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아머 글로벌 본사에서 열린 ‘2020 휴먼 퍼포먼스 써밋’에 참가했다. 볼티모어의 도시와 강이 만나는 곳이었다. 더 빨리 달리고, 더 높이 뛰고 싶은 사람들이 이곳에 모였다. 언더아머는 그 방법을 알고 있었으니까.
스포츠의 역사는 수백 년을 이어왔지만, 스포츠 산업은 구시대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디자인과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은, 스포츠 산업의 숙명적인 과제다. 스포츠의 지향점은 언제나 한계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포츠 산업은 IT 산업만큼 미래지향적이다. 스마트폰이 더 빠르고, 쉽고, 다양한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 형태와 운영체제를 바꾸 듯 스포츠 제품도 개발을 지속해 왔다. 스포츠 회사가 독자적인 연구 개발 시설을 갖추고 있는 이유다. 동시에 스포츠 산업은 영화나 음악 산업만큼 인간적이다. 이 산업 속에는 휴머니티와 감동이 있다. 운동 선수의 퍼포먼스는 기계적이지 않다. 그들은 빨리 달리고, 높이 뛰는 로봇이 아니다. 운동 선수의 신발은, 스포츠카의 타이어나 엔진과는 다르다. 운동 선수는 기계와 달리 먹고, 듣고, 느끼는 과정을 통해 성장한다.
그러나 많은 스포츠 브랜드는 단순히 더 가벼운 러닝화를 만들고, 더 빨리 마르는 옷을 만드는 데만 몰두해 있다. 스포츠를 이해하지 않고 스포츠 용품을 만드는 것은, 음식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요리 도구를 만드는 것과 같다. 언더아머는 스포츠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연구한다. 정신이나 마음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도.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옷과 신발을 개발한다. 지난 1월 중순, 볼티모어에 위치한 언더아머 글로벌 본사에서 열린 ‘2020 휴먼 퍼포먼스 써밋’은 스포츠 브랜드로서 언더아머의 철학과 방향성을 보여 주는 행사였다. 언더아머는 휴먼 퍼포먼스 시스템을 통해서 약 50만 명의 운동 선수를 지원 중이라고 한다.
본사를 방문했을 때 받은 첫 번째 질문은 “하이 퍼포먼스를 위해 가장 중요한 세 가지는 무엇일까?”였다. 이 질문은 “하이 퍼포먼스를 위해 어떠한 제품을 만들어야 할까?”라는 일반적인 스포츠 브랜드의 질문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함께한 모델 민준기, 언더아머 퍼포먼스 트레이너 최누리는 ‘훈련’, ‘정신력’, ‘목표 의식’ 등을 떠올렸다. 정답이 없었으니, 모두 맞는 대답이었다. 그보다도 질문이 마음에 들었다. 언더아머의 휴먼 퍼포먼스 시스템은 바로 이 질문으로부터 시작한다. 제품이 아니라, 인간에 초점을 맞춘 질문.
이전까지 볼티모어에 갈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몇 해 전, 야구 선수 김현수가 볼티모어 오리올스 소속일 때, 그의 경기를 관심 있게 지켜봤을 뿐. 언더아머의 글로버 본사가 볼티모어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이 도시가 더 궁금해졌다. 세계적인 브랜드가 창립된 지역을 찾아 가보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그곳은 인간의 코어 근육과 같다. 정체성이 단단한 브랜드는 균형을 잃지 않는다. 본사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곳이다. 언더아머 본사의 첫 인상은 어땠냐고? 자기 관리에 충실하고, 함께하는 활동을 즐기고, 남다른 취향을 가진, 과거에 대한 존중과 미래에 대한 기대로 가득한 진취적인 남자 같았다.
언더아머 본사는 조용한 부둣가에 자리해 있었다. 큰 호텔들이 모여 있는 시내에서 도로를 이용하면 거리가 약 5킬로미터, 물길을 이용하면 1킬로미터도 채 되지 않는다. 이너하버라고 불리는 항구는 노을이 질 때의 풍경이 정말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곳은 달리기를 하기에도 좋지. 첫 째날 오전에는 볼티모어에서 활동하는 런 크루인 ‘디스트릭트 러닝 콜렉티브’의 멤버들과 달리기를 했다. 호수처럼 아늑한 패타스코강, 크고 작은 선박, 기품이 느껴지는 건물 사이를 달리느라 지루하지 않았다.
달리기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언더아머의 새로운 러닝화인 ‘HOVR 마키나’를 신었다. 블루투스 칩이 내장된 이 러닝화는 러너에게 실시간으로 거리, 속도, 보폭 등의 정보를 알린다. ‘라이트하우스’라고 불리는 언더아머의 제품 개발 연구소에서 신발을 해부한 모습을 봤는데, 이 블루투스 칩은 정말 작았다. 오백 원짜리 동전 만했다. 현재까지 개발된 가장 작은 블루투스 칩이라고. 언더아머의 HOVR 마키나는 지금껏 가장 진보적인 러닝화라고 할 만하다.
수상택시를 타고 멀리서 바라본 언더아머 본사는 대학교 같기도, 큰 공장 같기도 했다. 부둣가의 버려진 공장을 재건축해 만들었다고 한다. (볼티모어에는 언더아머 창립자 케빈 플랭크가 오래된 건물을 이용해 만든 호텔, 체육관, 공장 등이 다수 있다) 본사 내부에는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큰 규모의 체육관이 조성돼 있었다. 함께한 언더아머 퍼포먼스 트레이너 최누리에게도 생소할 정도로 면면이 잘 갖추어진 체육관이었다.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언더아머의 직원들이 대다수였다. (그저 직원이라기엔 다들 운동 선수처럼 크고 단단해 보이긴 했다) 그들의 부서와 하는 일은 제각각이겠지만, 모두 필드 테스터로서 생활 속에서 언더아머의 제품을 체험하고 있었다.
전세계에서 초대 받은 180여 명의 운동 선수, 스포츠 인플루언서, 미디어 관계자는 언더아머 본사 체육관에서 요가, 복싱, 워크아웃 등의 프로그램을 체험했다. 운동이 끝난 뒤에는 호텔에 마련된 리커버리룸에서 마음껏 휴식했다. 리커버리룸은 근육의 긴장을 풀어주는 동적 리커버리와 마음의 긴장을 풀어 주는 정신적 리커버리로 세분화되었다. 아침과 점심 식사 또한 언더아머가 준비한 신선한 고기와 야채, 오트밀, 요거트, 각종 발효 식품 등이었다. 언더아머는 때때로 퍼스널 트레이너 같았고, 때때로 명상가나 철학가 같았고, 때때로 영양 학자 같았다. 한계를 돌파하는 능력은 몸과 정신, 과거와 현재, 공기와 음식 등 거의 모든 분야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제가 모든 목표를 이루었을까요? 아니에요. 베이징 올림픽에서 8개의 금메달을 땄을 때 저는 두 경기에서 목표한 기록을 달성하지 못했어요. 성공은 시상대에 올라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신을 한계에 몰아 붙이고 이겨낼 수 있는 지에 대한 거예요. 이것이 바로 진정한 위대함이죠.” 마이클 펠프스가 언더아머의 2020 글로벌 캠페인 ‘The Only Way Is Through’ 런칭 오프닝 스피치에서 한 말이다.
마이클 펠프스의 말은 언더아머의 철학과 일치한다. 하이 퍼포먼스는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이 아닌, 스스로 정한 목표를 달성하면서 얻어내는 것이다. 10킬로미터를 1시간 만에 달리던 사람이 50분으로 기록을 단축하는 것. 높은 곳을 두려워하던 사람이 정상에 서는 것. 반복되던 실수를 바로 잡는 것. 모두 하이 퍼포먼스를 돌파한 예다.
언더아머는 안다. 단순히 더 가벼운 러닝화, 더 빨리 마르는 옷으로는 하이 퍼포먼스에 도달할 수 없다는 걸. 대신 언더아머는 운동, 영양, 정신, 재활 등의 모든 요소를 제품에 반영했다. 한 가지 예로 언더아머는 리커버리 전용 의류를 개발했다. 언더아머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언더아머 글로벌 본사에서 열린 ‘2020 휴먼 퍼포먼스 써밋’은 3일 동안의 일정으로 마무리됐다. 언더아머가 그리고 있는 미래를 완전히 이해하기엔 짧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 모든 경험과 철학이 언더아머의 제품에 집약될 것이란 사실. 스포츠 활동에 대해 이렇게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브랜드가 또 있을까? 볼티모어는 언더아머의 존재만으로도 빛나는 도시였다.
- 에디터
- 이재위
- 포토그래퍼
- 이재위, 언더아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