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예원만의 스탠스, 스윙, 그리고 스타일. 필드 위에서 비로소 선명해지는 것들.
GQ 오늘 목요일이에요.
YW (토끼눈)
GQ 오전 11시 <동물농장>부터 <장예원의 오늘 같은 밤>까지, 하루가 꽉 차 있던 요일요. 회사 다닐 때 가장 바쁜 요일이었다고 책에 썼더라고요.
YW 맞아요. 프리랜서 되고 나서는 요일 감각이 사라졌어요. 월화수목금토일. 대중 없이 촬영하니까요. 하, 그때는 월요병으로 월요일을 감지했는데.
GQ 프리랜서로 일한 지 1년 반 정도 되었죠? 이제야 보이는 것들이 있어요?
YW 얼마나 좋아요. <지큐> 화보도 찍고.
GQ 그때는요?
YW 방송국이 지금은 유연해졌지만 그때만 해도 “아나운서가 화보를 찍어? 왜?” 그랬죠. 여전히 제약이 많았어요. 퇴사를 결정한 것도 그런 이유였어요. 유연하게 더 많은 걸 경험해보고 싶었거든요. 물론 회사 안에서도 많은 경험을 한 덕분에 자유롭게 방송하는 지금의 제가 있는 거겠죠.
GQ ‘프리 선언’ 하면 굉장히 거창하게 들리는데 대단한 변화가 있던가요?
YW 하는 일도, 바쁜 정도도 비슷해요. 다만 그때와는 다른 쉼을 가질 수 있게 됐죠. 아나운서의 삶도 회사원과 비슷해요. 출근과 퇴근. 거기에 삶이 맞춰지죠. 그렇게 계속 흘러가다 보니 짬이 나면 늘 집에서 쉬기 바빴어요. 원래도 집순이지만 그 때는 더 맹렬한 집순이.(웃음) 퇴사 후에는 쉴 때 소진된 저를 채우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 했어요. 영화도 보고, 전시도 보고.
GQ 골프도 그중 하나였어요?
YW 그런 셈이죠. 어렸을 때부터 아나운서가 꿈이었는데, 아나운서가 되고 나니 무언가 이루고 싶은 게 없었어요. 취미도 일, 특기도 일. 그런데 골프를 한 뒤로 다시 잘하고 싶은 게 생겼어요. 잘하고 싶고, 집중해서 도전해보고 싶고···. 저를 자극하는 무언가가 생긴 거예요.
GQ 골프가 다시 꿈꾸게 해준 셈이군요. 구력은요?
YW 처음 한 건 초등학교 때인데, 1년 정도 배우다 그만두었어요. 그러고는 성인이 돼서 다시 했는데 오호, 제가 제법 하더라고요. 어렸을 때 배운 감각이 몸에 남아 있었나 봐요. 기대한 것보다 금세 느는 느낌이 들어선지 쉽게 흥미를 붙였어요.
GQ 유튜브에 이런 영상을 올렸죠. ‘5개월 만에 90대 들기’. 성공했나요?
YW ‘라베’가 92예요. 그런데 라베 찍은 뒤론 영 엉망이라···. 안정적인 90대를 만드는 게 목표예요.
GQ 바로 이 자리에서 인터뷰한 구력 10년의 백돌이 유세윤 씨가 생각나네요.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게 골프라면서요?
YW 맞아요. 언젠가 신동엽 씨가 제게 해준 말이, “나도 골프 오래 했지만, 계속 잘하다가도 다음 날 안 되는 게 골프다”라고 하더라고요. 굉장히 공감했죠. 그런데, 그러니까 골프가 더 재미있는 거 같아요. 계속 잘하기만 하면 재미없잖아요. 어제 잘되던 스윙이 오늘 갑자기 안 된다? 도전 욕구 상승이죠.
GQ 눈빛에서 방금 뭔가 번쩍였는데요. 승부욕?
YW 승부욕 있죠.
GQ 여러 스포츠 중계를 해봤으니, 골프를 다른 스포츠와 비교하면 어때요?
YW 대개의 스포츠는 겨루는 상대가 있는데 골프는 오롯이 나와의 싸움이에요. 공이 잘 안 맞는다? 내 잘못이죠. 그날 라운드가 잘됐다? 내 컨디션이 좋았던 거죠.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이 함께 겨룰 수 있는 유일한 스포츠가 골프인 것 같아요. 그 작은 공을 홀 안에 넣는 여정에서 잘하는 사람, 못하는 사람이 화합해 즐길 수 있죠.
GQ 공을 맞힐 때 어떤 생각해요?
YW 최대한, 아무 생각 없이 채를 휘두릅니다.
GQ 아무 생각 없이?
YW 생각을 많이 하면 잘 안 되더라고요.
GQ ‘구찌’ 앞에선요?
YW 제가요, 주변에서 아무리 떠들어대도 안 듣습니다. 골프를 편하게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 같아요. 장난으로 저를 휘감아도 멘털이 흔들리지 않아요. 그 순간에는 주변의 코치도 안 듣고요.
GQ 더 잘하고 싶은데도 조언을 안 들어요?
YW 골프라는 운동은 각자에게 맞는 스윙, 스탠스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자신의 스탠스에 맞게 잘하고 있는 사람에게 괜한 조언을 해서 스탠스를 갑자기 바꾸면 오히려 더 망가지더라고요. 누군가의 조언에 휘둘리기보다 제 스타일에 맞추는 게 더 나은 방법인 것 같아요.
GQ 평소에도 다른 사람 말에 잘 휘둘리지 않아요?
YW 평소에는 잘 휘둘리죠.
GQ 집중해야 할 중요한 순간에는 오롯이 자신에게 귀를 기울인다?
YW 그러니까요. 제 안에 단단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요.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가지고 있으려고 노력하는 무언가가. 스읍. 그게··· 뭘까요?
GQ 그래서 책에서 자신을 ‘아보카도’로 표현한 거예요? 잘 뭉개질 것 같은 물렁한 속살 안에 크고 단단한 심지가 있는 것처럼, 외유내강.
YW 아마도요.
GQ 아버지가 군인이고, 장녀잖아요. 어릴 때부터 씩씩함이 기본 전제였을 거 같아요.
YW 제가 아까 의상 고를 때 하는 말 들으셨죠? 저 ‘유교걸’이라고.(웃음) 어릴 때 군부대 안에서 자라서 아버지가 늘 예의를 강조하셨어요. 늘 씩씩해야 했고요. 그 때문인지 제 성격은 보기보다 더 털털하고 시원시원해요. 회사 다닐 때 제 단골 멘트가 뭐였는 줄 아세요? “선배, 저 아나운서인 척하기 너무 힘들어요.” 그러면 선배들도 늘 그랬죠. “맞아, 네가 가장 아나운서답지 않아.” 굉장히 쾌활하고 정신도 없고 단정치 못한 스타일인 제가 아나운서에게 요구되는 틀에 저를 맞추어 나가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다 저의 모습을 점점 잃는 것 같았고···. 더 이상 저를 잃지 않고 싶어서, 그래서 퇴사한 까닭도 있었죠.
GQ 그래서 지금은 장예원이 오롯이 장예원답게 살아가는 과정인가요?
YW 경험하면서 새로운 제 모습을 계속 찾아가는 과정이에요. ‘유교걸’이 오늘처럼 배가 드러난 옷도 입고.(웃음) 장예원이라는 사람을 놓고 볼 때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을 텐데, 이것 말고도 다른 색깔을 그려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제 스스로 두드려 깨나가면서 알아가는 과정이에요.
GQ 색깔 하니까, 필드 위에서 장예원의 도화지는 무슨 색일지 궁금해요.
YW 아나운서 면접 볼 때 제가 한 말이 있어요. “저는 하얀 도화지 같은 사람이라서 어떤 색이든 입히면 그 색깔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형식적인 답변이죠? 저도 알아요. 그런데 정말이에요. 필드 위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어떤 날은 예쁜 색으로 채워져서 이제 곧 그림이 완성되겠다 싶다가도, 어느 날은 다시 백지로 돌아가요. 그런데 그 점이 싫지만은 않아요. 쉽게 얻은 건 그만큼 빠르게 흥미를 잃게 되더라고요. 천천히 공들이고 노력하면서, 그 시간만큼 추억과 기록을 쌓아가고 싶어요. 그러니까, 그린 위에서 저는 흰색.
GQ 책에 쓴 “마음이란 물감과 같아서 아끼다간 굳어버린다고, 쓸 수 있을 때 마음껏 써봐야지”라는 구절 기억나요. 필드 위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기억 한번 마음으로 그려볼래요?
YW 햇살이 쨍하고 눈부시게 화사한 날, 등장인물의 행복감이 그림 밖으로 번져 나오는 듯한 그림이에요. 놀이공원이 연상될 만큼 다채로운 색깔의 풍경에 라운드를 하는 모습을 그릴 거예요. 주인공은 우리 가족. 제게 가장 소중한 라운딩 크루거든요.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스포츠라면 골프가 아니어도 괜찮아요. 그런데 가족을 묶어주기에 골프만 한 게 없긴 하죠.
GQ 그 풍경 상상하니까 마음이 뜨끈해지는걸요. 책 속에서 가장 예뻤던 구절도 떠오르고요. “사랑하고 또 사랑하세요, 제발!”
YW 사랑에 빠지면 자신도 몰랐던 모습을 알게 되잖아요. 내게 이런 모습이 있었나? 상대가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관계를 형성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제 모습을 알아간다고 생각해요. 강아지를 키우면서도 그 전에 몰랐던 감정들, 거기서 나오는 제 모습을 새로이 경험했어요. 세상에나, 이런 예쁜 생명체가 있다니. 애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모든 관계는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GQ 그래서, 사랑하는 이들과의 다음 라운딩은 언제예요? 공에 담아 날려버리고 오고 싶은 건요?
YW 오늘 같은 화보나 예능 촬영은 제게 커다란 도전인데, 그때마다 이런 마음이 덜컥 밀려와요. 나, 잘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 걱정, 조바심 모두 공에 집어넣어서 시원하게 날려버리고 싶어요. 봄이니까, 이제 곧 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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