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구가 꿈을 꿀 시간에 그를 만났다. 정오의 낮잠처럼 달콤하게 부푼 손석구의 여름.
이른 오전에 불러내서 미안해요. 잘 잤나요? 괜찮아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요즘은 6시간 이상을 못 자요. 전에는 8~9시간씩 잤는데.
무슨 소리예요. 아직 삼십 대잖아요. 아녜요. 서른일곱 살이니까 사십 대라 쳐요. 작년만 해도 작품 끝나면 곧바로 다른 작품을 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충전이 필요하다고 느껴요.
오늘 같은 토요일 오전엔 보통 뭐 해요? 자요. 하하.
드라마 촬영하고 있죠? 부담 때문에 잘 못 자고 그러나요? 악몽을 꾼다거나. 촬영 초반에는 그렇죠. 조금 지나고나면 대사 외우다가 나도 모르게 자요. 연극하던 시절에 악몽을 자주 꿨어요. 공연을 하는지도 몰랐는데 갑자기 무대에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거죠. 대사 한 줄도 모르는데, 어떻게 하지? 2시간을 뭐로 채우지? 미치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저도 몰라요. 항상 무대 올라가기 직전에 깼어요. 절벽에서 떨어지는 순간 눈이 번쩍 뜨이는 거랑 같죠.
현실에서 꾸는 꿈은 뭔가요? 요즘은 밸런스를 잘 맞추는 게 목표예요. 일을 잘하면서, 일상도 잘 보내고 싶어요. 촬영에 들어가면 쉴 때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져서 큰일이에요.
혼자 있을 땐 뭐 하나요? 유튜브 많이 봐요. ‘먹방’은 한때 많이 봤고, 댄스 트레이너가 과거 댄스 가수들을 리뷰하는 채널을 즐겨 봐요. 평가가 아니라 리뷰를 한다는 게 좋아요. 또 영화 평론, 농구, UFC 콘텐츠를 보거나 도올 김용옥 선생님을 좋아해서 관련 영상을 찾아봐요.
이전에도 이루고 싶은 다른 꿈이 있었겠죠. 그건 뭐였어요? 캐나다에서 배우 생활을 할 때 장면 하나가 머리 속에 맴돌았어요.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따서 돌아오면 공항에 기자들이 잔뜩 기다리고 플래시가 팡팡 터지잖아요. 그런 환대를 꿈꿨어요. 중학교 때 미국으로 조기 유학을 간 뒤로 외국에서만 생활했어요. 잘돼서 한국으로 오고 싶었죠. 금의환향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으니 어느 정도 꿈을 이뤘어요.
어릴 적 꿈은 뭐였어요? 그때도 배우였나요? 아뇨. 중학교는 대전에서 다녔는데 서울에 있는 대학이 목표였어요. 어른들이 항상 하는 그런 말씀 있잖아요. 적어도 무슨, 무슨 대학에는 가야 한다고.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땐 운동선수가 되고 싶었어요. 타고난 재능은 없지만 노력을 하면 될 거라고 믿었죠.
하지만 대학에서 미술과 영화를 전공했고, 농구 선수가 되기 위해 간 캐나다에서 연기를 공부했다고 들었어요. 진로를 바꾸기는 쉽지 않은데 자신감이 있었나요? 그보다 뭔가 답을 찾으려고 했어요. 십 대 때는 대학에 꼭 가야 한다는 부담에서 도망치고 싶었어요. 그러려면 명분이나 차선책이 있어야 하잖아요. 이거 했다가 안 될 것 같으니까 저거 하면서 도망 다녔어요. 그러다가 투팍에 관한 다큐멘터리 을 보고 생각이 크게 바뀌었어요. ‘이제부터 하고 싶은 건 무조건 해야지.’ 어떤 대사나 장면이 아니라 투팍의 인생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정확히 말하면 이거예요. ‘하기 싫은 것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지.’
그렇게 해서 시작한 것이? 그게 연기죠. 눈치 보지 않고 선택했어요.
연기와 무엇이 잘 맞나요? 내가 가진 감정의 폭을 농구선수로 치면 2미터쯤 될 거예요. 새로운 감정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데 경계를 두지 않아요. ‘남자니까, 사회적 지위가 있으니까 창피해. 이러면 안 돼’ 하는 것 없이 감정의 소통을 즐겨요. 이런 면이 연기와 잘 맞아요.
배우라는 직업은 뭐가 가장 재미있어요? 어렸을 때 아버지가 장난감을 진짜 많이 사줬어요. 아들한테 장난감을 이만큼 사줬다는 게 자랑스러웠는지 거실에 장난감을 줄지어 세워놓기도 하셨어요. 그 모습이 아버지가 장난감을 수집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거랑 비슷해요. 내가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작품을 하나씩 모으는 게 재미있어요.
가장 아끼는 작품은 뭔가요? <최고의 이혼>이 유독 마음이 가요. 이 작품을 통해 개인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이장현’을 연기하면서 성격이 전보다 밝아지고 사람들을 만나는 태도가 바뀌었어요. 또 큰 역할을 맡아 자신감이 생겼어요. 산을 오를 때 처음은 힘들지만 어느 정도 이르면 적응이 되잖아요.
이장현은 어떤 남자라고 딱 잘라서 말하기 힘들어요. 천진한 면도 있고, 안쓰럽기도 하고, 바람을 피우는 나쁜 놈이기도 했어요. ‘나만의 답을 찾는 남자’라고 생각하면서 연기를 했어요. 그 친구의 문제라면 뭔가를 찾고 싶지만 무의식적으로 그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어요.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에서 갑자기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된 환경부 장관을 보좌하는 비서실 선임행정관 역을 맡았어요. 그는 어떤 남자인가요? 한마디로 부러지기 쉬운 남자예요. 드라마는 국회의사당이 폭탄 테러 공격을 받아 붕괴되면서 시작해요. 하루아침에 믿고 지지했던 사람들이 사라지고 짊어져야 할 짐이 늘어난 거죠. 그런 버거운 상황에서도 하소연을 하거나 힘든 티를 내지 않으려는 캐릭터예요. 이런 사람일수록 부러지기 쉬워요. 휘어질 줄 모르니까.
기회가 주어진다면 킹과 킹메이커 중에서 어느 쪽을 택할 건가요? 킹메이커보단 킹. 일단 해보는 거죠.
앞으로 어떤 역할을 꼭 해보고 싶어요? 음, 그런 생각은 잘 하지 않아요. 연출을 하지 않는 이상 아무리 훌륭한 배우라 하더라도 주어진 캐릭터를 연기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 대신 내가 대본을 써서 해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긴 해요.
어떤 거죠? 써놓은 이야기들이 꽤 있는데 전부 다 가족 이야기예요.
왜 가족 이야기만 써요? 경험을 옮겨 쓰는데 내가 깊이 있게 다룰 수 있는 주제는 가족밖에 없어요. 잘 모르는 정치, 기업 이야기를 쓸 수는 없잖아요.
손석구의 일상을 다큐멘터리로 옮기면? 굉장히 부산스러울 거예요. 하나를 집중해서 하지 못해요. 집에서 영화를 본다고 하면 음악도 켜놓고 유튜브도 틀어놓고 게임도 해요. 남들 다 자는 시간에 잠 못 자고 괜히 냉장고를 열어본다거나.
남들은 잘 모를 것 같은 이야기도 있나요? 캐나다에서 유학을 하면서 식당 주방에서 접시닦이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별의별 일들을 다 봤어요. 이민자들, 시민권 없는 자들의 서러움도 많았고요. 그 때의 경험들을 쓴다면 식당을 배경으로 한 블랙 코미디가 나올 것 같아요.
한국에 온 지 얼마나 됐죠? 10년 가까이 됐어요.
언제 한국 사회에 안착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한국에 오자마자 느꼈어요. 그 전까진 한국에 자주 오지 못했어요. 오랫동안 외국 생활을 하면서 나는 미국에 사는 사람이고, 정착을 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한국에 오니까 딱 느껴졌어요. 내가 착각을 했구나, 난 이방인이구나. 미국에서 물건을 사고 계산을 할 때조차 알게 모르게 눈치를 봤고, 그 기분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았던 거예요.
일은 어때요? 배우로서 안정감을 느끼나요? 올해부터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지금 촬영 중인 드라마에서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고 있어요. 영화 <뺑반>에서 함께한 준열이를 보면서 많이 배웠어요.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경험으로 따지면 선배인데, 현장을 놀이터처럼 즐기는 모습에 놀랐어요. 언제쯤 현장이 편해질 수 있을지 고민했는데 준열이를 통해 어느 정도 답을 찾았어요.
배우 손석구의 꿈은 뭔가요? 스타는 아니고 멋있는 배우가 되는 거예요.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사람들이 ‘배우’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배우는 이래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원하는 모습요. 거기에서 벗어나 정형화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물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에서 그래야겠죠. “손석구는 다른 배우들하고 좀 다르네”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믿는 구석이 있나요? 그게 바로 나예요. 최대한 편안하게 손석구란 사람을 보여주려고 해요. 연기를 할 때도 나를 숨기지 않아요. 촬영하기 전과 후의 모습이 모호하게 느껴졌으면 좋겠어요. 일부러 뭔가를 만들어서 보여주면 금방 식상해져요. 시간이 흐르면 나라는 사람도 달라질 테니 계속 새로운 것들을 보여줄 수 있어요. 도올 선생님이 말했어요. 항상 새로움이 중요하다고.
그게 손석구의 장점이라면, 약점은 뭔가요? 쑥스러움을 많이 타요. 그런데 쑥스러워하지 않으려고 애쓰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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