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재하다’의 새 정의, 쌓아두지 않는다.
GQ 몸은 괜찮아요? 앓았던 사람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화상 인터뷰도 재밌네요.
JJ 많이 좋아졌어요.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일정이 바뀌어서.
GQ 죄송은요. 내일이면 끝나는 일주일간의 자가격리 경험 어땠어요?
JJ 생각보다 금방 지나가네요. 통증이랑 사투하다 보니까 금방 지나갔는데, 평소에도 워낙 집에 있어서 크게 다른 것 같지는···.
GQ 일주일 연속인데도요?
JJ 네. 평소와 비슷합니다. 하하.
GQ 지금 보이는 공간은 어디예요?
JJ 기타 방입니다. 실상 이름만 기타 방이고요, 기타도 놓고 컴퓨터 방 겸 창고 겸 몽땅 넣는 방입니다. 기타 등등 방이죠.
GQ 그렇다기엔 책장도 잘 정돈돼 있고 말끔해 보여요.
JJ 아닙니다. 엉망이에요. 인터뷰 시간이 된 줄도 모르고 가습기 틀어놓고 도리토스 먹다가 허둥지둥 앉았어요.
GQ 오늘은 하루 종일 버클리 이야기만 해볼까 해요.
JJ 버클리요? 어? 할 얘기가 있을까요?
GQ 이번 전국 투어 ‘The LIGHTS’의 서울 공연 첫 날 ‘버클리’ 곡 연주 전에 그랬잖아요. 버클리 얘기만 하루종일 할 수 있다고.
JJ 아, ‘버클리’ 곡 연주로요. 즉흥 연주, 재즈 기반 곡이니까요. 연주는 어떤 코드를 줘도 하루종일 할 수 있어요. 버클리 대학 얘기는 뭐, 이미 끝난 일인데요.
GQ 이미 끝. 깔끔하네요.
JJ 예대 졸업한 스물한 살 그때 잠깐 가보고 싶어서 시험 보고, 예상한 전액 장학금이 아닌 반액 장학금이었고, 제가 아주 부족하게 자란 건 아니지만 당시 학비는 감당하기 쉽지 않았고, 그래서 깔끔하게 포기하고 그냥 세션으로 돈을 벌어야겠다, 그렇게 된 거죠. 그 외에는 글쎄요.
GQ 그 스토리가 담긴 곡, 버클리에 합격하게 해주었지만 가지 않고 남은 자작곡을 이번 2집 앨범에 다시 꺼내온 거잖아요.
JJ 앨범 트랙 리스트를 구성하면서 흐름을 생각하잖아요. 중간에 환기를 시켜주는 곡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만들어놓은 연주곡이니까 자연스럽게 그 곡이 이미 그 위치에 가 있었어요. 그간의 앨범에 실을 수도 있었지만 딱히 그런 타이밍이라고 느낀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좋은 타이밍이었어요.
GQ 꽤 이성적인 선곡이군요? 갈림길에서 어느 한 길을 걸어온 지금에 대한 감성 담긴 비하인드를 상상했는데.
JJ 의미를 찾는다면 엄청 많이 찾을 수 있죠. 새로운 연주 곡을 넣을 수도 있는데 굳이 ‘버클리’를 택한 이유도 찾을 수 있고, 말씀대로 저의 어렸을 때 이야기라든지, 그런 저의 디테일을 아는 사람들이 들었을 때 받는 느낌 등이 다 포함돼있죠. 그런데 그런 것에 하나하나 너무 막 신경을 쓰다 보면 꼭 놓치는 게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큰 프로젝트를 할 때는 개인적으로 그냥 더 담백하고 심플하게 ‘그래, 이 위치에는 이거’, 하고 깔끔하게 정리하려는 편이에요.
GQ 좋아요. 그럼 지금을 이야기해봐요. “이런 큰 프로젝트”라는 건 8년 만의 정규 앨범인 2집 <The LIGHTS>를 말하는 것이겠죠?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변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가 이번 앨범의 시작점이라고요.
JJ 네. 변하지 않은 것을 찾으려고 이번 앨범을 만들었고, 그래서 이번 앨범이 저한테는 변하지 않는 것들 같아요.
GQ 예를 들면요?
JJ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1집 앨범같은 걸 내봐라. 혹은 ‘별 보러가자’, ‘나랑 같이 걸을래’를 좋아하셨던 분들은 저를 발라드 가수로 알거나 “얘는 어쿠스틱 통기타 음악하는 애 아니야?” 이렇게 양분돼 있어요. 그런데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흐름이라는 게 있고, 잘될 때는 뭘 해도 한없이 잘되지만 고민이 많은 시기에는 뭘 해도 복잡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앨범은 그냥 내가 하고 싶고, 내가 지금 가장 잘할 수 있는 걸 한 번 해보겠다는 의미로 주제를 잡았어요. 뭐라 해야 하나, 사람들이 많이 들어줄 만한 혹은 흔히 말하는 감성 좋은 그런 것들 다 제치고 그냥 기타로, 내가 음악을 편하게 만들 수 있는 이 환경에서 할 수 있는 걸 다 해보자. 초심, 뭐 이런 것까지는 아니지만 지금 가장 나다운 음악을 만들어보자.
GQ 언제, 왜 물음표를 던졌어요?
JJ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나 적재라는 아티스트를 제 스스로 ‘사람들은 적재의 이런 걸 좋아해’ 혹은 ‘적재는 이런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야’라고 가둬놨던 것 같아요. 내가 적재인데. 저 스스로도 저를 통기타 가수라고 생각한 적도 있고. 그런데 생각해보면 제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나는 기타 정말 잘치고, 이런 나의 장점이 분명히 있는데 이를 너무 활용하지 않고 흔히 말하는 잘될 것 같은 것만 계속 좇고있지 않나, 그런 생각에 화가 나는 때도 있었어요. 끝없는 소통에서 오는 정신적인 고통같은 것도 좀 있었고요. 이런 거 이제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딱 들던 때였어요. 저는 어딘가에서 에너지를 쏟고 오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그런데 2021년 말 딱 그 시기에 약간은 단절하고 저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게 필요했어요. 휘둘리지 않고 내 스스로 나의 근본을 찾아 거기서부터 다시 출발하는 느낌으로 재정비하는 의미도 있었고.
GQ 공연 때 이번 앨범 중 제일 아끼는 곡이라며 두 곡을 꼽았는데, 하나는 ‘버클리’였고 다른 하나는 뭐였죠?
JJ ‘그대’를···.
GQ 어? 정말 그랬어요?
JJ 왜, 왜요?
GQ 죄송해요, 소리 질러서. 개인적으로 ‘그대’를 제일 좋아해서.
JJ 아 진짜요? 상당히 마니악한 음악을 좋아하시네요.
GQ 마니악한 노래인가요, 이거?
JJ 저는 너무 좋아하는 노래인데, 생각보다 이번 앨범에서 ‘그대’를 최애곡이라고 해주시는 분이 많아서 놀랐어요, 개인적으로. 왜냐면 아무도···, 어렵다는 느낌 때문에 아무도 안 들을 거라 생각하고 그냥 진짜 어렵게 만든 곡이거든요. 8분의 7박이기도 하고. 홀수 박자에는 사람들이 그다지 익숙하지가 않잖아요.
GQ 아···, 그래요?
JJ 보통 박자를 “원 투 스리 포, 원 투 스리 포”라고 세잖아요. 이 노래는 “원 투 스리, 원 투 스리 포, 원 투 스리, 원 투 스리 포”, 이렇게 7박이거든요. 박자 타다가도 몸이 반대로 움직이는 곡이라 익숙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박자보다는 분위기와 가사를 더 집중해서 듣는다는 걸 느꼈어요. 재밌어요.
GQ 맞아요. 박자 얘기할 때 제게 알아듣지 못한 것처럼.
JJ 하하하. 그러니까. 오히려 박자는 크게 중요하지 않고.
GQ 청자로서 적재 씨가 예전에는 돌아서서 얘기했다면 이번에는 앞을 보고 말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JJ 맞아요. 네. 그러니까 저도 동의하는 게, 예전에는 웬만하면 속내를 크게 보이지않고 ‘내가 하고자하는 말은 여기 담았지만 네가 한 번 찾아줘’ 였다면, 이번에는 이 기타 리프는 도전적이니까 이 흐름에 맞게 한 번 가보자, 그런 식으로 했거든요. 그래서 평소에 제가 하지않을 법한 “그대 뭘 망설이는가” 이런 가사도 나오고. 큰 의미를 담았다기보다 노래 자체의 흐름에 따라 가사를 써보자, 그렇게 접근해봤어요.
GQ ‘나다운 음악’이라고 하면 특히 가사에 저 깊은 속내를 꺼내놓는 측면이 먼저 떠오르는데, 그런 의미의 ‘나다운’은 아닌 것같은 게 흥미롭네요.
JJ 그 포인트를 어디로 잡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말씀처럼 내면으로 잡느냐, 아니면 제가 생각하는 것처럼 음악을 대하는 자세로 잡느냐. 제가 쓰는 가사니까 제 생각과 하고 싶은 얘기들이 당연히 담겼죠. 그런데 전체적인 틀로서 이번에는 제가 녹아 있지만 좀 더 동화를 만드는 느낌으로 접근했달까요. 음악에 맞춰서 가사를 만들었어요. 말 그대로 창작의 관점으로 접근했어요.
GQ 재정비가 됐어요?
JJ 완전 됐죠.
GQ 그런데 말이에요, 어떻게 그렇게 기타 실력이 늘었어요? 중학교 3학년, 열 여섯살 때 배우기 시작해서 예대 졸업, 음대 합격, 가수 정재형의 콘서트를 시작으로 프로 무대에서 세션으로 활동하기까지 5년이 채 걸리지 않았어요.
JJ 그게 저도 의문이긴 한데, 밤에 꾸준히 학교 연습실에 남아있는 사람 중 한명이긴 했어요. 그런데 저는 실전 경험을 하면서 빨리 습득하는 타입이어서 연습만으로 성장하지는 않았어요. 더디게 성장하다 가운이 좋아 세션을 빨리 접하게 되면서 ‘이런 환경에서는 이런 연주를 해야겠구나’, 그걸 빨리 캐치해서 빨리 늘었죠. 주야장천 연습하긴 했지만, 그건 기타를 안고 앉아있지 않으면 무엇도 안될 것 같은 두려운 마음에 시간을 계속 썼던 것 같고.
GQ 하나에 꽂히면 파고드는 스타일이라고 해야 하나.
JJ 맞아요. 뭐 하나에 꽂히면 그게 해결될 때까지 계속 해야 해요. 아니, 며칠 전에도 집에 커튼을 달려고 구멍을 뚫는데 잘 안돼서, 그거 한 번 뚫어보겠다고 하다가 면역력이 좀 떨어진 것 같아요. 그래서 바로 코로나 걸린 것 같은데···, 하하하. 하여튼 집요한 면이 있어요. 왜 안 되지? 될 때까지 해보는.
GQ 그래서, 뚫었어요?
JJ 뚫었죠.