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S/S 룩을 입고 영화적 여름을 보낸다.
꽉 끼는 티셔츠를 입고 내달리는 에든버러의 눅눅한 여름밤.
Trainspotting 마치 내일이 없는 것 같은 얼굴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이완 맥그리거. 술인지 땀인지 모르겠는 것에 티셔츠가 젖어 그렇지 않아도 작은 옷이 타이트하게 몸에 달라붙었다. 1990년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를 배경으로 한 <트레인스포팅>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마약과 일탈을 일삼는 마크 랜튼과 그의 친구들 이야기다. 당시 펑크 문화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포스터 속 마크 랜튼의 모습은 2021년 패션과 많이 닮아 있다. 베트멍, GMBH, 디온 리, 디스퀘어드 등에서 보이는 보디라인이 부각되는 상의, 통이 좁은 팬츠, 틴트 선글라스, 귀고리 등 LGBT와 젠더프리 코드가 주류로 떠오른 지금의 트렌드 그 자체다. 올여름 자유롭고 반항적인 룩을 입고 맥주를 들이켜고 싶다. 마크와 친구들이 스코틀랜드 언덕에서 맥주를 마신 그 시퀀스처럼.
짧은 반바지와 넉넉한 셔츠를 입고 즐기는 이탈리아의 햇살.
Call Me by Your Name 이탈리아 남부의 아름다운 햇빛과 온도, 풍경을 담은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소년 엘리오와 청년 올리버 두 사람의 묘한 관계를 다룬다. 스토리와 영상미에 빠져듦은 물론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들의 룩에 특히 눈길이 간다. 긴 다리가 그대로 드러나는 짧은 반바지와 파스텔 톤의 넉넉한 셔츠를 입은 엘리오의 스타일은 지금 가장 주목받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돌체 & 가바나, 발렌티노, 보터, 우영미 등 이번 S/S 시즌을 대표하는 바캉스 룩으로 어김없이 등장했다. 엘리오의 룩이 계속해서 사랑받는 이유는 아마도 영화 의상과 런웨이 패션을 모두 경험한 줄리아 피에르산티 의상감독 덕일 테다. 사소한 바지의 길이감과 셔츠의 폭은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땀 한 방울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여름의 시간이다.
데님을 입고 미 서부의 여름을 만끽한다.
Once Upon a Time in Hollywood 할리우드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찰스 맨슨의 실화를 다룬 쿠엔틴 타란티노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1960년대에 대한 헌정 영화에 가깝다고 평가할 만큼 할리우드 전성기 시절의 모습을 완벽히 재현해냈다. 스턴트맨 클리프 부 스 역을 맡은 브래드 피트도 마돈나의 스타일리스트로 알려진 의상감독 아리앤 필립스의 손길로 웨스턴 룩을 완성했다. 아이코닉한 그의 패션은 다부진 몸에 맞는 티셔츠와 청색 데님, 버클 벨트, 스웨이드 처커 부츠, 보잉 선글라스다. 웨스턴 스타일에 대한 동경은 패션계에도 영향을 끼쳤다. 아미리, 핍스, 비앙카 선더스, 발렌시아가 등에서 웨스턴 스타일을 재해석한 데님 룩을 선보인 것. 미국 서부에 대한 로망은 올 여름에도 계속된다.
마이애미와 멕시코 비치에서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보내는 여름.
Romeo + Juliet 15세기 이탈리아 베로나에서 1990년대 미국 마이애미로 배경을 옮긴 1996년 버전 <로미오 + 줄리엣>. 영화는 멕시코 시티에서 촬영해 이국적이고 뜨거운 태양의 열기로 가득 차 있다. 배경은 바뀌었지만 몬터규가와 캐풀렛 가문의 대립 구조는 그대로 가져와 배우들의 의상에도 이를 반영했다. 로미오와 그의 사촌들은 모두 화려한 패턴의 하와이안 셔츠를, 캐풀렛은 무채색의 가죽 옷을 입고 등장한다. 그래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미모만큼 그가 입고 나오는 셔츠는 인상적이다. 2021년 S/S 시즌 팜 엔젤스의 런웨이에서도 로미오가 입었던 셔츠와 꼭 닮은 일본풍 플라워 패턴 셔츠가 등장했다. 야자수 가득한 카사블랑카, 팝한 컬러의 베르사체도 마찬가지. 이국적인 하와이안 셔츠 하나면 영화 속 해변으로 데려가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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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션 에디터
- 김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