 숙소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그게 아니라도 최소한 우버 차량에 정확한 주소를 일러주긴 했다. 내가 토하는 동안 해머가 등을 두드려줬냐고? 그건 아니다. 하지만 내가 토했다면 도와줬을까?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인터뷰 다음 주 런던으로 돌아오는 나는, 평단의 찬사를 이끌어낸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해머와 연기한 티모시 샬라메와 연락이 닿았다. 해머는 이 영화의 후속편이 만들어진다면 아주 기쁘게 참여할 의사가 있다고 한다. 이 영화를 찍으며 둘은 깊고 단단한 우정을 쌓았다. 이 글의 독자들에게 들려준 얘기를 샬라메에게도 해줘야 할 것 같았다. 인간 아미 해머가 지닌 품위 말이다.

“맞아요. 아미가 제 곁에 있어서 더없이 운이 좋았어요. 영화를 만드는 과정과 기자회견 같은 언론을 상대하는 것 모두에서 말이에요. 아미는 제게 살아 있는 본보기 같았어요. 그는 상대로 하여금 자신을 신뢰할 수 있게 하죠. 배우로서도 물론 그렇지만, 보다 중요하게는 인간으로서, 아버지로서, 그리고 어떻게 스스로 처신하고 어떻게 남을 대하는지에 대해서 그래요. 촬영장에서 아미가 저를 대한 방식, 그가 저를 위해 내어준 시간과 보살핌에 감사하는 마음은 영원할 거예요”라고 샬라메는 아미를 설명한다.

촬영장에서 아미는 어떨까? “열심이에요. 뭐든 제대로 하죠. 영화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주변 모두를 끌어올리고자 하는 열망도 있어요. 배우의 가장 위대한 재능은 경험이고,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촬영하며 아미의 경험이 제게는 엄청난 도움이 되었어요. 저는 영화를 많이 찍지 않았지만, 아미는 좋은 장면을 얻어내거나 감정을 이끌어내는 방법에 대해 전문가 수준으로 알고 있었죠. 기념비 앞에서 저와 아미의 캐릭터가 서로에 대한 사랑을 처음으로 표현해야 했던 장면 말인데, 그건 정말 미묘하고 어려운 신이었거든요. 촬영 당일 아침 리허설을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계속 고민이었어요. 두려운 상황이었죠. 두려운 상황이었어요. 사랑을 표현하는 연기를 두고 어찌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건 배우로서 가장 피하고 싶은 일이거든요.”

고민에 빠진 티모시 샬라메를 결정적으로 도운 건 아미 해머였다. “그런데 아미는 그 장면을 싱글 트랙으로 찍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냈고,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님도 동의했죠. 그리고 그게 정말로 효과가 있었어요. 저라면 그런 아이디어를 내놓을 수 없었을 테고, 매체에 대한 아미의 감각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해요. 엄청난 사람이에요 아미는. 모든 종류의 ‘~주의’를 버리고 촬영에 임하죠.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고 샬라메에게 말한다. 나는 그의 친구이자 멘토이며 동료인 아미에게는 어딘가 고결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상류층이나 귀족 계급과는 다른, 보다 정중하며 예의 바른 그런 고결함 말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아미는 그의 재산이나 백인 특권에 대한 질문이 몇 번이나 주어져도 항상 진지한 대답을 들려줄 것이다. 아미는 그런 걸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샬라메, 또는 아미가 부르는 것처럼 티미의 생각도 같다.

“정말로 그래요. 지금껏 아미를 그렇게 설명한 사람은 한 번도 못 봤는데, 그게 정확한 표현인 것 같아요. 아미는 그냥 좋은 사람이에요. 아미는 선한 뜻을 품고 살아요. 그런데 그게 가능하려면 자기의 본모습을 드러내야 하거든요. 아미는 언제나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이에요.”

아미와의 인터뷰를 마친 그날 로스앤젤레스에서 보낸 밤은 꽤나 흥미롭고 약간은 충격이었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랬다. 그래서 내가 데렉 로즈 파자마도 없이 나체로 호텔 침대에 누워 도대체 간밤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머리를 싸매고 궁리하기에 이른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다고? 그건 다음을 위해 아껴두도록 하자.

아니면, 더 좋은 생각이 있다. 길에서 큰 키에 고결해 보이는 아미를 발견한다면, 당신이 그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이다. 아미 해머에게 지난해 11월 선셋 타워 호텔 바에서 마티니 회동이 끝난 후 한 영국인 저널리스트와 대관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직접 물어보라. 그에게 다가가서 인사를 건네고, 미소를 지은 뒤 손을 흔들고, 얘기를 시작하는 식으로 말이다. 아미와 대화를 나누면 그는 좋아할 것이다. 친절하고 예의 바르게. 좀 더 잘, 그러니까 아미처럼 해보는 것이다.

물론, 아마도 아미가 그날 밤의 전말을 들려주진 않을 것이다. 왜냐고? 글쎄, 그는 아미 해머이지 않은가? 그런 얘기를 남에게 하는 건 고결한 행동이 아니다. 얘기를 다 듣고 나면 한바탕 실컷 웃을 수는 있겠지만, 그건 나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품위 있는 행동이 아니란 말이다. 그리고 이미 잘 알고 있겠지만, 우리 모두 때때로 조금은 아미 해머처럼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렇지 아미?

    에디터
    Jonathan Heaf
    포토그래퍼
    Eric Ray Davidson
    프로덕션
    3 Start Produc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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