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 불명의 용어와 행위가 시청각 콘텐츠를 장악했다. 이름하여 ‘면치기’. 난무하는 젓가락질과 소리를 향해 묻는다. 면을 왜 칩니까?
가족이 한창 저녁을 먹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할아버지의 전화로군. 이유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시각에 전화하는 이는 할아버지뿐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전화가 요란법석을 떠는 가운데 아버지가 씹던 밥을 공기에 뱉고 일어섰다. 네, 아버지. 역시 할아버지 전화였군.
먹던 밥을 뱉다니 너무 척수반사적인 반응 아니냐고? 전혀 아니다. 당시의 식사 예절은 그렇게 못을 박아두고 있었다. ‘어른의 전화가 오면 먹던 밥을 뱉고 가서 받는다.’ 학급문고부터 학교 도서관까지 싹쓸이하며 읽었던 초등학교 시절, 예절에 관한 책은 너 나 할 것 없이 뱉으라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 뱉을 줄이야. 아무래도 입에 넣고 씹은 음식은 아름다울 수 없기에, 당시의 상황을 아직까지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정말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일인가?
하지만 그런 반응이 너무나도 당연한 환경에서 자랐다. 부르면 뱉는다. 제법 자란 이후로는 농담 삼아 ‘코리아 스파르타’라고 말할 정도로 엄혹한 가정 교육을 받았는데 핵심은 식사 예절이었다. 밥이 다 되면 <딱따구리>처럼 최고 인기 만화영화가 방영 중이더라도 냉큼 식탁으로 모여야만 했다. 어른이 숟가락을 들기 전에는 미동조차 하면 안 됐으며, 식사는 늘 국을 한 숟가락으로 떠 먹는 것으로 시작해야만 했다. 밥은 숟가락으로만 퍼 먹고 숟가락과 젓가락을 한 손에 겹쳐 쥐면 안 됐다. 쓸데 없는 소리는 금기시됐다. 대화 자체가 금기는 아니었지만 절대 음식을 씹으며 말을 하면 안 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말 무엇보다 쩝쩝 소리를 내며 음식을 씹는 건 절대 용납되지 않는 결례였다.
“그럼 어떻게 해야 소리를 내지 않고 바르게 먹을 수 있을까? 음식을 먹을 때 입을 다물고 어금니로 씹으면 절대 소리가 나지 않아. 입을 쫙 벌리고 씹으니까 소리가 나는 거야.” 요즘은 식사 예절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궁금해 어린이 도서(<식사 예절, 이것만은 알아 둬!>, 팜파스)를 읽어보았다. 역시 골자는, 특히 소리 부문에서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최대한 조용하고 정숙하게 먹는 게 바람직함을 강조한다. 세월이 흘렀어도 식사 예절의 기본 가치는 변하지 않았다는 의미일 텐데, 어째서 ‘면치기’의 기세는 수그러들지 않는 걸까?
그렇다, 작은따옴표를 써서 인용했다. 무엇보다 나는 이 ‘면치기’라는 개념의 존재조차 인정하고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행위에 이름까지 붙이다니. 생각만 해도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식욕이 뚝 떨어지지만 그래도 살펴는 보자.
‘면치기’는 라면, 국수 등의 면발을 끊지 않고 입술의 힘으로 쭉 끌어 올려 먹는 행위를 의미한다. 그 과정에서 긴 면이 딸려 올라오면서 요란스러운 소리를 낸다. 떠올리기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만약 어딘가에서 면 음식을 먹는데 누군가 ‘면치기’를 한다면 나는 다루던 젓가락을 그대로 놓고 나갈 것이다. 이미 식욕은 떨어질 대로 떨어졌을 테니까.
이런 행위가 광고나 예능 방송의 ‘리액션’을 넘어 마치 음식을 제대로 즐기는 요령인 양 포장 및 유통되고 있다. 그리고 중심에는 개그맨 김준현이 있다. 고백컨대 나는 텔레비전, 특히 예능을 거의 보지 않지만 김준현만은 잘 알고 있다. 텔레비전에서 그의 ‘면치기’ 모습을 본 이후, 머릿속에 그 소리와 광경이 각인되어 사라지지 않는 탓이다. 과장 아니냐고? 구글에서 ‘면치기’의 이미지를 검색해보라. 백종원이며 강호동, 누군지 모를 폭식 유튜버들이 드문드문 나오는 가운데 가장 먼저 그리고 많이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김준현이다.
끔찍함을 무릅쓰고 유튜브에서 김준현의 ‘면치기’ 영상을 분석해보니 패턴이 보였다.(그에게 개인적인 감정은 전혀 없음을 짚고 넘어가자.) 그는 대체로 우리가 입의 크기, 호흡의 간격 등 생리 및 물리적인 한계로 한입에 먹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면을 젓가락으로 집어 든다. 그리고 한입에 넣고 빨아들이는 탓에 요란한 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 애초에 면을 조금만 집어 들거나 입으로 끊어 먹으면 되는 것을 그러지 않는다. 그런 맥락에서 조금이라도 덜 추접해지는 최선의 선책은 ‘면치기’일 수밖에 없다. ‘면치기’를 옹호하려는 게 아니라, 애초에 면을 먹는 식사 습관이 방송을 위해 의도적이든 아니든 잘못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면이 넘어가는 ‘후루룩’ 소리만 거슬린다면 굳이 ‘면치기’를 작은따옴표로 인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튀는 국물도 무시할 수 없다. 입을 대지 않은 깨끗한 국물도 튀면 옷이 더러워지는 등 거슬리는데, 젓가락을 담가 타액이 섞인 게 ‘면치기’를 통해 얼굴로 날아든다고 상상해보자. 평소라도 끔찍하지만 요즘 같은 코로나 시국이라면 더더욱 께름칙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검색을 위해 ‘면치기’만 입력해도 ‘면치기 극혐’, ‘면치기 짜증’, ‘면치기충’ 같은 연관 검색어가 바로 떠오른다. 말하자면 김준현이 예능에서 활개를 치고 있지만, 면치기를 향한 공감대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대체 ‘면치기’는 어디에서 온 걸까? 라멘, 소바 등의 면 음식이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일본에서 왔다고 추측할 수 있는 가운데, 정확한 유래에 대해서는 주장이 복수로 존재한다. 첫 번째로는 일본 선종 불교의 면 음식 먹는 습관에서 왔다는 주장이 있다. 이욱정 피디의 푸드 다큐 <누들로드>에서는 요란하게 ‘면치기’를 하며 먹는 승려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수행자답게 금욕과 절제를 미덕으로 삼는 이들에게 국수만이 요란하게 소리를 내며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음식이라는 설명이 따라붙는다.
두 번째로는 일본의 다도 문화에서 왔다는 주장이 있다. 일본 다도에서는 다례를 마련한 주인에게 말없이 감사하는 의미로 맛차의 마지막 한 모금을 소리내어 마시는 관습에서 라멘이나 우동 등의 ‘면치기’가 유래됐다는 것이다. 같은 논리로 음식을 준비한 요리사에게 감사하는 의미로 소리를 내어 먹는다는 주장인데, 이는 오해라고 한다. 구독자 67만 명의 영어 일본인 유튜버 쇼고에 따르면, 일본의 ‘면치기’는 맛있게 먹기 위한 방식이며 오로지 따뜻한 국물의 면 음식에만 용인된다고 한다. 면을 빨아들이면서 공기가 함께 입 속에 들어가 맛을 더 잘 느끼게 해주며, 면이 붇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먹을 수 있는 방식이 ‘면치기’라는 것이다.
쇼고의 주장도 일리는 있는 가운데 효용은 의심스럽다. 첫 번째 이유는 와인이나 올리브 기름 등의 맛보기에 적용되는 음식이라 꽤 설득력 있게 들린다. 하지만 면발은 와인도 올리브 기름도 아니라는 게 문제다. 공기와 접촉해 활성화되는 향 화합물이 같은 수준이 아니므로 의미가 있겠느냐는 말이다. 두 번째 이유 또한 ‘면치기’의 요란한 소리를 변호하기에는 조금 역부족이다. 간수(라멘)부터 변성전분(라면)까지 다양하게 쓰이는 개량제 덕분에 요즘의 면발은 적어도 한 그릇 먹을 동안은 힘을 적당히 지켜준다.
이렇게 논박할 수도 있지만, 진짜 ‘면치기’의 문제는 따로 있다. 원치 않는 소리가 주도권을 쥐게 되면 식탁은 대화의 모멘텀을 잃는다. 가뜩이나 코로나 시국 탓에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인원이 줄어들고 칸막이를 쳐놓은 식탁에 앉아 먹어야 하는 현실이다. 그런 가운데 잠시 잠깐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는 식사 시간에 소리의 기회를 대화가 아닌 ‘면치기’가 압도한다고? 절대 용납할 수 없다. 대체 누가 그런 소리를 내었는가? 찾아서 정숙을 요구할 일이다. 글 / 이용재(음식평론가)
- 피처 에디터
- 김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