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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들렌보다 약과 ‘한식’ 디저트가 ‘힙한’ 디저트가 된 이유

2022.08.29전희란

피낭시에나 마들렌을 먹고 싶은 만큼 개성주악도, 약과도, 바람떡도 먹고 싶다. 한식, 술에 이은 한식 디저트에도 마침내, ‘국뽕’ 바람이 분다.

글 / 이해림(푸드 칼럼니스트)

의정부 장인한과의 파지약과.

“이게 파는 물건이야?”
흔한 스티로폼 접시에 깨진 약과를 대충 담아 랩으로 포장한 것이었다. A는 분명 의기양양하게 내밀었다.
“응. 힘들게 샀어. 냉동해놓고 진짜 아껴 먹는 거야.”
보통은 논현동이나 연희동 등에 새로 생긴 파티스리의 특별한 디저트를 힘들게 사고, 진짜 아껴 먹는다. 박살 난 약과를 아껴 먹는다고? 아껴 먹어야 할 간식보다는 “커피 찌꺼기 마음껏 가져가세요”, “콩비지 1인 1봉 무료입니다”에 가까워 보였다. “제조 과정에서 파손된 약과 무료로 가져가세요. 위생과 맛에는 문제없으니 안심하십시오.” 같은 안내문 아래 잔뜩 쌓여 있는 모습까지 눈에 선했다.
서로 어색해진 가운데, 걱정스러운 말투로 A가 물었다.
“너 푸드 칼럼니스트인데 의정부 장인한과··· 파지약과 몰라?”
먹는 데 게을렀던 모양이다. 몰랐다. 한입 먹어본 순간부턴 너무나 잘 알게 되었다. 약과 님이 제조되시는 과정에서 피치 못하게 깨지샤 표면적이 더 넓어지시니 즙청도 더 많이 묻으샤 두 배로 바삭하고 맛있으시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약과가 있었다니! 이토록 맛있고 귀한 것을 나눠주는 것은 분명 굉장한 우정이다!
이 진정한 우정에 보답하기 위해 다음 날 바로 장인한과에 전화를 해봤다. 다음 주문은 일주일 후에 받는다고 한다. 아무리 맛있대도 무려 일주일이나 기다려야 하다니, 라고 생각하다가 자연스럽게 까먹고 주문을 하지 않았지 뭔가. 그 일은 매일 해질녘마다 후회하고 있다. 어언 작년 봄 일이다. 이후부터 파지약과가 더욱더 유명해지더니 어느덧 구할 수 없는 것이 되어갔다. 이제 장인한과의 파지약과를 사려고 애쓰는 것보다는 그냥 무지개 끝에서 유니콘을 잡는 쪽이 더 쉬워 보인다.
부서진 약과만의 일이 아니다. 요즘 타임라인은 온통 한식 디저트 붐이다. 내 알고리듬에도 전국 방방곡곡의 이름난 떡집이며 한과집 콘텐츠가 출몰한다. 장인한과의 파지약과가 ‘구하기 힘듦’의 정점에 서 있긴 하지만, 못지않은 고충이야 부지기수다. 특히나 그것이 아무나 못 할 경험과 결착되어 있다면 더욱더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한다.

경복궁 별빛야행 프로그램에서 제공되는 도슭수라상.

이를테면 ‘경복궁 별빛야행’ 같은 것. 올봄에 진행된 프로그램이다. 매년 한다. 야간에 경복궁의 미공개 구역을 해설사 안내로 투어하고, 궁의 부엌인 ‘소주방’에서 내는 12첩 반상 도시락을 축약한 ‘도슭수라상’을 풍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시식하는 프로그램이다. 그야말로 굉장하다. 당연히 예약에 실패했다. ‘생과방’에서 같은 시기 두 달 넘게 진행하는 비슷한 프로그램도 있었는데, 이 역시 못지않아 마찬가지로 예약에 실패했다. 생과방은 소주방 전각에 위치한 곳으로 왕과 왕비의 후식과 별식을 담당하던 주방이다. <조선왕조실록>을 고증한 구선왕도고, 호두정과, 사과정과, 주악, 약과, 매작과 등 6가지 병과와 약차를 맛보는 유료 프로그램인데, 디저트에 특화되어 더욱이 예약 난이도가 올라갔다. 피케팅에 소질이 없는 내 실패담이야 뭐, 궁 말고도 또 있다. 갑자기 뮤지컬이나 아이돌 콘서트 예매는 아니고 한국의집이다. 충무로역 근처에 있는 그 커다란 한옥 군집 말이다.
잘 알지도 못하던 한국의집에 궁중다과를 선보이는 고호재라는 것이 있다. 생과방과 비슷한 다과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계절마다 메뉴가 바뀌는데 한국의집 별채인 문향루에서 1인 다과상을 받는다. 소반에 단호박증편, 원소병, 살구과편, 오미자배정과, 산딸기정과, 송화다식, 콩다식, 그리고 오미자차와 송화참외팥빙수가 오른다. 이쪽은 여유 있게 예약하면 운 좋게 자리를 얻기도 한다는데, 아무튼 나는 실패만 하고 있다.
그래도 어떻게든 꼭 소반 한번 받아보고 싶어서, 공공을 포기하고 민영으로 갔다. 서래마을 ‘김씨부인’에선 계절색을 담은 한과 차림을 주문할 수 있다. 궁중 악단의 풍악이나 새파란 하늘을 향해 날래게 뻗은 단청이 없는 것이 아쉬웠지만, 경쟁 없는 편안함 속에 한식 달다구리의 정취를 내 속도대로 즐기는 것은 좋았다.
장인한과의 파지약과를 좀 늦게 알았다 뿐이지, 내가 약과를 싫어하진 않는다. 오히려 좋아하는 편이다. 솔직히, 무척 좋아한다. 압구정동 호원당의 만두과(속에 대추소가 들어 있는 약과)와 중모과(일반 약과보다 오래 튀기고 청에 오래 재워 더 부드럽고 촉촉한 약과)는 지날 때마다 사 먹는다. 꼭 약과 계열만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매엽과(타래과라고 흔히 부르는 밀가루 과자)나 곶감말이도 무척 좋아한다. 코스트코에서 빼놓지 않고 사는 것도 머핀 한 판보다는 미니 약과다.

경기떡집의 이티떡.

떡도 떡대로 즐겨 먹는다. 도수향 이북인절미는 생각날 때마다 예약한다. 올해는 부지런히 쑥인절미도 챙겨 먹었다. 압구정공주떡의 흑임자인절미는 얻어먹기만 해봤는데 아무래도 조만간 한 상자 챙기러 가게 되지 싶다. 경기떡집의 이티떡도 자꾸 주문 버튼에 마우스가 미끄러지는 품목이다. 종로에 가면 낙원떡집을 꼭 들르고, 동네 근면한 떡집의 절편이나 바람떡도 출출할 때마다 집어오곤 한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의 알고리듬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다들 피낭시에나 마들렌만 먹고 다니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토록 한식 디저트도 탐하고 다닌다. 막상 예약을 해보려 하면 게으름뱅이를 도태시킬 정도로 어디나 크고 작은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생과방도 못 가본 뉴비이지만, 나는 예약 경쟁이 한식 디저트에서도 번번이 일어난다는 사실이 반갑다.
속한 세대의 문제인 것 같다. 떡이나 한과에 대한 애호는 이상하게도 밝히기 창피했다. 양말에 난 구멍처럼, 아무도 모르게 오물오물 몰래 먹어야 할 구닥다리 간식처럼 생각했던 것 같다. 봄바람 불 때의 울긋불긋한 화전도, 뜨거운 바람마저 멈춰버릴 여름 한때의 증편도 드러내놓고 좋아하기 부끄러운 것으로 여겼다. 남 몰래 만두과를 사 먹고 인절미를 사다 얼렸다.
40대인 내 또래까지는 피낭시에나 마들렌 등 서구 열강의 것을 즐기는 취향은 고매하고, 한국의 떡이며 한과 등 전통을 탐하는 것은 촌스러운 것으로 여겼다. 기성세대, 그러니까 ‘꼰대’, ‘틀딱’ 뭐든 편하게 부르시면 되는 그 세대까지는 애국심이 어딘가 부끄러운 감정이었다. 스포츠 경기라는 거대한 예외만 제외하곤 모든 방면에서 애국심에 대해 비하의 의미로 ‘국뽕’ 딱지를 붙이며 깎아내리곤 했다.
왜일까. 개발도상국에서 태어나 그렇다는 누군가의 분석(?)을 듣고 무릎을 쳤다. 내 위 세대는 후진국인 한국에서 태어났기에 “미제는 X도 좋다”고 할 정도로 서구 열강에 대한 사대주의를 갖고 있었다. 그 인식이 손자이고 자식인 나에게도 영향을 줬다. 내 아래 세대는 1986년 <제10회 서울 아시안게임>과 1988년 <제24회 서울 올림픽>을 경계로 땟국물을 벗겨낸 이후의 한국을 산다.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성장하는 윤택한 한국이 그들의 나라다. ‘라때’처럼 학교에서 억지로 주입시켜 달달 외우는 애국심이 아니라, 그냥 태어나 살아보니 제법 괜찮아서 일생동안 우러난 ‘찐’ 호감으로서의 애국심이 정말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온하루의 백오기정 모둠기정떡.

얼마 전엔 증편 세트를 한 상자 샀다. 미쉐린 가이드 1스타를 딴 한식 다이닝 레스토랑 ‘온지음’에서 운영하는 딜리버리 브랜드 ‘온하루’와 ‘백오기정’ 떡집이 함께 만든 것이다. 이 둘은 단오 때는 수리취떡도 선보인 바 있다. 한국의 절기 먹거리를 잘 결부시킨 컬래버레이션이라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지난 6월 말 예약을 받아 선보인 것은 ‘모둠 기정떡’이었는데, 한여름 더위에도 쉬지 않아 여름에 즐겨 만들어 먹던 기정떡, 그러니까 증편 5가지 맛이 들어 있었다.
수리취떡 덕분에 단오에 먹는 세시 음식이라는 수리취가 어떻게 생긴 무엇인지 찾아보았다. 기정떡 덕분에 냉장 기술이 없던 시절 생활의 지혜를 상상해보게 됐다. 애국심은, 내가 속한 문화를 조금 더 알게 되고 점차 호감을 품게 되는 일은, 이렇게 일상 속에서 조금씩 가까이 두며 자연스럽게 자아내어지는 감정 상태였다. 개성주악 덕분에, 기정떡 덕분에 뒤늦게 애국심을 따라잡는다. 한국인으로 태어나 한국에 살고 있는 것이 이제 좀 마음에 든다.

피처 에디터
전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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