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일리 비버가 머리를 바짝 당겨 묶고 카메라 앞에 섰다. 태양이 식지 않는 로스앤젤레스의 뜨거운 오후였다.
이미 여름이 시작된 것처럼 후텁한 4월 초 로스앤젤레스의 낡고 거친 차고, 오전 10시. 촬영 정시에 헤일리 비버는 직접 테슬라를 몰고 왔다. 매니저도, 가드도 없이 혼자. 몸집이 커다란 차를 주차 하기가 영 쉽지 않은지 차를 이리 빼고 저리 빼며 주차 구역에 딱 맞추려는 시도를 반복했다. 그 모습이 엉성하고도 귀여웠다. 차 안에서 간단한 코 로나19 테스트를 받은 후 밖으로 나온 헤일리는 야구 모자를 푹 눌러쓴 모습이었다. 촬영장 밖은 이미 파파라치 무리가 점령했다. 아침으로 준비 된 베이글을 하나 잽싸게 낚아챈 뒤 그녀는 촬영 팀 사이로 몸을 숨기듯 들어왔다. 생 로랑의 와일드하고 섹시한 옷으로 갈아 입은 그녀는 두말할 것도 없이, 완벽한 모델이다. 저스틴 비버와의 결혼 소식이 세상을 흔들기 전부터 그녀는 최고의 슈퍼 모델로 자신만의 커리어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평소 시그니처 룩인 스니커즈 대신 섹시한 하이힐을 신은 그녀의 다리는 잘 빚어놓은 조형물 같다. 적당한 근육이 붙은 팔과 엉덩이는 촬영 장의 남성적인 무드와도 잘 어울린다. 시원시원 하다. 쭈뼛거리거나 망설이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몸을 이용하는 데 거침이 없다. 헤일리 비버를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그녀의 바쁜 스케줄 사이로 매니지먼트와 브랜드 담당자, 촬영 스태프가 뉴욕과 파리, 서울을 오가는 몇 달간의 옥신각신 이메일 폭포를 끼워 넣고 나서야 그녀가 촬영장에 나타난 것. 그러나 그 수고가 기꺼울 만큼, 헤일리 비버는 특별하고 완벽했다.
헤일리의 아버지는 배우 스티븐 볼드윈이고, 삼촌은 알렉 볼드윈이다. 그녀는 유명한 가족을 둔 덕에 저스틴이 아이돌 뮤지션으로 군림하던 2009년 <투데이 쇼> 백스테이지에서 인사를 나눌 수 있 었다. 둘의 첫 만남이다. 당시 촬영된 비디오에서 저스틴을 만난 헤일리의 표정은 슈크림처럼 달콤하고 부드럽다. 풋사랑의 설렘을 숨기지 못하지만, 동시에 자존심 강한 열세 살 소녀답게 흥분을 가라앉히려 자신을 컨트롤하는 눈빛이 번쩍인다. 최고의 팝 스타 앞에서도 차분하고 평온한 태도는 보기 드문 에너지였다. 저스틴이 지구상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시끌벅적한 연애를 즐기는 동안 헤일리와 저스틴은 친구로 지냈다. 시간이 흐른 후 저스틴과 헤일리는 만남과 헤어짐, 열애에 대한 부정과 인정을 넘나드는 복잡한 관계가 되었다. 하지만 이때도 헤일리는 담담했다. 2016년 2월 <지큐>의 저스틴 비버 인터뷰에 이런 내용이 있다. “헤일리는 그(저스틴)의 방에 있었다. 우리가 들어갔을 때 헤일리는 검정 크롭트 톱과 타이트한 검정 팬츠를 입고 아주 깨끗하 게 정돈된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TV를 보지도, 책을 읽지도, 전화나 컴퓨터도 하지 않았고, 음악도 듣지 않았으며, 유화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지도 않았다. 그녀는 예쁘고 예의 바른 열아홉 살이다. 헤일리는 내게 물었다. ‘무슨 일이죠?’ 그녀가 샤워기를 틀어놓은 욕실에 숨지 않은 건 인상적이다. 만약에 나라면 아주 유명한 남자친구가 한낮에 기자와 함께 아무 예고 없이 나타났다면 그렇게 했을 것 이다.” 2018년 여름, 둘의 약혼 소식이 전해졌다. 저스틴은 바하마에서 헤일리 앞에 무릎을 꿇고 영원한 사랑을 약속했다. 그리고 약혼 발표 3개 월 뒤 둘은 결혼했다.
최근 헤일리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그중 ‘후즈 인 마이 바스룸 Who’s in My Bathroom?’이라는 화장실에서 진행하는 토크쇼는 정말 재미있다. 차원이 다른 그녀의 집 화장실에 도착한 첫 번째 게스트는 켄달 제너였다. “왜 화장실인 줄 알아?” 헤일리가 켄달에게 말한다. “너의 스물 한 살 생일 파티에서 찍은 사진 중 우리 둘이 화장실에서 찍은 사진이 있어. 화장실 싱크에 앉아 있는 사진이지.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었어. 여자 애들이 속 시원히 얘기하는 곳이 어딘지 생각하니, 화장실이더라고!” 둘은 화장실에서 함께 맥 앤치즈를 만들고, 우정과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내 ‘네버 해브 아이 에버 Never Have I Ever’라는 게임을 시작한다. 이것은 ‘나는 무엇을 해본 적이 없다’라는 식의 진실 게임이다. 질문에 대한 경험이 있으면 벌칙을 받는다. 벌칙은 켄달 제너가 만든 테킬라를 마시는 거다. ‘파파라치 앞에서 운 적이 있나’라는 질문에 헤일리는 테킬라 샷을 시원하게 비운다. 헤일리는 소셜 미디어의 공격을 가장 많이 당한 셀러브러티 중 한 명이다. 그녀의 잘못을 말하기 전에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남자친구를 둔 탓을 안 할 수는 없다. 비방, 욕설 등을 포함한 악플과 사이버 괴롭힘은 아물 새가 없이 계속되었다. 작은 실 수도 과장되었고, 그녀가 입을 다물고 있어도 잡음은 끊이지 않았다. 얼마 전 <지미 팰런 쇼>에 나온 헤일리는 유튜브 채널 오픈 이유로 “내 이야기를 직접 전달하고 싶어서”라고 밝혔다. 그녀는 소셜 미디어를 가십거리 혹은 #OOTD 따위로만 도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화장실 토크쇼 같은 골 때리는 콘텐츠와 함께 소셜 미디어를 교육과 대화의 창으로 사용하려는 노력을 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신경정신과 의사인 제시카 클레멍과의 대화다. ‘소셜 미디어와 정신 건강’이라는 심오한 주제를 두고 헤일리가 제시카에게 말한다. “가장 힘들었던 건 비교였어요. 몸매, 외모, 행동…. 모든 걸 비교당했죠. 수많은 사람이 같은 이슈로 계속 몰아붙이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되더라고요. ‘내가 정말 그런가?’, ‘내가 못 보는 걸 다른 이들이 보는 거겠지?’하면서요. 하지만 우리는 전부 다 다르잖아요? 우리 모두 이 지구에 다른 이유로 와 있 는 거잖아요.” 이런 용감한 행보는 인스타그램에서도 계속된다. 그녀는 작년 5월 흑인 민권 운동 이후 다양한 사회 활동가와 단체에 자신의 인스타그램 피드를 넘겨주고 있다. 흔히 테이크오버 Takeover라고 하는데, 자신의 피드를 남이 사용할 수 있게 허락해 그들의 콘텐츠를 본인 인스타그램에 포스팅할 수 있게 하는 장치다. 정치적, 사회적 이슈에 대한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를 자신의 3천4백만 인스타그램 팔로워와 함께 나누고 있는 것이다.
헤일리에 대해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캐주얼 스트리트 스타일링이다. 그녀는 스웨트 셔츠, 청바지, 티셔츠, 볼 캡 등 평범한 아이템을 하이 패션으로 끌어올리는 데 도가 텄다. 액세서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센스 있는 스타일링으로 요즘 여자애들이 가장 따라 하고 싶은 패션을 선도했고. 그러니 그녀의 웨딩드레스를 버질 아블로에게 의뢰했다는 사실은 놀랄 일이 아니다. 결혼식을 앞둔 2019년 가을 <보그>가 공개한 웨딩드레스 피팅 비디오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웨딩드레스 디자이너가 아닌 디자이너 에게 부탁하고 싶었고, 버질이라면 나의 스트리트 스타일을 웨딩드레스에 자연스럽게 녹여내 줄 거라 생각했어요.” 버질은 가슴 라인이 과감 하게 파인 머메이드풍 드레스를 내놓았다. 드레스의 허리춤에 ‘Wedding Dress’라고 진주로 비딩을 했고, 베일의 끝자락엔 ‘Till death do us apart’라는 자수 장식을 박았다.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저스틴과 헤일리는 정말 행복할까? 답은 둘에게 있다. 서로를 만난 후, 두 사람은 이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러니까 결국 사랑이 답이다.
- 패션 에디터
- 박나나
- 포토그래퍼
- Chris Colls
- Stylist
- Ilona Hamer
- Hair
- Diego Da Silva
- Make-up
- Holly Silius
- Manicurist
- Lily Nguyen
- Production
- Cristine Hwang
- Writer
- 김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