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린 듯이 바라보게 만드는 옹성우가 골똘히 응시하는 것들.
요즘 같은 분위기에는 안부를 먼저 묻게 돼요. 잘 지내나요? 8개월 동안 매달린 드라마 <경우의 수>를 마치고 정말 오랜만에 쉬고 있어요. 살짝 나른한 상태랄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되나 싶으면서도 한껏 늘어져 있으니 그게 좋아요. 수염을 일주일 정도 자르지 않기도 했어요.
오, 수염을 기른 옹성우라니. 길게 기른 건 처음이었는데 괜찮더라고요. 만졌을 때 까슬까슬한 느낌도 나쁘지 않고, 거울에 비친 얼굴도 새롭고. 약속 자리에 그냥 이러고 나갈까 했지만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싹 밀었어요.
오늘 옹성우의 얼굴에 집중해 내추럴한 무드로 촬영했는데 왠지 어울렸겠는걸요. 모니터링을 하면서 “처음인데요”라는 말을 자주 했는데 어떤 의미였어요? 인터뷰에서 말한 적이 있는데 얼굴로 이야기를 만들고 미세한 표정 변화로 감정을 전달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화보 촬영 때 스스로 놀라기도 해요. 순간적으로 포착된 제 얼굴을 보고 ‘내가 저런 표정을 지었나’, ‘저런 분위기가 나올 수 있구나’ 하면서. 오늘은 저도 몰랐던 다양한 느낌이 나와서 기분이 좋아요. 평소에 감정을 많이 드러내지 않는 편이거든요. 해봤자, 즐거움이나 고민 정도인 것 같아요.
하지만 화가 치밀어 오를 법한 상황도 있지 않나요? 칭얼거리거나 투정을 부리긴 해도 이상하게 화가 잘 안 나요. 우선 한 발짝 물러나 사태를 파악해요. 가끔 이런 상상을 하긴 해요. 만약 불같이 화를 내면 어떻게 될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인터뷰나 팬들을 위한 콘텐츠를 보면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고 늘 표현하는구나, 그런 느낌도 들어요. 제가 가진 것보다 훨씬 큰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껴요. 그래서 뭔가 발전하고 좀 더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책임감이 커요.
한 작품을 완주하는 건 어떤 기분인가요? 잘했다는 생각보단 아쉬움이 많지만, 앞으로 가야 하는 길에 대한 방향성을 새롭게 얻었어요. 제 것을 찾아가는 단계라 다양한 시도를 해보려고 해요. <경우의 수>에선 대본에 쓰인 대로만 대사를 내뱉는 데 그치는 것 같아 대본을 외운 뒤 촬영장에는 가져가지 않았어요. 좀 더 자유로운 마음으로 연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래서요? 결과적으로 이 방법이 모범 답안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맞다, 틀리다의 문제를 떠나 이런 시도가 필요하다고 봐요.
MBTI 결과로 창의적이고 호기심이 많은 ‘재기발랄한 활동가’가 나온 걸로 알고 있어요. 일단 시도해보고 경험을 해봐야 깨닫는 타입이에요. 맞아 봐야 아픈지 알고, 더워봐야 더운지 아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거쳐 아이돌로 데뷔했지만 연기하는 것이 오랜 꿈이라고 했잖아요. 그걸 이룬 지금 마음가짐, 목표가 달라졌나요? 크게 변한 건 없어요. ‘연기를 하고 싶다’는 목표는 여전히 유효해요. 가끔 ‘연기를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앞선다고 해야 하나, 그럴 때가 있는데 여지없이 결과가 안 좋더라고요. 일단 2021년에는 “옹성우 요즘 연기하네”라는 말을 자주 듣고 싶어요. 연기를 한다는 걸 모르는 분도 많으니까.
한 인터뷰에서 “스무 살 때부터 영화관에 나오는 내 모습을 그려왔어요”라고 말한 걸 봤어요. 배우의 얼굴은 스크린에 관객의 시선을 가두고 끌고 가야 하는데, 본인의 얼굴이 가진 힘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요? 그게 저도 너무 궁금해서 감독님이나 제작진에 저를 선택한 이유를 물어보곤 해요.
옹성우의 어떤 점이 좋았다고 하던가요? 한번은 제 얼굴에 굉장히 다양한 분위기가 서려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마냥 순박해 보이기도 하고, 서늘한 면도 있고, 무표정하게 있으면 날카롭게 느껴지기도 한다고. 내심 기뻤어요. 사람들이 그런 면모를 알아주길 원했거든요.
개봉이 미뤄져 당장 볼 수는 없지만 영화 데뷔작 <인생은 아름다워>가 무척 궁금하기도 해요. 한국 영화에서 생소한 뮤지컬 장르면서 옹성우의 무대를 한 번이라도 봤다면 기대를 걸게 돼요. “생애 모든 순간이 노래가 된다”라는 예고편의 자막처럼 우리 곁에 늘 있었고 누군가의 인생을 대변해주는 명곡들이 영화에 많이 나와요. 예를 들면 이문세 선배님의 ‘조조 할인’과 토이의 ‘뜨거운 안녕’. 저한테도 노래가 과거의 어떤 순간을 떠올리게 만드는 중요한 매개체가 되거든요. 그런 명곡들이 한데 어우러진다는 점이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그리고 카메라 앞에서 연기와 동시에 노래, 퍼포먼스를 해낸 배우는 많지 않죠. 직접 해보니 어떻던가요? 춤을 췄기 때문에 유리한 점이 확실히 있어요. 1, 2년 전만 해도 영화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게 될 줄은, 여태까지 해온 것들이 이렇게 활용될 줄은 상상도 못 했죠. 이 경험도 자산이 되어 나중에 요긴하게 쓰일 거라 생각해요.
뮤지컬 무대에도 관심 있어요? 그럼요. 대학교 때 연기를 전공하면서 작게나마 연극, 뮤지컬을 했고 그때 무대에서 느꼈던 감정들이 아직도 진한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옹성우가 살아온 과정을 뮤지컬로 만든다면 어떤 노래들이 먼저 떠올라요? 그렇지 않아도 <인생은 아름다워>를 하면서 제 인생을 대변할 수 있는 노래들은 뭘까 궁금해 쭉 찾아 들었어요. 리쌍 선배님들의 ‘헤어지지 못하는 여자, 떠나가지 못하는 남자’도 있고, 고등학교 시절 하면 힙합 음악만 떠올라요. 슈거힐 갱, 그랜드 마스터 플래시, 우탱 클랜. 같이 춤추던 친구들과 힙합에 미쳐서 공부 아닌 공부를 했거든요. 다큐멘터리를 찾아 보고 자료들을 뒤지며 힙합의 역사와 힙합의 4대 요소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죠.
힙합의 4대 요소, 기억나요? 비보이, MC, DJ, 그라피티! 수많은 힙합 곡에 샘플링된 ‘Apache’의 비트를 들으면 그때로 돌아간 기분이에요. ‘빰 빰빰빰’. 그리고 애니밴드 기억하세요?
아주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네요. 보아, 시아준수, 타블로 선배님이 CF를 위해 결성한 프로젝트 그룹인데 ‘TPL’, ‘Promise You’라는 노래를 정말 좋아해요. 제 싸이월드 미니홈피의 배경음악이었죠. 뮤직비디오에 건물 옥상에서 멋지게 노래 부르는 장면이 나와요. 들을 때마다 그런 영화 같은 일이 펼쳐질 것처럼 신났어요.
그때가 언제였는데요? 초등학교 6학년 때요.
어떤 아이였는지 궁금해요. 별 생각이 없었을걸요. 아, 멋이라는 걸 알게 된 시기였어요. 주변에서 성우는 끼가 많다, 잘생겼다, 연예인 해야겠다, 했어요. 기분 좋은 소리지만 연예인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의 순수함, 자유로움이 기억에 남아요. 어머니가 저를 믿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했어요. 뭘 하든 응원하시면서. 저도 어머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다짐했죠. 제가 인천시교육청 홍보대사인데 자부심이 커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어느 때보다 말 한마디가 힘이 되는 시기인데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해볼래요? 다들 마음이 튼튼하면 좋겠어요. 그래야 좋은 것을 받아들이고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봐요. 사실 그러기가 쉽지 않다는 걸 알아요. 저도 되게 힘들고 기진맥진할 때가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질병을 예방하듯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하려고 더 신경을 쓰게 되더라고요.
옹성우식 처방전은 무엇인가요? 저만의 주문 같은 건데, 인생을 한 편의 영화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아요. 장면 하나하나 모여 한 편의 영화가 완성되는 것처럼 삶에도 기승전결이 있다고 생각해요. 오늘의 선택이 미래의 복선이 되어 돌아오는 거죠. 그래서 뭔가 지치고 흔들리는 일이 생기면 이것 역시 더 나은 결말을 위한 발판이 될 수 있으니 힘내자, 이러면서 마인드 컨트롤을 해요.
옹성우가 만들어가고 있는 영화의 장르는 뭐예요? 휴먼 다큐, 코미디, 드라마…. 공포물 빼고는 다 있어요. 클라이맥스도 많고요. 말하고 보니 재미없는 영화는 아닌 것 같아 다행이에요.
영화에서처럼 미래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듣고 싶은 답이 있나요? 아뇨!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스포하지 말라고 할 거예요.
왜요? 인생의 미스터리는 언젠가 풀리기 마련이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무엇이든 새롭게 시도할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내용을 다 알고 보면 영화가 재미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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