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롭게 역대급 블록버스터 드라마를 표방한 <아스달 연대기>는 기이할 정도로 초라해 보인다. 아무리 봐도 좀처럼 진짜라는 믿음을 갖기 어렵다.
지난 7월 7일, <아스달 연대기> 12화가 방영됐다. 파트 2까지의 방영이 끝났다고 했다. 13화를 비롯한 나머지 6화 분량은 파트 3에 해당하며 이는 9월 7일부터 방영된다고 한다. 물음표가 생긴다. 12화를 연이어 보여주고, 두 달 뒤에 6화를 공개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이는 일종의 시즌제 드라마 형식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왜 파트 1과 파트 2는 분리 편성되지 않았고, 파트 3만 따로 하는 걸까? 지난 7월 9일, <아스달 연대기>를 연출한 김원석 PD의 서면 인터뷰 답변이 포털사이트의 연예면 기사에 업데이트됐다.
여기에는 <아스달 연대기> 파트 3가 9월에 분리 편성된 이유도 포함돼 있다.
“모든 촬영은 첫 방송 시작 전에 종료됐으며, 현재는 파트 3의 후반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그러니까 남은 6화 분량의 방영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종의 유예기간이 필요했다는 의미다. 김원석 PD는 9월에 방영될 파트 3에 대해 이와 같이 설명했다. “미드로 본다면 시즌 2의 시작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의아한 답변이다. <아스달 연대기>는 총 18부작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기획 단계부터 시즌제 제작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고, 올해 초 시즌제 제작을 확정했다는 소식도 전해졌지만 정말 가능한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그런데 불과 6화 분량밖에 남지 않은 파트 3를 시즌 2의 시작이라 해도 무방하다는 김원석 PD의 답변은 뭔가 본질적인 문제를 회피하고 있거나 그럴듯한 변명을 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의심만 부추기는 것 같다.
일단 <아스달 연대기>의 파트 구별은 시청자 입장에서 딱히 필요한 정보가 아니다. 실제로 방영되는 드라마상에서는 각 화에 대한 인장만 찍힐 뿐, 그 상위 단계인 파트 구별에 대한 정보가 부재하다. 이러한 파트 구별은 시청자보다 제작진의 편의를 위한 설정처럼 보인다. 방영 시점까지 후반작업을 완료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이는 분량 일부를 분리해 편성하는 데 용이한 구조를 만들었다는 것 말고는 쓸모가 없어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파트 3가 시즌 2의 시작이라 봐도 무방하다는 김원석 PD의 말은 무색하게 들린다. 100퍼센트 사전 제작 드라마로서 방영 시점을 맞추는 데 실패했다는 것을 무마하는 언어 이상의 가치가 없다.
역대 드라마 중 최고로 꼽히는 5백40억원의 제작비, <성균관 스캔들>, <미생>, <시그널>, <나의 아저씨>를 연출한 김원석 PD와 <선덕여왕>, <뿌리깊은나무>, <육룡이 나르샤>를 집필한 김영현, 박상연 작가의 참여, <신과 함께>의 특수효과를 작업한 VFX 회사 덱스터 스튜디오의 참여 그리고 <태양의 후예> 이후 3년 만에 드라마에 복귀하는 송중기를 비롯해 장동건, 김지원, 김옥빈 등 초호화 캐스팅까지, <아스달 연대기>는 제작 전부터 큰 화제를 부르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떤 드라마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스달 연대기>는 상고시대를 배경에 둔 작품이라 했다. 구체적으론 “시원 설화인 단군설화를 재해석하고 판타지적인 설정을 첨가하여, 가상의 땅 아스에서 처음으로 ‘나라’라는 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각기 다른 모습의 영웅들을 통해 그리려 한다”는 것이 제작진이 설명한 기획 의도다.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좀처럼 알 수가 없다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닐 것 같았다.
지난 6월 1일, <아스달 연대기> 1화가 방영된 이후 SNS를 비롯한 온라인상에서는 갖은 논란이 일었다. <왕좌의 게임>을 표절했다는 주장과 근거가 될 만한 장면들을 매칭시켜 비교하는 이미지가 다양한 채널을 통해 공유되고 또 공유됐다. 드라마를 본 사람은 본 사람대로, 보지 않은 사람들은 보지 않은 사람대로 작품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2화, 3화가 진행돼도 작품에 대한 평가는 호전되지 않았다. 그럴 만했다. <아스달 연대기>는 극 초반부터 상고시대라는 불분명한 시대성을 바탕에 둔 판타지라는 설정을, 다양한 세계관과 정체불명의 시대상들이 덕지덕지 붙어서 완성된 거대한 아류의 세계관으로 왜곡했다. 동서양의 경계나 특징도 없이 무분별하게 뒤엉킨 듯한, 어디선가 본 것만 같은데 하나같이 진짜 같지 않은 것들이 무차별적으로 난무하는 기이한 욕망의 덩어리를 보고 있다는 느낌. <아스달 연대기>는 몸집이 지나치게 커질수록 텅 빈 구멍 또한 더 크게 드러난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설 그 자체였다.
<아스달 연대기>의 초반부에서는 작품의 배경을 주저리주저리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적지 않아서 쿠키 영상이라는 형식을 도입해 부연한다. 그리고 그런 과정이 어느 정도 정리됐다고 판단한 이후부터 캐릭터들의 욕망에 얽힌 서사에 집중한다. 그 지점부터는 제법 이야기의 모양새가 갖춰지는 인상이다. 좀처럼 매력이 없는 세계의 규모를 보여주느라 진땀을 흘리던 작품이 비로소 욕망으로 얽히고설킨 캐릭터들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면서 점차 현실에 두 발을 디딘 이야기라는 인식을 주고, 비로소 캐릭터들의 감정을 끌어올리는 인상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이야기가 왜 정체불명의 상고시대를 배경으로 두어야 하는지, 동시에 상고시대라는 것이 왜 기시감이 명백한 표절 의혹들로 점철된 미장센으로 범벅이 된 껍데기를 두른 채 전시되고 있는지, 더욱 의문이 든다. 한류스타를 캐스팅한 5백40억 규모의 드라마가 이처럼 허술하게 건축될 수 있다는 것이 어떤 면에선 신기해 보인다.
<아스달 연대기>에 등장하는 세 종족의 이름만 놓고 보자. 뇌안탈, 이그트 그리고 사람.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뇌안탈과 이그트까지는 세계관이 연결된 언어 같은데, 사람은 왜 사람인가. 이건 뭐랄까. 한인 교포가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 쓸 때 나오는 그런 우스꽝스러움이 느껴진다면 지나친 비유일까? 뇌안탈과 이그트라는 용어는 <아스달 연대기>가 구축하고 싶은 판타지 세계관의 근거처럼 보인다. 그런데 사람이라니, 판타지의 세계관을 건축했다고 자부하던 드라마가 난데없이 현실적인 인테리어로 감상의 중력을 분산시키는 느낌이랄까. 만약 뇌안탈과 사람은 대립적인 존재이므로 세계의 관념이나 감각을 철저하게 분리시켰다고 한다면 이그트는 왜 이그트인가. 이그트가 뇌안탈과 사람의 혼혈을 의미하는 단어라면 뇌안탈이라 발음되는 언어의 세계와 사람이라 발음되는 언어의 세계 그 중간계에 놓인 언어의 세계 속에서 태어난 이름이어야 하지 않았을까?
<아스달 연대기>는 자기 자신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정교하게 설계되고 창작된 세계관이 아니라 그럴싸해 보이는 무언가를 잔뜩 늘어놓고, 정작 무엇을 집었는지 망각해버린 듯한 결과처럼 보인다. 세계관 자체가 독자적인 매력을 설득하지 못하는 건 그래서다. 그리고 세계관이 매력적이지 않으니 작품 자체의 매력 역시 허전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스달 연대기>를 보는 시청자들이 존재하는 건 극을 끌어가는 캐릭터들, 즉 배우들의 고군분투를 보는 재미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12화까지 전개되는 과정에서 유일하게 회복되는 건 캐릭터들의 뚜렷한 욕망과 그 욕망들이 뒤엉키며 발생하는 호기심뿐이다. 그나마 그렇다.
“시청자에게 익숙하지 않은 장르라 어느 정도 호불호가 갈릴 것은 예상했습니다.” 김원석 PD의 변을 듣고 있으면 헷갈린다. 호불호가 갈릴 것이란 예상에 5백40억원 규모의 제작비를 투자하는 게 마땅할까? 냉정하게 말하자면 <아스달 연대기>는 익숙하지 않은 장르라 호불호가 갈리는 게 아니다. 장르적으로 매력적인 비전을 보여주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불호가 더 확실한 것뿐이다. 5백40억원을 투자한 블록버스터 드라마의 태도는 선명해야 한다. 큰돈을 들이는 만큼 보다 면밀하게 시청자들의 심리를 사로잡으려는 싸움을 벌여야 한다. 으리으리해 보이는 세트들이 기이할 정도로 초라해 보이는 건 그럴듯한 무언가 이상의 의미를 전달하지 못하는 병풍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진짜 같지 않은 세계, <아스달 연대기>를 거대한 아류로 만든 건 결국 대작이라는 욕망을 채울 수 있는 야심의 부재다. 모든 스케일은 디테일을 통해 완성된다는 것. 그걸 완벽하게 간과하고 있다는 교훈. <아스달 연대기>가 남긴 일말의 미덕이 있다면 아마 그 정도일 것이다. 무려 5백40억원짜리 교훈 말이다.
글 / 민용준(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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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스달 연대기>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