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능과 기술력을 자랑하고 전시하기 급급했던 자동차 광고가 확 달라졌다. 전혀 새로운 문법으로 소비자의 감정을 툭 건드린다.
패션 디자이너가 말한다. “디자인에는 사람의 미래뿐 아니라 지구의 미래를 바꿀 힘이 있습니다.” 탐험가가 말한다. “언제나 자연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뮤지션이 말한다. “우리 모두가 선한 영향력을 나눌 수 있습니다.” 아이도 말한다.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당신과 나는 세상을 바꿀 수 있어요.”
한 국내 자동차 회사의 글로벌 캠페인 광고다. 유튜브에서 7천35만 뷰를 기록할 만큼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동차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자동차는 화면을 예쁘게 채우는 오브제일 뿐. 오히려 사람과 환경, 미래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자칫 제품을 어필하기에는 모호하고, 브랜드의 메시지를 날카롭게 전달하기에는 추상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광고는 제품과 브랜드의 특성을 소비자에게 잘 전달했다는 평가와 함께 뛰어난 브랜딩 사례로 언급되고 있다.
요즘 자동차 광고는 이런 식이다. 제품의 기능을 대놓고 소개하지 않는다. 공감대를 형성하는 요소로 소비자의 감정을 건들고 변화를 주는 고차원적인 기법을 사용한다. 자동차 광고의 새로운 흐름은 제품 기술의 발전뿐 아니라 광고가 소비되는 플랫폼 변화에 맞물려 작동했다. 소비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는 예전과 비슷하다. 하지만 문법만큼은 완전히 다르다.
이미 수년 전부터 변화의 바람이 적지 않게 감지됐다. 자동차 홍보와 마케팅의 비중이 TV나 신문으로 대표되는 단방향 광고(ATL)에서 유튜브, 소셜 네트워크의 양방향 소통(BTL)으로 조금씩 이동했다. 버튼으로 넘길 수 있는 광고 플랫폼에서 자동차 광고 스스로도 변해야 했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새로운 영역으로의 확장이 필요했다. 남들과 달라야 했고 더 빠르게 시도해야 했다. 자연스럽게 몇 가지 성공 공식이 완성됐다.
우선 협업을 이야기할 수 있다. 유명 자동차 회사들은 다른 분야의 브랜드 혹은 문화 콘텐츠와 손잡으며 더 이상 혼자만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세상임을 인정했다. 협업의 형태는 결과물을 나눠야 했지만 그 대가로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일례로 ‘스타워즈’나 ‘어벤져스’처럼 대중이 열광하는 콘텐츠를 광고에 접목하는 자동차 회사가 늘어났다. ‘스타워즈’를 패러디한 광고에서는 다스베이더의 등장과 함께 미래형 전투기 대신 포르쉐의 순수 전기차가 나타나기도 했고, ‘캡틴 마블’과 ‘스파이더맨’이 아우디 e트론과 A8을 타고 위기 상황을 빠져나온다는 내용의 광고도 있다.
앞선 사례와 같은 광고 마케팅은 북미 시장을 염두에 둔 국내 자동차 회사에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할리우드라는 막강한 문화 시장의 영향력을 광고에 활용할 수 있었다. 광고 전쟁터라 불리는 미국 프로미식축구(NFL) 결승전 ‘슈퍼볼’에 30초 분량의 광고를 내보내기 위해 매년 수많은 영화 제작사가 자동차 광고판에 뛰어든다. 이들은 기막힌 아이디어와 연출력으로 전 세계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폭발적인 화제성을 이끌어내며 SNS 피드를 도배한다. 최근 1~2년 사이에 선보인 슈퍼볼 광고 중에서 개인적으로 최고로 꼽는 것은 월마트의 ‘Grocery Pickup, Famous Cars’ 편이다. 월마트의 온라인 주문과 무료 픽업 서비스에 대해 설명하면서 <빽 투 더 퓨처>의 타임머신 자동차 드로리언, <배트맨>의 배트 모빌, <고스트버스터즈>의 캐딜락 앰뷸런스, <쥬라기 공원>에서 구겨질 대로 구겨진 사파리 SUV, <나이트 라이더> 키트, <트랜스포머> 범블비까지 누구나 알 법한 영화 속의 매력적인 자동차가 총출동한다. 화려한 볼거리 외에도 광고와 마케팅이 전혀 다른 분야를 넘나들며 연결된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한편에선 광고 플랫폼의 변화를 활용하는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다. 몇 년 사이 눈에 띄게 많아진 것은 감성팔이식 자동차 광고다. 자연, 시간, 날씨처럼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요소를 자동차라는 물성에 그럴듯하게 연결한다. 인간미를 호소하기도 한다. 부모에서 자녀로 이어지는 자동차. 혹은 누군가의 희생을 뒤늦게 알아버린 젊은이의 성장 과정이 대표적이다. 이런 드라마 형태의 광고는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할 법한 애틋한 감정으로 몰입도를 높인다. 그 안에서 자동차는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녹아든다. 손발이 오글거리는 뻔한 이야기와 뻔한 연출이지만 결과는 확실하다.
특히 유튜브나 소셜 네트워크처럼 양방향 소통이 가능한 플랫폼에서 효과적이다. 긴 런닝 타임, 시리즈 형태의 전개로 자동차 광고를 제작할 수 있기에 장시간 이야기를 끌고 갈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사실 자동차 광고는 어느 순간부터 광고와 콘텐츠의 모호한 경계를 오간다. SNS 콘텐츠로 기획된 자동차 광고가 인기를 얻으면서 공중파 TV에 등장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유명 자동차 유튜버가 브랜드의 공식 광고에 출연해 신차의 디자인과 성능보다 유튜버의 등장이 화제가 되기 일쑤다.
물론 모든 자동차 광고가 새로운 영역 확장과 플랫폼 변화에만 몰두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자동차 광고는 더 적극적으로 제품의 본질에 다가선다. 자동차 기술 발전을 새롭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과거의 유산을 현대식으로 해석하고 지속 가능한 요소로 새롭게 정립하고자 한다. 대표적인 요소가 사운드, 즉 소리다.
소리는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직접적인 수단이다. 엔진 소리는 자동차의 목소리다. 배기음은 한계를 향한 도전이다. 현재 모두가 목표로 삼은 것은 순수 전기차다. 알다시피 전기차의 특징은 소리 없이 조용하다는 것이다. 배터리의 동력으로 전기 모터를 돌려 움직이기 때문에 내연기관 엔진처럼 물리적인 소리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아무리 역동적인 미래의 모습을 강조하려 해도 한계가 따른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전기차 광고에는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문법이 등장한다. 미래의 소리를 담는 것이다.
전기차가 달릴 때는 인위적인 전기음을 만들어 그것을 광고 전면에 노출한다. 전기 모터가 돌 때 발생하는 것처럼 ‘윙’ 하는 저주파 소리가 광고의 배경 음악 사이로 강렬하게 표현된다. 브랜드에 따라서 전기차 사운드는 일렉트릭 스포트 사운드, 아이코닉 사운드 일렉트릭 등 다양하게 지칭된다. 전기가 흐르는 저주파 사운드라는 점은 모두가 비슷하다. 그러나 각각 이름이 다른 것처럼 실제로는 독자적인 소리의 특징을 가진다. BMW는 저명한 영화음악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인 한스 짐머와 협업해 전기차 전용 사운드를 만들었다. 실제로 광고를 통해 들어보면 꽤 강렬한 인상을 준다.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는 새로운 음악 같다. 미래적인 전기 모터 소리가 피아노 건반을 따라 흐르는 듯 춤춘다. 저음에서 고음으로 차의 속도에 따라 리드미컬하게 음색이 변한다. 전기차 광고에 담긴 강렬한 미래의 소리다. 놀랍지 않은가?
요즘 자동차 광고는 이렇게 진화하는 중이다. 심지어 이건 거침없는 변화의 일부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자동차 광고는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는 기술과 환경, 라이프스타일과 가치 등을 가장 잘 다루고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콘텐츠일 수 있다. 우리는 그 변화를 직접 마주하며 매일 경험하고 있다. 조그마한 LCD에서 장소나 시간의 구애도 받지 않고 말이다.
- 글
- 김태영(자동차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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