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훈은 선수 시절 가장 전투적인 농구인이었다. 코트를 웃을 수 없는 전쟁터라 말해왔다. 농구 예능에서도 그의 목적은 웃음이 아니었다.
TV에서 ‘방송인’ 서장훈을 보는 일은 커피숍에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 일만큼이나 쉬워졌다. 농구 잡지를 기획하는 입장에서는 서장훈이 웃고 노래 부르는 장면을 볼 때면 놀랍기도 하고 배신감도 든다. ‘농구 선수’ 서장훈에게서는 절대 볼 수 없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인터뷰는 늘 강한 프라이드가 느껴졌고, 사진 촬영을 할 때도 과감한 포즈나 분장은 감히 기대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이나 그때나 ‘역시 서장훈이구나’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바로 청산유수 같은 말솜씨이고 두 번째는 농구에 대한 애정이다.
2016년에 나는 KBS에서 방영한 <우리들의 공교시>란 프로그램에 서장훈과 함께 출연했다. 서장훈은 고교생들로 구성된 순수 아마추어 학생팀의 지도를 맡아 전국대회에 도전했다. 나는 그들의 경기를 해설했다. 학생들은 서장훈과의 첫 훈련부터 당황했다. 그들에게 서장훈은 ‘예능인’이었다. 어느 정도 화기애애함을 기대했지만, 정작 서장훈은 웃음기를 쫙 빼고 훈련에 임했던 것이다. 그에게 농구는 장난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엘리트’라 불리는 운동부 학생들을 가르치듯 강하게 몰아붙이진 않았지만, 기본자세에 어긋날 때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처음 <진짜 농구, 핸섬타이거즈> 라인업이 발표되고 서장훈이 감독을 맡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 방송은 결코 <뭉쳐야 찬다>, <우리동네 예체능>처럼 웃고 즐기는 체육 예능이 될 수 없을 것이라 예상했다.
서장훈은 한국 농구에서 가장 전투적으로 경기에 임했던 농구인이었다. 그 결과 당분간은 깨지지 않을 득점 기록(13,231점)을 달성했다. 그는 늘 농구장을 전쟁터라 말했다. 웃을 수 없는 곳이라 말해왔다. 예상대로 프로그램에서 서장훈은 승리를 갈망했고 이길 수 있는 농구를 추구했다. 그러나 핸섬 타이거즈는 당장 이길 수 있는 전력의 팀은 아니었다. 서장훈은 어중간한 상대와 해봐야 의미가 없다고 봤다. 그래서 강팀들을 원했다. 선수 시절 ‘플레이오프 보증수표’라는 평가를 받아온 그였기에, 경쟁을 할 거면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상대로 만난 아울스, 업템포 등은 실제로 전국에서 가장 강한 전력을 자랑하는 팀들이었다. 규정상 ‘선출’이라 불리는 경력 선수가 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한 조직력을 보였다. 평소에도 이들은 선수 출신들과 한 팀을 이루고 경쟁해왔다. 그렇게 쌓은 조직력과 경험을 넘기에 핸섬 타이거즈는 준비 기간이 짧았다.
물론 이상윤은 연예인 농구대회에서 MVP 경력이 있고, 문수인도 동호회 무대에서 혼자 20~30점씩 올려온 실력자지만 이들만으로는 부족했다. 결국 서장훈이 택한 방식은 ‘패턴’이었다. 시청자들이 불편해지기 시작한 것은 이 시점부터였다. 적지 않은 이들이 프로농구를 등지기 시작한 이유가 패턴 탓이기 때문이다. 화려한 개인기를 앞세운 NBA 농구와 달리, 기계처럼 정확히 돌아가길 강요하며 몰개성으로 이어지는 KBL이 심심하다는 것이다. 이런 말도 나왔다. 예능에서까지 패턴을 봐야 하나. 그러나 웃고 즐기는 농구 프로그램을 원했다면 제작진이 서장훈을 섭외하진 않았을 것이다. 웃음이 목적이었다면 얼마 전 은퇴한 하승진이 더 잘 어울렸을 것이다.
한정된 인력, 한정된 시간, 그리고 생각 이상의 수준 차이. 서장훈은 진지하면서도 초조했다. ‘대회’라는 포멧이 이미 결정된 상황에서 핸섬 타이거즈의 예선 탈락은 프로그램 종영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우승은 아니더라도, 프로그램을 살리려면 승리를 가져가야 했다. 시청자가 보길 원하는 화려한 개인기는 반복 훈련으로 만들어진다. 겨우 2~3개월 연습으로 습득하기에는 불가능하다. 프로 선수들도 동작 하나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수십, 수백 시간을 코트에서 보낸다. 서지석부터 차은우까지, 모두 농구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투자할 각오가 된 이들이었지만, 전문 선수처럼 모든 시간을 투자하기는 어려운 여건이었고, 그러기에는 노하우에 한계가 있었다. 농구선수 출신 연예인들을 섭외했다면 진행이 수월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득점 잘하는 ‘전문가’가 끼어버리면 의존도가 자연스럽게 높아질 수밖에 없다. ‘팀’으로 성장하기에는 기회가 균형 있게 돌아가지 않고, 재미도 반감됐을지 모른다. 또한 문수인의 투혼이나 차은우의 성장 스토리를 담을 기회가 충분히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서장훈은 패턴이라는 가장 현실적인 방식을 택했다. 반복 훈련을 통해 공수 조직력을 다져갔다. 실제로 이 방식은 경기 중 여러 차례 유용하게 먹혀들었다. 팀의 장점이라 할 수 있는 문수인과 줄리엔 강의 활용도 잘했다. 빅맨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여 공간을 만들고 찬스를 잡는 패턴은 서장훈이 현역 시절 SK와 삼성에서 장신 파트너들과 자주 했던 플레이였다. 마찬가지로 이상윤과 같은 중장거리 슛에 능한 선수들이 찬스를 잡는 패턴 역시 농구에서 가장 자주 사용되는 방식이었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선수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수신호 하나에 즉각 반응하며 경기 중에도 원하는 바를 잘 수행했다.
이는 서장훈의 훈련이 잘 먹혀든 부분도 있지만, 진짜 ‘팀 농구’를 배워가면서 희열을 느낀 선수들의 자발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제작에 참여한 대다수 관계자들은 차은우와 같은 초짜들의 발전 과정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굳이 제작진이 이미지를 만들어주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이 훈련에 매진하고, 행여 스케줄 때문에 훈련에 참여하지 못하는 날은 꼭 누군가에게 물어서 쫓아가려는 노력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핸섬 타이거즈 멤버들은 공식 촬영 일정이 끝난 뒤에도 모여서 손발을 맞출 정도로 코트 밖 호흡이 좋았다. 핸섬 타이거즈의 마지막 상대였던 업템포의 강우형 코치는 “공식 대회에서 잘하는 팀을 이기려면 최소 1~2년은 꾸준히 손발을 맞춰야 하는데, 겨우 몇 개월 만에 대회에서 1승을 따내고, 강팀과 접전을 벌였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성과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장훈은 팀의 단점을 최대한 감추는 데 성공했다. 선수들의 이런 헌신적인 모습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나도 나가서 농구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만들었다. 시청률을 떠나 프로그램 의도는 제대로 전달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편함을 느낀 시청자들이 있다면 ‘감독’ 서장훈의 소통 방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호통을 치고, 자극을 주기 위해 모진 말을 하는 등의 방식은 ‘호랑이’로 포장됐던 기성세대 감독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선수 시절 서장훈이 보인 승부욕에 익숙한 스포츠 기자들이라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을지 모르지만, ‘예능인’ 서장훈에 길들여진 시청자라면 불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단면으로 ‘농구 감독’ 서장훈의 미래를 속단해선 안 될 것이다. 서장훈은 선수들을 위해 눈높이를 낮춰가며 적당히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들의 공교시>에서는 ‘당근’을 줄 인물로 서장훈과 가까운 김승현을 코치로 붙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한 팀의 감독이 되어 긴 시즌을 이끌게 된다면 어떨까. 아마도 눈높이를 낮추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트레이닝이 필요할 것이다. 사람들의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친절하게 해결책을 제시하던 일반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여유까지 갖추게 된다면 농구 감독 서장훈의 리더십도 더 빛날 것이다. 물론, 굳이 예능을 버리고 자진해서 스트레스 덩어리인 농구 감독을 맡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글 / 손대범(<점프볼> 편집장)
- 피쳐 에디터
- 김영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