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가 남기는 흔적마다 이지은이 묻어 있다. 지은이, 아이유.
지큐와 10년 전에 첫 인터뷰를 했어요. ‘Boo’, ‘잔소리’ 부를 때.
와, 10년이나 됐나요 벌써?
그때 첫 질문이 이거더라고요. “방학이죠? 혹시 생활계획표는….”
하하하하하.
이제 방학은 없네요.
네, 그렇죠. 그런데 그 화보가 기억에 되게 남아요. 머리 묶는 느낌이랑 수박 먹는 모습도 찍고. 그때는 제가 화보 찍어 본 적이 별로 없어서 긴장도 많이 하고 그랬던 기억이 나요.
얼마 전 <유희열의 스케치북> 통해서 데뷔 12주년 기념 무대를 가졌죠? 그것도 남다른 기억이겠어요.
스케치북 스태프분들 중에는 저를 고등학생 때부터 보신 분이 많이 계셔서, 그분들은 어떠셨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게 계속 뭉클하고 이상했죠. 왜냐면 스케치북은 신인이 거의 마지막에 무대에 오르거든요. 저도 마지막 순서에 녹화하는 걸로 시작했는데 이제는 한 회 특집 무대를 받은 거니까.
2집 곡 ‘너랑 나’에서부터 미공개 자작곡까지, 한 시간 반 동안 부른 17곡에 지난 12년의 시간이 압축되어 있었죠.
강승원 감독님이라고 ‘서른 즈음에’ 작곡하신 작곡가님, 제가 음악적으로도 너무 존경하는 선배님이 스케치북 처음부터 지금까지 쭉 음악 감독으로 계세요. 그날 지나가시면서 “많이 컸다” 말씀하시는데 “어휴, 그러니까요” 그랬어요. 제가 감히 스케치북 단독 무대를 하다니…. 그게 저는 계속 신기했어요. 하루 종일.
저는 특히 ‘무릎’(2015)이라는 노래를 소개할 때가 인상적이었어요.
제 대표곡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그랬죠.
그러면서 “가장 나 같다”라고도 했죠. 그런데 곡 소개 자막에 이렇게 뜨더라고요. ‘조그만 기척에도 잠을 설치고 경계하는 어른이 된 것이 문득 슬퍼지는 밤을 담았다.’
어, 내가 썼나 그 말? 내가 썼던 것 같기도 하고… 그랬나 보다. 그랬던 것 같아요, 네. 하하하.
경계심이 많아진 것 같아요?
잠을 설치는 이유는 어쨌든 경계하느라 못 자는 거라고, 아주 단순하게 불면의 메커니즘을 설명하면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병원에서. 경계해서 못 자는 거라고.
잠을 잘 못 자요?
요새는 3일에 한 번 주기로 잘 자요. 어제가 잘 자는 날이었어요. 환절기에는 특히 좀 그렇더라고요. 여름에 잘 자고 가을 되면 불면이 좀 심해져서 아무리 막 운동하고 햇볕 쬐고 그래도 매일매일은 잠이 잘 안 오더라고요.
무엇을 경계하는 걸까요.
모르겠어요. 그건 모르겠는데 그냥… 잠드는 걸 경계하는 게 아닐까. 무방비 상태가 되는 걸.
언제쯤부터요?
딱 스무 살 때부터였는데,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 단순하게 그냥 확 바빠지면서 일이 너무 많으니까 수면 패턴이 꼬인 거예요. 자다가도 깨우면 바로 나가서 일을 해야 하고 늘 스탠바이가 되어 있어야 하는 상황이니까. 깊은 잠에 들면 깨는 데 오래 걸리잖아요. 그래서 자는 걸 경계하게 된 것 같아요. 그래도 요새는 작품이나 앨범 활동할 때가 아니면 꽤 규칙적으로 하루가 흘러가는 편이에요. 아침 9시, 10시쯤에 일어나려고 노력 중이고, 원래는 2시에 일어나고 그랬어요. 하루를 이렇게 저렇게 보내고 밤 12시에는 잠에 들려고 해요.
스무 살 때부터였으면 노래로 말하기까지 3년이 걸린 거네요.
이제는 그게 별일이 아니고 현대사회에 불면증이 아닌 사람이 어디 있어 싶은데 그 당시에는 연예인들은 그런 걸 쉽게 얘기하면 안 된다 그런 분위기가 있었죠.
약점이 될 수 있으니까.
불면증이라고 하는 게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싶지만 그 당시에는 그랬던 거죠. 그동안 만들어져 왔던 건강하고 밝고 그런 이미지들 있잖아요. 귀엽고. 그런 이미지가 있는데 “저는 항상 밝고 고민이 없는 애가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것이기도 하니까.
솔직하게 고백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왔어요?
곡을 쓰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자기 고백이 담길 수밖에 없어서, 그래서 툭툭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무릎’을 좋아해요. 가장 솔직한 고백이라서.
그러고 보니 ‘무릎’이 담긴 3집 <CHAT-SHIRE>는 아이유가 본격적으로 작사, 작곡, 프로듀싱까지 참여한 앨범이에요.
제가 가사와 곡까지 다 쓰는 노래는 일기처럼 나오는 문장이 많은 것 같고, 다른 분의 곡을 받아서 거기에 가사를 입히는 과정에서는 아예 상상으로 많이 쓰기도 해요. 예를 들어 ‘Blueming’이 그랬고 ‘시간의 바깥’도 그랬고. 요즘은 거의 반반이에요. 제 얘기만 쓰다 보면 그것도 소재가 한정적이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새로운 캐릭터를 설정해서 연기하듯이 풀어가는 가사도 꽤 많아요.
아이유가 작사한 곡만 모아봤는데 인터뷰하는 오늘 날짜까지를 기준으로 54곡이더라고요.
오오, 많이 했다.
이 54곡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면요?
만족스러운 곡들이 먼저 떠오르는데 역시나 ‘무릎’이나 ‘마음’(2015)도 그렇고 음, 저는 ‘삐삐’(2018)도 되게 좋아하는 가사고요, ‘마침표’(2017)라는 곡이 있어요. 손성제 선배님이 곡을 주시고 제가 가사를 썼는데 저는 그 곡이 ‘저엉말’ 좋아요. 그런데 아주 차분하고 클라이맥스가 확실하지 않은 곡이라 히트곡이 될 그런 부류는 아니지만 언젠가, 언젠가 주목되면 좋겠다, 재조명되면 좋겠다 생각하는 곡이에요.
왜 좋아해요?
그 곡은 정말로 아프게 썼던 기억이 나요. 그 가사를 쓸 때, 저도 당연히 연애 경험도 있고 이별 경험도 있다 보니까, 진짜로 생생한 말들을 담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잠시 가사를 볼게요. 음… 사랑에 많이 아파했군요.
헤헤헤.
마지막 인사를 늦게 했다는 얘기구나.
그렇죠. 미루고 미루다가 나의 이별은 오늘이다. 오늘 진짜 다 턴다, 라는.
그러고 나면 다 털려요?
전 좀 그런 편이에요.
결정이 늦을 뿐, 결정한 순간부터는 뭔가 확 되는군요.
그래서 아주 가까운 사람들한테는 정 없다는 얘기를 들을 때도 있어요. 저는 진짜 정이 많거든요? 그런데 거기서 한 층 더 들어가서 가까운 사람들 있잖아요. 저의 모든 모습을 본, 진짜 저의 거의 모든 걸 아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그러는데 제가 어떤 일에 미련을 털고 돌아설 때, 그게 어떤 목표든지 사람이든지 간에, 오늘까지 ‘지인짜’ 힘들어하다가 갑자기 다음 날 “나 다 나았어”하고 온대요. 어떻게 하루 만에 그렇게 되냐는 얘기를 살면서 되게 많이 들었는데 듣다 보니 저도 그렇네, 맞네, 싶어요. 그 경계가 자연스럽게 페이드아웃이 아니에요, 저는. 그냥 뚝 끊길 때가 있어요. 그러고는 기억도 안 나는 그런 일이 많아요.
아이유의 깊은 내면까지 다 아는 사람은 보통 어떤 이들이에요?
아무래도 오래 본 분들이고, 유인나 씨가 있겠고. 같이 작업하는 작곡가분들은 저를 중학생 때부터 보셨으니까. 가족들한테도 그런 얘기 많이 들었어요.
저는 아이유가 쓴 54개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런 메모를 적었어요. ‘이런저런 모습의 아이유를 무장해제 시키는 건 결국 사랑 같다.’ 몇 퍼센트 맞아요?
아주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아주 맞아요?
제가 또 사랑이 많아요. 하하하하하. 사랑이 많아서, 이게 꼭 연애할 때의 사랑만이 아니고 저는 저도 너무 사랑해요. 20대 후반이 되니까 그게 구분이 되더라고요. 자기애와 자존감은 다른 거구나. 어릴 때는 그게 너무 헷갈렸거든요. 나는 내가 이렇게 소중하고 너무 좋은데 왜 아직 내가 영 부족한 것 같지? 왜 그런 걸까? 이런 고민을 많이 했는데 자기애와 자존감은 다르더라고요. 저는 자기애가 정말 높은 편이에요. 그런데 저는 제가 부족하다고도 생각을 해요. 그런데 부족하든 말든 내가 나를 사랑하기는 해요.
아이유를 무장해제 시키는 사랑에 대해 아이유는 자기애를 먼저 꼽네요.
저는 제가 가장 좋고요, 네. 자기가 되게 중요한 사람 있잖아요. 자기 기준이 되게 중요한 사람. 저도 그런 사람이라서. 저는 정말 제 기준이 중요하거든요.
그럼, 준비 중인 영화 <드림>의 소민 역할을 택한 기준은 뭐예요? 주변에 이런 친구 한 명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고 들었어요. ‘이런 친구’란 어떤 친구인가요?
소민이는 단순해요. 대본 리딩 처음 할 때 이병헌 감독님께서도 이야기하셨는데 캐릭터들이 아주 사연이 많고 아주 입체적이라기보다는 그 상황 상황별로 캐주얼하게 연기해주면 좋겠다, 그런 캐릭터들이라고 그랬거든요. 그중에서도 제가 제일 단순한 사연인 것 같고요, 단순하면서도 모두가 하는 고민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어쨌든 많은 사람을 북돋아서 끌고 가는 역할이기도 해요. 밝아요. 밝아서 좋아요.
밝은 친구군요.
어찌 보면 제가 제일 어려워하는 류의 연기이기도 하거든요? 아무렇지도 않은 캐릭터. 그런데 이전에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지안이나 <호텔 델루나>의 만월이처럼 날이 많이 서있고 사연이 아주 많은 그런 역할을 연달아 해봤으니 이제는 편안한 캐릭터를 하는 게 맞을 것 같다란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이게 저의 첫 상업 영화라고 해야 할까, 장편 영화 데뷔작인데 그렇기에 제가 너무 도드라지는 비중이나 캐릭터를 맞는 건 아니라는 생각도 했고요. 이건 들으시는 분들에 따라서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아직 호흡이 긴 영화를 해본 적이 없는데 ‘왜, 날 뭘 믿고 이렇게 큰 역할을 주셨지?’라고 의심하게 되는 제안도 있었어요. 그런 경우에는 제가 좀 보수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소민이는 인간적이고, 열심히 살고, 이런 친구 주위에 한 명쯤 있잖아 싶고, 지금 해봐야 될 것 같다 싶었어요. ‘코미디 영화니까 웃을 일도 많겠지?’하는 단순한 계산도 있었고.
웃을 일 많던가요?
네, 많이 웃으면서 현장감 있게 촬영했어요. 제가 평소에 흥분하거나 아주 기쁘거나 아주 슬프거나 이런 일이 잘 없거든요. 그런데 일을 할 때는 이건 좀 예외다 싶을 정도로 끝까지 가요. 막, 막 너무 흥분되고 머리가 막 빨리 돌고 피가 막 빨리 돌고, 패배감을 느낄 때도 있고 성취감을 느낄 때도 있고 행복감, 죄책감을 느낄 때도 있는데 일할 때, 딱 일할 때만 그래요. 평상시에는 대부분 무기력하게 있어요. 그 모습이 <효리네 민박> 때 보여진 것 같아서 방송 봤을 때 저 엄청 충격이었어요. 저게 방송에 나가다니.
그래서 충격이었어요? ‘내게 저런 모습이 있다니’ 깨닫고 놀란 게 아니라?
‘저만 알았던 저, 저, 저 무기력한 모습이 방송에 나가다니’였죠. 10년 동안 안 보여줬던 모습인데.
자기만족을 향해 끝까지 밀어붙이는 마음은 별로 무기력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 힘은 천성 같아요.
새 앨범도 준비 중이죠?
내년에 낼 예정인데 콘셉트는 정해져 있어요. 인사. 20대 마지막 앨범이니까.
그렇네요. 내년이면 스물아홉이죠.
열여덟 살에 데뷔했으니까 제 10대는 중간부터 보셨지만 저의 20대는 완독하신 거잖아요. 제 20대를 쭉 지켜봐 주신 거니까 거기에 대한 인사, 끝까지 봐주신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싶어서 만들고 있는 앨범이에요. 화려한 인사를 하고 싶어요. 화려하게, 쓸쓸하지 않게.
20대가 끝나는 게 걱정돼요?
마무리 잘 해야 할 것 같다는 부담이 좀 있기는 해요. 제가 어디서 이야기할 때 “부담이 있어요”라는 말은 잘 안 하는 편이기는 한데 솔직하게, 20대의 마무리라서 부담이 있긴 해요. 그리고 산뜻하게 30대를 맞이하고 싶어요. 30대부터는 조금 달라지려고요.
어떻게요?
조금. ‘조오금’ 달라지려고요. 음악적으로나 여러 부분에 있어서. 더 정확히 말하면 좀 더 자연스럽고 편해지려고 해요. 거기에 대한 인사이기도 합니다. “이제 다음 챕터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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