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이 현실에 낚이는 것인지, 현실이 예능에 낚이는 것인지 바야흐로 ‘집방’ 시대다. 사는(Buy) 것과 사는(Live) 곳 사이에서.
사는 곳이 어디인가. 이것이 단순한 ‘공간’의 개념이 아니라 ‘계급’을 동반한다는 걸 대학에 가서야 알았다. 지방에서 상경해 서울 물정에 무지했던 나는, 아파트 브랜드명과 사는 지역만으로도 사람의 인생을 셜록 홈스처럼 추리해내는 친구들의 능력에 감탄했다. 순진한 시절이었다. 마침 TV에선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라는 아파트 광고가 사람들 신경을 불편하게 건드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카피는 노스트라다무스급 예언이 됐으니, 20여 년이 지난 지금 ‘사는 곳’은 이전보다 더 명확하게 부와 신분을 드러내는 ‘현대판 호패’가 됐다.
집을 둘러싼 희비는 곳곳에서 엇갈린다. 누구는 집 마련할 형편이 안 돼서 결혼을 안 하고, 누구는 청약 확률을 높이기 위해 결혼을 한다. 누구는 전월세 집을 찾아다니느라 유목민이 됐고, 누구는 아파트로 번 돈으로 시세 차익이 더 날 말한 아파트로 이사 다니느라 유목민이 됐다. 물려받은 게 빚밖에 없는 자식들에게 집은 일생의 ‘과업’이고, 부모 찬스 쥐고 태어난 이들에게 집은 사는 곳(Live)인 동시에 사는 것(Buy)이다. ‘광풍’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로 많은 이슈를 빨아들이고 있는 집.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집이라는 공간에 얽힌 욕망과 이해관계는 더욱 복잡해졌다.
최근 ‘먹방’과 ‘쿡방’ 사이를 ‘집방’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건, 이와 무관하지 않다. 잘나가는 예능일수록 대중의 욕망을 잘 캐치해내기 마련이다. 이 트렌드의 선두에 선 MBC <구해줘! 홈즈>는 계약 기간이 끝날 때마다 옮겨 다녀야 하는 도시 유목민들을 공략해 공감을 얻었다. 발품 팔아 집을 구해본 사람은 안다. 손에 쥔 예산에 맞춰 원하는 집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내 가치를 돈으로 환산해 취급하는 부동산 시장이 얼마나 냉혹한지를. <구해줘! 홈즈>는 이 역할을 방송국이 대리해준다. 의뢰인이 제시한 가격과 조건에 맞춰 최적의 매물을 찾아준다는 포맷이 신선하다. 소개한 집이 실구매로 이어지면서 실용성도 잡았다.
집 예능의 효시 격으로 불리는 MBC <러브하우스>와 여기에서 파생된 과거 집방 콘텐츠 대부분이 ‘살고 있는 집’의 메이크 오버나 인테리어 소개에 그쳤던 반면, <구해줘! 홈즈>는 주거 공간의 ‘이동’에 초점을 맞춰 다양한 형태의 주거 환경과 삶을 조명한다. 땅콩주택, 협소주택, 퍼즐주택 등이 발견되고 주목받았다. 재태크 수단이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에 호응하는 수단으로 집을 바라보길 제안한다는 데 <구해줘! 홈즈>의 가치가 있다. 방송을 보다 보면 현실 자각 타임도 만나게 된다. ‘헉’ 소리 나게 뛴 서울 집값과 서울을 조금만 벗어나도 훨씬 좋은 컨디션의 집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탈(脫)서울’을 권하는 프로그램들이 하나둘 론칭했다. JTBC는 <서울엔 우리집이 없다>고 탄식하는 사람들을 아예 ‘서울 바깥’으로 실어 나른다. 채널A플러스 역시 집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겠다며 <Bye Seoul 여기, 살래?!>라고 노골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서울 노른자 땅에선 전세 얻기도 어려운 돈으로 3백 평 마당이 딸린 주택을 지어 사는 모습에 관련 게시판은 뜨거워진다. 그러나 서울로 왕복 5시간 출퇴근한다는 사연을 볼 땐, 기회비용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게 사실이다. 도로 위에서 천금 같은 시간을 소모하는 걸 감수할 만큼 매력적인가. 주변 편의시설과 문화시설은 충분한가. 빠르게 치솟는 서울 부동산 시장에서 이탈하면 평생 뒤처지지는 않을까. 아이들이 있는 집이라면 교육 환경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서울을 벗어난다는 것 자체가 인생의 큰 결단임을 발견하게 되면, ‘탈서울’ 자체가 판타지로 다가오기도 한다. 애초에 판타지 영역에서 집에 접근해 화끈하게 대리만족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낫다 싶으면? SBS <나의 판타집>으로 채널을 돌리면 된다.
많은 것이 서울에 집중된 현실에서 탈서울을 선택하기 힘들고, 그렇다고 <나의 판타집>처럼 꿈만 꿀 수도 없는 노릇. 그 사이에 MBC와 디스커버리채널 코리아가 공동 제작한 <빈집살래 Buy & Live>가 있다. 서울 시내에 흉물로 버려진 집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프로그램. 불안감에 오늘을 저당 잡히는 아파트 ‘영끌족’들에게 오래된 빈집에 나의 취향을 불어넣어 사는 방법도 있음을 알려주며 주목받았다. 이 프로그램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장밋빛 부푼 꿈으로 프로젝트를 그려내지 않으려 한 자세다. 빈집을 인수해 개조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예상치 못한 변수와 시행착오를 가감 없이 담으며 이 또한 녹록지 않은 삶임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솔루션을 찾았다. 무엇보다 집이 완성돼 나가는 과정에서 쌓이는 추억을 통해 집이라는 것이 ‘정서적 기억’의 공간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렇다면 부동산이 지닌 투자 자산의 성격에 과녁을 꽂은 프로그램은 없는가. 있었다. ‘돈벌레’라 읽(히)고 ‘돈벌래’라 썼던 MBC <돈벌래>다. 부동산 시세부터 매매 호재와 악재, 입지 분석까지 세밀하게 다룬 시도는 분명 획기적이었다. 집을 투자 자산으로 바라보고 접근했다는 점에서 기존 집방 프로그램들과 확연히 달랐다. 부동산 시장의 ‘뜨거운 감자’로 거론되는 용산을 찾은 첫 회에선 “재개발 기대로 뭉칫돈들이 잠자고 있는 동네!”란 자막이 복고 포스터 표어처럼 화면에 나부꼈다. 세속적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부동산 시장에 솔직하게 접근해 정보를 제공한다는 옹호론도 있었다. 부정적 여론이 더 강했다. 결국 4부작 파일럿으로 제작한 <돈벌래>는 불로소득을 부추기고 부동산 투기를 조장한다는 논란 속에서 2부 만에 종료됐다.
조기 종영 속에서도 생각할 거리는 여럿 남겼다. 공영방송이 세속적 욕망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도 그렇지만, 부동산 정보로 이득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팽배하고 당연시 여겨지기에 이렇게 많은 전문가가 들러붙어서 예능으로 만들었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방영 당시 패널을 맡은 김경민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부동산 투기 문제는 그간 정보가 소수에게 ‘쏠려 있었기 때문’이 크다. 균형 있는 정보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 투기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다”. 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 일부 직원들이 전문가들도 예상 못 한 ‘왕버들나무 심기 꼼수’를 끌어다 신도시 개발 보상을 노린 걸 보면 ‘정보 차이’가 투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서는 반박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전문 투기꾼들은 말할 것도 없고, 관행을 악용하는 ‘꾼’들에게 지금의 ‘집방’ 프로그램들은 어떻게 보일까. 입맛이 텁텁하다.
2008년 미국 부동산 대공황 사태를 배경으로 한 영화 <라스트 홈>(2014)에서 부동산 브로커 릭 카버는 주택 담보 대출을 믿었다가 집을 빼앗긴 건설노동자 데니스에게 이런 조언을 한다. “집은 그냥 상자야. 감정을 섞지 마. 그냥 상자를 팔아서 더 큰 상자를 사는 거야.” 부동산 정책 실패가 낳은 괴물이 릭 카버였고, 그 피해자가 데니스였다. 현 정부 25번째 부동산 정책과 들끓는 집값. 그에 따라 늘어가는 릭 카버의 후예들과 덩달아 늘어가는 똘똘한 한 채 마련에 대한 압박감. 그리고 TV는 대중이 주거에 대해 느끼는 불안과 욕망을 엔진 삼아 시청자의 호기심을 낚을 예능을 선보인다. 예능이 현실에 낚이는 것인지, 현실이 예능에 낚이는 것인지 선후 관계는 명확하지 않지만, 돈/시청률을 벌고 싶다는 목표만큼은 다르지 않으니 집방 인기 전망은 당분간 ‘맑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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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시우(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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