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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개인적인 도구로 만든 궁극의 맛

2020.03.12GQ

가장 개인적인 도구와 재료로 궁극의 맛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결정적 순간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신용일 셰프의 젓가락과 커틀러리
인터뷰로 만난 카를라 브루니가 합의 인절미를 대나무 젓가락에 찍어 입에 쏙 넣고 지었던 표정과 제스처를 잊을 수 없다. 모순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한국적이고 전통적인 것, 그러면서도 현대적인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을 때 언제나 합 合을 떠올린다. 아름다워서 먹기 전에 몇 초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되는 순간의 힘. 합의 신용일 셰프는 뜻밖에도 지금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커틀러리라고 말한다. “특별한 기회를 통해 잘 만든 근사한 커틀러리로 식사를 해본 적 있어요. 그때의 경험 덕분에 요리를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첫눈에 반한 그 커틀러리는 프랑스 명품 실버웨어 퓌포카 Puiforcat에서 만든 것으로, 프랑스 왕실의 식기류를 만들던 브랜드다. 몇 해 전 그는 파리에서 이 브랜드가 만든 은 젓가락을 봤다. “아름다운 조형미에 반해서 디자인하는 친구들에게도 꼭 한 번씩 보여주곤 했어요. 이렇게 잘 만든 예쁜 커틀러리를 보면서 좋은 자극을 받아요. 그리고 알게 모르게 그런 것이 제가 하는 일에도 영감을 주곤 하죠.”

서승호 셰프의 냄비와 감자칼
셰프들의 셰프, 국내 1세대 프렌치 요리사 서승호. 그는 자신의 고향인 세종시에서 ‘시옷 서승호’라는 원 테이블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 식재료를 직접 가꾸고 길러서 요리하는 팜 투 테이블을 선구적으로 시도한 공간이다. 세수를 하고 옷을 가다듬고 도구를 정비하고 재료를 손질하고 조리하는 일련의 과정. 그에게 요리는 하나의 의식과도 같다. “이제는 뭘 더 하려고 하기보다는 비우려고 합니다. 요즘은 1+1, 맛 좋은 제철 채소에 소스를 뿌리는 정도로 심플하게 요리하죠.” 자극적이지 않고 편안한 음식이 그가 추구하는 방향이다. 그에게 가장 의미 있는 도구는 15년 넘게 사용해온 편수 냄비 세 가지다. 각각 크기와 쓰임이 다르다. 그리고 평범한 듯 보여도 요리의 핵심을 만드는 감자 깎는 칼을 빼놓을 수 없다. 요리하면서 그는 꾸준히 식재료에 관한 책을 집필하고 있다. 토마토, 버섯에 이은 세 번째 시리즈는 감자다. 정통을 지키며 늘 한발 먼저 새로운 세계로 뛰어드는 서승호 셰프. 곁에 두고 매일 사용하는 지극히 일상적인 도구에서 가장 창의적인 요리가 완성된다.

상민규 소믈리에의 파니에와 아소
청담동 1-14번지에 ‘뱅 114’가 있다. 이제는 유물처럼 느껴지는 전화번호 114, 와인에 관해서라면 무엇이든 물어봐 달라는 귀여운 의미가 담긴 숫자다. 이곳을 지키는 상민규 소믈리에는 국내 첫 오너 소믈리에다. 1997년 처음 와인 일을 시작해 자신의 온전한 매장을 꾸린 건 2010년의 일이다. 올해로 10주년, 소감을 물으니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어내야 했다”고 너스레를 떤다. 뱅 114의 두툼한 와인 리스트 가운데 눈에 띄는 건 올드 빈티지 파트다. 그가 오픈해본 최고령 와인은 몇 살이었을까? “1964년 보르도 와인을 오픈한 적 있어요.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있었어요. 올드 빈티지 와인의 매력은 자연스러움 아닐까요. 사람도 그렇잖아요. 결국엔 시간이 지날수록 편하게 만나는 사이가 좋은 것처럼.” 상민규 소믈리에는 20년 넘게 사용해온 와인 도구를 꺼냈다. 누군가 나이 지긋한 올드 빈티지 와인을 주문하면, 촛불을 켠다. 아소 Ah SO로 조심스레 코르크를 열고, 잔잔한 불빛에 와인병을 비춰 침전물을 확인한다. 파니에 속에 와인이 천천히 바닥을 드러낼수록 벅찬 마음이 밀려온다.

파올로 데 마리아 셰프의 올리브 오일
파올로 데 마리아의 고향은 이탈리아 토리노다. 2004년 한국에 정착해 지금은 부암동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 16년이 넘는 긴긴 시간 동안 그는 서울의 미식 트렌드가 얼마나 급격하게 변했는지를 지켜봤다고 했다. 격변의 현장 가운데서 파올로 셰프는 여전히 주방을 우직하게 지킨다. 유리창 너머로 그가 진두지휘하는 긴장감 넘치는 풍경이 보인다. 셰프가 처음 팬을 잡은 건 믿기 어렵겠지만 열세 살 때다. 마늘, 고추, 올리브 오일로 간단하게 맛을 내는 알리오 올리오 페페론치노. 테이블 위에 놓인 날렵한 칼, 단정한 조리복, 그동안 출간한 책 가운데서 그가 올리브 오일 병을 번쩍 들었다. “숟가락에 한 스푼 따라 드릴 테니 한번 맛보세요. 좋은 올리브 오일은 마치 방금 나무에서 딴 열매를 손으로 터뜨린 것 같은 신선함이 살아 있습니다. 시칠리아, 풀리아, 움브리아 등 지역마다 그 맛이 확연하게 다르죠. 37년 동안 요리를 해왔는데 이것을 빼고서는 제 요리 세계에 대해 말할 수 없어요. 올리브 오일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제게 정말로 중요한 재료예요.”

김소영 장인의 우유와 다이어리
샌프란시스코의 작은 마을 페탈루마, 김소영 장인은 이곳에서 1999년부터 치즈를 만들어오고 있다. 세계적인 셰프들이 애타게 치즈를 구하러 오는 ’안단테 데어리’. 김소영 장인은 “치즈 장인이 화가라면 우유는 그림을 그릴 캔버스이자 물감”이라고 비유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재료, 우유에 대한 기억을 이렇게 회상했다. “소에서 금방 착유한 따뜻한 우유의 맛과 향을 잊을 수가 없어요. ‘아름답다’라는 단어 밖에 떠오르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면서 치즈를 끊임없이 변화하는 살아 있는 음식이라고 표현했다. 인생과 치즈의 공통점을 물었을 때 ‘무상 Impermanence’이란 단어를 말했다. “변화무쌍한 치즈를 만들면서 자연과 재료를 통제하려고 하기보다는 그 자체가 가진 아름다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의 다이어리 첫 장에는 알베르 카뮈의 글귀가 적혀있고, 그 안엔 사유의 시간이 켜켜이 기록되어 있다. 김소영 장인의 도전은 평창에서 계속된다. 진중하고 유쾌한 치즈 실험이 펼쳐질 새로운 공간이 올해 가을 문을 열 예정이다.

오연정 바텐더의 트로피와 유리병
오연정 바텐더가 보내온 상자엔 그녀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이 담겨 있었다. 생애 첫 바텐더 대회에서 찍은 포스터, 2012년 페르노리카 코리아 바텐더 챔피언십 우승 트로피, 소중한 이에게 선물 받은 위스키, 매끄러운 호리병 두 개. 오연정 바텐더는 그동안 세계적인 대회의 문을 끊임없이 두드렸다. 운동선수가 근력을 키우듯 바텐딩 기술을 부단히 단련했다. ‘2018 레미마틴 글로벌 바텐딩 컴피티션’에서 세계 챔피언으로 선정된 놀라운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녀에게 의미가 남다른 물건은 무엇일까? “대회 나갈 때마다 주스를 담을 수 있는 유리병을 꼭 들고가요. 이 안에 재료를 넣고 흔들어서 섞는 용도로 사용하죠. 이제는 없으면 불안한 분신 같은 존재랄까요. 중요한 순간에 모든 것이 부드럽게 흘러갈 수 있게끔 해주는 도구죠.” 그의 포트폴리오에는 백 가지 이상의 창작 칵테일이 담겨 있다. 얼마 전엔 클래식 음악에서 영감을 받은 메뉴를 만들었다. 미스터 칠드런 바에서 그의 자유롭고 즉흥적인 바텐딩의 세계와 마주할 수 있다.

정상원 셰프의 메뉴판
가정집을 개조한 삼청동의 프렌치 레스토랑 르꼬숑. 그곳에는 책을 닮은 메뉴판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르꼬숑에서는 언어 또한 하나의 식재료가 된다. 2013년부터 지금까지 ‘문장의 맛’, ‘미장센’, ‘비밀의 정원’ 등 총 79번의 코스 메뉴를 선보였다. 시나리오 작가가 소재를 찾아 플롯을 구성하듯 정상원 셰프는 계절마다 새로운 코스 요리를 창작한다. “어떻게 맛을 언어로 치환시키고 그것을 기억하고 되새길 수 있을까 고민하다 시작하게 되었어요. 음식에 문화를 담고 싶었고, 메뉴판이 큰 역할을 하죠.” 편집자가 책을 만들 듯 목차, 판형, 종이 재질, 레이아웃을 섬세하게 배열해서 메뉴판을 구성한다. 콘셉트도 형식도 다채롭다. 도록, 잡지, 타블로이드 신문, 사진첩 등등 메뉴판은 점점 더 진화해왔다. 가장 최근에 선보인 ‘기억의 도서관’ 편은 프랑스 문호들의 문장에 맞는 메뉴를, ‘셰프의 아틀리에 展’에서는 회화에서 영감 받은 예술적인 요리로 테이블을 수놓았다. 2~3시간 동안 이어지는 오감의 향연이 끝나면, 그들 각자의 맛봉오리에 이야기가 가득 들어찬다.

권요섭 바리스타의 통돌이
보광동 언덕길, 뽀얀 연기가 피어오른다. 고소하고 알싸하며 매혹적으로 익어가는 커피콩의 향. 헬카페 로스터즈의 권요섭 바리스타는 일주일에 서너 번 샘플 로스터로 원두를 볶는다. 일명 통돌이라 불리는 작고 낡은 도구로 말이다. 손잡이를 리드미컬하게 일정한 속도와 방향으로 돌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묘한 안정감마저 든다. 그는 2007년 홍대 앞 곰다방에서부터 이런 숭고한 노동을 계속해왔다. 그야말로 살아 있는 로스팅 휴머노이드.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나요.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10년 전과 비교해서 확실히 생산량은 줄었어요. 나이가 들면서 몸도 피곤하니까 확실히 힘든 부분은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커피콩이 허투루 보이지 않아서, 그 작은 알갱이를 볶는 순간만큼은 헛되이 보내지 않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지옥이라는 이름의 카페에서 그가 내린 커피를 마시며 나는 종종 천국을 떠올린다. 음악과 커피 그리고 어둑한 조도가 삼위일체 된 카페. 스스로를 고립시킬 수 있는 헬카페의 검은 소파에 안착해서야 비로소 숨을 쉬는 기분이 든다.

    에디터
    김아름
    포토그래퍼
    이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