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오의 소동은 이제 시작됐을 뿐이다.
GQ 수요일을 맞는 기분이 달라졌나요?
TO 아무래도요. 기대와 걱정이 반반씩 공존하죠. 방영될 내용을 저는 미리 알고 있잖아요. 반응이 어떨지, 잘 나왔을지 굉장히 궁금하죠.
GQ 반응을 일일이 찾아봐요?
TO 솔직히 궁금한데, 잘 안 찾아봐요. 사전 제작이 아니면 방송이 나간 뒤에도 촬영은 계속되잖아요. 그러면 저는 반응을 의식하게 되더라고요. 좋은 반응이든 나쁜 반응이든, 의식한 채로 연기하면 집중이 잘 안 돼요.
GQ 상처도 받아요?
TO 안 그럴 줄 알았거든요? ‘댓글에 상처를 왜 받아?’ 전에는 그랬죠. 그런데 막상 제 험담을 맞닥뜨리니까 데미지가 상당하더라고요. 백 번 칭찬받다가도 한 번 상처받으면 그게 아파요. 한번은 “한낱 저런 배우가 왜 남주로 나오냐”는 댓글도 봤어요. 그런 댓글 보면 일단 ‘싫어요’ 버튼 누르고 시작하죠. 여기에 ‘좋아요’ 누른 사람 누구야, 분노하면서. 으하하하.
GQ 저희가 촬영하기로 결정한 뒤, 오늘까지 그 사이에 SNS 팔로워가 1백만 명 늘었더라고요. 뜨겁다 못해 끓는 수준이죠. 한편으로 불안함은 없나요?
TO 너무 좋기도 하지만, 걱정도 많죠. 이건 귀여운 걱정일 수도 있지만, 다시 꺼내보고 싶지 않은 흑역사나 연기가 부족한 영상들이 떠돌면 부끄럽고요.
GQ 한 인터뷰에서 “불안을 잘 다스리는 게 나의 장점”이라고 말했더라고요.
TO 자고 일어나면 리셋되는 편이에요. 충격을 받아도 몇 시간 안 가요. 인간관계에서 서운하고 화가 나다가도 몇 시간, 길어도 하루가 지나면 풀려요. 그래서 고민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아요.
GQ 타고난 기질이에요?
TO 어머니를 닮은 것 같아요. 학창 시절에 어머니와 자주 다퉜는데, 다음 날 되면 늘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그러셨죠. “윤환(강태오의 본명)아, 밥 먹어라.”
GQ 맞아요. 엄마 말 잘 듣는 아들이죠? 요즘도 “립밤 바르고 다녀라”라는 어머님 말씀을 잘 지키고 있다고요.
TO 아하하하하. 맞아요. 어머니가 모니터링 철저하게 해주세요. 굉장히 예리하시고요. 제가 어릴 때부터 어머니는 엄격한 분이셨어요. 특히 사람은 예의범절을 지켜야 하고, 항상 단정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죠. 일주일에 한 번씩 커트를 할 정도였어요. 유치원 때는 젤로 머리를 싹 빗어 넘기고 다녔고요. “사람은 이마가 훤칠하게 보여야 하는 법이야”라면서.(웃음) 친구랑 싸우거나 실수를 저지를 때면 크게 혼내셨고요. 혼나기 싫어서 혼날 행동을 아예 안 하려고 했죠.
GQ 처음 배우가 되겠다고 하니 지지해주시던가요?
TO 결사 반대였죠. 공무원 돼서 안정적으로 살라면서요. 고등학생 때 몰래 대형 기획사 오디션을 보고 한 번에 합격하고 나니 그제야 인정해주시더라고요.
GQ 연기하면서 처음 느껴본 감정들 있어요?
TO 죽을 만큼 창피함? 아하하하. 신인 시절에 대사 까먹어서 NG 나고, 저 하나 때문에 스태프들이 밤늦게까지 기다릴 때, 죽을 만큼 창피했어요. 쥐구멍 어디 없나, 할 정도로 충격이 컸죠. 그때의 트라우마 때문에 지금도 대사 숙지만큼은 철저하게 해가려고 해요. 그리고 신기한 경험도 종종 해요. 상황에 집중해 깊이 몰입하다 보면 몰랐던 감정이 북받쳐 올라온다는 거예요. 한번은 드라마에서 절 버린 엄마가 눈앞에 나타나는 장면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런 일을 겪은 것도 아닌데 그 감정이 느껴지더라고요. 이 상황을, 이 세계를 오롯이 믿었더니 일어난 기적 같은 상황이었죠. 로맨스 신 찍을 때도, 순간적으로 설렘의 감정이 훅 올라오기도 하고요. 연기하면서 가장 짜릿하고 신기한 일들이죠.
GQ 그 세계를 진짜인 양 믿어버리는군요.
TO 저는 그래요. 결국에는 관객이, 시청자가 보는 거니까요. 작품이나 인물의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근본에는 공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보시는 분들이 공감할 수 있는 연기를 하려면 내가 진짜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친구가 죽었다, 라는 상황이라면 진짜 죽었다고 생각하고 연기를 해요.
GQ 그래서 궁금합니다. 섭섭준호가 “섭섭한데요”라고 말할 때의 마음.
TO 그 장면에 대한 걱정이 많았어요. 늘 영우의 액션에 리액션을 취하던 준호인데, 처음으로 액션을 취하며 다가가는 장면이었으니까요. 자칫하면 그 전까지 보인 준호라는 인물에서 벗어나 보일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있었어요. “섭섭한데요”라는 말이 문자 그대로 섭섭하기만 한 건 아니었을 거예요.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기도, 부끄럽기도, 민망하기도 했겠죠. 거기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많은 마음, 추상적인 감정들이 담겨 있었죠. 그래서 여러 테이크를 시도했어요. 웃으면서 해보기도 하고, 진짜 섭섭한 듯 해보기도 하고.
GQ 그래서 선택된 테이크는요?
TO 마지막 테이크요. 정확히 어떤 마음으로 연기했는지 기억이 안 나요. 정의할 수도 없고요. 어떤 확고한 감정을 갖고 한 연기가 아니어서요. 다만 이런 마음이었어요. ‘에라 모르겠다, 느끼는 대로, 나오는 대로 하자.’
GQ 결국 좋은 연기는 그런 것 같아요. 계산을 벗어난 곳에서 마주친 어떤 것. 키스 신 메이킹 영상에서 감독이 “잘하고 있으니 자기 검열하지 말라”고 태오 씨에게 조언하더군요. 스스로를 객관화하고 자신에게 특히 엄격한 편이에요?
TO 객관화라는 말이 정확한 표현이에요. 제 자신을 주관적으로 보면, 저도 모르게 자기애가 생겨 쉽게 합리화하게 될 것 같거든요. 지금까지 잘해왔으니, 이 정도만 해도 좋아해주시겠지. 행여 그런 생각이 들까 봐 최대한 스스로를 극단으로 몰아세우고 자꾸 질문해요. 이게 맞나? 정말 맞나? 촬영할 때도 늘 의구심을 갖죠. 그래서 오롯이 만족했던 적이 없는 것 같아요.
GQ 자꾸 부족하고, 아쉽고요.
TO 저는 제 단점을 잘 알잖아요. 그걸 최대한 들키지 않게 보완하려고 노력해요.
GQ 단점이 뭐길래?
TO 말할 수 없어요. 말하면 그것만 보일 테니까.(미소)
GQ 너무 완벽해도 재미가 없단 말이죠.
TO 맞아요. 연기에는 정답이 없으니까요. 1 더하기 1이 2인 건 누구나 알지만, 연기에서 2가 어떻게 도출되는지는 모르는 거예요. 저의 검열 작업은 보통 이렇게 실행돼요. 제 머릿속에 콘티를 그려놓고 모니터링하면서 그림체, 호흡, 감정이 콘티대로 잘 나왔는지를 보죠. 스스로 납득이 되는지가 기준이 돼요.
GQ 콘티의 첫 번째 독자가 되는 셈이군요. 좀처럼 자신에게 취하는 법은 없죠?
TO 가끔 있어요. 샤워할 때?
GQ 연기하고 나서 ‘나 좀 멋있었네’ 느낄 때는요?
TO 저는 그런 상황에서 ‘다행이네’라고 표현하는 것 같아요. 콘티대로 잘 나왔고, 반응도 좋으면 아 다행이네, 오늘도 커다란 산을 잘 넘겼네, 라고.
GQ 무언가 잘돼도 내가 잘해서라기보다는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편인가 봐요.
TO 그런 편이에요. 잘되었으면 제가 잘한 지분도 어느 정도는 있겠지만, 여러 가지가 맞아떨어져야 하니까요.
GQ 어떤 사람을 볼 때 멋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TO 프로페셔널한 사람. 자기 관리 잘하고, 한 말에 약속을 지키는 사람.
GQ 강태오는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인가요?
TO 잘 지키려고 노력해요. 그래서 함부로 약속을 안 하려고 하죠. 다하지 못할 책임은 지지 않는 게 좋잖아요. 약속을 잘 지킨다기보다, 약속을 신중히 하는 편에 가까운 것 같아요. 사랑하는 관계에서는 더더욱 그렇고요. 사랑하는 사람과의 약속은 너무너무 중요한 거니까,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지키려고 해요. 믿음과 신뢰가 중요한 관계잖아요.
GQ 들을수록 강태오와 이준호가 겹쳐 보여요. 강태오가 사랑을 말할 땐 어때요?
TO 무척 다정합니다. 표현을 많이 해요. 좋아하면 좋아한다, 사랑하면 사랑한다. 특히 사랑한다는 말은 정말 많이 해요.
GQ 싫은 것도 돌직구로 말해요?
TO 싫은 건 돌려 말해요. 충격이 그대로 전해질까 봐. “그 방법도 좋은데, 그러면 이러이러한 일이 있을 것 같은데, 혹시 이 방법은 어떨까?”라는 식으로요.
GQ 쏘 스윗하군요. 이준호라는 사람이 강태오에게 남기고 간 발자국은 뭘까요?
TO 군대가기 전에 “지금부터 더 잘하라”는 주의를 주고 가는 것 같아요. 물론 전에도 비슷한 마음가짐이었지만, 한 번 더 조언을 하고 가는 느낌이랄까요? “강태오, 너 이제 지켜보는 사람 많으니까 더 잘해야 한다.”
GQ 건강한 사람. 역시 연기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TO 그럼요. 연기가 너무 재미있어요. 필모가 쌓일수록 인생의 발자취가 남고, 언제든 꺼내어 볼 수 있잖아요. 배우로서 그 점이 너무 좋아요. 제가 남긴 발자국을 모두 모아놓으면 제가 늙어가는 과정을 나열할 수 있지 않겠어요?
GQ 사람을 컬러로 표현하는 걸 즐긴다면서요. 강태오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발자국을 색으로 한번 그려볼까요?
TO 와, 좋아요. 일단 유년기부터 초등학생, 중학생 초까지는 아주 반짝거리는 주황색이에요. 중고등학생 때는 밝은 주황색으로 빛나다가 톤 다운된 회색으로 바뀌죠. 사춘기여서 그런가? 그리고 데뷔 직후는 정열의 레드로 물들었다가 점점 무르익어 검붉은 피 색으로 변해요. 지금은 초록색이 떠오르기도 하고, 점점 파란색이 되는 것 같아요. 동해 바다를 닮은 청명한 푸른색.
GQ 그렇다면 군 입대 후에는···.
TO 또 모르죠. 군대 가서도 빛날 수 있으니까, 휘황찬란한 금색으로 합시다.
책에 미처 담지 못한 강태오의 아름다운 B컷은 8월 26일 금요일, 지큐 웹사이트에서 공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