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과 멋, 일에 대한 태도와 마음가짐이 폴폴 풍기는 워크웨어.
조리복에 대한 문의를 종종 받는다. 한눈에 봐도 빤하지 않아 많이들 궁금한 모양이다. 조리복 하면 자연스럽게 화이트 더블 재킷을 떠올리지만 블랙 조리복을 입는다. 가끔 빨간색을 입기도 하고, 데님 재킷도 하나 있다. 어디서나 눈에 띄는 조리복은 친구 솜씨다. 이탈리아에서 같이 요리를 배운 사이로 주방 경험을 반영해 조리복을 만들고 있다. 덕분에 셰프들의 불만과 아쉬움을 잘 달랜다. 디자인에 힘을 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제대로 된 셰프 웨어 브랜드들이 등장하기 전에는 단체복 업체에서 체육복, 작업복을 만들 듯 조리복을 생산했다. 디자인에 대한 고민을 할 리 없었다. 보다 만족스러운 건 기능적인 부분이다. 화구와 오븐으로 둘러싸인 주방은 열기로 가득하다. 통풍을 위해 등판에 메시 소재를 썼는데, 짜릿할 정도로 시원하다. 더울 땐 반팔 티셔츠를 입고 일하면 좋겠지만 달궈진 냄비와 기름 때문에 보호 목적으로 긴소매 조리복을 입을 수밖에 없다. 조리복은 하루에 12시간 이상 입는다. 도리어 일상복을 입는 게 어색하다. 조리복을 입을 때마다 사람의 입에 들어가는 음식을 만드는 셰프로서 부끄러운 음식을 만들지 말자 그런 다짐을 한다. 내가 운영하는 ‘가디록’에서 손이 많이 가는 메뉴는 실험적이고 거창한 요리가 아니라 가지 인볼티니다. 채소를 얇게 말아서 만드는 요리로, 풍부한 식감을 위해 치즈와 몇 가지 재료를 더했다. 가지를 펴서 염장을 하고, 가지 속을 채울 채소들을 다져서 볶고, 고구마 무스와 토마토소스를 만들다 보면 꽤 열이 오른다. 친구야, 조리복 앞쪽에도 메시 소재를 쓰면 안 될까? 권기석(가디록 셰프)
1년. 작업용 앞치마의 평균 수명이다. 내구성이 좋고 질감이 빳빳한 녀석은 반년쯤 더 버티기도 한다. 가구 제작은 정갈한 공정이 아니다. 굵은 원목에 쓸리고, 끌에 긁히고, 어딘가에 또 끌렸는지 구멍은 더 커지기 일쑤다. 지금의 것은 쓴 지 6개월 정도 됐는데 6년쯤 된 것 같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온갖 풍파를 겪는 앞치마는 유니폼의 핵심이다. ‘삼옥’이란 이름을 붙인 성수동의 작업실 겸 카페에 출근해서, 전날 던져놓은 앞치마를 찾아 먼지를 팡팡 털어주면 사실상 작업 준비는 끝난다. 목공예가는 투박한 매력의 가죽이나 데님 작업복을 입는다는 뉘앙스가 있지만, 화이트 셔츠든 스웨트 셔츠든 갑옷을 입듯이 앞치마를 두르면 이것으로 충분하다. 아이언맨이 수트 안에 뭘 입든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 곤혹스러운 것은 신발이다. 목재 가루가 신발등 위로 수북이 쌓이거나 습관처럼 나무에 찍혀 해지는 탓에 워커를 착용한다. 워커와 가장 잘 어울리는 룩은 점프 수트와 보머 재킷이다. 원래는 캠핑용 의상인데 목공 작업을 하기에도 믿음직스럽다. 특히 동묘 시장에서 구한 보머 재킷은 낡은 멋이 있고, 아무리 입어도 질리지 않는다. 캠핑에 푹 빠지게 된 계기는 캠핑 가구를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다. 6년 전 제주도를 여행하는 동안 캠핑하는 사람들의 쿨하고 자유로운 감성에 반해 용감하게 캠핑 가구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나의 시그니처는 백체어다. 그동안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며 작업을 했다. 접었다 폈다 할 수 있어 휴대가 용이한 백체어는 어디서든 나를 안락하게 안아준다. 정말로 다른 가구는 흉내도 못 낸다. 한상훈(가구 디자이너)
바텐더의 옷차림은 바의 스타일을 드러낸다고 여긴다. 그래서 광부를 뜻하는 ‘마이너스’라는 이름의 바를 운영할 때는 광부를 연상시키는 점프 수트, 플란넬 셔츠를 입었다. 작년 이맘때 이곳 서촌에 오픈한 ‘바 참’은 편안하고 거리낄 것 없는 정서를 의도했다. 20평 남짓한 한옥을 개조한 공간은 눈부시도록 화려하지는 않지만 완숙하면서, 한적한 정취가 있다. 문과 테이블, 의자 모두 참나무로 짰다. 바의 이름도 여기서 따왔다. 분위기를 고려해 복장은 뚜렷한 특색이 있거나 하지 않다. 기본적으로 셔츠와 앞치마를 착용한다. 셔츠는 골고루 다양하게 입는다. 동네 상권에 보탬이 되고자 이웃한 테일러 숍에서 맞춘 것도 있다. 솜씨가 좋다. 참나무와 비슷한 색의 앞치마는 안목이 돋보이는 선물이다. 개인적으로 워크웨어 스타일을 좋아하는 데다 일부러 맞춘 것처럼 바와 제대로 어울려 애착이 가는 아이템이 됐다. 신발은 어떤 옷이 됐든 구두를 꼭 신는다. 긴 시간 서서 일하기 때문에 꽤 불편하지만 내 신념 같은 거다. 계절이 바뀌면 유니폼도 바뀔 수 있다. 흰 가운으로 생각이 기울고 있다. 런던 소호에서 들른 어느 바에선 바텐더들이 흰색 재킷을 입고 있었다. 그 모습에서 완벽함과 깔끔함, 신뢰감이 가깝게 느껴졌다. 바텐더는 셔츠를 목까지 채우고 격식을 갖춰 입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요즘은 개성과 디테일을 강조하는 추세다. 내 스타일을 칵테일에 비유하자면 아메리카노. 쌉쌀한 캄파리와 범스, 소다로 만드는데 도수가 낮고 다채로운 풍미가 어우러져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한마디로 어렵지 않은 사람이다. 임병진(바 참 대표)
유럽의 바로크, 미국의 모던 재즈, 한국의 근대 음악을 바탕으로 공연을 기획하고 무대에 올리며 직접 연주를 한다. 세 장르 모두 시대적, 역사적 배경과 뗄 수 없는 음악이라는 점에서 되도록 당시의 감성과 스타일을 반영한 의상을 갖춰 입고 무대에 선다. 요컨대 바로크 음악에는 화려한 레이스와 핀턱이 달린 셔츠, 근대 음악에는 더블 블레스티드 재킷에 보타이를 하고 라운드 안경을 착용한다. 모던 재즈는 네이비 블레이저, 버튼다운 셔츠, 랩타이의 조합에 볼드한 아세테이트 안경으로 힘을 주는 식이다. 이렇게까지 의상에 부단히 신경을 쓰는 의도는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듣는 데 그치지 않고, 음악을 보게 만드는 것. 연주자의 옷맵시를 통해 음악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면 선뜻 관객의 표정과 반응도 달라진다. “음악을 잘한다”라는 칭찬도 좋지만 “옷 잘 입는 음악가”라는 얘기가 들려올 때 더욱 만족스럽다. 음악을 잘하는 것은 당연하고, 거기에 더해 멋진 개성까지 어느 정도 인정받은 듯하다. 가장 상징적인 룩을 말하자면 브룩스 브라더스 블레이져, 버튼다운 셔츠, 랩타이. 클래식한 스타일에 입각해 혁신을 이루는 브룩스 브라더스의 태도와 철학은 내가 추구하는 음악적 가치와 닮았다. 얼핏 변화에 인색한 브랜드처럼 보일 수 있지만, 맨 처음 셔츠의 치수를 나눴고 버튼다운 칼라와 핑크색 셔츠, 랩타이 등을 선보이고도 으스대지 않았다. 마음이 동하는 이유는 더 있다. 고등학생 때 록 밴드 활동을 했는데 또래들에겐 낯선 ‘골덴 마이’를 입고 드럼을 쳤다. 나의 스타일, 나의 취향은 그 시절부터 싹이 트기 시작했다. 이승묵(인천 콘서트 챔버 대표)
- 에디터
- 김영재
- 포토그래퍼
- 설서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