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브론 제임스의 도장 깨기는 끝나지 않았다. NBA 역사는 르브론 제임스에 의해 여전히 새로 쓰이는 중이다. 아니, 누가 노장이래?
최근 NBA에 데뷔하는 선수들의 나이는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스무 살 전후다. 이것도 2006년 드래프트부터 참가 연령 제한이 생기면서 그나마 늘어난 결과다. 요즘 NBA는 2000년대에 태어난 밀레니엄 세대들이 코트를 누비고 있다. 지난해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케이드 커닝햄은 2001년 9월 25일생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2002 월드컵 경기도 못 봤겠네”라며 장난스러운 핀잔을 들을 나이대의 선수가 수십억의 연봉을 받으며 코트를 누비는 중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선수가 30대가 되면 기량이 서서히 하락하기 시작하고, 몇 년 이내에 은퇴를 선언하거나 조용히 코트에서 사라지는 것이 일반적인 수순이다. 아쉽지만 대부분의 농구선수들이 그렇다. 10대 후반부터 보내는 15년 남짓한 짧은 시간이 NBA 선수로서의 커리어를 결정짓는다.
그런 이유로 괴물들만 모인다는 NBA ‘정글’에서 1984년생, 만 서른일곱 살의 르브론 제임스가 보여주는 행보는 더 특별할 수밖에 없다. 지금으로부터 19년 전, 르브론 제임스는 2003년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NBA에 데뷔했다. 고졸 선수였던 그의 나이는 만 열일곱 살. 고교 시절부터 그는 이미 전 세계가 주목하는 스타였다. 샤킬 오닐을 비롯한 당대 최고의 NBA 스타들이 르브론 제임스를 언급했고, 그의 경기를 보기 위해 하늘 같은 NBA 선수들이 고등학교 경기장을 찾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그런 ‘거대 신인’ 르브론 제임스가 NBA에 진출할 당시에는 ‘넥스트 조던’이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1999년 1월, 마이클 조던의 은퇴 이후 인기가 급격한 내리막길을 걷고 있던 NBA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마이클 조던의 뒤를 이을 스타가 필요했을 것이다. 코비 브라이언트, 빈스 카터, 앨런 아이버슨, 트레이시 맥그레이디도 같은 이유에서 스타의 반열에 올랐고,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르브론 제임스 역시 당대 NBA의 비즈니스와 팬들의 니즈에 꼭 들어맞는 새로운 젊은 스타였다. 환상은 현실이 됐다. 축구계에서 수없이 많은 ‘제2의 메시’가 등장했다가 사라졌듯, 농구계에도 ‘제2의 마이클 조던’이 쏟아지듯 등장했고, 이내 자취를 감췄다. 어쩌면 당연한 과정이다. 돌이켜보면 조던과 비교됐다가 NBA에서 제대로 생존하며 자신만의 입지를 구축하고 위대한 커리어를 만든 선수는 극소수였다. 하지만 열일곱 살부터 미디어의 끊임없는 스포트라이트와 날선 비판, 잔인한 비교를 경험하며 괴물들이 우글대는 정글을 지나오면서도 르브론 제임스는 흔들리지 않았다. 많은 굴곡을 거치면서 좌절하고 굴복하기는커녕 성장하며 성공했다. 그리고 2022년, 르브론 제임스는 NBA를 비롯해 세계 농구 역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선수로 우뚝 올라섰다.
올해, 그러니까 데뷔 후 19년 만에 르브론 제임스는 NBA 역사상 세 번째로 많은 득점(3만 6천4백43점)을 기록한 선수가 됐다. 통산 리바운드는 이미 1만 개를 돌파했고(1만 40개) 통산 어시스트 역시 1만 회의 고지를 눈앞에 두고 있다.(9천9백33개.) 무엇보다 통산 득점 부문에서 르브론 제임스는 자신보다 상위에 랭크되어 있는 1위, 카림 압둘-자바(3만 8천3백87점)와 2위 칼 말론(3만 6천9백28점)을 모두 제치고, 1위로 올라서는 것을 넘어서 역사상 유일무이한 통산 4만 득점 달성이 가능하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지금의 페이스라면 NBA 역사상 최초의 통산 4만 득점과 1만 리바운드, 1만 어시스트까지 동시에 달성하는 누구도 넘보지 못할 대기록을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여기에 10회의 NBA 파이널 진출과 4회의 파이널 우승, 역시 4회의 정규 시즌 MVP 수상까지, 지금 르브론 제임스는 NBA 선수로 이룰 수 있는 건 모두 다 이루고, 하고 싶은 건 다 하는 ‘사기캐’라고 해도 절대 과언이 아닐 것이다. 놀라운 건, 펄펄 나는 실력뿐만 아니라 스타성도 여전히 압도적이라는 것. 최근 진행된 2022년 NBA 올스타전 팬 투표에서 르브론은 총 6백82만 7천4백49표를 획득해 전체 1위를 차지했다. 이 기록은 무려 자신의 다음 세대 스타인 스테픈 커리(약 6백1만 표)와 케빈 듀란트(약 5백49만 표), 야니스 아데토쿤보(약 5백12만 표)를 모두 제치고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이번 팬 투표 1위는 르브론의 커리어 아홉 번째 기록이기도 한데, NBA 역사상 올스타전 팬 투표에서 아홉 번 1위를 차지한 선수는 르브론 제임스 외에 마이클 조던이 유일하다. 아마도 내년 이맘때 르브론은 열 번째 팬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하며, 이 부문에서 역대 1위로 올라서는 장면을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놀라운 건 르브론 제임스의 질주가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올해 열여덟 번째 올스타 선정에 성공한 르브론은 이 부문에서 카림 압둘-자바(19회)에 이어 역대 2위에 올라 있다. 이것은 故 코비 브라이언트(18회)가 가진 기록과 같은 횟수다. 역대 최연소 올스타(20세, 52일)와 역대 최연소 올스타 MVP(21세, 51일) 기록을 모두 가지고 있는 르브론은 이번 2022년 올스타전에서 스물네 명의 선수 중 최고령 선수로 출전, 역대 최고령 올스타전 MVP 수상을 노린다.
그리고 올해로 만 서른일곱 살인 르브론은 이번 시즌 역시 경이로운 기량을 맘껏 뽐내고 있는 중이다. 평균 득점은 전체 4위(29점), 어시스트는 전체 21위를 질주 중이고, 선수효율지수(Player Efficiency Rating) 부문에서는 팔팔한 젊은 후배들을 제치고 무려 4위에 올라 있다. NBA 역사상 만 서른일곱이 넘는 나이에 시즌 평균 25점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이번 시즌 르브론 제임스 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점도 놀랍다. 레전드로 평가받는 카림 압둘-자바와 칼 말론도 나이가 들어서는 르브론처럼 득점을 쏟아붓진 못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 와중에 올 시즌 르브론의 슛 성공률은 무려 50퍼센트가 넘는다. 이 정도면 NBA 역사상 ‘최고의 노장’이라는 호칭도 어쩌면 어색하다. 노장의 리듬이 아니지 않은가. 만 서른다섯의 나이에 커리어 네 번째 우승을 일궈낸 르브론은 이제 ‘괴물 같은 노장’이 되어 도전을 기꺼이 즐기며 여전히 코트 위에서 빛나고 있다.
재밌는 예상 하나 더 해볼까? 조만간 르브론 제임스에 의해 NBA에 또 다른 새 역사가 만들어질 수도 있겠다. 바로 NBA 역사상 최초의 부자(父子) 농구선수의 동시 경기 출전이다. 그동안 NBA에는 수많은 부자 선수가 있었고, 지금도 스테픈 커리, 클레이 탐슨 등 많은 선수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NBA 커리어를 만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30대 중반이 되면 커리어가 급격히 내리막길을 걷거나 끝나버리는 농구선수들의 커리어 특성상, 아버지와 아들이 선수로서 함께 코트를 누비는 장면을 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건 비교적 선수 생명이 길다는 야구(MLB)에서도 켄 그리피 주니어와 켄 그리피 시니어만 가능했던 귀한 장면이다. 하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르브론 제임스가 그 어려운 일을 해낼지도 모르겠다. 르브론의 첫째 아들 브로니 제임스(2004년)는 현재 고교 농구선수인데, 최근 발표된 전미 선수 랭킹에서 3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이 위치를 꾸준히 유지한다면 2024년 NBA 드래프트에서 순조롭게 지명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때까지 르브론이 선수 생활을 이어간다면 우리는 NBA 코트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뛰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허재와 허웅, 허훈 부자가 함께 뛴다고 상상해보면,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쉽게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글 / 이동환(<루키 더 바스켓> 기자, 농구 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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