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인의 크리에이터가 각 구를 대표해 산책 스폿을 꼽았다. 그들의 목적지를 점으로 찍어 만드니 모두 모아 100곳이 되었다.
중구
남대문, 덕수궁, 동대문 디자인플라자(DDP)를 비롯해 정동길, 남산, 을지로, 명동 등 잘 알려진 곳이 즐비한 중구를 독특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루트를 함께 나누고 싶다. 첫 번째 장소는 ❶ 손기정체육공원 내 남승룡러닝센터. 달리기도 배우고 손기정과 함께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남승룡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알 수 있는 소중한 곳이다. 여기서 만리재길을 따라 걷다가 만리동 보 마켓을 거쳐 두 번째로 만날 장소는 ❷ 서울로7017이다. 네덜란드의 세계적 건축 사무소 MVRDV가 설계한 이곳은 처음 오픈했을 때 언론의 혹평을 받았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다시 한번 이곳을 걷기를 권한다. 무럭무럭 자라 자리 잡은 식물들과 고가를 지나며 바라보는 서울의 모습은 새로운 시선으로 서울을 보게 한다. 걷는다는 행위와 도시를 본다는 행위가 일치하는 곳이 바로 서울로 7017다. 서울로 산책이 끝에 다다르면 다시 남산 소월로로 오른다. 로드 자전거의 핫스폿이기도 한 세번째 장소는 1983년 개장한 ❸ 힐튼 호텔(현 밀레니엄 힐튼 서울)이다. 한국 건축의 거장 김종성 선생이 설계한 힐튼 호텔은 한국 현대 건축의 아이콘이지만 현재 철거의 논란이 되고 있다. 시대의 변화는 어쩔 수 없지만 과거와 함께할 수 있는 모색도 생각하게 한다. 건강한 도시는 시간의 적층에 있다. 힐튼 호텔을 지나 남산둘레길 중 북측 순환도로는 중구의 다양한 모습을 걸으면서 파노라마로 볼 수 있다. 둘레길 끝에는 네 번째로 소개할 ❹ 국립극장이 나온다. 1973년 문을 연 국립극장은 건축가 이희태 선생이 작업했다. 당시 한국 건축계의 두 거장인 김수근은 일본 유학파였고, 김중업은 근대 건축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르 코르뷔지에 사무실에서 실무 수련을 했다. 반면 건축가 이희태는 국내에서 건축을 배웠고, 한국성과 근대 건축을 접목하기 위해 숱한 노력을 했다. 절두산성당과 이화동성당 그리고 국립극장이 그 노력의 결과다. 알고 걸으면 새롭게 보이는 풍경이 있다. — 김대균은 건축가다. 매일 중구 정동 사무실로 출근한다. 과거와 현재의 역사가 중첩된 중구는 건축가에게 보물창고다.
서대문구
❶ 홍제천 인공폭포에서 시작해 한강과 합류하는 지점까지 걷다 보면 별안간 탁 트이는 두근거리는 풍경이 나타난다. 망원 한강공원과 연결되는 길이다. 홍제천과 내부순환로가 빚은 웅장한 풍경은 오래된 미래를 보는 것 같다. 근방에는 아이도 동물도 환영하는 다정한 카페가 많다. ❷ 안산 자락길은 길이가 7킬로미터에 이르는 전국 최초 순환형 무장애 자락길. 데크로 되어 유모차도, 휠체어도 편하게 산책할 수 있다. 가볍게 등산하고 싶다면 안산 자락길에서 안산 봉수대로 내려 간다. 무악재다리로 인왕산과 연결되어 있다. ❸ 연세대는 북문 쪽에서 진입하면 건물보다 나무가 많다. 윤동주기념관이 된 핀슨관에서 윤동주가 머물렀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다른 세상에 온 듯한 기분. 연세대 동문으로 나가 봉원사길 따라 이화여대, 아현역까지 내려가는 동안 보이는 아파트와 재개발 지역의 대비도 흥미롭다. 서울에 얼마 남지 않은 호젓한 주택가 ❹ 연희동에서 산책을 마무리한다. — 임나리는 라이프스타일 콘텐츠 기획자다. 서대문구의 정취를 애정한다.
광진구
❶ 뚝섬한강공원의 구 자연학습장 벤치로 갈 때는 반드시 신자초등학교 뚝방길 위 육갑문 나들목을 지난다. 여기서부터 공기가 달라진다. 그대로 한강을 향해 걸으면 늘 앉는 벤치가 있다. 모든 시간대에 다 가봤지만, 언제나 평온한 곳. 근처 대여소에서 따릉이에 올라 타 잠실대교 방향으로 페달을 밟는다. 25분이면 ❷ 광진정보도서관에 도착한다. 학창 시절에는 공부를 핑계로 하루 종일 영화만 보고 오기도 했던 곳. 그리고 ❸ 잠실철교 왕복 길로 간다. 산책길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지하철 2호선이 지나가는 느낌은 일본의 청춘 영화 같은 느낌도 준다. 해 질 녘 라디오를 들으며 보는 석양이 이 산책길을 택하는 가장 큰 이유다. 절묘한 순간에 지하철이 지나가는 바람이 불면 특수효과가 따로 필요 없다. 마지막으로 아차산의 절 ❹ 영화사에서 평온을 찾으며 마무리. 어쩜 이름도 ‘영화’사인지. — 황욱은 광진구 토박이 영화감독이다. 잠깐 떠날 순 있어도, 다시 돌아오는 곳이 광진구다.
강북구
4.19민주묘지역 인근 ❶ 솔밭근린공원 옆으로 지나는 동네 골목길에 들어선다. 자판기 커피로 시작해 노부부가 조용히 운영하는 커피숍 슬로핸드에 이르기까지 걷는 길은 따뜻한 커피만큼 평화롭다. 천을 따라 ❷ 4.19민주묘지까지 올라가 한 바퀴 돌고 근처 순두부집에서 막걸리에 순두부 한 사발을 마신다. ❸ 북서울꿈의숲을 관통하는 길은 양옆으로 나무그늘 길이 있어 걷기도, 자전거를 타기도 좋다. 잘 닦이고 경사가 완만한 ❹ 북한산 등산길 초입의 숲길 산책 코스로 마무리한다. — 장민은 강북구살이를 꿈꾸는 편집 디자이너다. 조용한 서울을 찾아 틈만 나면 우이동과 그 일대를 탐험하고 있다.
강서구
마곡역과 발산역을 잇는 강서역사문화거리, 빽빽한 건물들로 둘러싸인 공원 안에 낮고 아담하게 미술관 ❶ 스페이스K가 자리한다. 야외 옥상은 전시와 상관없이 공원에서 무료로 진입할 수 있는데, 라이언 갠더의 조각이 있는 옥상에서 일광욕을 즐기며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다. 일몰 후 건물 외벽과 공원 내 보도블록에 밤 11시까지 상영하는 미디어 아트도 볼거리. 북쪽으로 한 블록 올라가면 만나게 되는 ❷ 서울식물원 앞 넓은 잔디밭은 반려동물도 함께할 수 있는 공원으로, 코트야드 바이 메리어트의 ‘보타닉투고’를 포장해 피크닉 매트만 준비한다면 완벽하다. ❸ 마곡 나들목을 통해 강서한강공원에 가 잠시 앉거나, 암벽등반 공간도 즐긴다. 발산역 부근 NC백화점 8~9층 ❹ 예스24 서점에서 평소 관심에 둔 서적을 손에 들고 시간을 보내기에도 최적. 서점 가운데 놓인 미끄럼틀도 재미다. — 신사임은 스페이스K의 큐레이터다. 강서구의 뉴비로 동네의 새로움을 탐험 중이다.
도봉구
도봉산입구역 바로 앞에 위치한 ❶ 평화문화진지는 혹시 모를 전쟁 재발에 대비하기 위해 만든 대전차 방호 시설을 탈바꿈시킨 문화 예술 창작 공간. 유려한 산세를 시선에 담으며 걷다가 서울창포원 사이로 접어들면, 베를린시에서 기증한 베를린 장벽도 볼 수 있다. 등산인 사이에서는 도봉산이 유명하지만, 산책이라면 ❷ 초안산(115미터)이 좋다. 배 과수원을 정비해 새로 조성한 ‘초안산하늘꽃정원’을 지나 걷다 보면, 부서지고 깨진 비석들과 봉분을 발견하는데 내시를 비롯해 양반과 일반 서민 등 조선 시대 분묘들이다. 인생의 허무함과 서늘함을 안고 우이천변으로 간다. 가는 길에 ❸ 창동시장 끄트머리에 있는 ‘창동할머니토스트’에 들른다. 매년 봄이면 개나리꽃과 벚꽃이 만발하는 ❹ 우이천에는 오리와 왜가리들이 한가롭게 놀고 있으며, 북한산 자락에서 내려오는 물속에는 어른 팔뚝만 한 잉어들도 노닌다. 산책 나온 강아지들을 구경하며 우이교 너머로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나는 듯한 둘리 조형물을 만나게 된다. 일찍이 <아기공룡 둘리>에서 빙하 타고 내려온 이곳 도봉구에서 철없는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걷는 것도 좋겠다. — 박희정은 국립현대미술관 창동레지던시에서 10년 넘게 일했다. 도봉구의 모든 즐길 거리에 관심이 많다.
동대문구
❶ 홍릉숲은 동대문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이라고 자부하는 국립산림수목원 산하 숲이다. 수목원과 이어지는 천장산 하늘길이 개통돼 가벼운 등산도 즐길 수 있다. 등산이 싫다면 숲길 산책 후 수목원 맞은편 사적 영휘원으로 향하길. 텅 빈 툇마루에 앉아 책도 읽고 멍 때리기에 좋다. ❷ 간데메공원은 흔한 주택가 공원이지만 근처에 카페들이 있고, 오환기의 소설 <인간만세>의 배경이 된 답십리동 도서관이 있다. 걸어서 5분 거리에 2025년 개관 예정인 ‘서울대표도서관’의 공사 부지도 미리 볼 수 있다. 해당 도서관은 전국 최대 규모로 동대문구의 위상을 드높일 예정. 제기동역과 성수역을 잇는 꼬마 2호선 라인 ❸ 신답역과 용답역 사이 청계천은 멋진 동네 산책로다. 용답역 육교는 드라마 <도깨비>에도 등장했지만, 그보다는 로데오 거리로 나가 진짜 동네 시장 바이브를 느껴보길. ‘탈’답십리급이라고 부르는 이자카야 타쿠도 추천. 건너편에는 답십리동 고미술상가도 자리하고 있다. 근방 경희랜드(경희대)의 위용에 가려져 있지만 산책하기에는 ❹ 서울시립대가 훨씬 좋다는 것이 구민의 의견! 차분한 벽돌 건물이 예쁘고 고양이도 많은 데다 서울시립대 앞 교차로를 기점으로 수퍼내추럴, SEP, 너디블루, 아워웨이브 등 예쁜 카페와 바도 생기는 추세다. — 이마루는 <엘르> 피처 디렉터다. 스무 살에 동대문구로 상경했다. 지금도 여기에 있다.
종로구
한낮의 열기가 내려앉은 늦은 밤, 경복궁 돌담길을 따라 걷는 밤의 산책은 고요 그 자체다. ❶ 영추문을 지나 청와대 앞쪽에 이르면 방문객과 직장인이 빠져나간 청와대 앞 분수공원 벤치에 이른다. 배드민턴을 치는 가족, 운동하는 주민들을 만나기도 하고, 늦은 밤엔 말 그대로 텅 빈 광장을 지키는 분수를 만난다. 적막하지만 안전한 공간이다. 돌담길을 따라 ❷ 신무문을 향해 한 바퀴 걷다 보면 삼청동길까지 갈 수 있다. 경복궁 서쪽은 걷기는 좋으나 쉴 만한 공공 공간이 적은 곳이다. 이 부족한 공공 공간에 숨통을 틔우는 영추문 앞 ❸ 통의동 마을마당은 건축가 황두진의 책 <공원 사수 대작전>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국유지에서 민간에게 대토 형식으로 넘어간 공원을 지키기 위해 지역 주민들이 적극적인 운동을 펼쳤다. 편의에 따라 쉽게 사라지는 도시의 작은 공원들의 안녕을 묻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 곳에 앉으면 경복궁 영추문을 정면으로 바라 볼 수 있고 널찍하게 열린 마당을 가진 옆집의 은행나무도 시야에 들어온다. 통의동 마을마당에서 청와대 방향으로 가다 대각선으로 빠지면, 202경비대 근처에 작은 삼각공원도 있다. 고작 벤치 2개가 전부인 작은 공간이지만, 그곳에 앉으면 담벼락에 숨어든 느낌이 든다. 청와대 방향으로 좀 더 올라가면 드디어 궁정동의 널찍한 ❹ 무궁화동산이 등장한다. 칠궁으로 가는 길목에서 나무로 우거진 공원에 앉아 신록을 바라보면, 새삼 이곳이 도심인가 싶다. 옥인동 수성 계곡에서 인왕산길로 오르면 위로는 인왕산초소책방, 아래로는 한양 성곽을 지나 인왕산 둘레길로 이어진다. 내리막을 걸으며 탁 트인 전경을 바라볼 수 있는 길. 사직동에서 넘어가는 길에서는 딜쿠샤와 홍난파 가옥도 만날 수 있다. 마음이 조급해질 때면 2분이면 도착할 거리가 담고 있는 풍경을 생각한다. 인왕사 옆으로 난 작은 숲길은 둘레길의 시작을 알리는데, 거친 콘크리트 바닥에 꾸미지 않은 산책길을 하고 있어 평안하다. — 임진영은 건축 기획자이자 오픈하우스서울 대표다. 종로구를 닳도록 걸었다.
영등포구
❶ 문래역에서 길을 시작한다. 문래동이라는 이름은 섬유산업과의 깊은 관계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그래서인지 문래역 역사에는 목화에서 실을 뽑는 장치 ‘물레’의 모형과 지역 유래를 소개하는 자료가 있다. 역사를 나서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에서 가장 큰 ‘물레’ 조형물을 보러 간다. 1번 출구로 나가면 만나는 ❷ 문래공원이다. 대형 ‘물레’는 기존 동물사와 소운동장이 있던 공원을 새 단장하면서 설치했는데, 한 방적 업체가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제작해 기증했다. 문래공원에는 박정희 흉상과 주민이 참여해서 만든 문래근린공원 창의놀이터, 문래 소공인들의 뛰어난 기술력으로 만든 팽이로 놀 수 있는 팽이놀이터가 있다. ❸ 문래창작촌의 ‘기린’과 ‘바가지’ 조형물, ‘못? 빼는 망치’, ‘환상의 조형’ 등 공공 미술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❹ 당산동1가 과일등거리에서 마무리한다. — 이소주는 사회적 기업 ‘보노보씨’를 운영하는 문화 기획자다. 영등포구를 재미있게 하기 위해 어떤 일이든 한다.
강동구
이름처럼 반듯하고 단조롭게 생긴 나지막한 산, ❶ 일자산一字山에서부터 강동구의 녹지축을 따라 ‘서울 둘레길 3코스’를 걸어봐도 좋고, 넓은 잔디밭에 앉아 쉬거나 제1체육관 앞 스케이드보드 연습장에서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좋다.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이라 불리는 ❷ 둔촌 주공 재건축 현장은 그 스케일이 장관이다. 공사장을 모두 펜스로 둘러 안쪽을 보기가 쉽진 않은데, 풍성로와 명일로가 만나는 지점에서는 출격을 앞둔 군대 같은 높은 건물들이 나란히 늘어선 모습이 보인다. ❸ 둔촌역 전통시장은 1980년대에 제대로 모양을 갖춘 곳이라 사실 대단한 ‘전통’은 아니지만, 대단지를 품은 지역 생활 상권과 한국체육대학의 ‘대학가’ 상권이 만나 특유의 활기를 띤다. 국내 지자체 최초의 유기동물 입양 카페이자 강동의 자랑 ❹ ‘리본센터’의 1층 카페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실내 운동장에서 뛰노는 멍멍이를 만날 수도 있다. — 이인규는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발행인이다. 강동구에서 오랜 시간 동네의 변화와 역사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살폈다.
금천구
걷고 싶은 날은 목적지보다 한 정거장 먼저 내려 흥얼거리며 ❶ 안양천을 따라 걷는다. 쾌청한 날이면 ❷ 금나래중앙공원에 들른다. 시선에 담기는 자연의 모든 것이 디자인의 원천이자 영감이다. 산복터널을 지나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면 맞은편에 ❸ 호압사 입구가 있다. 처음 호압사에 갔을 때 입구 옆에 놓인 벤치에 앉아 아빠와 단둘이 시간을 보냈는데 그 이후로도 틈날 때마다, 그리고 아빠와 퇴근시간을 맞춰 종종 이곳을 찾는다. 산만이 지닌 평안한 호흡, 목탁 소리를 들으면서 숨을 깊게 내쉬며 어지러운 생각과 감정을 내려놓는다. 호압사는 관악산의 여러 산책로로 연결되어 있어 이동하기 편하다. 신림에서 시흥으로 넘어가는 길이자 산길로 관악산의 절경과 계절의 변화 를 느낄 수 있다. 신림에서 ❹ 호암로를 달려 산복터널을 지나면 금천구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야경 또한 남산 부럽지 않은 동네의 자랑. 당연히 드라이브 코스로도 좋다. — 문다이는 주얼리 디자이너다. 디자인에 담긴 자연의 감성은 대체로 금천구로부터 왔다.
노원구
출퇴근길에 항상 지나 다니는 ❶ 주공아파트 6단지 사잇길은 거리는 짧지만 굵게 인상적이다. 도로를 가운데 두고 양옆으로 흐드러지는 분홍색 벚꽃이 때로는 윤중로보다 아름답다. 몇 해 전부터 재정비한 ❷ 당현천은 다채로운 꽃들로 입혀져 산책길의 매력을 더해준다. 따릉이를 이용해 당현천길을 달리다 보면 색색의 풍경들과 곳곳에서 귀여운 청둥오리의 발 헤엄을 볼 수 있다. 중계역에서 하계역으로 가는 곳에는 ❸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이 있다. 가끔 좋아하는 전시가 열릴 때면 아이디어를 충전하고, 근처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서 미술관 앞마당에 앉아 한 모금 들이켜면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공릉동 골목길을 걷다 우연히 발견한 ❹ 경춘선 숲길은 길게 이어진 단조로운 철길을 따라 생각도 심플하게 정리해준다. — 조혜진은 콘텐츠 디자이너다. 첫 집을 장만한 당시에는 낯설기만 했던 노원구가 이제는 엄마 품처럼 느껴진다.
마포구
마포구청역 빵집에서 갓 나온 크로켓을 산 뒤 ❶ 평화의 공원 호수로 향한다. 느릿느릿 걸어도 30분이면 도착하는데, 저 멀리 호수 맞은편에서 가지와 줄기를 뻗은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바람에 춤을 춘다. BGM은 벨벳 언더 그라운드의 ‘Sunday Morning’이다. 크로켓을 한입 베어 물고 호수 맞은편 나무들을 보노라면 평생 간직하고 싶은 순간을 마주한다. 클로드 모네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평화의 공원과 연결된 월드컵경기장 입구 다리를 거쳐 ❷ 월드컵경기장 북문 광장으로 간다. 돔을 둘러싼 계단 꼭대기에 자리 잡고 공원에서 노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내 그림에도 자주 등장하는 풍경이다. ❸ 성산시영아파트 단지 내에서 백사장 놀이터의 적막함과 잔디밭 사이 커다란 고목 아래 흔들리는 나뭇잎 그림자를 만끽하고 있을 때는 유년기로 돌아간 느낌이 든다. ❹ 마포도서관 로비층 광장에 놓인 그네 벤치에 앉아 김밥을 먹으며 잠깐의 독서. 오후 2시의 여유에 까무룩 잠이 든다. — 유승보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베이시스트다. 창작 활동의 영감은 주로 마포 산책이다.
서초구
❶ 사당역에서 예술의전당을 잇는 대로변 오른쪽은 서울 둘레길로 이어지는 완연한 숲으로 나무 향과 꽃 향이 가득하다. 30분 남짓한 교향곡 한 곡은 산책길의 초입과 끝을 정확히 재는 거리다. 예술의전당 뒤 우면산으로 향하는 나무 계단을 따라 올라 만난 ❷ 대성사 대웅전으로 들어가 조용히 기도하고 밖으로 나오면 서울 시내가 꽤나 멋지게 펼쳐진다. 평일 저녁 예술의전당 공연이 끝나고 올라가면, 이곳이 야경 맛집. 아마도 서울 시내에서 가장 음악적인 동네인 서초3동의 ❸ 신중초등학교 담에는 클래식 작곡가들의 초상화와 명언이 그려져 있다. 한낮에 담을 따라 내려가면 아이들의 발소리가 음악처럼 들리기도 한다. 곳곳에 붙어 있는 공연 포스터만 유심히 보아도 예술의전당에서 예정된 다양한 공연을 한눈에 볼 수 있다. ❹ 국제전자센터 4층은 빈티지 오디오 기기와 오래된 LP로 가득한 보물 창고다. 마음에 드는 음반을 발견하면 빈티지 오디오로 재생을 부탁해볼 것. — 정혜중은 서초구에서 주 7일 상주하는 클래식 공연 기획사의 홍보 담당자다.
동작구
용마산 산책 코스를 따라 오르면 ❶ 대방공원을 만난다. 길을 따라 계속 걷다 보면 시야가 정화되는 듯한 드넓은 잔디구장과 트랙이 나온다. ❷ 한강철교-한강대교 구간은 거대한 철골 교량과 역사적인 벽돌 교각 아래에서 새로운 뷰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한강대교 남단 쪽 자전거도로 진입로를 따라 걸으면 왕복 약 1킬로 미터의 짧은 구간이지만, 뷰가 이색적이다. 노들역으로 향해 옛 골목길의 정취가 느껴지는 ‘본동’의 작은 언덕으로 형성된 골목길 정상에 ❸ 용양봉저정공원이 있다. 한강대교 북단 위 서울의 파노라마 뷰가 이곳에서 꽤 멋지다. 일몰 시간 30분 전, 파트너는 커피 한 잔이면 족하다. 근방에 ‘더한강’이라는 카페가 있는데, 노을 시간에 맞춰 가면 빌딩 숲 사이로 지는 태양과 여의도의 실루엣을 카메라로 포착할 수 있다. 흑석 빗물펌프장에서 시작되는 ❹ 흑리단길은 원래도 이국적이지만, 최근 그라피티 아티스트 제바의 작품이 펼쳐지는 장이 되고 있다. — 이현준은 동작구에서 2년 동안 산 건축 사진가다. 사진으로 도시의 시간을 기록한다.
성동구
재개발 구역의 골목, ❶ 성수동 둘레길을 따라 걷다가 ❷ 진아슈퍼에서 마실 거 하나 사서 한강공원으로 나간다. 뛰는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 연인, 어르신들 사이로 느리게 걸으며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꽃들, 강물, 바람을 사진으로 담다 보면 서울숲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한다. 엘리베이터 대신 뒤쪽에 있는 계단으로 올라가면 뜻밖에 선물같은 풍경을 만나는데 한 걸음씩 다르게 보이는 한강, 남산타워, 롯데타워 뷰가 그것이다. 잠시 멈춰 서서 강변북로를 따라 흘러가는 뿌옇게 흔들리는 노랗고 빨간 차량의 헤드라이트 불빛을 담기도 한다. 어느덧 ❸ 수도박물관 건물과 마주치게 되고, 집으로 발걸음을 하기 전 ❹ 성수1가어린이공원의 아파트 놀이터에서 잠시 그네를 탄다. 어린 시절로부터 멀리 오지 않은 느낌이다. 해가 밝아오는 어두운 파란빛의 아침, 점심, 해 지기 30분 전, 도심에서는 좀처럼 탁 트인 한강 뷰를 보기 쉽지 않기에 좋아하는 공원이다. — 김희원은 사진가다. 속도가 빠른 성수동에서 느릿느릿 사진을 찍는다.
송파구
❶ 올림픽공원 장미광장에서 몽촌토성역으로 향하는 8차선 도로는 광활한 소실점을 만끽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일정한 간격으로 선 거대한 가로수는 봄여름에는 푸른빛, 가을에는 붉은빛을 발하며 거리의 분위기를 바꿔놓는다. 도로 곳곳에 설치된 올림픽 기념 조형물 감상은 또 다른 재미. 몽촌토성역에 다다르면 ❷ 평화의 광장이 등장한다. 광장 끝에는 88올림픽에 참가했던 160개국 국기가 게양된 국기의 광장이 있는데, 이 또한 색다른 스펙터클을 선사한다. 반원 형태로 배열된 약 10미터 높이의 국기 게양대는 그리스 신전의 열주와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❸ 올림픽공원 테니스 경기장의 파란색 테니스 코트를 중심으로 사방에 펼쳐진 좌석은 규칙적인 배열이 시각적인 쾌감을 준다. 경기가 없는 날 빈 좌석에 앉아 드문드문 찬 좌석과 테니스 연습을 하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우규승, 황일인 건축가가 설계한 ❹ 올림픽선수촌아파트의 상점가는 올림픽공원 맞은편에 위치한다. 아케이드형 상점가는 광장 가장자리를 둘러 아치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높은 층고의 전면 유리 건물로,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된 철근 구조가 원근감 격자를 만들며 압도적인 공간감을 연출한다. — 유현선은 송파구에서 나고 자란 그래픽 디자이너다.
용산구
일단 소월로라는 이름이 너무 좋다. 김소월 시인의 시비가 있어 붙은 이름이라는데, 용산구 소월로에서 이어지는 ❶ 남산공원 산책로는 이름과 퍽 어울린다. 남산맨션 옆 남산예술원 제일 안쪽 약수터길로 올라가면 두 갈래 길이 나온다. 왼쪽으로 가면 남산수목원으로 이어지는 공원이 나오고, 남산공원 꼭대기의 연못을 지나 남산타워 방면 산책로까지 이어지는 길에 닿는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지금 이 계절, 오후 6시가 가장 좋은 시각. 남산공원 중간쯤, ❷ 개울물이 있는 곳을 가장 애정하는데, 이건 산책 동반자인 반려견 장미도 마찬가지다. 두 번째 스폿은 ❸ 남산타워 입구 버스 정류장이다. 버스 정류장에서 뒤돌아보면 서울의 강북 도심 풍경과 한강, 멀리 롯데타워까지 보이는 전경은 서울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었나, 생각하게 한다. 소월로 중간쯤에서 녹사평대로로 내려오다 만나는 ❹ 작은 숍과 카페가 모인 거리에서 산책의 허기를 잠재운다. 한때 시끄러웠던 경리단길은 외부인이 모두 떠난 지금에야 진짜 로컬의 삶이 시작된 듯하다. <유희열의 생활음악> 앨범을 재생하고 걷다 보면 삶이 새롭게 시작되는 기분이다. — 나훈영은 삶과 일이 모두 용산구에서 이루어지는 공간 기획자이자 ‘코리아 하우스비전’ 기획 위원이다. 한남동과 경리단에서 로컬 마켓을 운영하며, 용산에서의 삶에 관심이 많다.
중랑구
❶ 묵동천을 따라 양쪽으로 조성된 ❷ ‘중랑천 뚝방길’이 나온다. 유채, 장미, 개나리 등 구역마다 드넓은 꽃밭이 펼쳐지는데 꽃의 종류를 보면서 ‘어디쯤 와 있구나’를 짐작하게 된다. 5월에는 여기서 장미축제가 열리는데, 줄지어 선 푸드 트럭에서 간단한 요깃거리를 사서 캔맥주와 함께 마시면 괜찮은 꽃놀이. 가끔 구청에서 장윤정 등 트로트 가수도 불러 공연을 하니 부모님에게 공짜 효도(?)도 가능할 듯. ❸ 중랑구립도서관으로 향해 둘레길을 산책하다가 운동 기구로 가볍게 스트레칭하고, 버스를 타고 ❹ 양원숲속도서관으로 향한다. 붐비는 중랑구립도서관과는 달리 새로 생긴 이 도서관의 묘미는 비교적 깨끗한 새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점. 여느 도서관에서 금세 동이 나는 베스트셀러도 여기엔 자주 남아 있다. 도서관 바로 옆에는 무척 큰 잔디밭과 함께 캠핑 숲이 펼쳐진다. 늦봄이나 여름, 그러니까 바로 이 계절의 초록을 품고 망중한을 즐기면 그것이 낙원이다. — 허재영은 사진가다. 중랑구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고 지금도 여기에 머문다.
은평구
애니메이션 <피아노의 숲>을 몰라도 불광동 ❶ 서울혁신파크 피아노숲에서는 영감이 솟아날 것만 같다. 큰 나무 그늘 아래 투명 유리로 둘러싸인 작은 돔형 건물이 있고, 그 안에 오래된 피아노 한 대가 있다. 비밀인데, 항상 닫혀 있는 듯한 피아노의 방은 평일 점심시간에만 아주 잠시 문이 열린다. ❷ 수국사 황금 법당은 조선 시대에는 엄청나게 큰 사찰이었다는데, 여러 차례 중건을 고민하다 절의 크기를 늘리는 대신 황금으로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사실 수국사보다 해가 저물 때 법당과 마주한 북한산을 보는 걸 더 좋아한다. 서울에서 가장 도서관이 많은 동네 은평구에는 독특한 도서관도 여럿인데, 최애는 ❸ 구산동 도서관 마을이다. 주택 네 채를 리모델링해 만든 이 공간은 꼭 책을 빌리지 않더라도 구석구석을 탐험하는 재미가 있다. ❹ 불광천 수변무대는 동네 사람들에게 언제나 사랑받는 산책로지. 특히 무심하게 지나는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깨어나는 밤의 불광천이 좋다. — 임완은 8년 전 이곳에 온 카피라이터다. 가장 서울 같지 않은 은평구를 사랑한다.
성북구
와룡공원 근처 ❶ 북악산근린공원은 종로구와 성북구의 경계이자 코스의 가장 꼭대기 지점이다. 무허가 주택을 매입해 구에서 새롭게 만든 공원인데, 한양 도성으로 이어지는 등산로와 연결되어 있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❷ 심우장 안내 푯말이 보인다. 만해 한용운이 옥고를 치르고 나와 임종하기 전까지 기거하던 작은 한옥이다. 이번에는 후미진 비탈길을 걸어 내려오면 ❸ 성북구립미술관이 보인다. 규모는 작지만 컬렉션이 훌륭한데, 서도호 작가의 아버지인 고 서세옥 화백의 기증품으로 설립했다. 성북동은 간송 전형필, 위창 오세창, 수화 김환기 등 당대 가장 뛰어났던 화가나 작가, 평론가 크루들의 집결지였고, 그 옆의 수연산방도 1940년대에 이태준이 기거하던 곳이다. 조금 더 가면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를 쓴 최순우 작가가 1970년대에 머문 고택이 있고, 언덕을 오르면 오른쪽으로 ❹ 길상사가 보인다. 한월북 시인을 평생 동안 사랑한 여인이 죽기 전에 자신의 모든 재산을 헌납해 법정 스님 살아계실 당시 지은 절이다. 백석과 자야의 러브스토리를 떠올리며 작은 텃밭에서 발견하는 기쁨 같은 산책에 마침표를 찍는다. — 여병희는 백화점 치프 바이어다. 5년째 주말마다 성북동 골목 사이사이를 누빈다.
양천구
도심 속 작은 파리 ❶ 파리공원은 최근 리모델링을 거쳐 산책로부터 음악 분수, 문화 공간까지 확충했다. 미니 에펠탑 앞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다 보면 문득 드는 생각 한 가지. ‘나만 없어 댕댕이···.’ 광합성이 필요한 햇살 좋은 날, 멍 때리기 좋은 최고의 플레이스. 다음은 피톤 치드 충전소, ❷ 용왕산. 흙과 데크가 적당히 깔려 있는 산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서울의 풍경이 훤히 보이는 정자(a.k.a. 용왕정)를 만나게 된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오후에 올라, 서울의 매직 아워를 감상하고 저녁에 내려온다. 한쪽에는 안양천, 한쪽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배산임수 산책로, ❸ 안양천 산책로는 자전거를 타고 가로지르기도 좋다. ❹ 오목공원은 몰아치는 업무 속 작은 오아시스다. 한 평 남짓한 편집실을 벗어나 홀로 바깥 공기를 쐬고 싶으면 향하는 장소. 회사가 올려다 보이는 벤치에 앉아서 24/7 꺼지지 않는 방송국을 볼 때면 드는 생각. ‘나 언제 퇴근하지?’ — 이홍희는 SBS 예능 PD다. ‘목동 키즈’였으며, 30년이 지난 지금은 ‘목동 아저씨’다.
구로구
❶ 항동푸른수목원에서 여정을 시작한다. 서울시 최초 시립 수목원인 이곳은 도시 정원사, 가드닝 스쿨 등의 알찬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한여름 밤에는 이따금 낭만적인 영화 상영회도 열리는데, ‘생태의 섬’이라는 부제처럼 외딴 곳에 와 있는 기분도 든다. ❷ 항동철길을 따라 쭉 걷다 보면 ❸ 고척 스카이돔이 나온다. 야구 경기나 내한 공연이 있을 때는 동네 전체가 들썩이는 느낌이지만, 그날만 잘 피한다면(?) 여유롭게 걷기 좋은 곳이다. 근처에는 고척근린공원이 있는데, 돔을 따라 빙 둘러 걸어보는 것도 추천한다. 다음 목적지는 ❹ 안양천로. 벚꽃 명소로도 이름난 이곳은 유채, 장미도 계절에 따라 만발한다. 하천 위의 돌다리도 두드려 건너볼 것. — 이소연은 헤어&메이크업 아티스트다. 구로구에 40년째 살고 있는 토박이로, 떠나기를 꿈꾸지만 사실은 떠나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
강남구
복잡한 이 동네를 산책하는 게 가능할까 싶었지만, 수년째 이 동네에서 밥벌이를 하다보면 나름대로 살길을 찾게 된다. 산책의 시작 혹은 마무리는 ❶ 도산공원이 좋다. 근처나 배회했지 정작 공원 안의 아름다움에 눈 뜬 건 근방 작은 서점에 드나들면서부터. 계절이 그대로 전시되는 듯한 치유의 스폿이 이토록 가까이 있었다고? 안창호 동상 곁에 앉아 한참 멍 때리다가 오페라 갤러리에 들러 눈을 정화하고, ❷ K 현대미술관 옥상에서 탄산수 같은 뷰를 맛본다. 가게 한두 개쯤은 매일 바뀌는 것 같은 ❸ 로데오 골목 탐험도 볼거리. 최근 강남구에서 ❹ 플레이 메타로드로 명명하고 스마트하게 즐기도록 꾸몄다. 구청 앱을 깔아두면 근처 숍의 할인 쿠폰이 쏟아지고, 지루하면 AR 게임도 할 수 있다. — 전희란은 에디터다. 몇 년째 눈 뜨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강남구를 애증한다.
관악구
서울대 캠퍼스는 사계절 언제든 예쁘지만, 벚꽃이 피는 4월 중순, 신록이 우거진 6월 초순이 특히 예쁘다. ❶ 버들골에서 교수회관으로 오르는 숲길은 등산하지 않아도 관악산의 정기를 듬뿍 받을 수 있는 곳이다. 점심 무렵 숲을 가로질러 호젓함을 만끽한 후 교수회관에서 약대로 이어지는 길로 접어들 때, 고요함을 깨고 생동감이 차오르는 그 순간이 좋다. ❷ 서울대학교 미술관 – 서울대입구역 사이 내리막길 지하철역까지 걸어서 이동하려는 자를 ‘서울대 3대 바보’라 한다지만, 미술관에서 관악소방서께로 넘어가는 구간은 버스 창 너머로만 즐기기에는 너무 아쉽다. 서너 시쯤 미술관 옆 오솔길을 따라 큰길로 나서 포스코 센터, 치의대 지나 완연한 내리막에 다다르기까지, 그 짧은 구간에도 계절감이 담뿍하다. 시원하게 뻗은 내리막에 서면 가끔 새벽녘 자전거로 질주하고 싶은 충동마저 들기도. ❸ 청룡산 주민텃밭공원은 이름대로 청룡동 주민들이 즐겨 찾는 작은 공원. 산책로, 텃밭, 야생화단지 등이 옹기종기 모인 ‘작지만 알찬’ 공원이다. ‘텃밭’ 공원답게 여름에서 가을, 열매가 막 여물어 아직 거두기 전이 볼거리가 가장 풍성하다. 이른 아침 맑은 정신에 책을 읽거나 오후 2시쯤 동네 고양이와 나란히 햇볕을 쬐기 좋다. 공원 고도가 은근 높아 내려다보면 건물을 딛고 서 있는 기분. ❹ 낙성대역과 남성역을 잇는 솔밭로는 산책으로 걷기에는 다소 벅차다. 초록이 눈에 띄기까지 삭막한 동네 풍경을 한참 지나쳐야 하는 데다 그 길이 꽤나 오르막이기 때문. 하지만 고지 너머 내리막, 빼곡한 녹음을 만나는 순간 그 수고로움을 보상받는 기분이다. 해 질 녘 동작구로 넘어갈수록 동네 톤이 미묘하게 달라지는 모습이 흥미롭다. — 한지희는 시각문화 탐구자다. 관악산 언저리를 배회하며 늘 아름다움에 골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