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가 그린 위에 섰을 때. 그로부터 빛나는 모든 것.
GQ 아까 촬영 중에 혼잣말처럼 이렇게 말했죠. “난 플레이어보다 캐디가 좋아.”
GS 그걸 들으셨어요?(웃음) 골프채 잡고 있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는데, 제가 중얼중얼했나 봐요.
GQ 촬영 내내 왜 캐디가 하고 싶은지 궁금했어요.
GS 좋은 플레이어 뒤에는 좋은 캐디가 있잖아요. 예상을 해보면 저는 좋은 플레이어는 못 될 것 같고···. 그런데 좋은 캐디는 잘해볼 수는 있겠다, 싶었어요. 막연하게요. 물론 좋은 캐디가 되는 일도 쉬운 건 아니지만.
GQ 플레이에 욕심이 없다니, 또 새롭네요.
GS 저는 하나면 족해요. ‘연기자’라는 직업만 전문 분야로 하고 골프는 어휴, 안 될 일이에요. 골프 포함해서 다른 건 조금 뒤에 서고 싶은 그런 거.
GQ 얼굴이 많이 탄 것 같은데 설마 골프 탓인가요?
GS 지금 한창 드라마(<미씽2>) 촬영 중이에요. 골프만큼 재밌게 찍고 있어요. 하루 걸러 하루 촬영하고 있다 보니 아무래도 좀 탄 것 같아요.
GQ <미씽> 시즌 1이 너무 잘됐죠. 그래서 시즌 2 제작은 많은 분이 기다리던 소식이 아닐까 싶어요.
GS 감사하죠. 그런데 작가님도, 감독님도 시즌 2까지는 생각하지 않으셨던 것 같아요. 반응이 좋다보니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됐어요. 시즌 1 때 같이 했던 친구들, 스태프들, 선후배님들 모두 다시 봐서 좋고요. 그래서 요즘 정말 재밌어요.
GQ 저는 고수 씨가 SNS를 안 하는 줄 알았어요.
GS 제가 막 부지런하게 뭘 안 해서 그럴 거예요.
GQ 안 하시나 싶었는데 놀랐잖아요. 꽤 솔직하게, 그것도 성실히 하고 있어서. 꼭 아는 형 계정처럼 친근했어요.
GS SNS로 생각을 나누는 게 재밌더라고요. 같은 사진을 보고 다른 분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기도 했고, 또 저를 궁금해하시는 팬들도 있을테니까 슬쩍슬쩍 근황을 알리기도 했어요. 아무튼 바로바로 소통할 수 있는 창구 같아서 그게 좋더라고요 전.
GQ SNS 질문 하나 더 해도 돼요? 피드에 골프 사진이 없더라고요. 전혀.
GS 아, 사진을 올릴 만한 실력이 못 돼요 제가.(웃음)
GQ 골프를 시작한 지는 꽤 됐다고 들었어요.
GS 꽤 오래됐죠. 한 20년이 넘었어요. 그런데 웃긴 건 골프가 본격적으로 ‘재밌다!’라고 느낀 건 올해예요. 올해가 처음!
GQ 예? 재미를 이제 느꼈다고 하기에는 구력이 상당하잖아요.
GS 그렇죠? 요즘 그렇게 재밌더라고요.
GQ 계기가 있었어요?
GS 딱히 없었어요. 아마 예전엔 골프가 그렇게 편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부담이라고 하기에는 그렇지만, 뭐 아무튼. 또 골프보다는 좀 더 액티비티한 운동들을 좋아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올해 치는데 와~, 이거 새삼 재밌더라고요.
GQ 설마 연기도 최근에야 재미를 느꼈다거나 하진 않았겠죠?
GS 조금 달라요. 연기는 재밌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고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아마 마지막까지 같은 생각일 것 같고요. 재밌다가, 어렵다가.
GQ 연기랑 골프 사이에서 교집합을 찾아본다면요?
GS 닮은 점이야 많죠. 생각해보면 정말 많을걸요?
GQ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GS 연기든 골프든 어느 수준까지 올라야 한다는 거? 그래야 재미도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골프를 예로 들면, 클럽마다 어느 정도 마스터가 돼 있어야 라운딩할 때 재미도 생기는 것 같아요. 연습이 돼 있어야 계산도 되고, 필드에 따라서 공략법도 생기고요.
GQ 연기도 기본이 탄탄해야 하고.
GS 네, 뻔한 이야기긴 하지만 정말 그렇잖아요. 연기도 연습이 충분히 돼 있고, 그만큼 노력했을 때 카메라 앞에서 잘할 수 있거든요. 준비가 돼야 작품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지고, 또 역량이 되니까 다른 해석, 다른 시도도 해볼 수 있는 거고요.
GQ 비유가 찰떡이네요.
GS 그러고 보니까 닮은 점이 많아요. 매 신, 매 컷마다 긴장해야 하는데 그건 라운딩 때도 마찬가지고. 매 홀마다 긴장 탁, 하고.
GQ 생각보다 술술 나오는데요? 또 있어요?
GS 그런데 뭐 이건 연기뿐만 아니라 어디에든 적용할 수 있는 거 같아요. 왜 이번 홀에서 드라이버 샷을 못 쳤으면 세컨드 샷에서 만회해야 하잖아요, 만회하는 실력은 결국 연습에서 만들어지고. 결국 골프는 전부 통한다~. 이렇게 마무리!
GQ 골프를 시작한 지는 20년 이상 됐다고 해서요. 비록 그동안 짜릿한 재미는 못 느꼈지만, 그래도 잘 맞는 구석이 있으니까 채를 놓지 않았겠죠?
GS 제가 걷는 걸 많이 좋아해요. 어디서든 웬만하면 걸으려고 하거든요. 골프를 하다 보니까 많이 걷게 되더라고요. 걸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걷기에는 골프만 한 운동이 없어요.
GQ 혹시 본격적으로 물어봐도 돼요?
GS 뭘요, 타수?
GQ 네.(웃음) 보통 타수로 이야기하더라고요.
GS 음, 평균은 90타 정도. 아, 그런데 매번은 아니고 가끔요. 가끔 들어와요. 아주 가끔!(웃음)
GQ 장타는요? 남자들은 장타 욕심이 많더라고요.
GS 아휴, 잘 맞을 땐 쭉쭉 잘 나가죠. 안 맞아서 문제지. 장타는 한 200에서 250 정도는 나가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장타에 신경 쓰고 막 욕심을 부릴 그런 단계는 아직 아니에요. 그런데 요즘 또 아주 조금,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해요. ‘아, 장타는 이렇게 연습하면 어떻게 될 것 같다.’ 물론 이것도 연습을 안 해서 문제긴 하고요.
GQ 최근에 재미를 찾았으니, 이제 승부욕도 슬슬 생기던가요?
GS 또 그렇진 않더라고요. 제가 스코어 욕심이나 누굴 상대로 하는 승부욕 같은 게 없어요. 저는 제 흐름대로 치는 스타일 같아요.
GQ 스스로 정한 목표치만 보는 스타일이군요.
GS 음, 그것도 승부욕이라면 맞아요. 스스로 세운 기준치에 대한 승부욕은 확실히 있는 것 같아요. 스스로 엄격한 편인 것 같기도 하고요. 목표만큼 못 하면 그거 되게 아쉽더라고요?
GQ 아까 촬영 전에 카메라 밖에서 스윙을 몇 번 해보셨잖아요.
GS 다 듣고, 다 보시는구나.(웃음)
GQ 혹시 요즘 잘 안 된다고 생각해서 연습하는 거 있어요? 보통 잘 안 되는 걸 연습하잖아요.
GS 아 뭐, 요즘엔 뭐 다 잘 맞아서요.(웃음) 농담이고요, 저는 지금 뭐가 안 돼서보다는 대체로 연습을 많이 해야죠. 두루두루. 아, 얼마 전에 클럽을 바꿨는데 제가 우드만 교체하지 않았어요. 그랬더니 역시나 잘 안 되더라고요. 우드를 좀 다시 바꿔서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어요.
GQ 정말 골프 욕심이 새로 생겼군요.
GS 우드 없이 하려다 보니까 어렵더라고요. 또 사이 사이 비는 클럽들이 새로 보이고. 아마 골프 욕심 반, 클럽 욕심 반 같아요. 20년 넘게 골프를 했지만 사실 이전까진 1년에 두세 번 정도밖에 라운딩을 안 했거든요. 그런데 올해부턴 본격적으로 욕심이 생기긴 하더라고요. 요즘엔 한 달에 두 번은 꼭 가려고 할 정도니까. 솔직하게 이제는 잘 치고 싶은 마음도 좀 있어요.
GQ 라운딩은 주로 어떤 분들과 함께해요?
GS 배우 선후배분들도 있고, 친구들도 있어요. 골프 같이하는 사람들은 다 좋은 것 같아요. 누구든요. 그래서 골프를 좋아하지만 정확히는 다 같이 라운딩 하는 과정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GQ 결국 골프는 어떤 매력 같아요?
GS 선배들이나 어르신들하고 게임할 때가 종종 있어요. 그때마다 듣는 얘기가 “골프는 끝이 없다” 라는 말인데,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알아야 하고, 조심해야 하고, 알면 알수록 할 게 너무 많은 거죠. 그래서 요즘엔 계속 공부하면서 하는 게 골프구나 싶어요. 결국 그게 매력이구나 싶고요.
GQ 골프를 통해 새삼 배우게 되는 것들도 있죠?
GS 그럼요. 이 얘기를 어디서 들었는지, 내가 한 건지는 모르겠어요. “감정은 표현하는 게 아니고 담아두는 것이다”라는 말인데, 골프가 멘털 게임이잖아요. 감정적으로 운영하면 안 되는 거죠. 그런데 이건 연기도 마찬가지고요.
GQ 연기는 표출해야 하는 영역 아니고요?
GS 맞아요. 저도 예전에는 그래야 잘하는 연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좀 달라요.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담아만 둬도 표현되는 게 좋은 연기, 잘하는 연기 같은 거죠.
GQ 이래저래 골프는 재미도, 가르침도, 깨달음도 아낌없이 주네요.
GS 이 재밌는 걸 이전에는 왜 못 느꼈는지 몰라요.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