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torial

혜리 "맛있는 걸 나눠 먹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2019.08.21GQ

누구에게나 서슴없이 다가가 말을 걸고, 호탕하게 웃는다. 해야 할 말은 하고, 하고 싶은 건 한다. 직시해야 할 것 앞에서 도망치지 않는다. 혜리는 혜리를 믿으니까.

태슬 디테일의 원피스, 엠미쏘니 at matchesfashion.com 부츠, 자라.

배색 원피스, 메종 마르지엘라 at YOOX.

화이트 블라우스, 스커트, 모두 잉크. 베레모, 엠포리오 아르마니. 슈즈, 롱샴.

퍼플 컬러 시스루 톱, 문텐. 스커트, 잉크. 그린 슈즈, 푸시버튼. 반지, 모두 헤이. 브라 톱은 스타일리스트의 것.

슬립 원피스, 핑크 배색 트렌치코트, 모두 이케.

도트 원피스, 메종 마르지엘라 at YOOX. 슈즈, 자라. 레이스 글로브, 더퀸라운지. 반지, 에스실.

시스루 레이스 톱, 문텐. 원피스, 블리다. 레이스 네크리스, 더퀸라운지. 골드 네크리스, 헤이. 플라워 네크리스, 자라. 반지, 에스실.

블랙 시스루 탑, 스커트, 모두 넘버21. 헤어피스, 이어링, 모두 더퀸라운지. 브라 톱은 스타일리스트의 것.

촬영은 재미있었어요? 네! 자유롭고 엉뚱하게 찍으니까 신났어요. 안 해본 콘셉트라 걱정도 됐는데, 막상 찍으니 다들 박자가 착 맞았던 것 같아요. 아, 가시는 거예요? 수고 많으셨어요! 안녕! 안녕! 빠빠이!

오늘 느낀 건데, 혜리 씨 목청이 상당히…. 우렁차죠? 하하하. 발성이 이렇게 좋으니!

촬영 내내 웃고 장난치고, 어디서 그런 기운이 나와요? 먼저 다가가 말을 건네고 웃는 것도 그만큼 에너지를 쓰는 일인데. 흠, 그렇구나. 제가 낯을 안 가려서. 전 그걸 에너지를 쓴다고 생각 안 해요. 그냥, 성격이에요. 제가 이렇게 하면 상대도 업되고, 저도 텐션이 오르거든요. 일할 땐 더 그래요. 오늘 촬영만 봐도, 다들 저를 중심으로 일하고 있잖아요. 카메라가 꺼진 순간까지 일하는 느낌을 주고 싶지 않아요.

유튜브를 보니 같이 일하던 스태프들과 친구로 지내던데요. 연예인 친구도 많고. 친구가 많죠? 네. 그런데, 그게 단데. 저는 어, 친구, 친구라는 건….

친구는 좀 다른 의미인가요? 네, 좀 다른 의미. 일할 때 외향적으로 하는 건, 서로가 편했으면 하니까. 하지만 친구라는 건 좀 더 깊은, 한 번 더 들어가야 되는 거라서,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소수의 친구들을 자주 만나죠.

혜리와 친구가 되는 건 어떤 사람이에요? 곁에 두고 싶은 사람과 되고 싶은 사람이 같아요. 솔직한 사람.

왜 솔직함이 중요해요? 작위적인 게 싫어요. 예능을 찍을 때 이거 모르는 척 연기해줘요, 하면 그러기 싫어요. 가짜 같잖아요. 속이는 것 같애, 남들을.

방송에서도 지금도 혜리는 늘 혜리 같아요. 전 방송할 때 실제 저랑 거의 비슷해요. 그래서 위험하기도 하죠. 꾸미지 않은 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데 그걸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정말 저라는 사람을 싫어하는 거잖아요.

그런 생각이 들 때 어떻게 이겨냈어요? 처음엔 상처 받고 그랬는데,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뭐 싫어하면 어때? 싫어해. 나도 너 싫어. 세상 모든 사람이 절 좋아할 순 없는 거잖아요? ‘싫어할 테면 싫어하라지!’라고 생각하면 끝나요. 진짜로요.

직설적인가요? 네. 말하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간 끌지 말고 바로. 묻어두면 감정이 배가 되거든요. 대신 뒤끝이 없고, 좋은 것도 바로바로 말해요. 좋은 건 말을 안 해주면 모르잖아요.

고집 세죠? 엄청 세죠.

그런 혜리가 좋아요. <놀라운 토요일>의 ‘도레미 마켓’에선 혜리 씨가 목청껏 자기 의견을 내세우면서 남자 패널들과 티격태격할 때가 제일 재미있거든요. 거기선 제가 대장이니까. 하하하. 제가 승부욕이 되게 세거든요. 어떤 미션이 있으면 그걸 해내려고 엄청 노력해요. 그리고 출연자, 피디님, 작가님 다 너무 좋아요. 저 빼고 천사예요. 저는요? 대장이죠.

학창 시절엔 반장, 전교 회장을 도맡았다면서요? 그런 거 안 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거든요. 감투 안 쓰면 하늘이 무너지는 줄. 하하하. 반장 선거할 때 보통은 친구한테 추천해달라고 하잖아요. 전 손들고 제가 할게요, 나 뽑아, 나 뽑아줘, 해가지고 늘 했어요. 왜냐면 저처럼 적극적인 친구가 별로 없으니까.

왜 그렇게 적극적으로 했어요? 욕심이 많았어요. 신문부, 방송부도 했고, 하고 싶은 건 다 했어요. 그래서 뭐만 뽑는다 하면 “음, 어디 스케줄을 볼까, 할 수 있나” 이러면서. 하하하. 저는 누군가, 어디에선가 늘 저를 필요로 하기를 바랐던 것 같아요.

어릴 땐 어떤 애였어요? 장십리 살 땐 개구쟁이 어린애였죠. 새까매가지고, 삐쩍 말라가지고, 버찌 따먹고, 산에서 썰매 타고. 그러다 중학교 때 서울에 오니, 이런 게 문명이군! 싶었어요. 하하하. 그리고 저희 집이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하지만 제가 단칸방에 산다고 해서 그게 상처가 되거나 누군가를 탓한 적은 없어요. 엄마 아빠가 그러고 싶어서 그러셨던 건 아닐 거 아녜요? 그분들은 그분들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그런 게 상처가 되거나 우울하진 않았어요. 우리 집은 이렇구나, 너네 집은 그렇구나. 그런데 나는 잘될 거야. 그런 걸 믿으면서 살아왔어요.

되게 귀한 거잖아요. 자신을 그렇게 믿을 수 있는 거. 전 지금도 제가 잘될 걸 알고 있어요. 언젠가 연기대상 받을 거예요. 꿈을 크게 가져야지. 하하하.

그런 믿음은 어디서 오는 것 같아요? 음…, 그냥, 아시잖아요. 하하.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만큼 돌아올 거라는 생각이죠. 열심히 하는 것과 잘하는 게 맞물리면 더 좋겠지만, 아직 부족하지만, 열심히 하다보면 그런 순간이 올 거라 믿어요.

그런 순간이 혜리에게 두 번 찾아왔었죠. <진짜 사나이>와 <응답하라 1988>. ‘백억 소녀’라는 별칭까지 생겼던 때. 그땐 실감을 잘 못 했어요. 다양한 연령층에게 사랑을 받아서 순간순간이 기뻤지만, 지금 커리어하이를 찍었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했죠.

<응답하라 1988> 이후, 조급한 마음이 들기도 했나요? 조바심보단, ‘어? 어라?’ 이랬던 것 같아요.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스스로에게 물었죠.

스스로 돌아보고 나아가는 시간이 됐을 수도 있겠어요. 맞아요. 그렇게 되는데 3년 걸렸어요. 돌아보고, 복기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 큰 사랑을 받다가 아쉬운 부분이 생겼을 때, 그걸 받아들이는 건 굉장히 두려운 일이었어요. 회피하니 더욱 걷잡을 수 없어졌고요. 그래서 하나씩 돌아보자, 받아들여보자, 생각했어요. 그러고 나니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힘이 생기더라고요. <응답하라 1988>도 했는데, 내가 또 못 하겠어?! 하면서. 어렵지만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무섭고 힘들지만 꼭 필요한 거라고, 요즘 멤버들이랑 자주 얘기해요. 그렇게 스스로를 돌아보는 법을 배웠고, 이 순간을 후회하지 않게 최선을 다하는 중이에요.

곧 방영할 <청일전자 미쓰리> 리딩 영상을 보고 왔어요. 말단 경리에서 졸지에 대표가 된 이선심은 그간 혜리가 보여준 굳센 청춘의 표상 같던데. 좀 달라요. 선심이는 약한 아이예요. 유연하거나 강하지 않죠. 사람들이 선심이를 보면서 저런 친구도 저렇게 성장하는구나, 이겨내는구나, 느끼고 용기를 얻을 수 있도록 감정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혜리 씨가 이 역할을 잘해낼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또래 스태프들과 친구가 되는 사람이니까. 선심이가 저와 동갑인 스물여섯 살인데,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사회 초년생의 나이잖아요. 감독님이 그랬어요. 혜리로 생각하지 말고 막내 스태프로 생각하라고. 또래 스태프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에겐 세상이 너무 큰 거예요. 온전히 내 힘으로 이룰 수 있는 게 없고 한계가 분명하죠. 가끔 대본을 읽으면 속상해. 너무 속상해서 대신 싸워주고 싶어요.

독립영화 <뎀프시롤>도 궁금해요. 원작 단편은 굉장히 엉뚱한 이야기잖아요. 혜리가 여기에 출연한다는 게 신선했어요. 엄밀히 따지면 저예산 상업영화예요. 독립영화에 도전했다, 이렇게 말하긴 부끄럽고, 하하. 시나리오를 보니 <뎀프시롤>의 민지가 제가 한 모든 캐릭터 중 저랑 가장 비슷해서 끌렸어요. 할 말 다 하고, 직설적이고. 때리지만 않았지 파이터예요. 제 모습에서 많이 꺼냈죠. 하하하.

유튜브 채널 <나는 이혜리>를 봤는데, 누가 기획해준 게 아니라 진짜 날것 느낌이었어요. 직접 짐벌을 들고 다니면서 엉뚱한 앵글로 얼굴을 찍고 있던데요. 몰랐어요, 안 예쁘게 나오는 줄. 하하하. 저는 이게 방송 같지 않았으면 했어요. 작위적이지 않았으면 했고, 그냥 사람들이 모르던 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멤버들은 “대단하다, 이런 것도 드러내고”라는데, 전 그냥 천성이 저 자신을 드러내는 걸 좋아해요. 전 제 영상 볼 때, TV에서 제가 나올 때가 제일 재미있어요. 제 분량이 많을 때! 하하하.

사람들이 모르던 혜리의 모습이요? 제가 요리를 잘할 거라고 누가 생각하겠어요? 흐흐. 저 요리 잘해요. 갈비찜 전문. 그리고 의외로 되게 꼼꼼해요. 한 번도 뭘 잃어버린 적이 없어요. 휴대전화 메모장 보실래요? 그날그날 해야 할 체크리스트, Day1부터 Day100까지 숙지해야 할 대본을 넣어놨어요.

저도 최근 혜리에 대해 알게 된 새로운 게 하나 있어요. 유니세프에 1억 이상을 기부해서 아너스 클럽 최연소 회원이 됐죠? 넘쳐요, 저는. 가진 거에 비해 되게 많은 걸 누리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부끄러워요. 엄마는 저희가 가난했을 때부터 봉사 활동과 후원을 해왔어요. 저도 물욕이 없는 편이고요. 제가 필요하지 않은 걸 누군가는 필요로 할 수 있잖아요? 그런 걸 나누면 둘 다 충족되는 거니까. 전 그런 게 자연스럽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혜리가 가장 신나는 때는 언제예요? 뭔가 맛있는 걸 먹고 싶어져서 예약하고, 먹으러 갈 날을 기다리는 시간이 신나요.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을 데려가서 같이 먹는 거죠. 맛있는 건 나눠 먹어야죠. 오늘요? 이제 스테이크 먹으러 갈 거예요.

    에디터
    이예지
    포토그래퍼
    JDZ Chung
    스타일리스트
    박선희, 박후지
    헤어
    이상화 at Void_H
    메이크업
    고진아 at Bit & Bo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