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윤수의 순수와 야성이 빚은 뉴 밸런스.
GQ 가을이에요. 좋아하는 계절이죠?
YS 맞아요. 가을이라 그런지 요즘 마음이 차분해요.
GQ 가을이 왜 유독 좋아요?
YS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좋아하는 데 이유를 정해두진 않아서요. 좋으면 좋은 거.
GQ 요즘도 산책 자주 해요?
YS 드라마 촬영 중이라 한 달에 2~3일 정도 겨우 쉬는데, 한번 걸을 때 마음먹고 오래 걸어요. 두 시간 정도 걸으면서 여러 가지 잡다한 생각해요.
GQ 최근에 많이 하는 생각은요?
YS 요즘에는 오로지 대본 생각뿐이에요. 열심히 대본 보고 열심히 상상하고 있어요.
GQ <연모>가 첫 사극이죠? 이번에 맡은 ‘이현’이란 캐릭터는 어떤 사람이에요?
YS 그릇이 넓은 사람이에요. 불의를 못 참고, 예의가 발라요. 지키고 싶은 사람 옆에 묵묵히 서 있죠. 이미지로 상상하면 포근한 구름 같기도 하고, 듬직한 큰 나무 같기도 해요.
GQ 언젠가 다시 태어난다면 나무가 되고 싶다고 말한 적 있잖아요.
YS 이유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우직하게 자기 자리에서 할 일을 하는 나무가 좋아 보였나 봐요.
GQ 평소의 남윤수는 어때요?
YS 조용해요. 가만히 자리에서 할 일하면서요. 방금 제가 말한 나무와 좀 닮은 것 같네요.
GQ 여러 인터뷰에서 자신을 차분한 사람이라고 표현했어요. 삼 형제의 막내라면 무척 개구쟁이였을 것 같은데 의외예요.
YS 어릴 땐 형들이랑 많이 싸우기도 했는데 크면서 기질적으로 차분하다는 걸 차츰 깨달았어요. 저 뿐 아니라 삼 형제 모두 말수가 적어요. 각자 방에서 혼자 있는 걸 좋아해요. 허허.
GQ 오늘 같은 촬영은 어때요? 불편하지 않아요?
YS 화보 촬영은 재미있어요. 모델 시절 생각도 나고요. 모르는 사람으로 가득한 자리, 낯선 현장에 가면 아직도 낯을 많이 가려요. 가령 대본 리딩 현장처럼요. 예전에는 그런 모습만 보고 저를 오해하는 사람도 많았어요.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열정이 없지? 열의가 없지? 하고요. 나서기보다 조용히 제 자리에서 집중하는 편이에요. 긴장이 풀리는 데 시간이 좀 걸리고요.
GQ 어린 시절 이야기를 좀 더 해볼까요. 인생 최초의 기억이 울고 있는 장면이라고요?
YS 제가 아주 작은 아이일 때였어요. 고작 두세 살 정도. 하루는 손잡이 있는 케이크 박스에 엉금엉금 기어 들어갔다가 빠져나오지 못해서 엉엉 울었어요. 위치도 선명하게 기억나요. 할머니 집에서 항상 자던 벽 앞이었죠. 나중에 커서 앨범을 보니까 진짜 그날 찍은 사진이 있더라고요.
GQ 원래 잘 울어요? 얼마 전 <나혼자 산다>에서도 할머니랑 영상 통화하다가 한참을 울더라고요.
YS 어릴 땐 자주 울었죠. 얼마 전 촬영 때는 그냥 눈물이 났어요. 할머니란 존재는, 뭉클해요. 오랫동안 할머니 품에서 자랐고, 방학 때마다 할머니 댁에서 지냈거든요.
GQ 언젠가는 택시에서 “힘들죠?”라는 기사님의 말에 울었다고요.
YS 2년 전 <인간수업> 촬영할 때였어요. 제가 맡은 기태 역이 아주 폭력적이고 욕을 달고 사는데, 평소 저와는 너무 동떨어진 인물이었죠. 심적으로 많이 힘든 상태였어요. 연기 수업 끝나고 집에 가는 택시에서 그 말을 듣는데 갑자기 울컥하더라고요. 어헉헉헉 이러면서 운 건 아니고 또르르 정도. 으흐흐.
GQ 감정 표현엔 솔직한 편이에요?
YS 아니요, 숨겨요. 힘든 내색 못 하고, 괜찮은 척을 잘하죠.
GQ 왜 숨겨요?
YS 막내여서인지, 외적으로 보여지는 직업을 갖고 있어서인지 잘 모르겠어요.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씩씩한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요. 요즘도 엄마가 밥 챙겨 먹고 따뜻하게 입고 다녀라, 장문의 문자를 보내오면 저는 늘 단답형이죠. “괜찮아.”
GQ 감정을 삭이다 보면 연기할 때 해방감이 큰가요?
YS 확실히 그렇죠. 울고 싶어도 티를 못 내니까 연기로서 표출할 수 있는 게 있거든요. 후련해요. 처음엔 어떻게 우는 연기를 할까, 걱정했는데 막상 해보니까 하고 나서는 웃음이 날 정도로 후련하더라고요. 제가 평소에 배설하지 못한 감정을 연기라는 장치로 발산할 수 있다는 게 좋아요.
GQ 배우이기 전엔 몰랐던 감정도 알게 됐나요?
YS 두근거림. 그 안에는 불안함도 있고, 설렘도 있고, 복잡해요. 순간적으로 피어나는 그 알 수 없는 두근거림은 도무지 말로 설명이 안 돼요.
GQ 그 감정이 좋으니까 계속 연기를 하는 거겠죠?
YS 맞아요. 새로운 인물을 탐구하는 여정은 힘들어요. 힘들면서도 즐겁죠. 저는 어떤 역할을 맡으면 일상에서도 서서히 그 인물에 스며들어요. 순간에는 잘 모르지만 지나고 뒤돌아보면 내가 이 인물을 만나서 이만큼 변했구나, 변화가 훅 느껴지죠. 이번 <연모> 준비하면서도 성숙해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제게 부족했던 부드럽고 남자다운 모습이 조금은 채워진 듯해요.
GQ 연기하면서 처음 알게 된 자신의 면모도 있어요?
YS <인간수업> 찍으면서는 무섭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평소엔 밝은 얼굴이지만 무의식 중에 툭툭 새어 나오는 매서운 눈빛이 있나 봐요. 내색은 잘 안 하지만 사실 저는 굉장히 예민한 사람이에요. 특히 연기할 때 더 그런데, 흐름이 깨지는 게 싫어서요. 그래서 드라마 촬영할 때 얼굴 수정하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해요. 대세에 지장 없으면 수정 안 해도 괜찮다고 말씀드려요. 이런 예민함은 가까운 사람 말고는 잘 모르는 저의 모습인데, 아마 예민함 없이는 이 일을 못 할 것 같아요.
GQ 오늘 촬영한 사진가도 그랬어요. 남윤수에게 전에는 없던 눈빛이 생겼다고.
YS 전에는 한 가지 감정으로 촬영을 했다면, 오늘은 그동안 연기하면서 작품에서 사용해본 여러 감정을 대입해보려고 했어요.
GQ 어떤 캐릭터를 만나면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YS 이해보다는 순수하게 받아들이려고 해요. <인간수업>을 예로 들면, 기태를 이해할 순 없지만 내가 기태가 되고, 기태가 내가 되는 거죠. 살면서 저는 기태처럼 이유 없이 누굴 괴롭히거나 욕을 해본 적이 없어요. 한번은 형, 동생을 동시에 괴롭히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신을 찍고 나서 바로 그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어요. 진짜 미안한 마음이 들었거든요. <인간수업> 보고서 진짜 일진 아니냐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어요. 괴롭지만 뿌듯한 평가였죠. 오죽하면 극 중에서 저에게 괴롭힘 당하는 역을 맡은 배우가 유튜브에 글도 써줬다니까요. “윤수 형 실제로는 너무 좋고 잘 챙겨주는 형입니다. 오해하지 말아주세요”라고요.
GQ 자신과 동떨어진 악역이 그렇게 힘들었는데도, 직후 인터뷰에서 또 악역을 하고 싶다고 했었죠.
YS 이왕 한번 해봤으니 더 센 것도 시도해보고 싶더라고요. 용기가 생겼죠. 한번 발 들였는데 못할 것도 없지 않을까? 기태보다 훨씬 더 극악무도한 역을 할 뻔했는데 시국 때문에 촬영에 들어가지 못하고 아쉽게 작품이 무산됐어요.
GQ 그 역할을 했으면 심적으로 정말 힘들었겠죠?
YS 금세 지나갔을 거예요. 금방 털고 잊는 편이라서.
GQ 쿨하네요. 좌우명도 꽤 쿨하게 느껴졌어요. ‘최고보다는 최선을 다하자.’
YS 저희 집 가훈이었는데 어려서부터 그 말이 좀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최고보다는 최선을 다하자. 저는 어떤 것을 이루고 싶다고 생각하면 실현이 돼요. 신기해요. 처음 모델을 꿈꿀 때만 해도 저는 키가 작았는데 꿈을 꾸고 난 뒤로 몇 년 새 키가 훌쩍 컸어요. 살 빼자고 다짐하면 진짜 살이 빠지고요. 뭔가를 이루고 싶으면 마음속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 것 같아요. 그 마음이 진짜 저를 변화시키고요. 마치 ‘생각하는 대로 변한다’는 말처럼요.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면 제가 서서히 그곳을 향해 가려고 꿈틀거리는 것 같아요.
GQ 지금은 어떤 목표를 갖고 있어요?
YS 특별한 목표를 세워두진 않았어요. 지금은 오로지 작품 생각뿐이니 <연모>의 이현 캐릭터처럼 넉넉한 인품, 폭넓은 사고를 지닌 큰 그릇이 되고 싶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진짜 변하지 않을까요?
GQ 믿음이 단단하군요.
YS 맞아요. 자존감도 높고요. 제가 대단히 잘나서가 아니라 저는 제가 좋아요. 후회도 잘 안 해요.
GQ 그래도 인생에서 기억에 남는 후회 없어요?
YS 고등학교 때 더 열심히 놀걸, 그 정도예요. 너무 성실한 학생이었거든요. 학창 시절로 돌아간다면 교실 밖도 기웃거리고, 다른 과 친구도 많이 사귀고 싶어요. 친구가 별로 없어서.
GQ 이야기하는 동안 순수한 얼굴과 야성적인 눈빛이 계속 겹쳐 보여요. 언젠가 에피톤 프로젝트 ‘첫사랑’ 뮤직비디오에서 맡은 역할을 자신과 가장 닮은 캐릭터라고 이야기한 적 있는데, 그 생각 변함없어요?
YS 네. 그 역할이 제가 맡은 캐릭터 중 가장 순수한 인물 같아서요. 저, 순수하거든요.
GQ 순수함을 정의할 수 있어요?
YS 그냥 저 같은 사람? 맑은 사람. 으허허허.
GQ 평생 순수할 것 같아요?
YS 변하진 않을 것 같아요. 얼마 전에 같이 촬영하는 동생이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윤수 형은 절대 안 변할 것 같아.”
GQ 이유는요?
YS 글쎄요, 물어보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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