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깨닫고, 깨고, 깨어지는 경험. 그것은 자유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RM이 진짜 나로서 존재하겠다는 일종의 선언이었다.
GQ RM의 홈타운이네요. 어떤 풍경 보면서 왔어요?
RM 강변북로, 늘 보던 익숙한 풍경을 지나···. 오늘은 미세먼지가 무지 많이 꼈더라고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네? 창문 열면 큰일 나겠다, 하면서.(웃음)
GQ 요즘 일상이 반짝인다고 느끼는 순간 있어요?
RM 아···. (반짝이는 눈) 반짝인다는 표현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어요. 제 식대로 표현하자면 이런 거예요. 자신에게 충실한 순간들. 작업할 때, 매일 하는 운동을 하면서 루틴을 지키는 내가 되었을 때 나 잘 살고 있나 보다, 생각하게 돼요. 좋은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할 때도요. 시계 볼 틈도 없이 시간이 흐르는 게 너어어무 아까운 순간이 있잖아요. 그럴 때 반짝인다고 느껴요.
GQ 지금 표정이 무척 행복해 보여요.
RM 요즘은 아트 이야기하는 게 제일 재미있는데, 어제 좋아하는 형들이랑 그런 시간을 갖고 왔거든요. 우리끼리만 아는 얘기하면서.(보조개 웃음)
GQ RM이 쓴 가사를 읽다 보면 풍경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단지 보여지는 이미지가 아니라, 내가 어떤 공간 안에 들어가 서 있다는 인상을 받아요.
RM 제가 좋아하는 페인터가 대개 그런데, 정신적인 체험을 하게 해줘요. 작품 앞에 서면 어떤 순간으로 데려다주는 기분. 여백이 있어요. 좋아하는 것을 자꾸 보고 좇으면서 저도 닮아가는 것 같아요. 질감, 음악적인 텍스처를 여러 감각으로 이미지 트레이닝 해보고, 구현할 수 있도록 노력해요.
GQ 과연.
RM 사랑을 예로 들어볼게요. 사랑 안에도 여러 주제가 있잖아요. ‘사랑하는 여자를 붙잡으려고 이별한 남자가 쓴 곡이구나’, 누가 봐도 짐작할 정도로 납작하게 느껴지는 것보다는 추상적인 무언가를 추출해 형상화하고 싶은 욕심이 커요. 추상이라고 하면 뿌옇고 자신 없어서 애매한 것처럼 느낄 수도 있지만, 페인팅 역사로 보면 구상 뒤에 추상이 등장했어요. 구상만으로는 표현이 안 되니까 색이나 형태만 추출해서 본질을 압축한 것이 추상이라고 생각해요. 1 더하기 1은 2일 수도 있지만 그 안에 괄호가 있을 수도 있고, 부등호가 있을 수도 있고···. 여백 안에서 자유롭게 상상해 볼 여지가 있는 편이 제겐 점점 더 흥미로워요.
GQ 음악이 다양한 표정을 갖는 비결이군요.
RM 예전에는 강해지고 싶다, 증명할 거다, 다 제압하겠다, 그런 센 단어를 자주 구사하는 때가 있었어요. 그렇게 일단 뱉고 나면 스트레스는 풀리죠. 그런데 마음속으로는 점점 디테일에 관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제압할 건데? 진짜로 제압할 거야? 대체 어떤 게 제압하는 건데? 문장 뒤에 오는 행간들에 대해서요.
GQ 우리를 만나게 해준 매개는 루이 비통이죠. RM에게 옷이란 단순히 입는 것 이상인 것 같아요. ‘모노’라는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고는 이런 이야기를 했죠. “색이 없는 옷만을 찾다가 색이 있는 옷을 꺼내 입었을 때, 자신에게 중요한 변화가 찾아왔다고, 한번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고”요.
RM 패션은 굳이 저를 드러내지 않고도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이니까요. 저를 어떻게 나타낼 것인가가 제겐 중요해요. 패션이 제게 큰 지분을 차지하는 이유죠. 한때는 지금 아트를 디깅하듯 모든 브랜드, 쇼, 맨즈웨어를 섭렵할 때도 있었어요. 조금씩 정제가 되면서 지금은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 브랜드 몇 가지로 추려졌어요.
GQ 어떤 게 멋지다고 생각해요?
RM 어떤 스타일이 그 사람에게 녹아들어서 의도하지 않고도, 아니 설사 의도했더라도 혼연일체되는 것. 아무리 우스꽝스러운 스타일이라도 내가 편한 것처럼 연기를 하면 어떤 옷이든 소화한 것처럼 사람들을 세뇌할 수 있다고 믿어요. 확고한 자기 자신이 존재하는 것. 그런 게 멋있죠. 아직 스물여덟 살인 제가 그것을 좇으려는 건 오만인 것 같아요. 아직 풋내기죠.
GQ 그래도 조금쯤은 연기를 할 수 있게 되었나요?
RM 쓰읍. 잘 못 하는데 전보다 주입은 쉽죠. 난해한 옷 앞에서도 당황하지 않으려고 해요. 당황하면 사진 안에서 들키거든요.
GQ ‘달려라 방탄 × 출장 십오야’ 편에서 “버질, 보고있나?”라고 외치던데요. ‘자기다움’으로 영역을 뛰어넘어 한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는 점에서 둘은 닮아 보여요. 서로 교류가 있나요?
RM 사적인 교류는 없지만 데뷔 때부터 버질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파이렉스 비전할 때, 카니예 웨스트의 친구인 그는 제게 아이돌이었죠. 루이 비통 앰배서더가 된다고 했을 때 저희끼리 그랬어요. “우리가 버질 옷도 입고, 참 많이 컸다.” 버질의 코멘트요? 스트릿 특유의 바이브로 “너희 진짜 멋있다, 쩐다”고 자주 이야기해줘요.
인터뷰를 마치고 약 한 달 뒤, 버질은 세상을 떠났다. 방탄소년단은 “당신이 그리울 것입니다. 당신과 일할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라고 추모 글을 올렸다.
GQ 스스로 나 멋있다, 쩐다 느끼는 순간 있어요?
RM 뭣도 모르는 시절에는 많았죠. 지금은 눈도, 귀도, 취향도 굉장히 기준이 높아졌어요. 안목이 높아지니 제 자신에게도 엄격해지더라고요.
GQ 그래도 김남준에게만 있는 멋은 뭘까요?
RM 메타인지를 잘해요. 이슈나 해프닝, 제 스스로에 대해서도 여러 방식으로 응시해요. 현상이 있으면 그에 대한 이유를 찾아보려고 하고, 제 스스로 납득도 당해보죠. 거기다 마인드 컨트롤까지 잘 되면 참 좋을 텐데.(웃음) 어쨌든 무수한 검증 절차가 제 무기예요. 대상에 대한 장단점을 쉽고 빠르게 찾고요. “사람들에게 먹히는 포인트는 이거, 단점은 이거. 그런데 내 눈에는 단점이 부각돼서 내 테이스트는 아니야.”
GQ 판단은 하되, 좇지는 않는다?
RM 굉장한 소신이 있다기보다는 자기 객관화가 잘돼서요. 어떤 생각이 들고 나면 편견화, 고착화되기 쉽잖아요. 저는 거기에 매몰되지 않으려 해요.
GQ <Break the Silence> 다큐에서 공포와 두려움에 대해 고백했어요. ‘Always’란 곡은 힘든 감정을 기록해둔 가사로 후에 만든 곡이고요. 두려움과 공포를 인지하고, 받아들이고, 기록해 공유하는 것이 RM에게는 왜 중요한가요?
RM 와. 이건 너무 허를 찌르는 질문이네요. 이에 대한 딜레마가 계속 있어요. 왜냐하면, 만만하게 보이니까. 여전히 많은 연예인이나 스타, 혹은 아티스트가 신비주의를 택해요. 많은 상처가 있어서일 수도, 굳이 말하고 싶지 않아서일 수도 있죠. 그런데 저는 팬들에게 우리의 ‘Pros and Cons(장단점)’, 우리가 인간으로 성장하면서 드리워진 그림자를 공유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해요. 외부의 시선으로 보면 방탄소년단의 주식이 항상 우상향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결코 그렇지만은 않거든요. 해체까지 생각했다는 이야기를 굳이 드러낼 필요는 없겠지만, 때로는 어떤 고백이 사람을 단단하게 만들기도 해요. 다만 당장 토로하지는 않아요. 감정이 지나가고 여과된 뒤에, 감정을 뒤돌아보며 느끼는 잔상을 추출하고 잘 다듬어 전달하면 “이들도 사람이구나” 하면서 아티스트와의 거리를 좁힐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적절한 배출은 필요하다는 것이 제 신념이에요. 그러면서도 사실 무서워요. 절 만만하게 볼까 봐, 이 고백들이 나중에 약점이 되어 역풍을 맞을까 봐.
GQ 무서운 한편 자유롭나요?
RM 쾌감이 있어요. 한번 카드를 뒤집으니 계속 뒤집게 되더라고요.(웃음) 그리고 그것이 예의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꼭꼭 숨기고 나서 “저희는 늘 좋았어요”라고 하는 것보다는. 대신 그 방식이 어른답고, 직업인으로서 윤리적이라야 좋지 않을까요? 책, 다큐, 인터뷰, 음악···. 음악이 가장 좋겠죠. 제가 그랬듯 청자도 거기서 무언가를 얻어낼 수 있고, 2차적으로 인생에 적용해볼 수 있도록요. 멋진 방식의 배설에 대한 고민이 많아요.
GQ 아미 이야기가 빠질 수 없죠. 앞으로 아미와의 사랑은 어떤 방식으로 펼쳐졌으면 좋겠어요?
RM 우리의 상호관계, 사랑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면 하는 건 조금 위험한 생각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제 인생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지 모르니까요. 아미는 이제 ‘어떤 사람’으로 특정할 수 없는 집단이에요. 그래서 우리의 사랑에 대해 특정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들, 저도 거기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해요. 저는 아미처럼 누군가에게 꾸준히, 적극적으로 애정을 표현해본 적도, 그런 마음을 가져본 적도 없어요. 그런데 그 대단한 수백만의 덩어리가 저를 더 나은 사람으로 바꾸어놨어요. 저는 그들을 진심으로 리스펙해요. 그런 의미에서 저도 그들의 팬이죠. 이런 소망은 있어요. 우리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를 응원하면서, 지금의 거리를 유지해가는 평행선 같은 사랑이었으면 좋겠다.
GQ 잘했다, 고맙다, 미안하다는 많은 마음을 담아서 RM과 아미에게 말하고 싶었어요. “수고하셨습니다”. 온전히 번역되지 않는 말이니까, 이 기사가 번역되더라도 예쁜 한글로 남아 있으면 해요.
RM 아유, 고맙습니다. (두 손을 예쁘게 모은다.) 수고하셨습니다.
“얼마나 더 거창한 메시지를 노래할 거야?”, “아니, 나는 내 안의 작은 우주를 들여다볼 거야. 무한한 은하수는 바로 그곳에 있으니까.” 쏟아지는 아픔을 달게 맞으며, 떨어진 마음을 주섬주섬 주워 만지작거리는 한 소년. 희망과 시련을 한자리에 두고, 밀실에서는 춤추는 자유를, 광장에서는 고독을 꿈꾸는 시인. 삶의 모순을 사랑하고 미워하는 한 작은 예술가와 마주 앉은 시간은 사막의 모래처럼 흩어졌다. 접혀버린 질문들은, 언젠가 음악으로 회신을 받을 거라는 믿음으로 어둠 속에 얼굴을 박았다. 흐릿한 가운데 또렷하게 전해질 목소리. 잡히지 않는다고 거대한 파도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듯, 그것은 어떤 형태로든 다가올 것이다. 작품 설명을 읽기 전에 마주한 작품 앞에서 요동치는 거대한 감동처럼.
Official English version will be coming out through GQ Australia on 23, December. (GQ.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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