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6월에 볼 만한 LGBTQ 커뮤니티를 다룬 콘텐츠

2020.06.18박희아

6월은 성 소수자 인권의 달. LGBTQ 커뮤니티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힐 수 있는 콘텐츠를 모았다.

<해나 개즈비: 나의 이야기>

<해나 개즈비: 나의 이야기>

<해나 개즈비: 나의 이야기>

넷플릭스 오리지널 코미디 <해나 개즈비: 나의 이야기>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를 가득 채운 사람들은 “‘세상에? 여자였어요?’”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듣고 산다는 레즈비언 코미디언 해나 개즈비의 말에 웃음을 터뜨린다. “저는 남성들에게 자주 오해받는 편이에요.”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짧은 커트 머리와 옷차림 등을 ‘남성’의 것으로 정의하는 것이 얼마나 허상에 가까운 일인지 알려준다.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를 웃으며 하던 그는, 마침내 궁극적으로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꺼낸다. “동성애 문제가 아니라 남녀차별을 이야기하는 거라고요.” 이 한 마디는 금세 그가 마음에서 우러나온 농담 아닌 농담을 하던 이유를 깨닫게 한다. “이런 긴장이 조성됐지만 저는 웃음으로 끝내지 않을 거예요. 여러분 모두가 이 긴장을 느껴봐야 해요.” 웃음없이 끝나는 코미디의 역설에 박수를 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뮤지컬 <렌트>
9년 만에 돌아온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No day but today.” 그리고 우리가 오늘을 살아가야만 하는 이유는 오로지 ‘사랑’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 작품 속에는, 해석자의 입장에 따라 크로스 드레서인지 트랜스젠더인지 동성애자인지 정체성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엔젤이라는 중요한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 있지만, 제도의 불평등함을 말하면서도 사랑의 중요성을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커다란 무게를 지닌 인물이다. 역시나 바이섹슈얼인지 레즈비언인지 해석하기 나름인 모린이라는 여성, 레즈비언인 조앤, 그리고 조앤에게 애인을 뺏긴 남성 마크가 등장하는데 그들의 관계 또한 웃음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헤테로적인 사랑의 정의가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보여주는 장치다. LGBTQ, 그리고 편견을 갖고 있던 헤테로섹슈얼의 마음까지도 녹일 수 있는 작품.

연극 <어나더 컨트리>
과거 영국의 귀족에 속하는 소년들이 모인 학교의 면면은 들여다 볼수록 잔인하다. 그들 중에는 기숙학교라는 갇힌 환경 탓에 재미로 동성과의 키스나 섹스를 즐기는 이도 있지만, 실제로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하는 소수자들에게는 강력한 체벌이 가해진다. 그리고 그 체벌은 단순히 매질이 아니라 삶을 스스로 내던지는 죽음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사회에 공고하게 존재하는 사다리 없는 계급제의 삶. 그 안에서 자신의 우월한 존재라고 믿고 있던 소년 가이 베넷은 자신의 성정체성을 인정해주지 않는 주변인들 때문에 고통을 겪고, 그 고통은 태어났을 때부터 기숙학교에서 생활하면서 더욱 공고해진 계급제 사회에 대한 배신감과 엮여 커다란 분노로 승화된다. 1세계 백인 남성들, 그중에서도 사회적으로 가장 우월하다 여겼던 자신이 스스로 무너지기를 택하는 소년의 모습은 한국 사회에도 무거운 화두로 남을 것이다.

영화 <윤희에게> vs 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기혼 동성애자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두 작품은 언뜻 보면 기혼 동성애자를 다룬다는 점에서 비슷해보일 뿐, 별다른 공통점이 없어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이 결혼을 하고 나서 갖게된 부채감돠 그들이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는 자신의 성정체성이 사회로부터 부정 당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온갖 문제점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특히 윤태형의 선택으로 인해 그의 아내인 김은주와 은주의 가족들이 겪게 되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으며, 그 순간조차도 윤태형을 무조건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탓할 수 없다는 게 아이러니다. 잘못한 사람을 무조건 탓할 수 없는 사회의 시선,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나아가 그리고 기혼 레즈비언과 기혼 게이의 삶은 어떻게 다른지에 관해 이 두 작품은 함께 질문을 던진다. 영화 <윤희에게> 속 윤희가 여성이라는 점과 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속 윤태형이 남성이라는 점은 사회적으로 그들이 갖는 위치에 작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우리는 그 안에서 또 하나의 질문을 발견한다. ‘LGBTQ’의 문제 안에서 ‘LGBTQ’는 평등하게 존재할 수 있는가? 아마도, 해나 개즈비의 스탠드업 코미디로 답을 찾으러 다시 돌아가야 할 듯 싶다.

    에디터
    글 / 박희아(대중문화 저널리스트)
    사진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