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도환의 눈에 담긴 고요한 바다.
GQ 우도환의 눈에는 많은 것이 비쳐요. 스스로의 눈을 좋아해요?
DH 네, 좋아해요. 밝다가도 어둡고 그러다가도 또 밝고,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보일 수 있는 눈인 것 같거든요. 배우로서는 굉장히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GQ 우도환의 얼굴은 어느 쪽인가 하면, 분명 무척 인상적인 마스크에 속하는데 “동네 형처럼 생겼다”는 말이 가장 기분 좋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더라고요.
DH 친근하고 싶어서요. 동네에서 흔히 보는 것처럼 친근한 사람으로 보였으면 좋겠어요. 요즘 같이 촬영하는 상이 형이 어제 갑자기 그러는 거예요. “도환아, 너는 한 달밖에 안 봤지만 확실히 인간미는 있는 것 같아.”
GQ 갑자기, 인간미요?
DH 형도 절 알기 전에는 제 겉모습만 보고 차갑고 예민한 사람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나 봐요. 막상 한 달 정도 가까이 지내다 보니 아마 느꼈겠죠? 아, 얘도 그냥 동네에 한명쯤 굴러다니는 동생이구나 하고.(미소)
GQ 제대하자마자 <사냥개들> 촬영에 들어갔죠? <사자> 작업을 함께한 김주환 감독과의 재회잖아요. 대본도 안 보고 하겠다고 한 게 사실이에요?
DH 맞아요. 주환이 형은 제가 힘든 시기에 큰 힘이 되어준 고마운 사람이거든요. ‘참, 이 일은 다 함께하는 일이었지?’ 촬영 현장에서 그걸 다시 깨닫게 해준 사람이에요. 그때 형이 제게 특별히 뭘 알려주려고 했던 건 아니었지만, 시기가 잘 맞은 거죠. 그때 우리의 만남이 제게 아주 좋은 인상으로 남아 있어요. 다음부터 형이 하는 작품이라면 대본 안 보고도 무조건 하겠다고 했죠. 그런데 정말 말이 씨가 돼버린 거예요. 어쩌겠어요. 뱉은 말은 지켜야 하니까.
GQ 아차, 싶지 않았어요?
DH 초반에 잠깐.(미소) 잘할 수 있겠다, 없겠다는 기준 없이 시작한 거니까요.
GQ 그 기준이란 건 뭐예요?
DH 나를 얼마나 바꾸는가로부터 오는 것 같아요. 자기 복제를 상당 부분 하게 되면 아무래도 편하게 잘할 수 있으니까요. 제대 후 첫 작품이라 제가 잘하는 걸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했거든요. <사냥개들>은 웹툰이 원작인데, 원작과는 내용이 많이 달라요. 상처받고 세상의 쓴맛을 맛보면, 그전까지 제가 맡은 캐릭터들은 대개 ‘흑화’를 하거나 반항을 했어요. 이번에 맡은 건우는 달라요. 성장을 해서 역경을 이겨나가야겠다는 좋은 마음, 선한 마음을 품죠. 어라, 여기서 이 친구는 이런 생각을 하고 이렇게 행동하네? 여러 물음표가 생겨나면 어디서부터 다시 고민을 해봐야 하나 생각에 빠지게 되니까요.
GQ 도환 씨는 생각이 많기로 유명한 배우죠. 어릴 때는 어떤 아이였어요?
DH 고집이 정말 셌어요. 하고 싶은 건 무조건 해야 하고, 궁금한 것도 많았고요. 남는 시간에 공원에서 주로 누워서 인생이 무엇인지 논하고, 우리는 도대체 왜 여기서 이러고 있을까 생각에 빠졌죠. 그땐 왜 그리 남는 시간이 많았는지.(웃음) 꿈은 뚜렷하지 않았는데, 안정된 삶을 원했어요.
GQ 무언가 불안정하다고 느꼈던 거예요?
DH 조건적으로는 불안정할 게 없었어요. 가정도 늘 화목했고요. 그럼에도 안정적이고 싶었어요. 20대까지는 쭉. 그런데 군대 갔다 오고 나니까 더 이상 안정적이고 싶지 않다, 그런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스스로에게 놀랐어요.
GQ 군대라는 하나의 고개를 넘은 느낌이라서?
DH 언젠가는 잠시 쉬면서 지금 잡고 있던 걸 놓아야 할 시간이 올 텐데, 그러니까 그 전까지 자리를 잡아야 할 텐데, 라는 두려움 같은 것이 있었어요. 그게 군대였던 것 같아요. 군 생활을 마치고 나니 이제는 더 도전해도 좋겠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계속, 계속.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궁금해졌고요.
GQ 군대에서 가장 골몰한 생각은 뭐였어요?
DH 뼈를 갈아야겠다, 이를 갈아야겠다. 더 절실한 마음으로요. 그러면서 내가 여태 소중하게 여긴 것들이 정말 소중한 거였구나 확신하기도 했고요.
GQ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했을 것 같아요.
DH 내가 정말 약한 사람이란 걸 느꼈어요. 추울 때 춥고 더울 때 더운···. 저의 약함을 실감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게 좋았어요. 다시 겸손해질 수 있어서.
GQ 그래서 더 강해지고 싶어졌나요?
DH 무조건이죠! 더 강해져서 이 시간을 잘 견뎌내야겠다고, 늘 다짐했어요.
GQ 군대에서도 매일 일기 썼어요?
DH 네, 수첩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생각날 때마다 꺼내서.
GQ 매일 비슷한 일상일 텐데 일기 속 내용은 얼마나 다르던가요?
DH 반복되는 일상이라도 그 속에서 제가 느끼는 건 매일 다르더라고요. 배우는 밤을 새우고 출퇴근 시간 없이 사는 직업이니까 군대에서의 규칙적인 생활이 너무 편하고 유독 재밌게 느껴지는 날도 있고, 반대로 자유가 없어서 딜레마에 빠지는 날도 있고. 매일매일, 하루하루가 달랐어요.
GQ 일기를 매일 쓴다는 것이 어떤 작은 일렁임이나마 변화를 가져다주나요?
DH 예전에는 그랬어요. 지금은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어서 쓴다기보다는 그저 습관이에요. 누군가에게 말로 하기 부끄러운 지점들을 적기도 하고, 내 자신의 ‘바보스러움’에 대한 후회, 회한이 담기기도 해요. 힘들고 지치다 보면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순간들이 오잖아요. 그때마다 조금 더 옆에 있는 사람들을 챙기자고 마음을 다잡는 시간이 되기도 해요.
GQ 스스로에게 솔직한 편이에요?
DH (주저없이) 네, 제 자신에게는.
GQ 스스로를 속이거나 불쑥 머리를 드는 어떤 감정을 외면하지는 않고요?
DH 숨기지 않으려고 일기를 쓰는 것 같아요. 내 안의 안 좋은 소리들이 그만 들리게끔. 물론 자연스러운 소리이겠지만, 내일도 같은 소리를 들어선 안되잖아요. 그래야 더 나은, 제가 추구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GQ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어요?
DH 항상 예쁜 마음을 먹는 사람요. 마음이 여유로운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요. 마음이 여유로우려면 시야가 넓어져야 하고, 그러려면 그만큼 더 노력을 해야 하고 자신감도 있어야 하죠. 참 많은 것이 뒤따라야 하더라고요.
GQ 한 인터뷰에서 “연기에 대한 꿈을 더 일찍 품지 못한 건 스스로 확신이 선 상태에서 시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라고 한 말이 마음에 오래 남더라고요. 그때는 어떤 확신이 필요했던 거예요?
DH 용기죠. 그 전에는 “저 배우할게요”라고 할 때 주변의 반응이 어떨지 두려움이 있었어요. 주변에서 뭐라고 하든 아무 데미지도 없을 만큼의 용기가 필요했어요. 그만큼 간절하게 원하는 에너지. 이건 사랑이란 감정과도 비슷해요. 연인 사이는 둘만의 우주이고, 서로 단단하게 사랑을 하면 주변에서 뭐라 하든 전혀 상관없잖아요. 연기와도 그렇게 사랑할 수 있기까지 시간이 걸린 것 같아요. 물론 이 일이 너무 힘들 때도, 미울 때도 있지만 저는 결국 이 일 없인 못 사는 인간이더라고요. 1년 반 동안 헤어져봤는데 역시 안 되겠더라고요.
GQ 일도 사랑하듯이 한다고 했는데, 사랑할 때는 어떤 스타일이에요?
DH 그동안 해온 방식은 헌신적이고 세상엔 둘밖에 없는 사랑. 주는 것에서 많은 행복감을 느껴요. 그게 맞다고 굳게 믿어왔는데, 그럼에도 이별이란 건 찾아오더라고요. 그래서 점점 어려워져요. 물론 아직도 밀당은 별로예요.
GQ 일과의 사랑도 그렇게 직진이에요?
DH 항상 직진이죠. 그런데 일도 저를 사랑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GQ 좋은 작품, 좋은 사람과 계속 만난다는 건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겠죠.
DH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제겐 무엇보다 중요해요. 방송에 비친 압축된 몇 시간보다 더 무수한 시간을 현장에서 스태프들과 함께하잖아요. 그 시간이 가장 즐거워야 해요. 결국 그 시너지가 좋은 작품으로 이어지기도 하고요.
GQ 사랑하는 마음은 우도환을 어떻게 변화시켜요?
DH 다른 데로 시선을 돌리지 않도록, 상대를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하게끔 만들죠. 우리의 사랑이 더 나은 사랑이 되도록요. 거기엔 노력도, 희생도 필요해요.
GQ 그토록 사랑하는 연기와의 가장 짜릿한 순간은 언제예요?
DH 현장에서 빚어지는 즉흥성에서 와요. 스태프들과 대화하면서 더 좋은 것을 찾아갈 때, 그들이 즉각 좋아해줄 때 희열이 느껴져요. 스태프가 1차 관객이잖아요. 매일 찾아오는 순간은 아니죠. 현장에 가는 마음가짐도 달라졌어요. 전에는 손짓, 시선 모두 계획을 해놓고 갔는데 이제는 큰 틀 말고는 그 어떠한 계획도 하지 않아요. 연출자마다 생각이 다르고, 어차피 현장에서 다 바뀌거든요.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힘이 많이 들어가더라고요.
GQ 배우로서는 아주 큰 변화네요. 계기가 있었어요?
DH <구해줘> 촬영 때요. 현장에서 감독님이 대사 하나를 추가로 주문하셨죠. “쓰레기 치우는 게 오늘 내 담당이다. 뭐 하냐 안 오고?” 그런데 감독님이 그 대사가 가장 좋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오늘 내가 이 말을 여기서 처음 하듯, 현장에서도 처음 뱉는 것처럼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죠.
GQ 처음 뱉는 말처럼. 참, 언젠가 라면집 사장 되고 싶다는 말 뱉은 건 기억나요?
DH 바뀌었어요. 빵집 사장으로.(빙그레 웃는다) 어느 날 문득, 간판에 적힌 쌍비읍, ‘ㅏ’, 이응이 모인 그 단어가 예뻐 보이더라고요. 빵은 선물로 드릴 수 있는데 라면은 집에 가져가서 먹을 수 없잖아요. 전역하면 꼭 제과제빵 배워서 사람들에게 선물해야겠다 다짐했어요. 이번 작품 끝나면 꼭 해야죠.
GQ 선뜻 상상은 안되지만, 한편으론 몹시 기대되는걸요?
DH 두려워요. 얼마나 집이 난장판이 될지···. 하면 또 제대로 하는 성격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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