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카세라는 유령이 서울을 떠돈다. 오마카세 코드가 붙은 모든 예약에 병목현상이 일어난다. 미식이 모두의 일상 이벤트로 의미를 확장하며 일어난 일이다.
한식 다이닝 발전과 <미쉐린 가이드> 서울 편은 하나의 신호에 지나지 않았다. 외식 시장의 저변 확장이 밀물처럼 젖어드는 사이, 그 물결이 이제는 20대 초반에까지 닿았다. 그 리트머스가 ‘스강신청’이라는 말에 담겨 있다. 신규 소비층이 오마카세 시장에 유입됐다. 봄가을마다 수강신청을 하는 연령층이다.
지난해 가을쯤, 혈중 스시 농도를 맞추기 위해 새롭게 예약한 강남구 신사동 스시 사카우 런치 자리에 비로소 앉아 인지부조화를 겪고 있었다. 스시 오마카세가 처음은 아니다. 쾌속으로 흘러가는 런치에 콜키지 3만원을 지불하고 잘 맞춰 가져온 와인도 분명 즐겼다. 스시 오마카세 인테리어의 어찌 보면 전형적인 형태와 예쁘고 작은 기물과 내 1시간 30분을 리드미컬하게 롤러코스터 태우는 노련한 셰프의 손놀림도 분명 익숙한 것이었다. 고일대로 고인 내게 아무것도 신기할 것이 없었지만, 무엇인가가 크게 어색하고 달랐다. 사람이었다. 크지 않은 폐쇄적인 스시 오마카세 공간을 채운 이들이 이전 병풍 같던 30대나 40대가 아니었다. 20대 초반 홍안의 낯선 연령대였다. 다 아는 것처럼 연기하고 있지만 ‘스린이’ 기운이 느껴지는, 매우 높은 확률로 스시 오마카세를 지금 여기에서 인생 처음으로 경험하는 이들이었다. 그 상기된 기운이 중립적인 이물감을 줬다. 비단 이곳에서뿐 아니라, 요사이 어느 가격 레인지의 스시 오마카세를 가도 잡아낼 수 있게 된 변화다.
‘다이닝’의 의미는 바뀌었다. 정찬 형태의 외식이 30, 40대 전문직 아니면 장년층이 독점해 향유하는 어른의 문화였던 ‘라떼’의 조금 윗세대와 비교하면 격세지감. 다이닝은 20대 직장인과 대학생도 거리낌 없이 즐겨보는 일상의 이벤트다. 향유층이 확장됐다. 마치 뮤지컬 공연 한 편 예매하듯, 멋진 레스토랑이나 와인 바, 스시야를 예약한다. 인스타그래머블하고 영혼을 살찌우고, 물론 육신도 살찌운다. 전엔 이 좋은 걸 ‘어른’들끼리 속닥속닥했다. 새로운 소비층은 스시 오마카세를 또 다르게 소비한다. 스시 사카우 유종태 오너 셰프는 흐름을 매일 체감하고 있다. “코로나19 영향이 크죠. 외국에 못 나가게 되면서 국내에서 다 소비하니까.” 비자 없이 국내 여행처럼 부담 없이 가던 일본 여행이 닫히니 스시 오마카세가 이렇게 부상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굳이 얘기할 필요 없을 정도로, 스시는 모두에게 ‘호’ 공감대가 있지 아니한가. 스시 사카우를 비롯해 비슷한 시기 문을 연 스시야 모두 문전성시 중이다.
“유튜브 영향도 빼놓을 수 없죠.” 거들먹거리는 짧은 블로그 문구 몇 줄로 대리 경험을 쌓아야 했던 그때와, 몰입도 높은 영상과 생활어로 정보가 펼쳐지는 지금의 스시 오마카세는 진입 방식부터가 다르다. “인기 유튜브를 보며 스시 오마카세를 즐기는 데 필요한 기초지식을 다 대리 경험하고 오는거예요. 생선 이름을 다 알 뿐 아니라 철마다 뭐가 좋은지, 어떤 순서로 나올지까지 파악하고 오죠.” 스시 사카우 런치에 앉아 느꼈던, 불편하진 않지만 미묘한 이물감의 정체였다. “영상 10번 돌려보고 왔다는 군인도 있었어요.” 간접 경험의 체감도가 다르고, 그로 인해 자극되는 소비 욕구의 진폭과 강도가 어마어마하다. 작고 예쁘고 고급스러운 이 음식은 때마침 유튜브 콘텐츠로 풀기에도 적당하고, 인스타그램에 자랑하기에도 번듯하다.
혈중 스시 농도가 언제 또 떨어질지 모르니까, 호감 가는 스시야 인스타그램을 팔로하고 내친김에 오픈 채팅에도 들어가 있다.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캐치테이블 스강신청 성공과 실패가 엇갈리는 풍경도 재미있지만, 종종 취소된 자리 당일 모객이 오픈 채팅에서 이뤄지니 매우 중요하다. 익명의 미식 SNS가 그곳에 펼쳐져 있었다. 지난해 연말까지 마지막 춤을 추고 휴식에 들어간 레스토랑 오프레의 그날 디너가 오리였는지 비둘기였는지, 모수가 솥밥을 뭘로 했는지 실시간 업데이트가 된다. 때론 하이엔드 스시야의 간판 사진이 올라오기도 한다. 한편, 질문 중 가장 많이 반복되는 것은 정해져 있다. “대학생인데 오마카세 처음 경험해보려면 어디가 좋을까요?”,”오마카세 입문하려고 해요. 3만원 이하 런치를 찾고 있어요.”
이미 오래전 스시에 ‘엔트리급 스시’라는 민주화가 진행됐다. 문턱 낮은 가격으로 확 열린 스시 오마카세가 대학생 층까지 빨아들였다. 그리고 유튜브 등을 통해 알려진 스시야들에 예약 병목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깔때기처럼 새로운 스시 오마카세 인구가 유명 스시야에 몰려 있다. 특히 조금이라도 유명세를 치르는 중인 엔트리급이라면, 예약이 쉽게 되는 곳이 없다. 아니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예약 앱 ‘캐치테이블’에선 심지어 예약 오픈 후 0.7초 만에 마감된 곳도 있다고 했다.
비단 스시 오마카세만의 일도 아니다. 우리는 오마카세를 원조인 스시뿐 아니라 다양한 것에 덧대 부르고 있다. 한우 오마카세부터 시작해 이제는 모두가 뭐든지 오마카세로 먹고 있다. 요즘 트렌드인 음식 장르라면 모든 것에 오마카세 코드가 결합돼있다. 야키토리도, 쿠시아게도, 한식도 모든 것이 오마카세다. 나 역시 새로운 장르에 기웃댈 때는 오마카세가 있는지 찾아보게 됐다. 디저트나 한식 디저트, 심지어 보양식을 먹고 싶을 때도 오마카세 코드가 붙은 곳을 찾을 것 같다.
아직 언급하지 않은 주요한 오마카세 대세는 또 있다. 그 오픈 채팅에서 가장 유명한 엔트리 스시야의 이름만큼 웅장하게 언급되는 곳들. 오마카세 형태를 차용하거나 바 형태를 취한 파스타 바들이다. 파스타 3대장이라 불리는 이곳들을 직접 자른 생면 맛에 대한 소문만큼 예약 난이도에 대한 악명이 높다. 예약에 성공했다는 것만으로 부러움의 스크롤이 한 바닥 찬다.
이쯤 되면 오마카세가 무엇이었는지부터가 혼동스러워진다. “원래야 와쇼쿠에서 나온 개념이죠.” 유종태 셰프의 말처럼 클래식한 의미 그대로라면 제철 스시를 알아서 잘 달라고 ‘맡기는’것이 오마카세다. 요즘 쓰이는 의미는 좀 다르다. 다양한 음식을 셰프가 계획한 대로 주는 것이면서 바 형태를 취하고 셰프와 소통이 가능하다면 폭넓게 범용된다. 그러니까 다이닝 레스토랑의 프리픽스 메뉴, 즉 코스 메뉴가 오마카세라는 이름으로 간소하게 구현되고 있다는 뜻이다. 캐주얼 레스토랑의 ‘세트 메뉴’도 본질에서 다를 게 없다.
오마카세는 공정과 정의의 요즘 정서에 꼭 맞다. 프리픽스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못 한다. 식당에 들어선 모두가 같은 순서로 같은 음식을 받는다. 돈도 똑같이 낸다. 그러다 보니 ‘단골 찬스’라는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한 원성도 새삼 데시벨이 높다. 예약에서 단골이 먼저 가져가는 특혜, 의리와 정으로 포장될 수 없는 ‘서비스 디시’가 사회적 공평 잣대로 재단된다. ‘추가 차지’라는 이름으로 미리 세팅되는 특별 주문 메뉴를 단골 서비스로 오인해 컴플레인하는 해프닝도 왕왕 일어난다. 이게 다 예약이 어려워서 일어난 일이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하지 않던가. 아무나 쉽게 편하게 오마카세를 예약해 갈 수 있다면 식당이 단골 서비스를 남 눈에 실수로 들키는 게 이렇게 공론화되진 않았을 것이다.
팬데믹은 여전히 앞을 알 수 없고,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든 젊은 셰프들이 큰 부담 치르지않고 개업할 수 있는 영업 형태인 오마카세는 앞으로도 한동안 대세로 유지될 것이다. 그저 더 많은 오마카세가 모두 다 유명해져서, 나 한 몸 편하게 내킬 때 스시 좀 편하게 먹을 수 있길 바랄 뿐이다. 그게 ‘모리아께’면 더할 나위 없고. 글 / 이해림(푸드 라이터, 푸드 콘텐츠 컴퍼니 포르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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