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의 속살이 상대를 향하자 진영의 게임은 좀 더 흥미로워졌다.
GQ 아까 흥얼거린 노래 뭐예요?
JY <유미의 세포들 2>에 나올 OST에서 제가 부른 곡이에요.
GQ 첫 방송이 벌써 이틀 뒤네요. 어떤 상황에 나올까요?
JY 달달한 신에서 흘러나올 것 같아요. 슬픈 가사는 아니거든요. (작게 흥얼거리기 시작한다.) 그대 어젯밤도 선잠에 들었나요 / 그대 가는 길 그 끝에 서있나요 / 두 누운을 감고서 내 푸움에 안겨요 / 다 괜찮아요.
GQ 확실히 당도가 높군요.
JY 유미에게 바비의 포지션이 정확하니까.
GQ 최근에 호주 <지큐> 인터뷰 보고 놀랐어요.
JY 그만두려고 했었다, 그 부분요?
GQ 네.
JY 아하하하. 조금 와전된 부분이 있죠. 근데, 누구나 그런 생각해볼 수 있지 않아요? 기자님도 다른 일도 해보고 싶다, 생각하지 않으세요?
GQ 물론 하죠.
JY 그런 맥락이었어요. 내가 고작 스물아홉인데 왜 배우와 가수만 평생 해야 해? 힘들 때 그런 생각도 해봤다, 였는데···.(미소)
GQ 워딩이 세진 거군요. 그리고 이런 말도 있었죠. “I was too, too serious.”
JY 예전엔 굉장히 진지했어요. 사람들이 하도 진지하다고 하니까 저도 그런 줄 알았어요. 나 진지한 사람이구나. 근데 아닌 것 같아요. 평소엔 노는 거 좋아하고, 장난기도 많아요. 장난치고 싶어서 아주 죽겠어요. 일할 때는 물론 진지하죠. 너무 정석적인 대답만 해서 기자님들이 싫어해요.(미소)
GQ 진지했던 지난날의 회한이라도 있는 줄 알았잖아요.
JY 저는 살면서 한 번도 후회해본 적 없어요. 과거에 잘못했다면 잘못인 줄 깨우치며 나아지고, 줄곧 잘했으면 지금 실수하고 있을지도 모르고요.
GQ 와, 건강한 성격. 그러면 그때 그런 선택을 했더라면, 생각하는 것도?
JY (잠시 침묵) 없어요. 돌이킬 수 없잖아요. 우리(갓세븐)끼리 장난으로 하는 얘긴 있죠. “그 앨범 때 그 머리와 스타일링은 하면 안되는 거였어”,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지만, 굳이 실패할 필요는 없다” 으흐흐흐. 실패를 안 하려고 애쓰는 건 아니고요. 예쁜 것 중에 시도를 하면 되는 건데 저희는 시도만 했던 거죠.(웃음) 우리는 시대를 너무 앞서갔어. 우리는 그냥 시대를 따라가자. 이런 식으로 농담 따먹기 해요. 으하하하.
GQ 갓세븐과 함께면 확실히 느슨해지는군요.
JY 맞아요. 멤버들과 있으면 나사가 좀 풀려요. 매니저가 그러더라고요. “형, 이런 텐션 처음 봐요”라고. 저도 몰랐는데, 멤버들이랑 있으면 제가 그렇게 신나한대요. 왜 그런 느낌 있죠? 엄청 긴장해서 일하다가 멤버들 만나면 휴가 받은 느낌. 바닷가 가서 놀면서 파워 충전하고 돌아오는 것처럼.
GQ 지금 표정 보니 평소에는 진지하지 않다는 말, 뭔지 알 것 같아요. 다시 일로 돌아올까요. 어제 <유미의 세포들 2> 제작 발표회에서 진영이 맡은 바비 역을 설명하면서 ‘착한 아이 병’이라는 워딩을 쓰더라고요.
JY 강박이죠. 바비에게는 남들에게 잘해줘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요. 모든 여자분들에게, 하물며 남자들에게도요. 바비의 행동 몇 가지만 유추해보면 오해 살 만한 부분이 많아요. 드라마에는 나오지 않지만, 원작 웹툰에서 바비 서사를 살펴보면 “무작정 잘해주면 되는 줄 알았다”라는 말이 나와요. 그 포인트에서 느꼈죠. 바비에게는 착한 아이 병이 있구나.
GQ 진영도 착한 아이였죠?
JY 비슷한 강박이 있었어요. 열일곱 살에 홀로 서울로 올라와서 기댈 곳이 없었거든요. 제가 살아남는 방식도 바비와 비슷했던 것 같아요. 열심히 인사하고, 더 과장해서 착하게 말하려고 했어요. 예전 제 모습을 상기하면서 바비라는 인물의 힌트를 빨리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GQ “무작정 잘해주면 되는 줄 알았다”는 바비의 서사는 상처를 받고,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는 셈이잖아요. 진영에게도 상처가 있었어요?
JY 8~9년쯤 전에 가까운 지인이 저에게 대놓고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넌 참 가식적인 아이야.” 그때는 상처였고 억울하기도 했지만, 그분이 그렇게 보았다면 그게 맞을 수도 있어요. 모두 주관적인 거잖아요. 어쩌면 제가 그때 가식적인 사람이었을 수도 있고요. 지금은 그때처럼 행동하지는 않아요. 굳이 큰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알 사람은 알고 모를 사람은 어차피 모른다, 나이 들고 경험이 쌓이면서 깨달은 점이에요.
GQ 단단하네요.
JY 단단한 것 같아요. 힘들어도 오래 안 가고, 상황에 빨리 적응하죠. 자고 나면 좀 괜찮아져요. 스트레스 받으면 바닥에 머리부터 대는 편.(웃음)
GQ 그러고 보니 머리가 좀 자랐네요?
JY 네. 영화 촬영 끝나서 머리 기르고 있어요. 촬영장 분위기요? 또래끼리 무척 친해져서 우리끼리 뭘 더 해볼까 궁리하면서 놀 듯이 촬영한 현장이었어요. 생각해보면 저는 편한 상황에서 좋은 게 나오는 사람인 것 같아요. 불편한 지점 없이 마음이 편하다고 느끼면 놀 듯이 일하게 돼요. 제가 가진 큰 복 중의 하나가 인복이라고 생각하는데, 현장에서 아직 모난 사람들을 만나본 적이 없어요. 좋은 사람들뿐이었어요.
GQ 어쩌면 그건 진영 씨가 모나지 않은 사람이라서는 아닐까요? 모든 관계는 100퍼센트 일방적일 수 없고, 상대적이니까.
JY 되게 좋은 말이네요. 그 말 꼭 기사에 써주세요. 으하하. 감동받았어요.
GQ 진심이에요?
JY 네 진심. 가식이면 가식이라고 말할게요.
GQ 어떤 신호라도 줄 건가요?
JY (커피 뚜껑을 지그시 누른다.) 이 버튼 누를게요.
GQ 예전 인터뷰에서 방학 숙제가 있으면 바로 해치우는 성격이었다고요.
JY (커피 뚜껑을 누른다.) 가식이었던 것 같아요. 보통은 끝까지 미루는 편이에요. 때에 따라 달랐는데, 방학하자마자 다 해버리거나 아니면 완전히 늦게까지 미루거나. 전자는···, 한두 번쯤 그랬나?
GQ 지금 숙제처럼 느껴지는 것들은요?
JY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뤄요. 게으르죠. 네, 세 살 버릇 오래가더라고요.
GQ 오은영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미루는 사람에게 오히려 완벽주의적 성향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JY 저 완벽주의자 맞아요. 그런데 그으으렇게 완벽주의자는 아니고요, 완벽하다고 생각했는데 항상 한두 개 빠진···. 좀 허술한 완벽주의자.
GQ 특별히 완벽을 고집하는 분야는요?
JY 연기죠. 지금은, 다음 작품요. 연기를 하고 나면 늘 후회가 남아요. 항상 더 뭔가를 못 한 느낌이고, 찝찝해요. 만족이 안 돼요. 당장은 후련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하나둘 부족한 게 보이죠. 모니터링 안 하는 배우도 있다고 하던데, 저는 그런 면에서 타고나지는 않은 것 같아요. 현장에서도, 완성본도 꼭 모니터링해요. 힘들죠. 불편한 것과 직면하는 느낌? 재생 버튼 누르기 전부터 벌써 부끄럽다, 불안하다는 감정이 엄습해요. 으악 잠깐만! 낯뜨거워서 스페이스를 눌러 스톱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꼭 봐요. 제 연기를 세세하게 분석한다기보다는, 전체적인 느낌을 보려고요. 내 연기가 이상하진 않았나?
GQ 연기에 음악까지, 둘 다 완벽하긴 어려울 텐데 균형을 찾았어요?
JY 이렇다 할 방법은 아직 잘 모르겠어요. 다만 오래 해서 좀 적응이 된 것 같아요. 달라진 건 체력이죠. 이번에 콘서트 준비하면서 연습실에서 죽는 줄 알았잖아요. 한 곡 끝날 때마다 잠깐만요, 하고 바닥에 누워서 헉헉대고. 그래도 진짜 재밌었어요. 그래, 이 맛에 하는 거지. 오랜만에 춤바람 한번 신나게 나보고 싶어서 세트리스트도 원래보다 더 길게 늘려달라고 부탁했어요. 배고팠나 봐요. 1년 반 동안 굶어서 그런지.
GQ “바비는 자신의 카드를 보여주지 않는다.” 시즌 1에서 진영의 마지막 모습과 함께 나온 말이에요. 현실의 진영은 카드를 보여주나요?
JY (한참 생각한다) 네.
GQ 왜 그렇게 오래 생각했어요?
JY 제 행동을 돌이켜봤어요. 저는 힘들거나 불편하면, 얘기를 해요. 내 감정이 이렇다, 라고요. 팀 활동을 오래 하면서 굉장히 많은 관계성을 경험해왔고, 얘기 안 하면 곪는다는 걸 알게 됐어요. 지금 당장 불편하더라도 이야기를 해야 생각보다 모든 상황, 관계가 다 편해지더라고요. 원래 저는 ‘내가 알아서 잘할 테니까’ 이런 식이었어요. 그런데 노력하는 과정도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고 하더라고요. 그것이 보여야 어떤 사람에 대한 믿음이 생기고요. “말 안 하면 몰라” 그 시절 누군가가 툭 던진 한마디가 제게는 큰 불씨로 다가온 거예요.
GQ 카드를 보여준다는 건, 결국 함께의 가치를 안다는 말일 것 같기도 해요.
JY 맞아요. 내가 이 정도(손가락 한마디 정도) 했을 때 남들이 함께해주면 이렇게(손바닥을 크게 벌려) 커질 수 있어요. 함께할 때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오더라고요. 당연히 같이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연기요? 물론이죠. 함께하는 작업이니까. 더 배워야죠. 아직 갈 길이 멀어요.
GQ 지금 어디쯤 왔다고 생각해요?
JY 이제 막 스트레칭하는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