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선 소음 없는 휴가를 보낼 수 있다. 아프리카 최남단 구석구석을 뒤져 찾은 세상에서 가장 고요한 호텔 네 곳.
모루쿠루 비치 로지, 드 훕
Morukuru Beach Lodge, De Hoop
최근 개장한 모루쿠루 비치 로지는 1억 평이 넘는 규모의 드 훕 자연 보존 지역 안에 단 네 곳밖에 없는 사유지에 지었다. 아프리카 최남단 지역의 동쪽에 붙어 있는 이 보호 지역은 5킬로미터에 걸쳐 인도양으로 이어지는 바다를 포함한다. 새끼를 낳으려고 남극에서 이동을 시작하는 남방긴수염고래 무리를 보려면 6월에서 10월 사이가 가장 좋다. 침실과 식당, 그리고 위층의 바에서도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물위로 뛰어오르는 고래를 볼 수 있다. 한밤에는 아프리카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잠을 청하고, 모래사장이 깔린 바닷가에서 아침 수영을 마친 후 갖는 아침 식사를 계획한다면 일찍 일어날 가치가 충분하다. 건축물은 환경오염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지었다. 대충 잘라 표면이 꺼끌꺼끌한 돌과 수명이 다한 기차 철로를 건축 자재로 사용했고, 바닥 난방은 태양열을 이용한다. 5개의 침실엔 모두 장작을 태우는 난로가 있고, 타원형 욕조가 딸린 넓은 욕실을 두고 있다. 가까운 거리에 샌드보딩을 할 수 있는 높다란 모래언덕이 있고, 영양과 얼룩말이 집 근처에 종종 나타난다. 바다와 사파리를 모두 즐기고 싶다면 이만한 곳도 없다. morukuru.com
라 클레 로지, 프랑슈크
La Cle Lodge, Franschhoek
2018년 초, 셰프 부부인 스콧과 멜 셰퍼드는 객실 5개가 있는 게스트하우스 라 클레 로지를 열었다. 세심하게 계획한 흔적이 여기저기 묻어 있지만, 내 집에 온 것 같은 차분한 분위기가 흐른다. 현관문에 달린 후크엔 밀짚모자가 걸려 있고, 넓은 라탄 접시에 담겨 오래된 식탁 위에 놓인 레몬은 마치 19세기 이전 정물화 같다. 리넨을 씌운 소파는 보기 좋게 구겨져 있다. 객실도 차분한 올리브색, 회갈색, 크림색으로 꾸며졌다. 멜 셰퍼드는 월·수·금 저녁마다 농장에서 조달한 재료로 요리를 하는데, 야생버섯 리소토를 올린 치킨 케밥을 내놓을 때도 있다. 멜이 요리를 하는 날은 디너 파티 분위기가 되어버린다. 이곳에 투숙하는 동안 적어도 한 번은 라 프티 콜롱브 La Petite Colombe의 코스 요리를 꼭 맛봐야 한다. 주변 ‘맛집’에 대한 정보가 더 필요하다면 셰퍼드 부부가 귀띔해줄 것이다. lacle.co.za
드 후크, 리틀 카루
De Hoek, Little Karoo
사실 드 후크로 향하는 길을 고상하다고 할 순 없다.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를 반쯤 달렸을 때,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친근하게 구는 개가 돌연 등장해 방문객을 안내한다. 드 후크는 건물의 주인인 그레고리 멜로어가 시골 한복판에 신전처럼 인테리어한 곳이다. 고풍스러운 수납장과 철제로 만든 사주식 침대를 들여놨고, 벽에는 하얀 양피지를 입혔다. 욕실엔 두드려 만든 2인용 양철 욕조와 페이즐리 패턴 커튼이 달린 욕조가 있다. 멜로어와 그의 동료가 공들여 가꾼 정원은 집을 둘러싸는 경관이 된다. 정면 베란다 양옆에는 로즈메리를 심어 향기가 더운 공기를 타고 건물을 둘러싼다. 패션푸르트 덩굴은 야외 샤워실을 타고 오른다. 카루 지역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드 후크는 척박하지만 아름다운 언덕 사이에 들어섰다. 아프리카에 작렬하는 태양빛에 따라 주변 풍경이 시시각각 변한다. 주변 경관과 관계없이 드 후크 안은 디자이너의 취향이 듬뿍 반영됐다. 수영장이 딸린 바의 벽에 테니스라켓과 빈티지 대학 스포츠팀 사진이 벽에 걸렸다. 옥스퍼드 대학의 부유층 사교클럽을 콘셉트로 삼은듯 했다. 쌀쌀한 아프리카의 저녁이 오면 벽난로를 피울 수 있는데, 회반죽으로 칠한 굴뚝에 얼룩진 그을음 자국도 이 때문이다. 주방에 무섭게 생긴 피클이 담긴 병을 봐도 놀랄 필요 없다. 드 후크의 주인은 투숙객에게 집을 통째로 빌려주는데, 패션프루트를 비롯한 갖가지 피클도 포함된다. perfecthideaways.co.za
로버트슨 스몰 호텔, 리틀 카루
The Robertson Small Hotel, Little Karoo
케이프타운에서 두세 시간 거리, 휴양과는 동떨어져 보이는 마을에 엉뚱하게도 빅토리아풍 저택이 있다. 로버트슨 스몰 호텔은 길게 펼쳐진 남아공의 국도에서 빠져나오기 딱 좋은 지점에 있다. 세계 최장의 와인 루트 중 하나이자 리틀 카루의 메마른 땅 위에 펼쳐진 ‘루트 62’다. 침실에는 호텔 이름을 딴 ‘스몰 가이드’가 놓여 있다. 주변에서 즐길 수 있는 활동을 23장의 카드에 정리해둔 것이다. 조식에 곁들일 포도주 고르기, 마르브린 올리브 농장에서 타프나드 시식하기 등 다양하다. 호텔에 앉아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케이프타운의 레코드 레이블 로스틴 레코즈가 선별한 곡이 호텔의 음악 플레이리스트에 올라 있는데, 주변 경관 및 호텔의 분위기에 제법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저녁이 되면 게스트들은 식당에 모여 스프링복(남아프리카산 영양) 요리를 든다. 아직 하루를 마감하기 아쉽다면 베란다에 앉아 인근 와이너리에서 생산한 캡 클라시크 Cap Classique를 한잔하는 것도 좋을 테다.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선선한 해풍과 남아프리카산 캡 클라시크의 조합은 호텔을 찾기까지의 긴 여정을 달콤하게 보상한다. 로버트슨 스몰 호텔은 아직 ‘미지의 장소’에 있다. 알려지지 않은 만큼 기분 좋은 침묵을 독점할 수 있다. 로버트슨 호텔을 종착지로 삼는 여정은 이미 널리 알려진 ‘가든 루트 Garden Route’의 참신한 대안이 될 것이다. therobertsonsmallhotel.com
- 에디터
- Jane Broughton, Fiona Kerr
- 포토그래퍼
- Kate Mcluckie , Greg Cox, Micky Ho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