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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과 채식의 상관관계

2020.03.29GQ

지구를 통틀어 가장 힘이 센 사람은 채식주의자다. 불가사의한 존재가 결코 아니다. 그보다 힘이 센 황소도 풀을 뜯어 먹고 사는 세상이다.

우리는 탄수화물과 지방은 배척하면서 단백질은 적극 수용한다. 단백질을 충분히 보충해야 체내 활동이 원활하고 면역력이 증대되며, 근육과 근력을 키워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단백질 중에서도 동물성 단백질이 필수 아미노산을 고루 함유하는 등 질이 우수해 고기, 달걀, 유제품을 통해 단백질을 섭취하기를 권장하고 선호해왔다.

최근 이 철옹성 같은 믿음을 산산이 부술 주장들이 심심찮게 들린다. 특히 지난해 넷플릭스가 공개한 다큐멘터리 영화 <더 게임 체인저스 The Game Changers>는 전 세계에 큰 충격과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제임스 카메론, 아널드 슈워제네거, 성룡이 제작에 참여한 이 다큐멘터리는 채식을 선언한 운동선수들의 경험담을 통해 육식의 유해성과 채식의 유익성을 시사한다. 운동선수는 일반인보다 더 많은 단백질을 필요로 하며 그만큼 고기를 더 많이 섭취해야 한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다큐멘터리에서 여러 이유로 채식으로 전환한 운동선수들은 스스로 품은 의구심과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부상에서 더 빨리 회복하고 원하는 만큼 근육양을 늘리며 기량을 향상시켰다. 은퇴할 선수가 올림픽 무대에 서기도 했고, 은퇴한 선수가 복귀하기도 했다. 이러한 결과는 그 누구보다 선수 본인을 가장 놀라게 했다.

우리가 탄수화물 덩어리라고 여겨온 채식이 어떻게 그들의 몸을 무한대로 펌핑시키고 괴력을 발휘하게 한 걸까? 콩이나 현미 등의 정제하지 않은 곡류는 그나마 단백질 함량이 높다는 사실을 알지만, 식물성 단백질은 동물성 단백질보다 질이 더 낮다고 알려지지 않았던가. 스트롱맨 선수로서 기네스북 세계 기록을 보유한 채식주의자 패트릭 바부미안은 “고기도 안 먹고 어쩌면 그렇게 황소처럼 힘이 세냐?”는 주변의 질문에 “황소가 고기 먹는 것 봤냐”고 답한다. 생각해보니 우리가 힘 세고 덩치 큰 동물 하면 떠올리는 개체들 중 많은 종이 초식 동물에 속한다. 소, 말, 고릴라, 침팬지, 코끼리, 하마 등이 그 대표적 예다. 그중 소는 우리에게 중요한 동물성 단백질원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소고기를 먹고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한다. 그런데 정작 소는 초식 동물이다. 다시 말해 세포를 분열시켜 그 거대한 몸집을 만드는 데 쓰인 무수히 많은 단백질이 풀에서 유래했다는 얘기다.

사실 단백질은 식물에서 유래했다. 광합성에서 만들어진 포도당과 뿌리에서 흡수된 질소를 포함한 화합물로부터 아미노산이 만들어지고, 아미노산이 결합하여 단백질이 합성된다. 그렇다. 단백질은 애초에 광합성을 하는 식물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단백질의 보고라고 여겨온 소, 닭, 돼지 등은 매개체에 불과하다. 이러한 진실은 살아오는 동안 굳게 믿어온 사실과 대척점에 있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꽤 걸릴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사실이다. 우리는 식물을 통해 바로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풀이나 곡물을 먹인 동물을 먹어 단백질을 섭취하는 바보짓을 여태 해온 셈이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을 논하자면 며칠 밤을 새워야 할 지경이다.

다큐멘터리가 채용한 육식주의자와 채식주의자의 영양소 섭취를 비교한 연구를 보면 일반적으로 채식주의자들은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할 뿐 아니라 필요한 양의 70퍼센트를 더 섭취한다고 한다. 육식주의자조차 섭취하는 단백질의 절반 가량을 풀에서 얻는다. 결국 고기를 통해 단백질을 얻으니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뿐 아니라 더불어 다채로운 미식의 경험도 추구할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동물성 식품이 몸에 너무나 많은 악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이쯤 되면 “아, 콜레스테롤”이라며 뻔하게 여길 수 있겠지만, 최근의 연구 결과들은 동물성 단백질의 위험성을 가리킨다. 저지방 고단백 식단을 취해도 고지혈증, 고혈압, 당뇨, 각종 암을 피할 수 없다는 소리다. “동물성 단백질의 아미노산 조성은 인간의 그것과 매우 흡사하여 동물성 단백질이 일단 몸에 들어오면 대사 속도가 굉장히 증진됩니다. 비율이 맞으니 몸에서 즉시 사용하게 되고, 그러기 위해 세포들을 재촉합니다. 동물성 단백질을 많이 먹은 아이들이 키가 빨리 자라고 체중이 빨리 느는 이유입니다. 그만큼 초경도 빨라지고요. 여태껏 우리는 아이들이 빨리 성장하는 것을 동경해왔습니다. 이는 참으로 근시안적 사고입니다. 성장이 촉진된다는 것은 그만큼 노화가 빨라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유성 선병원 직업환경의학센터 이의철 센터장의 설명이다. 그는 채식을 실천하는 의사 단체 ‘베지 닥터’의 사무국장을 역임하고 있다.

“동물성 단백질을 많이 먹으면 체내 콜레스테롤 수치가 증가합니다. 우리 몸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합니다. 동물성 단백질이 세포의 대사 속도를 촉진하며 호르몬 대사 측면에서 인슐린이 과다 분비됩니다. 인슐린은 혈당을 낮추고 탄수화물을 지방으로 저장하는 기능을 하는 한편, 우리 몸에서 콜레스테롤의 합성을 증진합니다. 콜레스테롤이 세포막의 일부 성분으로 쓰이기 때문입니다. 동물성 단백질을 먹으면 필요 이상의 인슐린이 분비되어 무엇이라도 조금 먹으면 이를 곧장 지방으로 저장하고 콜레스테롤 합성을 증가시켜 점점 인슐린에 대한 내성이 생기게 되고, 당뇨병으로 이어지는 비극을 초래합니다.” 우리는 식품으로부터 얻는 영양소 중 동물성 단백질이 가장 건강하다고 여겨왔다. 그런데 몸속에서 동물성 단백질이 지방처럼 빌런 역할을 한다고 하니 분하기까지 하다. 동물성 단백질의 문제는 이뿐이 아니다. 동물성 제품에는 염증성 분자로 구성된 단백질이 들어 있으며 혈관 내피 기능도 약화시킨다. 이런 악영향은 특히 운동선수에게 치명적이다. 운동을 하거나 운동 후 손상된 근육을 복구하기 위해 혈관 건강은 매우 중요하다. 높은 운동 성과와 빠른 회복을 위해 특정 근육군이나 장기에 혈류가 더 필요할 경우 혈관의 내벽이 팽창하여 길을 열어줘야 하는데, 혈관 내피가 손상되면 열리지 못하여 혈액을 원활히 보낼 수 없다. 또 염증성 분자로 구성된 단백질은 동맥의 혈류를 감소시켜 근육과 관절의 통증을 증대시키고 그만큼 회복은 더디어진다. 반면 식물성 식품에는 황산화제, 파이토케미컬, 미네랄, 비타민 등이 풍부해 염증을 줄이고 미생물 군집을 최적화하는 등 혈액 공급과 신체 기능을 향상시킨다.

꼭 운동선수가 아니더라도 취미로 운동하는 지인들을 떠올리면 걱정이 앞선다. 근손실이 일어날까 봐 자나깨나 단백질을 섭취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대부분 닭 가슴살, 유청 단백질 가루 등의 동물성 단백질이다. “근육을 키우기 위해 단백질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운동하면서 가장 많이 소모하는 영양소는 탄수화물입니다. 탄수화물이 부족하면 우리 몸은 근육을 분해해 탄수화물을 만듭니다. 그만큼 근손실이 커지죠. 게다가 우리 몸이 필요로 하는 단백질의 양 이상을 섭취했을 경우, 초과된 단백질을 배설하기 위해 콩팥이 무리하게 일하느라 손상될 우려가 높습니다. 가뜩이나 근육을 많이 쓰면 마찰로 인해 분해된 근육이 신장에 무리를 줄 수 있는데 거기에 동물성 단백질을 과도하게 섭취하니 콩팥에 곱절의 부담이 가해지는 거죠.”

이의철 센터장은 보다 쉬운 이해를 위해 자신의 일화를 들려줬다. “자전거로 제주도 일주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만 해도 제주에 채식 식당이 드물어 거의 쌀밥과 한라봉으로 연명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2킬로그램이 찐 겁니다. 근육이 늘어난 거죠. 근육의 성장은 단백질을 얼마나 먹느냐가 아니라 운동의 부하가 얼마나 센가에 달려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근육을 키우기 위해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구시대적 사고는 이제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눈 건강을 위해 동물의 눈을, 지능 향상을 위해 동물의 뇌를 먹지 않는다. 근육을 키우려고 다른 동물의 근육을 먹는 일 또한 미신적인 행위일 수 있다. <더 게임 체인저스>는 1900년대 초중반 사람들이 운동선수를 내세운 광고 때문에 흡연이 건강에 이롭다고 여겼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는 오래 이어온 육식과 동물성 단백질의 신화가 언젠가 깨질 것이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이제 그만 닭 가슴살을 놔주는 게 어떨까. 그 지방질 없는 뽀얀 속살이 당신을 검게 병들인다. 글 / 이주연(푸드 칼럼니스트)

    피쳐 에디터
    김영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