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로 입을 가린 지 1년 3개월째. 청각이라도 그만 괴롭히려는 듯 음악 콘텐츠가 아스라이 흐르고 있다. 고요를 향해 귀가 열린다.
음악을 듣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다는 흥미로운 통계가 있다. 프랑스 문화부는 매년 자국민의 문화 소비 양상을 조사해 발표하는데 ‘음악을 듣는다’고 답한 사람이 2018년 92퍼센트에서 2020년 70퍼센트로 크게 줄어들었다. 이런 경우 라이트 리스너, 즉 소소한 취미나 휴식 용도로 가볍게 즐기는 사람이 먼저 이탈하게 마련이므로 ‘굳이 음악을 찾아서 듣지 않는다’는 사람이 부쩍 늘어났다고 해석하면 되겠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귀에 어떤 소리가 전해지는 상황 자체를 싫어하게 된 걸까? 완전한 침묵이나 적막을 원하는 걸까? 시장 흐름을 볼 때 그리 말하긴 어려워 보인다. 음악을 대신해 ASMR, 사운드스케이프 등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이런 청각 콘텐츠의 상당수는 별생각 없이 흘려들을 수 있는, 귀에 기분 좋은 자극을 주는 데 그치는 소리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유튜브에서 이런 콘텐츠의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 잘 만든 콘텐츠는 여느 가수의 뮤직비디오 못지않은 조회수를 기록할 만큼 인기를 끌고 크리에이터 역시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넷플릭스 또한 이런 흐름에 편승해 4K 모닥불 영상을 서비스했다. 집 거실에서 모닥불 영상을 틀어놓고 마치 야외에 나온 양 ‘불멍을 때리며’ 쉬라는 것이다. 호응은 상당했다. 정말 그렇게 쉬며 찍은 사진이 페이스북에 연달아 뜰 정도.
‘그런 걸 왜 듣지? 시간 낭비 아냐?’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나도 그중 한 명이다. 나는 작가이기에 앞서 콘텐츠 헤비 유저다. 책, 음악, 영화, 드라마 등을 쉬지 않고 소비하며 그에 관한 글을 계속해서 써왔다. 완성도, 예술성, 재미, 의식 등을 두루 따지는 피곤한 부류로서 거만한 태도로 젠체하는 스노비즘도 없잖아 있다. 그런 만큼 ‘편하게 흘려 들을 수 있는’ 청각 콘텐츠는 애초 관심 밖이었다. 그런 걸 소비하는 시간은 일단 아깝게 다가왔다. 다른 훌륭한 콘텐츠를 보고 듣기도 바쁜데 대체 왜?
그랬던 내가 지금은 그런 콘텐츠를 서비스하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스스로도 좀 어이가 없는데 어쩌다 보니 삶이 이리 흘렀다. IT 스타트업인 우리 회사는 블림프 Blimp라는 명상 앱을 서비스한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쉬면서 때로는 사색도 할 수 있는 청각 콘텐츠가 담겨 있다. 반응은 괜찮다. 출시 1년이 채 되지 않았고 특별한 마케팅도 하지 않았지만 입소문만으로 10만 명 가까이 다운받았다. 애플 앱스토어에서도 이달의 앱, 추천 앱 등으로 꾸준히 선정하며 힘을 실어줬다.
“사람 목소리는 편히 쉬는 데 거슬려요.” 좌충우돌하며 꾸려오는 동안 유저로부터 이런 피드백을 몇 차례 받은 적이 있다. 우리 앱은 편히 쉴 때 곁들이기 좋은 사운드스케이프, ASMR, 음악뿐 아니라 살짝 집중해서 들어야 하는 클래스, 이야기 등도 함께 제공한다. 한데 꽤 많은 유저가 위처럼 사람 목소리 자체에 거부감을 피력하며 클래스, 이야기 등은 전혀 이용하지 않는다. 좋은 목소리를 가진 업계 일류 성우를 섭외해 특별히 느긋하고 편안하게 낭독해달라고 주문해가며 만들었음에도.
이를 두고 유저를 원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람의 취향과 성향이란 제각각일 수밖에 없으니까. 또 사람은 각기 나름의 사정을 갖게 마련이기도 하다. 만약 일상 내내 일이나 공부에 시달리고 끊임없이 쏟아지는 뉴스에 지친 사람이라면? 당연히 일단 모든 말로부터 멀어지고 싶지 않을까? 아무리 편안한 목소리로 좋은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해도 그저 소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은 흐름, 즉 집중해서 무언가를 보고 듣기를 피곤해하며 그저 편안한 자극 정도만 바라는 경향은 심지어 음악계에도 제법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음악을 이 둘로만 나눌 순 없지만) 대중음악과 클래식 양측에서 모두 관찰되는 현상이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앨범을 발표할 때마다 장르와 스타일을 성공적으로 바꾸기로 유명한데 작년에 발표한 정규 8집 <folklore>는 특히 파격적이었다. 아무 예고 없이 기습적으로 발표한 <folklore>는 종전과 달리 인디, 포크 계열의 정적인 색채를 띠고 있었다. 내면의 평화를 방해받기 싫어하는, 무언가에 너무 몰입하는 걸 꺼리는 이들을 위한 음악으로 가득했다. 어깨를 들썩이기는 고사하고 귀조차 그리 자극하지 않아서 이름을 가린다면 테일러 스위프트임을 믿기 어려울 정도.
반향은 엄청났다. 모든 곡이 스트리밍 차트를 휩쓸었고 평단 역시 찬사로 도배됐다. 비평 종합 사이트인 메타크리틱에선 한때 96점의 경이적인 점수를 기록했으며 저명한 음악 잡지 <롤링 스톤>은 2020년 최고의 앨범으로 선정했다. 최근 열린 2021 그래미 어워드에서도 ‘올해의 앨범’을 수상했다.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반응으로 테일러 스위프트 최고의 음악적 성취다. 대중의 트렌드를 정확히 읽어낸 다음 오직 슈퍼스타만 동원할 수 있는 리소스를 활용해 최상의 형태로 구현해낸 것이다.
1년 앞서 작년에 그래미상을 휩쓴 빌리 아일리시도 이런 흐름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몽환적이고 어두운 분위기에서 중얼거리며 노래하는데 비트나 데시벨이 있는 곡들조차 그리 자극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우리 한번 신나게 흔들어보자’, ‘집중해서 잘 들어봐’ 같은 느낌은 전혀 없다. 오히려 ‘저리 꺼지든가 조용히 듣든가 맘대로 해’에 가깝다. 청자는 그가 꾸린 환상의 암흑 공간에 스며들어 나직하게 즐길 뿐이다.
한국 음악 차트의 제왕인 아이유도 이런 트렌드에 부합한다. 그는 메인스트림과 인디 양쪽의 감성과 방법론을 넘나들며 독자적인 캐릭터와 입지를 구축했다. 만약 아이유에게 인디적인 면모가 없었다면 지금의 위치에 다다르기 어렵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니 그 또한 ASMR의 마니아로서 아예 직접 만들어 유튜브에 올린 적이 있고, 직접 작사·작곡한 ‘안경’에서는 대놓고 이리 노래했다. “나는 지금도 충분히 피곤해/ 까만 속마음까지 보고 싶지 않아/ 나는 안 그래도 충분히 피곤해/ 더 작은 글씨까지 읽고 싶지 않아”.
클래식 역시 이런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클래식은 집중과 공부를 제법 요구하는 진중하고 엄격한 장르지만 근래에는 ‘네오 클래식’으로 불리는 평온한 음악이 위세를 더해가고 있다. 미니멀리즘, 앰비언트 같은 사조를 기본으로 하고 있으나 좀 더 친근한 방식과 친절한 태도로 이야기를 건넨다. 꽉 짜인 구성미, 현란한 기교, 음악가의 넘치는 자의식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일상에서 편안히 곁들이기 좋은 측면이 다분하다. 때로는 아예 그런 용도로 쓰라며 선물하듯 작품을 내놓기도 한다. 막스 리히터는 숙면을 위해 곁들이라며 장장 8시간에 달하는 ‘Sleep’을 발표해 큰 화제를 모았고, 루도비코 에이나우디는 한 달간 알프스를 거닌 경험을 바탕으로 청자를 산책, 명상, 휴식으로 이끄는 6시간짜리 ‘Seven Days Walking’을 발표했다.
작금의 이런 트렌드가 언제 어떻게 바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현재 상태만 놓고 보면 현대인에 대한 명확한 진단서로 보인다. 다들 매우 피곤한 상태다. 팍팍하고 단조로운 삶, 끝없는 경쟁, 골치 아픈 뉴스에 질린 나머지 일단 죄다 ‘오프’하고 싶은 심정이다. 여기저기 넘쳐나는 엔터테인먼트도 별 위안을 주지 못한다. 너무도 화려하고 자극적인 나머지 도리어 정신 사나울 따름이다. 다들 이렇게 외치고 싶은 걸 간신히 참으면서 살고 있다. “피곤하니까 아무 말 말고 나 좀 그냥 놔둘래?”
- 글
- 홍형진(작가, 콘텐츠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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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티이미지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