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만난 현대자동차

2019.07.18GQ

베니스 비엔날레, 테이트 모던 그리고 아트 신의 한복판에서 현대자동차를 만나는 건 어렵지 않다.

© Hyundai Motor Company ARTLAB/Andreas Meichsner

1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매 순간이 예술적으로 연출된다.

© Atul Dodiya

2 현대자동차와 테이트 미술관은 글로벌 연구 파트너십을 맺었다. Atul Dodiya Meditation (with open eyes) 2011 Tate Purchased with funds provided by Tate International Council and Tate Patrons 2014

Hyundai Commission: Tania Bruguera © Ben Fisher

3 <현대 커미션: 타니아 브루게라>전.

4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Hyundai Commission: Tania Bruguera © Ben Fisher

5 매년 ‘현대 커미션’ 전시가 열리는 테이트 모던의 터바인 홀.

© Otobong Nkanga

6 ‘현대 테이트 리서치 센터: 트랜스내셔널’은 전 지구적 관점으로 문화, 예술, 역사를 조망하는 연구를 진행한다. Otobong Nkanga Wetin You Go Do? 2015 Tate Purchased with funds provided by the Africa Acquisitions Committee 2017

7 <MMCA 현대차 시리즈 2018: 최정화-꽃, 숲>전에 설치된 최정화 작가의 작품.

© Hyundai Motor Company ARTLAB/Andreas Meichsner

8 조원홍 현대자동차 부사장.

아트 러버들의 잔칫집. 제58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가관 전시가 진행 중인 자르디니 공원에는 현대 예술의 풍광을 받아들이려는 사람들이 긴 행렬을 이뤘다. 그들은 대략 세 부류로 나눌 수 있었다. 수상버스인 바포레토를 타고 물의 도시 옆구리를 휙 돌아왔거나, ‘흥미로운 시대를 살아가길’이라는 주제로 본 전시가 진행 중인 아르세날레를 먼저 찍고 왔거나, 나처럼 수세기의 역사가 엉켜 있는 골목을 헤쳐 걸어왔거나. 조금 더 세분화하면 작가, 미술관 관계자, 큐레이터, 컬렉터, 평론가, 기자, 인플루언서로 정렬할 수 있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다른 배경과 다른 언어를 지녔지만 얼굴에서는 똑같은 설렘의 기운이 묻어났다. 124년 역사의 베니스 비엔날레라는 단어에는 어떤 동경이 담겨 있다. 국제 미술계의 창의적 기운과 변화의 흐름이 한데 모이는 바다이자 문화 예술 지형도에 생동과 소란을 일으키는 진원지. ‘세계 최고의 미술 축제’라는 뻔하지만 대체 불가한 타이틀과 함께 2년마다 돌아오는 베니스 비엔날레는 예술의 힘을 맨눈으로 체험할 수 있는 가장 틀림없는 방법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궤도를 따라 미술계 관계자와 관객들이 철새 떼처럼 베니스로 모여든다.

흙먼지가 가볍게 둥둥 떠다니는 햇살, 그늘을 드리운 나무, 듬성듬성 자리한 벤치만 놓고 보면 유럽의 여느 공원과 별반 다르지 않은 자르디니 공원은 ‘미술계의 올림픽’으로 통한다. 이곳에는 29개의 국가관이 둥지를 틀고 있다. 각국에서 자국의 미술을 소개하며 국제적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파빌리온 공간들이 나무 사이로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여기에는 한국관도 있다. 1995년 많은 나라의 부러움 속에 한국은 마지막 주자로 영구 국가관 대열에 합류했다. 올해 한국관의 전시는 김현진 예술감독이 맡았고, 대표 작가로 남화연, 정은영, 제인 진 카이젠이 참여했다. 세 명의 작가는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라는 제목으로 ‘젠더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영상 작업들을 선보였다. 정은영은 긴 시간 천착해온 여성 국극을 바탕으로 퀴어 공연의 상상적 계보를 구축했다. 제인 진 카이젠은 공동체에서 배제된 딸의 이야기인 ‘바리 설화’를 재해석했고, 이를 날실로 삼아 사회로부터 감춰지거나 버림받은 여성들의 목소리를 영상으로 꿰어냈다. 남화연은 식민주의, 제국주의, 분단이라는 이데올로기의 고난 속에서 솟아난 무용가 최승희의 춤과 삶의 궤적을 조명한다.

한국관 전시는 마음을 기울이게 하는 주제와 질문을 던지는 전개 방식이 주목을 받았다. 꽤 많은 외국인 관객들이 한국적인 내러티브와 긴 러닝 타임에도 골똘히 감상하는 모습이 인상적인 전시 풍경이었다. 작품 외적으로는 예년과 달리 영상 작품으로만 전시가 채워지고, 예술감독과 참여 작가 모두 여성이라는 점이 이목을 집중시켰다. 꽤 고무적인 일이다. 더 넓게 보면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는 처음으로 국가관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의 남녀 비율이 대등하다. 아르세날레에서 열리는 본 전시는 여성 작가의 수가 절반을 넘었다. 예술계에 불고 있는 긍정적인 변화를 어떤 의심도 없이 가늠하게 하는 대목이다.

한국관 전시는 또 다른 존재의 예술적 아이덴티티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한국관 입구에 적힌 크레디트에서 현대자동차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현대자동차는 2015년부터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을 후원하고 있다. 비엔날레에 자동차 브랜드가? 충분히 가능한 조합이다.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시대고, 예술계와 연결고리를 가진 브랜드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현대자동차라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아진다. 아트 신에서 현대자동차는 얼굴을 비추는 수준이 아니라 꾸준하게 굵직한 행보를 보여왔다. 최근 6년 가까이 빅 프로젝트를 선보이며 미술계를 풍성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현대 미술이 이룬 의미 있는 성장에 동참했다. 한국관 후원 외에도 현대자동차가 국내외 미술계와 창조적 협력을 이룬 흔적들은 쉽게 눈에 띈다. 영국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과 맺은 장기 파트너십 ‘현대 커미션’, 미국 서부 지역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LA 카운티 미술관을 후원하는 ‘더 현대 프로젝트’, 국립현대미술관과 함께 국내 중견 작가의 대규모 기획전을 지원하는 ‘MMCA 현대차 시리즈’ 등이 대표적이다. 미디어 그룹 블룸버그와 함께 제작하는 현대 미술 작가와의 인터뷰와 아트+테크놀로지 영상 시리즈도 문화 예술계에 명확하게 각인되어 있다.

국제 미술계에서 현대자동차는 흥미로운 존재다. 자동차 브랜드가 예술 영역의 한복판에 뛰어들어 세계적인 미술관들과 창조적 협업을 이뤄내고 지속적으로 이슈를 터뜨리며 다음 행보를 기대하게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는 2014년 영국 테이트 모던과 글로벌 마케팅 파트너십을 체결하면서 가히 파격적이고 급진적인 행보를 알렸다. 무려 11년이라는 후원 기간을 약속했고, 테이트 모던의 상징이자 초대형 전시 공간인 터바인 홀에서 매년 한 명의 작가를 선정해 대규모 전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했다. 멕시코 출신의 세계적인 조각가이자 개념미술가인 아브라함 크루즈비예가스를 시작으로 필립 파레노, 슈퍼플렉스, 타니아 브루게라 등 현대 미술사의 주요 챕터에 기록된 작가들에게 터바인 홀이 맡겨졌다.

“우리가 아트 마케팅을 한다고 했을 때 “현대자동차가 왜?”, “단순 후원만 하나 보네”라는 반응이 많았다. 그동안 월드컵, 올림픽 등 스포츠 쪽으로 마케팅을 해왔으니까. 스포츠 마케팅을 통해 전 세계에 현대자동차라는 브랜드를 알리는 데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그런데 한계도 봤다. 인지도는 굉장히 높아졌지만 사람들이 브랜드를 사랑하고 존경할 수 있는 이미지가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고민이 됐다.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을까?’ 왜냐면 자동차 시장에서 기술의 격차는 굉장히 줄었다. 고객 입장에서 어떤 브랜드의 차가 성능적으로 더 뛰어나다고 판별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러다 보니 브랜드에 대한 이미지가 선택을 좌우하게 됐다.” 아트 프로젝트들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조원홍 현대자동차 부사장의 설명이다.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개막식에 참석한 그에게 현대자동차가 아트를 이해하는 방식이 예술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들을 수 있었다.

현대자동차가 미술계의 파트너가 된다는 건 분명 큰 결심이었다. “소위 존경받는 기업들은 돈만 잘 벌지 않는다. ‘코퍼레이트 시티즌십(Corporate Citizenship)’이라고 해서, 기업도 시민 정신을 갖고 사회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추세다. 거기에 착안해, 우리는 예술 생태계를 지원하기로 결심했다. 예술은 라이프스타일을 풍요롭게 만들 뿐만 아니라 ‘휴머니티(Humanity)’, 즉 인간의 고유성을 본질적으로 탐구하고 이에 대한 질문을 세상에 던진다. 기업도 예술을 통해 창의성과 혁신성을 키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감성적으로 사람을 이해하고 그에 걸맞은 경영 활동을 할 수 있기에 과감하지만 꼭 필요한 긴 호흡의 장기 파트너십들을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테이트 모던과 11년이란 장기 파트너십을 맺었고, LA 카운티 미술관도 2015년부터 2024년까지 10년을 지원하게 됐다.”

현대자동차가 국립현대미술관, 테이트 모던, LA 카운티 미술관과의 파트너십을 발표했을 때 어떤 사람들은 일시적 이벤트에 그칠 것이라 여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트 신에서 현대자동차의 실질적인 존재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거듭 확장됐다. 그 시원한 발걸음은 어떤 양식 하나로 규정하기 어렵다. 현대자동차가 선보이는 아트 후원 활동의 면면을 보면 알 수 있다. MMCA 현대차 시리즈가 이불, 안규철, 김수자, 임흥순, 최정화, 올해는 박찬경 등 한국 중견 작가를 지원한다면, 예술과 기술의 융복합을 선도해온 LA 카운티 미술관의 ‘더 현대 프로젝트’는 아트와 테크놀로지의 융합과 한국 미술사 연구 분야를 후원한다. 2016년부터 이어오고 있는 VH 어워드는 국내 신진 미디어 작가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가능성과 재능을 발견하는 취지이며, 매년 두 명의 중국 큐레이터를 선정해 기획의 기회를 주는 현대 블루 프라이즈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프로젝트의 다채로운 성격은 단순히 예술을 후원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미술 생태계 존립을 위한 큰 그림으로 연결된다. “처음부터 미술품을 수집하는 컬렉션을 하지 않기로 선언했다. 컬렉션도 미술계를 지원하는 기능을 하지만, 그보다 미술 생태계 전체를 지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미술관, 큐레이터, 작가, 평론가, 학술 기관 등이 균형을 이뤄 함께 발전해야 예술계가 지속 성장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현대자동차의 행보도, 조원홍 부사장의 이야기도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중국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현대 블루 프라이즈는 지역을 더 넓히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작가와 마찬가지로 큐레이터에게 기회와 플랫폼을 제공하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다. 또 평론가와 작가를 연결해주는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다. 이를 통해 새로운 미술 담론들을 만들어내는 일 또한 미술 생태계에 도움을 주는 시도라고 생각된다.” 이쯤 되면 현대자동차가 예술 후원 활동의 창의적인 방법을 찾았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올해 1월 현대자동차의 아트 프로젝트는 또 한 단계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테이트 미술관과 ‘현대 테이트 리서치 센터: 트랜스내셔널’ 설립을 발표했다. 후원하고, 발굴하고, 기회를 제공하는 기존 지원 프로그램과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2024년까지 테이트의 전문성과 다양성을 기반으로 예술, 문화, 역사를 전 지구적 관점에서 조망하는 연구를 진행하려는 시도다. 또한 세계 각지의 미술관과 연구 기관이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해 미술사 정리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계획이다. 여기에는 깊은 의미와 명분이 담겨 있다. “지금까지 서구 중심으로 미술사가 연구되었고, 그들의 관점에서 담론이 해석되어 방향성이 제시되었다. 이런 경향에서 벗어나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 등 모든 대륙의 예술, 문화를 입체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결국에는 휴머니티에 대한 연구다. 국적, 인종, 언어, 성별 등 지리적, 문화적 경계 때문에 인간 존엄성의 가치가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리서치 센터의 연구는 인간에 대한 보편적 이해를 바탕으로 존엄성의 본질을 찾아내 그 경계를 허물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조원홍 부사장의 설명은 동시대적인 미학과 역사성을 재정립하겠다는 의지의 발현으로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현대자동차와 예술가의 이미지가 하나로 겹쳐졌다. 예술이라는 자장 안에서 의문을 던지고 새로운 담론을 생산하고 미래적 가치를 모색하려는 태도는 곧 행동하는 예술가의 자질이기도 하니까. 더 흥미로운 건 ‘감성이 이성보다 중요해지면서 기술자는 예술가가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의견이었다. “기술자를 위한 기술이나, 기술을 위한 기술은 의미가 없다. 기술은 사회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 우리의 경험과 삶을 풍만하게 만드는 기술이 필요한 기술이며, 그게 바로 인간애를 추구하는 기술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만드는 자동차는 인간의 경험을 확장시키는 기술이다. 만약 엔지니어가 예술가와 소통하고 그들의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좋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이 말은 어떤 기대와도 연결된다. 예술가의 상상이 기술자의 또 다른 상상으로 이어진다면 그 기술을 쓰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예술을 만나게 될지 모른다는 기대감. 이 믿음이 틀리지 않길 바란다.

현대자동차의 타임라인은 LA를 거쳐 런던을 겨냥할 예정이다. 지난 6월, LA 카운티 미술관에서 <선을 넘어서: 한국의 서예>전이 열렸다. ‘더 현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4년간 고대에서 현대까지 아우르는 광범위한 조사와 연구 끝에 선보였다. 이렇게 대규모 한국 서예전이 해외에서 열린 건 처음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미술관이 한국 서예사의 의미를 되짚어본다는 건 그들에게나 우리에게나 의미가 있는 일이다. 오는 10월 영국의 테이트 모던에서는 ‘현대 커미션’ 전시가 열린다. 터바인 홀의 다섯 번째 주인공으로 미국 출신의 카라 워커가 선정됐다. 검은 종이를 오려 흑인 노예사를 그림자 연극처럼 만든 벽화 작품으로 알려진 작가는 드로잉, 벽화, 대형 조각 등으로 현대 사회의 인종, 젠더, 폭력 문제를 환기시키는 작업을 해왔다. 5층 높이의 초대형 공간에 어떤 시각적 이미지와 이야기로 사유의 호흡을 나눌지 주목된다. 현대자동차의 예술 프로젝트들을 살펴보면 전면에 브랜드나 자동차의 존재를 내세우지 않는다. 예술 본연의 가치를 전달하는 연결고리 역할을 충실하게 하고 있다. 경계를 넘어서길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지녔지만 이를 함부로 남발하지 않는다. 훌륭한 동반자로서의 덕목을 다시금 생각한다.

    에디터
    김영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