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에 변곡점이 될 것처럼 보였지만, 해프닝으로 일단락되는 모양새다.
슈퍼리그 출범
유러피언 슈퍼리그(ESL)란 유럽 빅리그에 속한 20개 팀이 참여하는 새로운 형태의 유럽 축구 리그다. 한국시간으로 지난 4월 19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아스널, 첼시, 리버풀, 맨체스터 시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토트넘 홋스퍼부터 스페인 라리가의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그리고 이탈리아 세리에A의 AC밀란, 인터밀란, 유벤투스까지 12개 빅클럽이 모여 슈퍼리그 출범을 공식화했다. 여기에 참가를 보류한 3개 팀을 더해 15개 팀과 직전 시즌 성적을 기준으로 5개 팀을 추가해 총 20개 팀으로 시즌을 치른다. 리그 진행 방식은 10개 팀씩 두 조로 나눠 홈 앤 어웨이로 리그 경쟁을 벌인 뒤 토너먼트로 우승팀을 가리게 된다.
막대한 자금
슈퍼리그 주최 측은 정상급 클럽과 선수들이 정기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방식을 만들겠다는 목표 아래 출범을 위해 오랜 기간 클럽의 수뇌부들과 접촉해왔다. 또한 빅클럽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높이기 위한 창구가 필요했으며 더 높은 수익을 원했다. 실제로 EPSN과 인디펜던트 등 유력 스포츠 보도 매체에 따르면 미국의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이 유러피언 슈퍼리그에 한화로 약 6조 7000억의 자금을 지원할 계획이었으며, 최초로 참가를 결정한 12개 팀은 참가비 명목으로 각각 4000억 가량을 수령하게 된다고 밝혔다. 이는 코로나로 인해 발생한 재정적 타격을 한 번에 만회할 수 있는 액수다. 더불어 유럽 내 가장 인가 많은 구단이 참가하는 만큼 천문학적인 금액의 중계권료와 추가 스폰서에 따른 어마어마한 수익이 날 것으로 예상했다. 슈퍼리그의 초대 회장 플로렌티노 페레즈는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 축구가 위기에 빠졌다. 이대로라면 몇 년 안으로 파산하게 될 것”이라면서 “축구는 종말로 가고 있고, 우리는 빨리 행동해야 한다. 기존 리그는 이전처럼 유지될 것이다. 그리고 슈퍼리그는 완벽하게 공존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거센 반발
결국 돈이다. 팬보다 돈을 쫓은 슈퍼리그에 거센 비난이 쏟아졌다. 영국 BBC를 비롯해 각국 공영 매체에서는 헤드라인으로 슈퍼리그 출범을 보도할 만큼 이번 사태에 주목했다. 국제축구연맹(FIFA)과 UEFA는 물론 잉글랜드 축구협회(FA),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스페인 축구협회(RFEF), 스페인 라리가, 이탈리아 축구협회(FIGC), 이탈리아 세리에A는 일제히 슈퍼리그 출범을 반대하는 공식 성명서를 냈다. 특히 FIFA는 슈퍼리그에 참가하는 선수의 대표팀 자격을 박탈해 월드컵 출전까지 금지시키겠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12개 팀의 현지 팬들조차 슈퍼리그의 출범은 축구의 종말을 뜻하는 것과 다름없다며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나섰다. 슈퍼리그 계획에서 배제된 클럽들도 마찬가지다. 슈퍼리그에 고정으로 참가하는 빅클럽들이 승격과 강등 없이 머물면 그들만의 폐쇄적 구조가 만들어지면서 기존 리그 팀들의 가치는 점점 하락하기 때문이다.
과거 2009년부터 슈퍼리그의 창설을 예견했던 아스널 전 감독 아르센 벵거는 “스포츠의 매력을 기반에 두고 있고 유럽 축구계가 쌓아온 역사를 존중해야 한다. 축구는 연합돼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말했으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레전드 게리 네빌도 “끔찍한 일이다. 40년간 맨유 팬으로 살아왔다. 맨유와 리버풀에 가장 역겨움을 느낀다”라며 “100년 여전 노동자들에 의해 탄생한 맨유가 이젠 리그를 깨뜨리고 강등 없는 곳에 합류하려고 한다. ‘You’ll Never Walk Alone’이라는 리버풀은 팬들을 위한 클럽인 척한다”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잠정 중단
결국 축구계와 정치권에 계속되는 압박 속에 슈퍼리그가 항복한 모양새다. 한국시간으로 21일, 맨체스터 시티와 첼시를 시작으로 프리미어리그의 이른바 ‘빅6’라고 불리는 모든 클럽들이 전원 탈퇴했다. 맨체스터 시티는 가장 먼저 성명을 내고 “슈퍼리그 발전 계획을 세우는 창단 멤버 그룹에서 철수한다”라고 선언했고, 토트넘도 “슈퍼리그로 인해 우려와 분노를 야기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라고 사과했다. 이로써 야심 차게 출발을 알렸던 유러피언 슈퍼리그는 불과 ‘2일 천하’로 잠정 중단됐다. 창립 멤버의 절반에 달하는 잉글랜드 6개 클럽이 빠지게 되면서 슈퍼리그는 존재의 의미가 사라지게 됐다. 뒤이어 슈퍼리그 측도 성명을 냈다. “프로젝트를 재구성하기 위한 검토 작업에 들어갈 것”이라며 모든 작업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잉글랜드 구단들이 탈퇴를 선언했지만, 여전히 우리의 목표에 대한 확신이 있으며, 어떤 형태로든 부활할 것”이라고 강조하며 여지를 남겼다. 만약 슈퍼리그가 정상적으로 출범했다면 유럽 축구를 넘어 전 세계 축구 역사에서 변곡점이 될 수 있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축구는 팬을 위해 존재한다는 걸 다시 한번 되새긴 또 다른 변곡점이 된 것은 분명하다. 물론 아직 슈퍼리그의 불씨는 남아 있다.
- 에디터
- 글 / 주현욱(프리랜서 에디터)
- 사진
- 슈퍼리그 홈페이지, 게티이미지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